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시로코 R-라인 vs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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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시로코 R-라인 vs R
  • 안민희
  • 승인 2013.11.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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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마니아 둘이 오랜만에 바에 가서 맥주를 한 잔 마신다.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흐르는 순간도 잠시. 마력, 토크, LSD 등의 단어가 연신 튀어나오는 자동차 이야기를 시작한다. 맥주를 가져다준 매력적인 바텐더가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하더라도, 그녀가 자동차에 대해서 어지간히 알지 않는 이상- 5분도 견디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러 돌아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무슨 주제에 대해서 그렇게 열심히 토론하는가? 최근 몇 년간 자동차 마니아들이 줄곧 입에 올리는 주제는 휘발유 엔진과 디젤 엔진이다. 디젤 엔진은 눈부신 발전을 계속해왔다. 강력한 토크, 뛰어난 연비, 개선된 정숙성을 앞세워 휘발유 세단 일색이던 국내 도로를 점령해가는 중이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하려면 디젤 엔진이 필수일 정도다.
 

어떤 엔진이 더 좋은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디젤 엔진 예찬론자는 저회전부터 터져 나오는 넉넉한 토크, 뛰어난 연비를 사랑한다. 휘발유 엔진 예찬론자는 이에 맞서 고회전의 날카로운 반응성과 부드러운 엔진 감각을 늘어놓는다. 그렇다면 스포츠 주행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2.0L 엔진을 따진다면, 휘발유 엔진은 초고회전으로 돌리지 않는 이상 디젤 엔진의 강력한 힘 앞에 따라오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복병이 있다. 바로 터보차저다.

디젤 엔진과 휘발유 터보 엔진을 라인업에 갖춘 차를 찾았다. 폭스바겐의 시로코다. 날카로운 디자인을 앞세운 강렬한 핫 해치로 명성을 쌓은 차다. 골프를 바탕 삼아 만들어 기본기도 충실하다. 국내에 수입되는 모델은 단 두 모델. 디젤 엔진을 얹은 시로코 R-라인과 휘발유 터보 엔진을 얹은 시로코 R이다. 두 모델 중 더 매력적인 엔진을 얹은 차는 무엇인가 살펴보기로 했다.

시로코 R-라인의 심장은 최고출력 170마력에 최대토크 35.7kg·m을 내는 디젤 엔진. 몰아붙이기만 하면 빠르게 속도를 올리며 4,600rpm을 넘기도록 매끄럽게 회전한다. 이에 맞서는 시로코 R은 터보차저를 달아 최고출력 265마력을 내는 휘발유 엔진을 얹는다. 사실, 약간의 손질만 더하면 경주에 나가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바로 시승에 나섰다.
 

뜨거운 디젤, 시로코 R-라인
시로코 R-라인과 R은 같은 차종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둘의 디자인 차이는 크지 않다. 앞 범퍼의 디자인, 뒤 범퍼에 고개를 내민 머플러 정도만 차이가 날 뿐이다. 하지만 훨씬 과격한 R의 범퍼 모양 덕분에 금세 분간이 간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R-라인은 세미 버킷에 가까운 시트를 달아 살짝 스포티한 반면, R은 제대로 된 버킷 시트를 달아 엉덩이와 허벅지가 끼일 정도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R-라인은 디젤 핫 해치의 성격을 제대로 드러냈다. 스포티한 실내는 논외라 하더라도, 엔진의 특성이 제법 거칠어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 다그칠 때면 더욱 그렇다. 여지없이 디젤 특유의 소리가 실내로 메아리친다. 타코미터의 바늘이 치솟으며 과격하게 차체를 이끈다. 기어비가 짧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동은 안정적이다. 앞바퀴에 많은 힘을 몰아주는 탓에 토크스티어가 날 법도 하지만, 똑똑한 전자장비들이 개입해 앞바퀴를 똑바로 다잡는다.
 

거센 엔진의 반응처럼, 주행 질감은 상당히 스포티하다. 우선 엔진의 반응이 직설적이다. 휘발유 엔진의 반응성만큼은 아니지만 빠르게 토크를 쏟아내고 후련하게 가속을 잇는다. 1,750~2,500rpm에서 최대토크를 뽑아내지만, 그 이상 회전수를 올려도 힘을 계속 유지한다. 짧은 기어비와 더불어 6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 덕분에 가속을 빠르게 이어간다. 힘은 넘치지만 언제든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엔진을 다독이는 기술이 있다면 빠르게 탈 수 있는 차다.

단단한 차체와 더불어 탄탄하게 설정된 서스펜션이 긴박한 몸놀림을 더한다. 서스펜션의 위아래 움직임은 짧고 노면을 제대로 읽어낸다. 코너링 성능도 발군이다. 차체의 기울임 각도도 적을 뿐더러 단단히 노면을 휘어잡는다. 서스펜션 성능과 세팅 값이 좋은 부분도 있지만, 타이어 크기 덕분이기도 하다. 타이어 크기가 235/35 R19로 상당히 크다. 덕분에 제동할 때도 안정적이다. 제동 성능은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만큼 비례해 늘어나며, 절대 제동력이 좋다. 충분히 신뢰를 가질 만하다.
 

