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부터 애스턴마틴까지. 내 멋대로 평가한 본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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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부터 애스턴마틴까지. 내 멋대로 평가한 본드카
  • 앤드류 프랭클
  • 승인 2021.08.0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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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본드는 오랫동안 멋진 차(그리고 약간의 고물차)를 탔다.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이 본드카에 관한 정보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문서는 일급기밀(?)이다

제임스 본드 중령은 60여 년 전 〈카지노 로얄〉로 데뷔한 이래 자신의 권총과 샴페인, 그리고 여성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만큼 신중하게 회사 차를 골랐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여러 번 위태롭고 끔찍하며 형편없는 결정을 내렸는지 생각하면 차를 보는 눈도 영 미덥지 못하다. 우선 미사일 발사 장치나 비상 탈출 좌석, 수륙양용 같은 것들은 잊자. 오로지 자동차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럽지 않은 비밀요원의 관심을 끌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살펴보자.
 

1. 벤틀리 4.5L 슈퍼차저 - 소설 카지노 로얄 (Casino Royale)
제임스 본드가 골수 애스턴 마틴파(派)인 줄 알았다고? 천만에, 이안 플레밍(Ian Fleming·007 시리즈를 시작한 원작자)이 지난 1953년에 고른 첫 번째 본드 카는 이 거대한 짐승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벤틀리 4.5L 슈퍼차저는 첫 007 소설에 나온 1953년은 물론이고, 신차였던 1929년 당시에도 아주 좋은 차는 아니었다. 심지어 월터 오웬 벤틀리(벤틀리자동차의 창업자)조차 “디자인은 빗나갔고, 성능은 어긋났다”며 이 차를 싫어했을 정도다. 단 한 번도 중요한 경주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는데, 주된 이유는 고장이 너무 잘 났기 때문이다. 또한, 앞쪽에 툭 튀어나온 애머스트 빌리어즈의 거대한 슈퍼차저를 달고도 느렸으며, 크고 무거워서 다루기도 힘들었다. 모든 측면에서 본드카로는 끔찍한 선택이었다. 겉모습 하나는 근사하지만, 책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2. 애스턴 마틴 DB5 - 골드핑거 (Goldfinger)
감히 말하지만, 애스턴 마틴 DB5는 당신이 믿고 있는 전설만큼 아주 좋은 차는 아니다. 〈골드핑거〉에서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애스턴 마틴이 내놓은 조금 더 나은 제품 정도로 여겨졌을 것이다. 아주 멋진 겉모양, 고전적인 실내, 쾌활한 엔진은 칭찬하고 싶지만, 주행감각은 그렇지 않다. 1950년대에 경주용 스포츠카를 만들던 애스턴 마틴이 순하고 부드럽고 안락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주행감각은 시시해졌다. DB5는 그슈타드 팰리스 호텔(스위스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5성 호텔) 앞에 세워두기엔 끝내주지만, 그곳에 이르는 산길에서 운전을 즐기기에는 부족한 차다.
 

3. 토요타 2000GT 컨버터블 - 두 번 산다 (You Only Live Twice)
거의 훌륭한 선택이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매혹적이고, 일본이 처음으로 선보인 제대로 된 스포츠카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동차이기도 하다. 야마하가 만든 6기통 2.0L 엔진은 트윈캠 헤드와 3개의 카뷰레터를 갖추고 당시로서는 남부럽지 않은 힘을 냈다. 또한, 핸들링, 승차감, 스티어링도 아주 훌륭했다. 그런데 숀 코너리(1대 제임스 본드)는 키가 너무 커서 차를 편하게 탈 수 없었다. 이에 토요타는 2000GT의 지붕을 잘라내 멋진 컨버터블로 바꾸는 것으로 간단히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러한 조치는 차체 강성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했고, 정교한 스포츠카를 모래성처럼 헐렁한 차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4. 로터스 에스프리 S1 - 나를 사랑한 스파이 (The Spy Who Loved Me)
이상적인 본드카에 가깝다고? 정말 그럴까? 초기형 에스프리는 늘씬하고 섹시했고, 핸들링은 꿈만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산 초기에 사소한 문제들로 홍역을 치렀고, 조립수준도 부정확하고 정밀하지 못했다. 이 차는 트럭을 재빨리 피하고, 사이드카를 폭발시키는 데는 아주 뛰어났다. 하지만 정말로 바다 속으로 잠수해야 한다면, 바퀴에 수평 키(fin)뿐만 아니라 글러브박스에 수중 호흡기도 갖춰야 할 것이다. 제임스 본드가 차를 몰고 해변으로 나와서 차창 밖으로 물고기를 빼는 장면을 아마 기억할 것이다. 애초에 그 물고기는 어떻게 차 안으로 들어갔을까? 내 생각엔 차체 패널 사이로 들어갔을 것이다.
 

