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교수의 디자인 비평] 기아 EV9 차체 디자인과 K-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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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교수의 디자인 비평] 기아 EV9 차체 디자인과 K-디자인
  • 구상 교수
  • 승인 2023.03.2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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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EV9의 양산 모델 디자인이 공개됐다. 완전한 전기동력 대형 SUV로 등장한 EV9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봐왔던 차량과는 완전히 다른, 그야말로 개벽과도 같은 차체 디자인을 보여준다. EV9의 이러한 디자인은 내외장 전체에 걸쳐서 그야말로 고정 관념을 깨뜨린다.

물론 이번 공개에서 EV9의 차체 제원과 같은 자세한 치수 등은 발표되지 않았다. 공개된 이미지로 본다면 거의 미국식 풀사이즈 SUV에 가까운 크기의 차량으로 짐작된다. 캐딜락의 풀 사이즈 SUV 에스컬레이드에 필적하는 크기로, 그야말로 미국 대형 SUV 시장을 직접 겨냥한 모델인 것이다.

일찍이 공개된 바 있는 EV9의 콘셉트카를 비롯해 공개된 양산 모델은 샤프한 감성의 쐐기 같은 이미지의 차체 디자인 감성이 눈에 띈다. 이는 전기 동력 기술을 모티브로 하면서 디지털 이미지가 결합된 감성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디자인 감성은 지금까지의 차량 디자인이 지향해왔던 전통적인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EV9이 보여주는 조형은 팽팽하게 당긴 거의 평면에 가까운 곡면을 쓰면서 거의 직선에 가까운 상자형 차체 이미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EV9의 측면 이미지에서 곡선은 둥근 바퀴의 형태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바퀴의 외형은 둥글지만 휠 디자인은 네 개의 직선적 스포크로 구성돼 있고, 휠 아치 형태 역시 8각형을 반으로 자른 듯한 형태이다. 차체의 측면 디자인에서는 앞, 뒤 펜더의 볼드한 볼륨도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볼륨을 이전에는 곡면을 쓴 근육의 이미지로 이른바 블리스터(Blister)라는, 글자 그대로 ‘물집’ 같이 부풀려진 곡면으로 처리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EV9은 그 볼륨조차도 마치 종이를 접은듯 평면에 가까운 곡면과 샤프한 모서리로 구성했다.

이러한 4각형과 8각형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45도 각도의 사선 조형 요소들이 D-필러의 쿼터 글라스 그래픽, 도어 패널 아래쪽의 검은색으로 처리된 로커 패널과 앞 뒤 휠 아치가 만나는 부분 등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적용되었다. 한편, 전면부는 전기동력 차량답게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으면서도 LED에 의해 사각형 입방체(Cube) 형태로 구성된 헤드램프 디자인이 수평, 수직 조형 요소의 주간주행등과 결합돼 전위적 조형을 만든다. 이런 이미지는 테일 램프에서도 같은 조형언어로 구성돼 있어서 디지털 감각의 이미지를 강조해 준다.

전위적 조형은 실내에서도 이어진다. 수평 기조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에, 운전석 클러스터 및 센터 페시아 디스플레이 패널이 연결된 장방형 디스플레이 패널, 그리고 밝은 톤의 크러시 패드와 그것을 배경으로 구성된 환기구와 베젤은 타원 형태의 스티어링 휠의 형태와 조합되면서 디지털 기술의 전자제품 조형감성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스티어링 휠의 형태 역시 단지 둥근 휠을 잘라낸 이른바 D컷이 아니라, 사각형과 타원의 중간에 자리하는 수학적으로 정의된 슈퍼 타원(Super ellipse) 형태와 상통한다. 슈퍼 타원은 수학적으로 거의 사각형에 필적하는 면적 효용성과 타원이 가지는 유연성을 양립하는 특성을 가져서, 북유럽의 가구 디자인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Scandinavian design)이라고 일컬어지는, 기능적 형태이다.

 

EV9의 기능적 실내 조형은 도어 트림 패널 팔걸이와 좌면의 면적이 강조된 시트, 그리고 2열 좌석과 3열 좌석이 마주볼 수 있는 기능의 스위블 시트 등에도 나타난다. 이런 공간 개념은 우리나라의 가족 중심 안방 문화를 반영한 콘셉트이기도 하다. 서구의 대형 SUV 역시 가족 구성원을 수용하는 3열 구성의 좌석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 차량은 가족 구성원이 같은 공간에 타고 있지만, 개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사용하는 구성으로 개별성을 지향한다. 그러나 EV9의 2열과 3열 좌석은 공간을 공유하는 가족 개념이 더 강조된다.

EV9의 이와 같은 디자인이 의미하는 바와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K-디자인’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우리의 디자인일 것이다. 몇년 전까지도 우리나라 차들의 디자인은 그 완성도에서 ‘나쁘지 않은 수준’이기는 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주장할 수 있을 만큼의 고유성(固有性; Uniqueness)은 보이지 않았다. 잘 만들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디자인이라고 평가되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한국차의 디자인은 미국이나 유럽의 차들과 구분되는 건 물론이고, 같은 극동지역 국가임에도 일본 차들과도 확연히 구분된다.

EV9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옆에 세워놓아도 그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명확히 대비해서 보여주는 차량으로 등장했다. 우리 문화가 반영된 디자인, 그런데 그것이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이 공개된 전기동력의 SUV 모델 EV9은 바로 그런 K-디자인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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