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의 두 남자, Mr. Road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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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의 두 남자, Mr. Roadster
  • 손시내
  • 승인 2013.10.0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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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외국에 나갔다 온 후 냉방병에 걸렸다. 축축하고 뜨거운 데다 변덕스럽기까지 한 한국의 날씨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나마도 전력난에 허덕이는 탓에 어딜 가도 예년 같지 않았다. 바캉스를 떠날 의지도 생기지 않았고, 이런 습한 날씨에 좋아하는 스키니진에 하이힐을 신고 어쭙잖은 사람과 데이트할 마음도 없었다.

더위 먹은 강아지처럼 침대 위에 축 늘어져 귀국을 반기는 사람들의 연락을 못 본 척 무시하고 있던 차, 구조신호 같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발신자는 Mr. Roadster. 나는 고가의 하이힐이나 명품백 찬양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성숙하고 매력적인 여성이 되는 과정에는 하이힐이 이벤트적인 요소를 버리고 일상이 되는 시점이 포함되어 있고, 그러한 여성에겐 하이힐의 자존심과 섹시함을 이해해줄 남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단순한 시각적 호감이 아니라 이해 말이다. 요즘 남자들은 겉보기엔 감각 있어 보이지만 의외로 둔감하거나 허세 덩어리, 혹은 점잖고 말쑥한데 알면 알수록 지루하고 고루하기까지 한 재미없는 경우, 말로만 여자를 이해한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 점수는요, 10점 만점에 평균 2.7점. Mr. Roadster. 그들은 이 평균 점수를 가소롭다는 듯 비웃는다. 일에 열정적이고 스타일에 민감하며 분위기 조성에 탁월한 그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가? 평가의 잣대를 내미는 나를 건방지다고 말할 생각이라면 최소한 로드스터 같은 남자가 되어보라.

Mercedes-Benz SLK200 클래식 슈트를 갖춰 입은 그
그는 마치 잘빠진 클래식 슈트를 갖춰 입고 나온 점잖은 비즈니스맨 같았다. 이것은 폭이 넓은 라디에이터 그릴 때문에 돋보이는 메르세데스-벤츠 엠블럼과 1950년대 전설적인 로드스터 190SL 느낌의 LED 헤드램프의 첫인상 때문인데 롱 노즈와 숏 테일 디자인은 전형적인 로드스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클래식 슈트를 착용한다는 것은 의외로 과감하다고 여겨질 만큼 쉽지 않은 선택이다.

자신을 잘 꾸미는 사람도 부지런한 사람이며 부지런한 사람이 일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법! 슈트를 차려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티한 매력이 엿보이는 그에게서 드레스 셔츠 소매 아래로 흘깃 보이는 타투를 우연히 발견한 것 같은 감상을 느꼈다. 매력적인 외모가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작할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다.

좋은 외모가 전부인 사람은 2.7점. 거기에 말이 통하고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면 점수는 완전히 달라진다. SLK200은 동급 모델 중 가장 콤팩트하지만 실내공간은 기대 이상의 안정감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최상급 메탈로 가공 처리된 실내는 세심함을 잊지 않았고, 태양열에 오래 노출되어도 열을 반사해 보다 안락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배려심도 뛰어나다. 그 와중에 4개의 원형 송풍구는 “나는 메르세데스-벤츠 가문이 분명합니다”라고 말한다.

얼굴에 성격 정도 따지던 여자들은 이미 옛날 사람. 현대 여성들이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 1순위는 능력이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사람들을 마냥 속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능력 있고 똑똑한 남자는 늘 인기 있다. 합리적이고 능력 있는 그는 데이트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최고출력 184마력과 최대토크 27.5kg·m/rpm의 뛰어난 운동성능을 가지고도 이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군더더기를 완벽하게 없애 한층 가벼워진 차체 중량과 내부 마찰 감소로 연료 소비를 줄여 10.6km/L의 탁월한 연비까지 자랑한다. 그렇지만 가장 쿨한 건 생색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언제나 최적의 회전속도를 유지하면서도 기어 변속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수다스럽지 않고 과묵하다. 오픈카를 생각하면 시원하고 마냥 로맨틱할 것만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대화라도 조금 하려고 하면 거의 소리 지르듯 말해야만 하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 그 앞에서 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느라 바쁠 테니 분위기 있게 커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쉽지가 않다. 특수모양의 플랙스글라스로 구성된 에어가이드는 외부 소음을 감소시켜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꽥꽥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그는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실내로 유입되는 바람을 차단시키기 때문에 아침에 공들여 드라이한 헤어스타일이 순식간에 추노가 되는 사태까지는 발생하지 않는다. 바람결에 자연스럽게 머리카락이 날리는 드라마틱한 그림을 포기할 여자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아늑한 실내에서 그와의 데이트를 즐기고 싶다면 굳이 적당한 장소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버튼 하나로 루프의 투명도를 조정할 수 있는 매직 스카이 컨트롤 파노라믹 배리오-루프가 선택 사양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한 태양으로부터 피부에 얹어질 주근깨의 걱정에서도 벗어나게 해준다. 반면 루프를 밝고 투명하게 하면 루프를 열지 않아도 빛이 투과되어 오픈 에어 드라이빙의 느낌을 즐길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에 오픈카의 로맨스를 즐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나고 능력 있고 로맨틱한 남자라 할지라도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는 조금 곤란하다. SLK200의 CO₂ 배출량은 현저하게 낮추고 선행 차 혹은 맞은 편 차의 존재 여부에 따라 능동적으로 하향 전조등과 상향 전조등의 전환이 가능하다. 그는 점잖지만 강하고, 편안하지만 디테일에 부족하지 않으며, 배려심이 강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는, 틀림없이 착한 남자다.

