애플에서 페라리로. 마크 뉴슨의 유일한 자동차 디자인 포드 0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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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서 페라리로. 마크 뉴슨의 유일한 자동차 디자인 포드 021C
  • 오토카코리아 편집부
  • 승인 2021.10.0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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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디자인의 상징적인 조너선 아이브와 마크 뉴슨이 새로운 페라리 디자인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소식이다. 산업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들이지만 자동차 디자인 경력은 마크 뉴슨의 포드 021C 콘셉트가 유일하다.

마크 뉴슨의 디자인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이오모피즘(biomorphism:생물학적 형태나 생명 현상을 시각화하는 기법)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업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인 마크 뉴슨은 우리나라에서 카림 라시드, 필립 스탁과 함께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꼽히기도 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2005년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선정한 바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이 세계적 디자이너는 생활용품, 패션·패션용품, 가구, 인테리어, 전자제품, 운기기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알레시 생활용품, 나이키 운동화, 마지스 가구, 테팔 주방용품, 돔 페리뇽 샴페인 병, 샘소나이트 여행용 가방, 예거 르쿨트르 시계, 콴타스항공 A380 인테리어 및 기내용품 등이 그의 손을 거친 것들이다. 

마크 뉴슨과 조너선 아이브의 ‘라이카 M 포 레드’는 소더비경매에서 180만달러(약 20억원)에 낙찰됐다
마크 뉴슨과 조너선 아이브가 함께 디자인 한 ‘라이카 M 포 레드’는 소더비경매에서 180만 달러(약 20억원)에 낙찰됐다

지난 2014년 9월에 부사장급으로 애플에 영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뉴슨은 당시 애플 디자인 총괄 부사장 조너선 아이브와 절친한 사이. 그들은 ‘레드’(록 밴드 U2의 보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아프리카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 기금 마련을 위한 재단) 자선 경매에 출품할 특별한 라이카 카메라를 함께 디자인하기도 했다.

마크 뉴슨이 디자인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애플 와치(2014년)
마크 뉴슨이 디자인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애플 와치(2014년)

그리고 건축가 프랭크 게리,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구두디자이너 크리스찬 루부탱, 패션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 사진작가 신디 셔먼과 함께 루이비통 모노그램 탄생 160주년을 축하하는 ‘모노그램을 기념하며’(A Celebration of Monogram) 프로젝트에 참여해 한정판 양털 가방을 선보였다.

2009년 밀레 밀리아에 자신의 1952년식 페라리 225 스포츠 스파이더 비냘레로 참가한 마크 뉴슨
2009년 밀레 밀리아에 자신의 1952년식 페라리 225 스포츠 스파이더 비냘레로 참가한 마크 뉴슨

마크 뉴슨은 빈티지 스포츠카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소비자 제품은 1992년에 선보인 시세이도 바살라(Basala) 향수병. 당시 시세이도로부터 받은 2만 달러(약 2천210만원)를 평소 꿈에 그리던 애스턴 마틴 DB4를 구입하는 데 모조리 썼다고 한다.

뉴슨은 당시 애스턴 마틴 DB4와 함께 1952년식 페라리 225 스포츠 스파이더 비냘레와 1969년식 람보르기니 미우라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가장 아끼는 소유물로 페라리 225를 꼽았으며, 2009년에는 자신의 225로 밀레 밀리아 스토리카에 참가했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LED와 광섬유로 이루어진 헤드램프는 조명기구 디자이너 조너선 콜스의 디자인
LED와 광섬유로 이루어진 헤드램프는 조명기구 디자이너 조너선 콜스의 디자인

뉴슨은 오늘날의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과 마케팅의 입김에 자동차 디자인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그래서일까. 그가 1984년 대학 졸업 이후 지난 30년간 디자인한 수많은 제품 가운데 자동차는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포드가 1999년에 선보인 콘셉트 카 021C다.

