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한 만남, 페라리 로마를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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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만남, 페라리 로마를 타다
  • 최주식
  • 승인 2020.12.28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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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로마의 글로벌 론칭은 2019년 11월 13일, 지금으로부터 거의 1년 전이다. 그때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쇼케이스 현장에 참석했던 일이 마치 꿈결 같다. 지난 1년 동안 세계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불확실성의 시대지만 분명한 건 이전처럼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페라리 로마는 지난 3월 25일 첫 공개되었지만 아직 도로에서 만나기는 어렵다. 페라리는 출시되고 나서 인도받기까지 보통 1년 이상 기다리는 게 관례처럼 되었다. 이처럼 오래 기다려야 하는 대기고객에게 시승 기회를 마련하는 게 ‘에스페리엔자 페라리’ 행사다. 에스페리엔자는 익스피리언스 즉 경험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이 행사에 게스트로 참석하면서 마침내 페라리 로마의 스티어링 휠을 잡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페라리 로마를 보자 반갑고 다행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시적인 셧다운의 비상한 상황 속에서도 신차를 생산해내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므로. 요즘 들어 새삼 그 의미를 더해가는 단어가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에스페리엔자 페라리’는 한 시간 동안 단 두 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 설명과 전문 인스트럭터의 서킷 및 공도 주행 서포트가 이루어진다. 서킷과 공도 주행이 교차하므로 두 사람은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 굉장히 프라이빗한 행사 진행 방식이다. 먼저 페라리 로마의 전반적인 특징을 설명하는 시간이다.

"연미복을 입은 F1 카." 이 말은 평일에는 도심에서 주말에는 교외로 드라이브 하는데 완벽하게 어울리는 페라리 로마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 1960년대 250 GT로 대표되는 프런트-미드십 GT 라인에서 영감을 받은 차체 구성과 날렵하고 간결한 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다. 그 결과물은 누가 봐도 우아한 자세로 드러난다. 

620마력으로 향상된 8기통 3.9L 터보 엔진은 새로운 8단 듀얼 클러치와 어울린다. 7단 변속기보다 모듈 크기는 작아졌으나 토크는 35% 증가. 더욱 빠르고 매끄러우며 일관성 있는 변속이 가능해졌다. 5가지 마네티노 모드를 사용할 수 있으며 최고시속 320km, 0→시속 100km 3.4초의 성능이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워진 인터페이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트랙 주행에 나섰다. 

인스트럭터의 시범주행에 이어 직접 스티어링 휠을 잡는다. 모든 주행 컨트롤을 스티어링 휠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페라리 특성 그대로지만 터치패드 방식은 낯설다. 세상에, 터치로 시동을 거는 페라리라니···. 16인치 HD 커브드 스크린을 적용한 계기판은 확실히 크고 선명하다. 레이싱 헬맷을 쓴 상태에서 이것저것 살펴볼 여유가 없어 바로 출발이다. 마네티노는 스포츠 모드에 고정한다. 

액셀러레이터 반응은 부드럽게 나가지만 속도와 사운드는 그렇지 않다. 이만큼 밟았나 싶으면 저만큼 나아가고 있다. 변화는 순간적이므로 호흡이 빠르게 따라가야 한다. 러버콘의 신호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오버 페이스를 일으킬게 틀림없다. 물론 브레이크 성능이 강력하므로 안심해도 좋지만 말이다. 마음의 요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마는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코너에 진입하는 속도가 조금 빨랐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기술적 전자장치들이 총집결해 뒷바퀴의 미끄러짐을 억제한다. 횡가속도를 받쳐주는 섀시의 지지력이 엄청나다.  

코너를 벗어난 직선 구간에서 풀스로틀로 달린다. 그야말로 통쾌한 가속이다. 터보랙이란 단어는 적어도 페라리 V8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저만치 보이던 풍경은 어느새 뒤로 사라졌다. 터질 듯한 가속도 손쉬운 브레이킹으로 제어하는 순간은 마법처럼 다가온다. 그만큼 균형을 빨리 회복하고 흐름이 자연스럽다. 고출력을 뽑아내기 쉬운 데다가 조금은 오버해도 너그럽게 감싸주는 여유가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편안하고 안정적인 시트의 질감이다.

 ‘에스페리엔자 페라리’가 다른 트랙 주행 이벤트와 다른 특별함은 하나 더 있다. 서킷 중간의 안전지대에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려, 서킷 위의 또 다른 페라리 로마의 달리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다. -전문 인스트럭터가 각본에 따라 극장식으로 몇 바퀴 주변을 돈다- 직접 운전하는 동안에는 보지 못하는 로마의 외형적 움직임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우아한가를 느껴보라는 것. 말하자면 단순한 주행 체험 이벤트가 아니라 미학적 프로그램의 접근법이다.

트랙 주행에 이어 공도 주행 순서다. 마네티노는 컴포트 모드로 바꾼다. 주변 도로를 짧은 구간 돌아오는 코스지만 방금 마친 트랙 주행과 비교하는데 의미가 있다. 헬맷을 벗으니 조금 더 시야가 넓어진다. 과거 페라리의 수동 기어 디자인을 바탕으로 재설계한 게이트식 기어레버도 눈에 들어온다. 클래식의 현대화는 헤리티지를 근거로 재창조될 때 더 의미가 살아난다.

페라리 로마는 좀 전과 성격을 바꾸어 일반적인 GT의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스포츠 모드로 옮기면 확실히 하체가 단단해지고 움직임이 기민해진다. 마네티노를 돌리지 않고 누르면 범피 모드에 들어간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노면 충격을 완화시켜 준다. 기능은 스포츠 모드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발휘된다.

공도 구간은 와인딩 로드가 대부분이어서 연속 구간의 핸들링을 즐긴다. 로마는 빨리 몰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 있는 차. 그래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 어려운 용어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온갖 첨단 안전장비가 집약된 엔지니어링의 총아라는 것도 알 수 있다. 폭풍 같은 트랙 주행에 이어 느긋한 GT의 성격을 확인하는 순간, 좀 더 먼 장거리를 함께 달리고 싶은 마음 커진다. 운이 좋다면 다시 만나기를. 페라리 로마와의 짧지만 강렬한 두 번째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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