5. 시트로엥 2CV6 - 유어 아이스 온리 (For Your Eyes Only)
먼저 한 가지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오랜 2CV 애호가이며, 나무랄 데 없는 스타일과 짜릿한 운전 재미를 주는 2CV에서 어떠한 결점도 찾지 못하겠다. 그래, 2CV는 오두막처럼 생겼다. 이 경우엔 총알 구멍으로 가득한 노란 오두막이다. 하지만 2CV는 사실 본드 카로 아주 기발하고 꽤 멋진 선택이다. 사람들은 서민적인 2CV의 모습에서 친근함을 느끼고, 핸들링이 형편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뛰어난 편이라 반(反)영웅 같은 구석이 있다. 다만, 푸조 504를 탄 악당들로부터 과연 달아날 수 있을지 의심되는 성능이라는 게 문제다.
 

6. BMW Z3 - 골든 아이 (Golden Eye)
이런, 맙소사. Z3 M 쿠페였다면 007 시리즈에 나온 것에 크게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골든 아이〉에 나온 Z3은 보잘것없는 4기통 1.9L 엔진을 지녔다. Z3은 영화에 단 몇 초 동안만 등장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시 본드카를 고른 이들이 제임스 본드에게 가장 잘 어울릴 차보다는 제작비를 가장 많이 보탤 회사를 찾는 데 관심이 많았으리라고 짐작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7. 애스턴 마틴 뱅퀴시 - 어나더데이 (Die Another Day)
또 하나의 엄청난 수치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가 문제가 아니라,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는 영화가 문제였다. 터무니없는 투명 보호막만 빼면, 뱅퀴시는 사실 본드 카로 완벽했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강력하고 위협적이기도 했으니까. 빠르고 시끄럽고 균형이 잘 잡힌 뱅퀴시는 진정 운전자를 위한 자동차였다. 반자동변속기가 아주 심각한 흠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슈퍼히어로 제임스 본드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
 


■ 제임스 본드가 몰았어야 마땅한 차들
 

1960년대 - 애스턴 마틴 DB4 GT
DB5에 비해 더 빠르고 더 멋지고 운전이 즐거운 차다. 제대로 된 레이싱 유산을 물려받은 DB4는 아마 역대 가장 위대한 일반도로용 애스턴 마틴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제작할 당시 이미 단종된 상태였다는 점이 애석하다.
 

1970년대 - 애스턴 마틴 V8 밴티지
제임스 본드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에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런데 한 번도 본드카로 나오지 않았다. 〈여왕 폐하 대작전〉의 DBS나 〈리빙 데이라이트〉의 볼란테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1980년대 - 벤틀리 뮬산 터보 R
너무 둔기 같다고? 그럴지도. 하지만 1980년대는 티모시 달튼(4대 제임스 본드)이 악당을 해치우는 데 박치기를 즐겨 쓴 시기였다. 문이 몇 개가 달렸든 뮬산 터보 R은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있는 영국 스포츠카 가운데 하나다.
 

1990년대 - 재규어 XJ220 V12
제임스 본드는 〈유어 아이스 온리〉와 〈스펙터〉에서 시판되지 않은 특별한 차를 몰았다. 즉, 거대한 차체에 V12 엔진과 4WD를 갖춘 XJ220 콘셉트 카도 얼마든지 탈 수 있었다. 너무나 위협적이라 숀 빈(〈골든 아이〉에서 006 역)은 이 차를 보자마자 항복했을 것이다.
 

2000년대 - 벤틀리 브룩랜즈
좋아, 인정한다. 뱅퀴시를 이길 건 오로지 뱅퀴시 S밖에 없다. 하지만 굳이 다른 걸 생각해야 한다면, 깡패 같고 야수 같은 이 V8 530마력 쿠페를 고르겠다. 기본사양으로 연막 발생기가 달려 있는데(역자 주: 뒷바퀴가 잘 미끄러진다는 뜻), 설마 연막으로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을 뺀 것은 아닐 테다.
 

2010년대 - 애스턴 마틴 V12 밴티지 S 수동
DB10은 아주 멋지게 생겼고, 장담컨대 본드카로 잘 어울릴 것이다. 허나 그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자동차들 중 하나보다는 특별히 수동변속기로 바꾼 V12 밴티지야말로 내가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최고의 본드카다.

글 ·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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