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화의 여정, 그랜드 체로키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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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화의 여정, 그랜드 체로키 L
  • 최주식
  • 승인 2021.12.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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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그랜드 체로키는 새로 리모델링해 근사해진 건축물을 보는 것 같다. 어딘가 모르게 웅장해진 듯한데 시리즈 최초의 롱 휠베이스 모델 L이다. 예전에는 정장을 입고 타는 지프라는 수식어가 어울렸다면 지금은 그걸로 부족해 보인다. 

그랜드 체로키는 크라이슬러 배지를 달고 나온 첫 번째 지프로 기록된다. 80년대 중반 미니밴(다지 캐러밴/플리머스 보이저)으로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킨 리 아이오코카는 내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좀 더 강력한 미국적인 상징이 필요했다. 바로 지프였다. 1987년 아메리칸 모터 코퍼레이션 즉 AMC를 인수한 배경이 된다. 

199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유리 상자를 깨부수며 등장한 그랜드 체로키는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는 이벤트로 현대적인 SUV의 출현을 알렸다. 그랜드 체로키는 3세대 WK에서 이른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세례를 받아 M클래스와 부품을 공유했다. 리지드 액슬을 버리고 네바퀴 독립 현가 시스템 및 에어 서스펜션을 받아들였다. 그건 온로드 승차감의 향상을 의미했다. 그리고 4세대 WK2를 거쳐 피아트-크라이슬러 아니 스텔란티스의 별 중 하나가 되어 올해 5세대 WL로 거듭났다. 

V6 3.6L 290마력 엔진

오늘 만나는 5세대 그랜드 체로키 L은 3열 시트의 롱 휠베이스 모델로 써밋(summit) 4×4 트림이다. 차체 길이는 5204mm, 휠베이스는 3091mm이다. 5세대의 특징은 새로운 L 모델과 더불어 4xe라는 전동화 모델을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형 유니바디 구조 등 완전히 새로운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쿼드라-트랙 I, II 그리고 쿼드라-드라이브 II 등 강력한 4×4 시스템을 비롯해 동급 유일의 쿼드라-리프트 에어 서스펜션, 셀렉-터레인 트랙션 관리 시스템 등 주요 메커니즘은 더 견고해졌다. 

마사지 기능이 들어간 가죽 시트와 고급 장비가 대거 쓰인 실내. 새롭게 매킨토시 오디오를 장착했다

7개의 슬롯으로 상징되는 프런트 그릴은 단정하게 자리잡았다. 네모난 각을 유지하면서도 부드러운 앞모습은 오랜 세월 물로 바위를 다듬은 효과 같다. 윈드실드 프릿에 새긴 윌리스 MB 이미지는 옆면 뒤창에서 찾을 수 있다. 피렐리제 275/45 R21 타이어가 앞뒤 휠하우스를 가득 채운다. 

전체적으로 가족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듬직함과 안전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험로, 궂은 날씨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전천후 성능에 대한 믿음이 그랜드 체로키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차체가 길고 크기도 하지만, 아파트 생활보다는 단독이나 전원주택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아무렇게나 세워 놓아도 좋은 주차 공간의 여유와 더불어 좀 더 자연에 다가서는 느낌으로서 말이다.  

사실 놀라게 되는 것은 도어를 열고 실내에 들어섰을 때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워졌다는 느낌이다. 대시보드 나무 패널은 자연스럽고 고급져 보인다. 그 아래 붉은 조명이 은은하게 실내 분위기를 돋운다. 써밋 리저브 트림에 포함되는 팔레르모 가죽 인테리어가 화려함을 더한다. 

계기판은 깔끔하다. 왼쪽 타코미터 오른쪽 속도계를 중심으로 한 계기판은 시인성이 좋다. 두 개의 계기를 작게 줄여서 양끝으로 보내고 가운데 주행 정보와 지도를 띄울 수도 있다. 모니터 상단의 물리버튼은 비상등 중심으로 자주 쓰는 버튼을 모아 놓았다. 새로운 10.25인치 디스플레이 아래 오디오 버튼 2개와 로터리식 다이얼이 자리한다. 손끝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장치들이 남아 있는 게 좋다. 그 아래 스마트폰 무선충전 공간이 자리한다. 센터 콘솔은 매우 깊다. 

