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윅으로 향하는 바칼라의 앞 유리에 빗방울이 송송 맺혀 있었다. 도로의 상태는 축축하다기보다 확실히 젖어 있었다. 굿우드의 첫 코너는 빠르게 공략해야만 영웅이 될 수 있는 장소다. 발밑이 푹푹 빠질 것 같은 이런 상황은 2013년 포드 GT40을 몰았던 케니 브랙이 멋지게 시연했던 오퍼짓락(미끄러지며 코너에 진입할 때 조향을 진행 반대 방향으로 하여 진출 시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코너 공략법)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도 그때와 비슷하다. 하지만 브랙은 무섭게 타고 올라가는 계기판 바늘을 쳐다볼 수도 없었지만, 바칼라의 디지털 인스트루먼트 팩은 첫 정점에 다다르기 전에 시속 270km가 넘었다고 알려줬다.
물론 실제 상황은 아니다. 인스트루먼트 팩은 뚜껑 없이 빗속을 뚫고 달리고 있는 지금 이 현실보다 더 재미난 비디오 영상을 틀어주고 있었다. 이 바칼라는 레이스 트랙에서보다 모터쇼에서 보여주기 위해 만든 차다. 뮬리너에서 제작된, 한계가 없는 로드스터에 대한 아이디어다.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대시보드 중앙에 있는 세 개의 게이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바늘은 그저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차 안에 앉아 본능적으로 온도 조절 버튼을 찾았지만 헛수고다. 로터리 컨트롤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창문도 마찬가지다. 올라가지 않는다. 안전벨트는 거의 장식용일 뿐이다. 그나마 와이퍼는 작동한다.
이 차는 완성차가 아니다. 벤틀리의 역사상 가장 빠른 오픈톱 로드카가 될 것이라는 벤틀리의 말을 확인시켜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회사가 추구하고자 하는 울트라 럭셔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는 될 수 있다. 초기 코치빌더의 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미래 말이다.
바칼라의 파격적인 외관 디자인 아래에는 컨티넨탈 GT 컨버터블에서 가져온 W12 파워트레인 이 들어앉아 있다. 외부의 모든 작업은 탄소섬유와 알루미늄 판넬, 그리고 벤틀리가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입하려 했던, 라인업 모든 차에 적용할 수 있는 램프류를 적용했다. 벤틀리는 한정판으로 생산하는 열두 대의 차를 파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차의 기반이 된 모델의 가격보다 열 배나 비싼 180만 파운드(약 26억 원)를 입금하고라도 원하는 고객은 차고 넘쳤다.
회색빛 하늘에도 바칼라는 멋있었다. 벤틀리에서 색상과 트림을 책임지고 있는 마리아 멀더가 이 차에 관해 이야기해줬다. 그녀는 “벤틀리는 보통 차의 외장 색상을 결정할 때 바르셀로나에 있는 세아트 스튜디오 외부 정원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 쇼카는 확실히 노란 색조 위에 이슬이 맺히면 더욱 그 빛을 발했다. 메탈릭 효과를 내기 위해, 가까이에서 보면 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쌀겨를 태워 나온 재를 사용했다고 한다.
비가 계속 내리게 된다면 루프가 없는 것이 문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퀼팅이 된 아름다운 시트다. 각 시트는 양모 위에 14만8000번의 바느질이 들어갔다. (5000년 된 이탄 굴에서 건져낸 목재로 만든 계기판은 이미 익숙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멀더는 “모든 트림 소재는 내구성과 단기 방수성을 갖추도록 폭스바겐 그룹의 엄격한 기준을 따라 선택하게 된다”며 “방수 능력도 없는 차를 누군가에게 팔 수 없다”고 말했다. 보아하니 벤틀리가 컨티넨탈 GTC에서 가장 부드러운 아일린 가죽을 제공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물론 바칼라 고객은 색상이나 트림 소재를 선택하는 데 있어 보다 자유롭다. 멀더는 온라인으로 사양을 선택할 수 있는 플랫폼도 만들었다. 그녀는 "일부 고객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고도 말했다.
멀더는 고객이 보다 부드러운 재료를 선택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변색이나 변질에 대한 위험을 감수한다는 양식에 서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안전이나 바칼라의 핵심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경은 불가하다. 한 고객은 나무 테를 두른 스티어링 휠을 요구했는데, 벤틀리의 엔지니어들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전자장비를 어떻게 넣어야 할지 말이다.
굿우드에서 운전했던 경험은 별로 없지만, 비록 완만한 페이스일지라도 바칼라의 근본적인 매력은 분명하다. 0→시속 100km 가속 3.5초, 최고시속 320km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추측하건데 고객들 중 이 상황까지 가는 건 매우 드물 것이다.
바칼라는 우락부락한 W12 6.0L 엔진으로 순항할 때 훨씬 더 즐겁다. 장거리를 간다면 확실히 더 빠른 여행이 될 것이다. 최고출력 650마력의 엔진을 부지런히 사용하면 벤틀리의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가장 빠르고 깔끔한 변속감을 전달해줄 것이다. GTC 기반이라는 뜻은 바칼라가 에어 스프링과 48V 액티브 안티롤을 적용했다는 말이다. 저속에서 좀 더 나아진 느낌이고, 기존 고객이 본다면 쉽게 질투할 게 분명하다.
바칼라는 현시대에 코치빌더 방식으로 만들어낸 첫 번째 벤틀리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 방식은 이어질 것이다.
글 · 마크 더프(Mike Duff)
BENTLEY BACALAR
가격 180만 파운드(약 26억 원)
엔진 W12, 5998cc, 트윈 터보차저, 가솔린
출력 650마력/5000rpm
토크 91.7kg·m/1350rpm
변속기 8단 DCT
공차중량 2300kg (추정)
0→시속 100km 가속 3.5초
최고시속 320km 이상
연비 na
CO2, 세율 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