BMW New Z4 타이 따위 매지 않는 남자
SLK200이 클래식 수트를 차려입은 타입이었다면 New Z4는 타이 따위로 나를 묶어두려고 하지 마! 라고 외치는 느낌이다. 상사의 눈치에도 당당하게 면바지에 스니커즈를 신고 출근하는 대담함을 갖췄을 게 분명하다. 사실 Z4는 CF보다 나은 PPL의 영향으로 2010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차로 유명세를 탔다.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맡은 김주원 역에 Z4만큼 꼭 들어맞는 캐릭터의 차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김주원은 말했다. “신은 분명히 여자다. 그러니까 날 만들었지” 여자를 버릴 때조차 달콤한, 신의 사랑을 받아 마땅한, 두뇌마저 섹시한 남자. 그건 Z4를 두고 하는 말이다. New Z4를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의 섹시함에 몸서리를 칠 것이다. 앞 유리까지 도달하려면 한참이나 시선을 옮겨야만 하는 길게 뻗은 보닛에 넋을 놓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로드스터의 전통적인 스타일이라지만 잘 빠진 보닛과 뒷바퀴 쪽으로 치우쳐진 시트, 긴 휠베이스, 낮은 숄더 라인, 차체를 따라 흐르는 측면라인의 스포티한 감성 등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강렬함과 날렵한 이미지는 단연 독보적이다. 또한 하드톱을 열었을 때의 그가 와일드한 로드스터의 면모를 발휘한다면, 닫았을 때는 외관과 매끄럽게 융화되어 부드러운 헤어스타일을 연출한 느낌이다. 주행속도 시속 40km 이하일 때 버튼 하나로 약 19초 만에 완전히 다른 남자로 변신이 가능하다.

그는 높은 하이힐에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말로 걱정해주기보다는 단숨에 차에 태우고 질주해줄 센스를 가졌다. 하이힐을 벗지 않아도 나를 순식간에 어디론가 데려가줄 이 화끈한 남자. 그런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고 장담하는 건 착각이고 허세다. 뜨거운 자극을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닐 것 같이 보여도 나는 의외로 겁이 많고 보수적이다. 정속주행에서 단 시속 1km라도 넘어가면 당장 액셀 페달 위에 있던 발을 떼는 여자에게 New Z4를 어떤 의미일까?

그의 목소리는 신호대기 시에 1m의 이동에서조차 저음으로 속삭인다. 그 매력적인 배기음은 나에게 감추어져 있던 본능을 급하지 않게 살살 긁어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는 시끄럽게 윽박지르지 않는다. 내가 달리고 싶은 욕구를 드러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는 자신감에서 시작된다.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5.9kg·m/rpm. 그러나 질주본능을 자극하는 것은 비단 강한 운동능력만은 아니다.

뒷바퀴 바로 앞에 낮게 위치한 시트 포지션 덕에 후륜구동에 작용하는 파워가 그대로 전달된다. 차와 몸이 하나가 된 듯, 그리고 내 몸이 아스팔트 도로 위를 미끄러지는 느낌! 글쎄요. 스피드를 즐기는 게 좋은가요? 로드스터가 멋지긴 하지만 그렇게나 좋아요? 질주에 관심이 없는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타보지 않고는 몰라욧”이라고 말하겠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백날 글로 읽고 영상으로 접해봤자 외모와 스펙에 넋이 나갈 뿐이다. 그의 목소리와 강인함, 그리고 시승시의 일체감을 몸으로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뜨거움을….