눈에 띄는 새로운 기능은 서라운드 뷰(360도) 카메라 시스템이다. 팜캠 실내 카메라는 2, 3열은 물론 뒤 트렁크까지 위에서 비춰준다. 뒤에 탄 아이들이나 짐 상태를 파악하기 좋겠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와 무선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이드 오토도 갖추었다. 그리고 5세대의 특징 중 하나는 WK세대에서 써오던 마크 레빈슨 대신 파워 앰프로 유명한 하이엔드 오디오 매킨토시를 장착한 것이다. 19개의 스피커, 10인치 서브우퍼, 950와트 출력이 고품질 사운드를 들려준다. 

2열 시트는 여유 있고 3열 시트도 어른이 앉을 만하다. 드나드는 접근성도 괜찮다. 특히 파워 폴딩 버튼으로 2열과 3열 시트를 쉽게 접고 펼 수 있어 유용하다. 시트 배열에 따라 다양한 적재 공간을 활용할 수 있고 눈으로 보기에도 공간이 매우 넓다. 

커다란 차체지만 움직임은 부드럽다.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으면 주행 소음은 커지지만 터프함으로 무마시킨다. 오토와 스포트 모드 마찬가지인데 스포트 모드에서 확실히 터프함이 더해진다. 조금씩 익숙해지면 승차감이 더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행감은 속도가 붙을수록 더 부드럽고 조용해지는 편이다. 네바퀴의 접지력은 탄탄하다.  

V6 3.6L 290마력 엔진은 파워가 넘치기보다는 적절한 힘을 적절한 때에 발휘한다. 자동 8단 기어도 그에 잘 매칭된다. 새로운 가변 속도 에어 서스펜션은 변화하는 도로 조건, 그리고 하중에 따라 강성을 조정한다. 전체적으로 주행 안정성과 향상된 승차감을 뒷받침하는 데 기여한다.  

주행모드는 오프로드 주파를 위한 바위, 모래/진흙을 비롯해 눈, 오토, 스포트 등으로 다양하다. 그야말로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위한 장치. 기어 레버 왼쪽 손닿기 좋은 곳에 간단한 푸시로 다룰 수 있다. 차체 높낮이를 아래위로 각각 2단계씩 조절할 수 있는 버튼과 4WD 로 레인지 버튼, 내리막길 주행 보조 장치 버튼이 본질적으로 오프로더임을 말해준다. 

2, 3열은 파워 폴딩으로 다루기 쉽고 접근성 및 공간 활용성이 좋다

운전자의 입장에서 시야는 넓고 시원하다. 긴 차체의 3열이라 뒷좌석 너머 뒤창이 멀리 보인다. 하지만 창이 넓어 시야가 나쁘지 않다. 룸미러 아래 스위치를 앞으로 딸깍 젖히면 디지털 영상으로 바뀐다. 뒤따라오는 차들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도로 풍경이 짧은 영상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 비가 온다든지 여러 주행상황에 맞춰 선택하면 될 것이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켜면 자율주행 레벨 2의 기능을 성실히 수행한다. 액티브 드라이브 어시스트 시스템도 안전을 보조한다. 커다란 차체가 도로를 자동 유영하는 것을 지켜보며 짐짓 여유를 부려본다. 시트 마사지 기능을 켜보는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운전하면서 마사지 시트라니. 예전 지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호사다. 

어두워질 무렵 나이트 비전을 본다. 골목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니터에서 별도 표시로 알려준다. 인식률이 매우 높아서 꽤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의 움직임도 잘 포착한다. 

그랜드 체로키는 이번 5세대에서 마음먹고 업그레이드를 했다. 고급화는 단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편안함 그리고 더 한층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구조를 뒷받침한다. 이제 실용 럭셔리 SUV라고 성격을 규정해도 좋을 것 같다. 

사진·송정남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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