마크 뉴슨이 디자인 한 록히드 라운지 체어

프로젝트는 당시 포드 글로벌 디자인 담당 부사장이던 제이 메이스가 마크 뉴슨에게 혁신적인 자동차 실내디자인 개발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메이스는 마돈나의 뮤직비디오 비(rain)에 나오는 록히드 디자인 체어(마크 뉴슨이 디자인 했다)를 보고 이 프로젝트를 그에게 맡겼다는 후문이다. 폭스바겐에서 뉴 비틀 디자인을 총괄한 메이스는 1997년 포드로 자리를 옮긴 뒤 11세대 선더버드와 5세대 머스탱 등을 선보이며 2000년대초 복고적 미래주의(retrofuturism)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3박스 실루엣이지만 크기는 기아 모닝과 큰 차이가 없다. 트렁크는 서랍식으로 여닫힌다
3박스 실루엣이지만 크기는 기아 모닝과 큰 차이가 없다. 트렁크는 서랍식으로 여닫힌다

의기투합한 뉴슨과 메이스는 당초 실내 디자인만 개발하려던 프로젝트 규모를 점점 키웠고, 결국 자동차 내·외장 전체를 디자인하기에 이르렀다. 포드는 21세기를 앞둔 1999년 도쿄모터쇼에서 021C를 선보였다. 021C는 21세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미국 색상 표준 기업 팬톤(Pantone)의 컬러 차트 번호이기도 하다. 팬톤 021C는 주황색(orange)이다.

포드 021C는 정직한 3박스 형태다. 얼핏 보면 앞뒤가 대칭인 것 같지만, 앞쪽으로 갈수록 약간씩 낮아지는 미묘한 쐐기 형상이다. 또한, 승객공간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으로 치우친 덕분에 방향성을 갖췄다.

시트 디자인은 님로드 의자와 닮았다
시트 디자인은 님로드 의자와 닮았다

뉴슨은 021C를 통해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무시하고 극도로 단순화한 형태를 제시했다. 그는 021C 발표 당시 “어린아이에게 차를 그려보라고 하면 아마 이것과 비슷하게 그릴 것”이라며, 어린이가 그린 자동차처럼 솔직하고 단순한 모양을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는 조명기구 디자이너로 유명한 조너선 콜스가 디자인했다. 헤드램프에는 LED와 광섬유를 썼고, 테일램프는 LED다. 트렁크는 잡아 당겨서 여는 서랍 방식.

마지스 님로드 의자(1997년)
마지스 님로드 의자(1997년)

앞뒤 방향으로 열리는 도어를 열면, 복고풍 전경이 펼쳐진다. 시트 디자인은 찰스 임스나 아르네 야콥센의 의자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사실 뉴슨이 1997년에 디자인한 마지스 님로드(Nimrod) 의자와 가장 닮았다. 알레시 시그마(Sygma) 옷걸이를 닮은 스티어링 휠, 이케포드(Ikepod) 시계를 닮은 계기판과 버튼 등 실내 곳곳에 뉴슨의 흔적이 배어 있다.

마크 뉴슨은 021C에 대해 “이제껏 디자인한 것 중에 가장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작업이었다”며, “마치 500종류의 제품을 한 번에 디자인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시계와 닮은 엔진회전계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시계와 닮은 엔진회전계

첫선을 보인 지 2년이 지난 2001년, 021C는 밝은 녹색으로 다시 칠해져 영국 런던 디자인박물관에 전시됐다. 2년 전에 만든 낡은(?) 콘셉트 카를 꺼내 재단장을 해서 미술관에 전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지난 2010년에는 미국 뉴욕 가고시안 미술관에서 ‘운수단’이라는 주제로 열린 기획전에 전시되기도 했다.

나온 지 20년이 훌쩍 지난 021C는 마치 최근 발표한 콘셉트 카처럼 신선하다. 유행을 타지 않고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021C의 솔직한 조형과 순수한 기법은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 조너선 아이브와 함께 페라리에서 과연 어떤 디자인을 보여줄 지 기대를 모은다.  

*이 기사는 월간 <오토카코리아> 2015년 1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재구성한 것으로 무단 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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