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진화, 감성의 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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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진화, 감성의 둔화
  • 최주식
  • 승인 2020.12.22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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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진화의 속도 속에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선대의 뛰어난 업적은 그 자체로 후광효과를 낸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거대한 벽이 되기도 한다. 자동차도 때때로 그와 같아서 한숨 쉬는 후손들이 있기 마련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E-클래스는 어떨까. 서울 강남의 더 하우스 오브 E에서 열린 쇼케이스 현장은 E-클래스의 헤리티지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3세대 E-클래스 W110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W110은 영화 ‘베티블루 37.2’에서 인상 깊게 나오는 그 노란색 벤츠 E-클래스로,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다양한 사건과 함께 스크린 위를 달린다. 베아트리스 달이 보닛 위에 걸터앉아 얘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W110은 1962년 처음 자동변속기를 장착했고 1965년 영화 속 모델인 6기통 230이 더해졌다.

W110에 잠시 심취했다고 오늘의 주인공을 잊은 건 아니다. 핀테일을 자랑하던 화려한 60년대 스타일과는 사뭇 다르지만, 기술과 성능 측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진화가 이루어져 온 모델이다. 이번 뉴 E-클래스는 지난 2016년 등장한 10세대 모델 W213의 페이스리프트다. 풀 모델 체인지에 버금가는 변화라는 말은 상투적이지만 그만큼 큰 변화를 거쳤다는 표현이다.

보닛 위로 솟아오른 파워돔, 프론트 그릴의 아래위 너비가 바뀌면서 날렵해진 헤드램프와 어울린 앞모습은 더 스포티해졌다. 아방가르드 모델에는 2개의 크롬 루브르와 함께 블랙 컬러의 세로형 스트럿이, AMG 라인 모델에는 기존 AMG 모델에만 적용되었던 다이아몬드 그릴이 달린다. 익스클루시브 모델에는 기존보다 크롬 요소가 더 확대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뒷모습에서 보여진다. 수평으로 뻗은 투피스 테일램프는 내부의 LED 그래픽이 변경되어 새롭다.

 

브리핑에 이어 시승에 나선다. 파주의 한 카페를 기착점으로 돌아오는 코스, 먼저 E350 4매틱 AMG 라인에 오른다. 실내에서 가장 큰 변화는 신형 S-클래스에도 적용된 차세대 지능형 스티어링 휠이다. 더블 데커, 즉 위 아래 두 개의 스포크로 구성된 디자인이 새롭다. 조금 복잡해보이기도 하는데, 직관적인 기능 표시로 금세 익숙해진다. 두 개의 12.3인치 디스플레이로 구성된 와이드 스크린이 보기 좋게 정보를 전달한다. 

직렬 4기통 2.0L 299마력 엔진은 6기통 못지않은 부드러움과 강력함으로 차체를 이끈다. 스티어링은 속도에 발맞춰 매끈하게 방향을 잡는다. 묵직하면서도 민첩한 움직임, 정교한 핸들링이 역시 고성능 세단의 면모를 드러낸다. 고속으로 갈수록 움직임은 더 활기차다.  

 

1960년대 3세대 E-클래스 W110

“메르세데스-벤츠는 E-클래스부터” 라는 말은 아마 안락함과 중후함을 기준으로 한 표현이 아닐까. 안락함은 차체의 균형에서 오는 중후함과 조용함에서, 그리고 오랜 시간 운전해도 편안한 시트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업데이트 된 시트 키네틱 기능은 미세한 조정으로 허리 부담을 줄여준다고 한다. 또 하나, 액티브 스티어링 어시스트를 포함하는 반자율주행 기능은 확실히 동급에서 앞서 나가는 느낌이다. 

깊어가는 가을 풍경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은 E220d 4매틱을 탔다. 직렬 4기통 2.0L 194마력 엔진은 초기 가속이 조금 더 경쾌하고 빨리 달아오른다. 아마 E350을 먼저 타지 않았다면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을 디젤의 떨림도 바람처럼 지나간다. 순항 궤도에 오르면 그 차이는 더 좁아지지만 가속감의 무게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보다 나은 연비(복합, 13.2km/L)로 메운다. 

메르세데스 신형 E-클래스는 스마트하고 스포티하며 놀랄 만한 신기술로 가득하다. 다만 E-클래스에 기대하는 중후함과 감성적인 부분도 함께 끌어올렸으면 좋겠다. 기술의 진화에 반해 감성적인 부분이 둔화되는 느낌은 비단 메르세데스-벤츠뿐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취향의 차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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