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마이 카, 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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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사브
  • 최주식
  • 승인 2021.12.2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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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영화 포스터를 봤다. 차에 기대어 표정 없이 서 있는 한 남자와 운전석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한 여자. 그 뒤로 잔잔한 바다와 나즈막한 산, 구름, 하늘이 펼쳐지는 장면이 권태로워 보인다. 이 포스터에 눈길이 간 건 먼저 빨간색 사브였고, 그 다음 제목,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이라는 문구였다. 그러고 보니 하루키의 이 소설,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나서 책장에서 찾아보니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단편이다. 

 

“지금까지 여자가 운전하는 차를 적잖이 타보았지만, 가후쿠가 보기에 여자들의 운전습관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었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난폭하거나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신중하거나. 후자가 전자보다 –우리는 그 점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훨씬 많았다. 일반론을 말하자면, 여자 운전자는 남자보다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직업이 배우인 가후쿠는 음주운전 사고로 면허가 정지되어 갑자기 전속 운전기사가 필요해졌다. 단골 카센터 사장이 20대의 젊은 여성 와타리를 추천한다. “약간 삐딱하지만 운전실력 하나는 확실하다”는 이유로. 수동 기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녀는 홋카이도 산속에서 운전을 배웠다. 

 

 

카세트테이프, 8트랙이란 단어가 나오면서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그리고 음악적 면모를 드러내는 것은 역시 하루키답다. 사실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제목도 비틀즈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국내에서 하루키의 명성을 높인 것은 아무래도 ‘상실의 시대’인데 그 원제도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비틀즈 노래 제목이다. 

 

 

재즈 마니아로 알려진 하루키는 한때 직접 피터-캣이라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 음악적 장치가 많은 배경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두 사람의 동행이 주요 흐름이지만 내용은 가후쿠가 죽은 아내를 기억하는 부분이 많아 영화에서는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소설 속 나오는 차는 빨간색 아니라 노란색 사브 900. 그것도 뚜껑이 열리는 컨버터블이다. 노란 보디컬러는 그의 아내가 고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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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는 이 차에 개인적인 애착을 갖고 있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차 지붕을 열고 운전하는 게 좋았다. 겨울에는 두툼한 코트에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여름에는 모자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핸들을 잡았다.” 

모자는 날아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영화는 74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감독은 ‘아사코’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지난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공식 개봉날짜는 12월 2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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