시로코 R-라인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리는 차는 아니다. 하지만 멈추고 회전하고 가속하는 기본기가 상당히 뛰어나다. 특히 거세게 뿜어내는 토크 덕분에 재미를 느끼기 충분하다. 훌륭한 스포츠카다. 언제든 치고 나갈 수 있는 강한 힘을 갖췄고, 속도의 부담도 크지 않다. 넘치는 힘이지만 제어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고, 아무리 몰아쳐도 연비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전자장비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코너를 가로지른다. 약간의 언더스티어 성향은 있지만 충분히 다독이며 달릴 수 있다.
 

지나치게 뜨거운 레이싱 혈기, 시로코 R
시로코 R-라인에서 내려 시로코 R에 올랐다. 더욱 긴박한 분위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R-라인의 것과 달리 더욱 몸을 붙들어 매는 진짜 버킷 시트가 달렸기 때문이다. 시동을 걸면 튜닝카의 배기음이 들려온다. 묵직한 음파의 진동이 어느새 벽을 타고 울려 퍼진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르렁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달리 엔진의 매끄러운 회전 질감이 아주 매력적이다.

엔진 회전수를 6,500rpm까지 빠르게 올린다. 어느새 홀린 듯 가속 페달을 깊게 밟는다. 터보차저 특유의 흡기음이 귓가를 가로지른다. 디젤의 거친 맛 대신 정제된 날카로운 반응만이 가득하다. 최대토크는 35.7kg·m로 2,500~5,000rpm에서 나온다. 엔진은 힘을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이어가며 균일하게 속도를 올린다. 빠른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정작 속도계를 보면 엄청나게 빠르다.
 

서스펜션의 완성도도 상당했다. 스포츠 서스펜션을 달아 시로코 R-라인보다 차고가 10mm 낮다. 노면을 꽉 붙잡고 달리는 감각이 출중하다. 조율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일체식 서스펜션보다 뛰어나다. 더불어 코너링 시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걸어주는 전자식 디퍼렌셜 시스템이 개입해 언더스티어를 봉쇄한다. 속도를 줄이고 코너에 진입해, 코너를 빠져나오며 가속하는 정석적인 방법(슬로 인 패스트 아웃)으로 주행할 때 그 능률은 최고조에 달한다.

뛰어난 제동 성능이 받쳐준다. 브레이크 페달의 답력과 같이 균일하게 제동력을 끌어올린다. 급한 제동에도 조금의 불안감이 없다. 시로코 R은 해치백 중 최고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안전을 위한 롤케이지 등 약간의 개조만 더하면 당장 경주에 뛰어들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 터보 엔진의 풍족한 토크가 있었고, 엔진 회전수를 높게 올리면 올릴수록 그 힘에 취할 정도다.
 

265마력의 최고출력은 수치만 봤을 때는 적어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빠르게 달린다. 안정감 또한 좋아 높은 속도로 달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차의 실력을 믿고 허투루 달릴 여지가 높다는 것이다. 수준 높은 몸놀림을 보여주는 이 차의 성능을 고려해보면, 절제와 용기, 기술이 필요하다.

결국 선택은 가치 이상의 퍼포먼스로 기운다 두 대의 차이는 제법 크다. 각각 다른 고객을 목표로 한다. 비슷한 출력이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시로코 R과 시로코 R-라인의 가격은 760만원 차이. 크게 느껴질 수도, 작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시로코 R-라인은 스포츠 주행을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족시킬 선택이다. 잘 달리는데다 연비도 좋다. 누가 타도 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

특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차별화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운전은 잘 모르지만 시로코의 디자인에 빠졌다면 R-라인을 권한다. 호쾌한 몸놀림에 빠져 매일 몰고 다니며 절로 운전 실력이 늘어날 것이다. 시로코 R은 스포츠 마니아 또는 레이서의 차. 높은 수준의 주행 감각을 즐기고 싶다면 꼭 눈여겨봐야 할 차다. 골프 R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이 가격대에 이 정도의 주행성능을 발휘하는 차도 드물다.

앞바퀴굴림으로서 갖춰야 할 모범적인 움직임을 갖춘 차다. 반면 초보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지나치게 빠르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휘발유 엔진파와 디젤 엔진파의 격론이 이어지는 것일 테다. 하지만 시로코가 어떤 엔진을 얹든 좋은 차라는 점은 확실하다. 퍼포먼스와 가격의 차이를 제외하더라도, 두 대 모두 분명한 가치와 매력이 있다. 단지 시로코 R이 조금 더 훌륭한 차일 뿐이다.

글: 안민희 기자, 사진: 이근영(프리랜서)

VOLKSWAGEN Scirocco R-Line
가격: 4천130만원
크기: 4250×1820×1395mm
휠베이스: 2578mm
무게: 1442kg
0→시속 100km 가속: 8.1초
최고시속: 220km
엔진: 직렬 4기통, 1968cc, 터보디젤
최고출력 : 177마력/4200rpm(사양 변경)
최대토크: 38.8kg·m/1750~2500rpm
복합연비: 15km/L
CO₂ 배출량: 127g/km
변속기: 6단 DSG
트렁크: 312L

VOLKSWAGEN Scirocco R
가격: 4천890만원
크기: 4250×1820×1395mm
휠베이스: 2578mm
무게: 1430kg
0→시속 100km 가속: 5.8초
최고시속: 250km(제한)
엔진: 직렬 4기통, 1984cc, 터보, 휘발유
최고출력 : 265마력/6000rpm
최대토크: 35.7kg·m/2500~5000rpm
복합연비: 11.2km/L
CO₂ 배출량: 157g/km
변속기: 6단 DSG
트렁크: 31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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