끝을 모르는 드라이빙의 매력에 그를 시도 때도 없이 달리기만 하자고 조르는 어린애 같은 남자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New Z4는 다이내믹 드라이빙 컨트롤로 운전 시 모드 전환이 가능하다. 컴포트와 스포트, 그리고 스포트+, 세 가지로 나뉘는데 컴포트가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도심 안에서의 드라이빙 스타일이라면 스포트+는 그야말로 질주를 위한 모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요구를 해와도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일, 뜨겁지만 끈적이지 않고, 담백하지만 싱겁지 않은 것이 New Z4의 스타일이다.

변화가 빠른 도시 밀림에서 그가 원하는 건 늘 좀 더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것이고, 탁한 산소를 마시고 더 탁한 이산화탄소를 뱉으며 호흡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일탈을 선사하는 것이지만 그런 중에도 잊지 않는 건 스타일의 합리적인 진보다. 새롭게 바뀐 슬림한 헤드라이트 디자인은 앞 휠까지 길게 뻗어 나와 측면 에어브리더와 어우러지며 역동적인 곡선을 살렸다.

저스틴 비버가 엉덩이가 다 보일 정도로 바지를 내려입는 이유는 무엇인가? 난 속옷까지 스타일리쉬해. 겉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패셔니스타야! 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New Z4는 내부 인테리어마저 파워풀하고 스포티하다. 검은색 인테리어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대시보드 아랫부분과 문 안쪽의 오렌지색 알칸다라 가죽, 시트에 들어간 하이라이트 라인과 스티치는 확실히 고급스러우면서도 디테일한 멋이 살아 있다.

그의 진보는 오로지 멋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최적화된 공기역학 구조, 지능형 경량기술로 인해 전반적인 운동성능이 전보다 향상되었고 운전 역시 편해졌다. 멈춰 있고 싶어도 도시 밀림은 그를 잡고 놓아주지 않을 것 같다. 진부한 표현이라고 야유를 보낼지라도 나는 감히 그를 치명적인 매력의 옴므파탈이라고 말하겠다. 그는 전통적인 디자인을 잊지 않고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뽐내는 남자이며, 그를 갈구하는 여자들을 보면서도 남자라면 그를 워너비로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질투하고 있을지라도. 하이힐에서 내려와 맨발로 집안에 들어섰다. 종종 미국처럼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꼭 새 구두를 사서 집에 들어오는 날 그렇다. 그러면 나는 침대에 누워 구두를 신은 발을 천장을 향해 들어 올리고 아름다운 구두에 넋을 놓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방 접는다. 여기저기 굳은살과 상처가 남은 발이 안쓰러워서였다. 지금 내 발에는 고작 구두의 봉제선 자국 정도만 약간 남아 있다.

오픈카 안에서 느꼈던 바람이 아직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머물고 있다. 그 바람은 교외의 기분 좋은 여운을 오랫동안 느끼게 해주었다. 냉방병에 걸린 뒤에도 여전히 냉방이 강한 실내를 찾아 돌아다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열이 식은 몸. 점점 더 길어져만 가는 여름 안에서 하루의 나들이는 머릿속도 청량하게 만들었다. 도로 방향으로 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늦은 시간에도 꽤 많은 차들이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초점 없는 시선은 반짝이는 헤드라이트들의 이동만을 인식했다.

아직 Mr. Roadster의 잔상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평균 점수를 못 박아버린 것은 2.7들의 진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2.7의 홍수 안에 사는 여자이기에 Mr. Roadster에 대한 갈증은 필연적이리라. 때로는 편안하고 배려심이 강한 착한 남자 SLK200, 때로는 스타일리쉬하고 뜨거운 옴므파탈 New Z4, 어느 쪽이 우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어느 쪽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모두들 나를 이기적이라고 말할 테다.

하지만 나쁜 여자로 사는 것은 나쁘지 않다. 적어도 명품백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조수석에 앉기보다는, 그 생경할 정도로 아름다운 두 남자를 가져도 부족하지 않을 능력으로 운전석에 앉길 원하는 나쁜 여자는 나쁜 여자보다는 똑똑한 여자로 불릴 테니까.

글: 손시내(댄서), 사진: 이근영(프리랜서)

MERCEDES-BENZ SLK200
가격: 6천720만원
크기: 4140×1835×1325mm
0→시속 100km 가속: 7초
최고시속: 237km
엔진: 직렬 4기통, 1796cc, 휘발유
최고출력: 184마력/5250rpm
최대토크: 27.5kg·m/1800~4600rpm
복합연비: 10.6km/L
변속기: 7단 자동

BMW Z4 sDrive 35is
가격: 9천150만원
크기: 4244×1790×1284mm
0→시속 100km 가속: 4.8초
최고시속: 250km
엔진: 6기통, 2979cc, 트윈파워 터보, 휘발유
최고출력: 340마력/5900rpm
최대토크: 45.9kg·m/1500rpm
복합연비: 9.2km/L
변속기: 7단 더블 클러치 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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