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그랜드 체로키 SRT로 서부 호주를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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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그랜드 체로키 SRT로 서부 호주를 달리다
  •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
  • 승인 2017.01.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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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는 한 번에 약 6m를 뛸 수 있으며, 대형동물로는 유일하게 뛰면서 추진력을 얻는다. 캥거루는 시속 64km로 달릴 만큼 빠르다고도 한다. 그런데 왜 커다란 수컷 캥거루 한 마리가 내 지프 그랜드 체로키 SRT 앞에 자리잡고 서있었을까? 웨스턴 그레이 캥거루는 일반적으로 커다랗고 검은 얼굴을 가졌으며 무게는 50kg 이상 나간다. 나는 지프에 ‘루 바’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캥거루는 꿈쩍 않고 서있었기 때문에 그 캥거루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내가 브렘보 브레이크를 힘껏 밟아 SRT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1960년대 TV 시리즈인 ‘Skippy The Bush Kangaroo’를 즐겼던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고요한 적막 속에 '쿵' 소리가 끔찍하게 울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캥거루는 고통없이 즉사했지만 그렇다고 죄책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호주인 코 드라이버는 이런 광경을 자주 봤는지 별일 아니란 표정을 짓는다. 오히려 무심하게 호주 별미인 캥거루 꼬리 수프의 재료를 얻기 위해 영화 ‘크로커다일 던디’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칼을 가방에서 꺼냈다. 나는 소름 끼치는 로드킬 도축 현장을 피해 SRT의 파손된 부분을 살폈다. 보닛 에어 인테이크가 찌그러지고 그릴이 부서졌지만 나머지는 거의 멀쩡했다. 캥거루 꼬리 수프의 맛은 정말 끝내줬다. 하지만 호주 서부 해안을 따라가는 우리 여행은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여정은 퍼스(Perth)의 주도에서 엑스머스(Exmouth) 근처의 케이프 레인지(Cape Range) 국립공원까지로 총거리가 2400km에 이른다.
 

산호초 해안을 따라 펼쳐진 도로는 인도해와 접해있으며 호주에서 경관이 가장 뛰어난 도로중 하나다. 장엄한 일출을 보며 시작한 여행은 드라마틱한 풍경이 내내 이어졌다. 중간에 바다표범과 돌고래를 봤고 여행 마지막에는 혹등고래와 같이 수영할 뻔한 기회도 있었다. 이런 여행에는 고래와 같은 커다란 엔진을 단 차가 필요하다. SRT의 V8 6.4L 헤미(Hemi) 엔진은 최고출력 474마력, 63.6kg·m의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분명 3.0L 디젤 모델을 선택할 것이다. 강력한 토크를 뿜어내는 V6 엔진은 최고출력이 250마력이다. 또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충격을 받을 필요가 없고 가격은 SRT의 2/3 수준에 불과하다.


헤미 엔진은 차원이 다르다. 효율적인 8단 변속기를 달고, 에코 모드와 연료 절감 기술을 적용했지만 지프가 낙관적으로 주장한 연비는 고작 7.4km/L. 어이가 없다. 나는 호주를 여행하는 동안 연료를 넣기 위해 계속해서 다음 주유소까지 거리를 체크해야 했다. 연료 탱크가 92L인데도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호주에서 무연 휘발유 가격이 L당 90펜스(약 1293원)라는 사실이었다. SRT를 운전하면 자연흡기를 단 괴물이 주는 다소 올드한 주행감각에 빠질 것이다. 0→시속 97km 가속에 5초가 걸리고 생김새는 농부의 팔뚝 보다 더 마초 같다. 하지만 정신이 올바른 사람이라면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6만6865파운드(약 9575만원)를 지불할까?
 

도로는 기아, 토요타 그리고 닛산의 SUV 등 한국, 일본산 저렴한 차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호주 사람들은 여전히 V8 엔진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그럼 호주 사람들은 이 짐승 같은 SRT와 사랑에 빠졌을까? 그건 아닌 듯하다.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바다사자를 보기 위해 그린 헤드(Green Head)에 잠시 멈췄을 때 은퇴하고 몇 달 동안 카라반을 끌고 오지여행 중인 노년의 부부와 대화를 나눴다. 브래드와 마지는 애들레이드(Adelaide) 출신으로 현대 싼타페를 끌고 있었다. 브래드는 재빠르게 3가지를 지적했다. 지프에 달린 편평비가 낮은 20인치 타이어는 바위가 많은 지형에서 쓸모없고 바이제논 헤드램프보다 더 밝은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SRT에 루 바를 꼭 달라고 지적했다.


닝갈루 리프(Ningaloo Reef)로 가는 길은 길었다. 이 어마어마한 거리의 고속도로에서 휴게소와 인스턴트커피를 찾을 수 없어 모든 것이 짜증나고 재미 또한 없었다. 고속도로 최고속도는 시속 110km, 나는 제럴드턴(Geraldton) 근처에서 교통경찰과 맞닥뜨렸다. 이후부터 고생길이 펼쳐졌다. SRT에는 SUV 중 유일하게 론치 컨트롤이 달려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론치 컨트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버튼을 누르면 브레이크를 잡고 있는 동시에 풀 스로틀이 작동한다. 기대를 너무한 탓인지 6.4L 엔진이 밀어붙이는 느낌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멋대로였다. 도로가 끝없이 이어졌지만 패들 시프트를 사용하는 것도 무의미했다.
 

하지만 헤미 엔진의 진가는 트레일러와 마주쳤을 때 발휘됐다. 아스팔트의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더해져 길이가 30m 넘는 트레일러를 추월할 때 짜릿함을 느꼈다. 추월을 위해 전력 질주하면 8.4인치 터치스크린을 통해 g포스와 400m를 돌파할 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시속 160km로 돌 수 있는 비교적 완만한 코너를 몇 번 만났다. 운전중 SRT의 ‘셀렉 트랙‘(Selec-Trac) 시스템을 활용했다. 토크와 엔진 매핑뿐 아니라 승차감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댐퍼 밸브를 닫을 수 있는 액티브 댐핑 시스템이 포함된 서스펜션 세팅까지 조절할 수 있다. 호주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한다. SRT같은 고성능 SUV를 운전할 때 속도위반과 비싼 과속 범칙금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칼바리(Kalbarri)와 카나번(Carnarvon)을 잇는 ‘노스 웨스턴 코스탈’(North West Coastal) 고속도로는 분위기가 음산했다. 거듭되는 로드킬의 위험과 황량한 풍경이 이어질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프의 실내가 호화로운 프리미엄급이라는 점. 디젤 모델도 장비를 잘 갖췄으나 SRT는 멋진 가죽 시트와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825W 하만카돈 사운드 시스템을 갖췄다. 카본파이버로 꾸민 대시보드는 레인지로버 스포트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시대에 부응하고 감각적이었다. 이 두 단어는 오래된 지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실내는 너무 넓었다. 원터치 방식으로 문이 잠길 때 나오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나는 닝갈루 리프(Ningaloo Reef)의 관문인 엑스머스(Exmouth)에 도달할 때까지 캥거루 시체의 수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마을은 백팩커들로 북적였고 대부분 화이트 또는 레드샌드 컬러로 도색된 수입산 네바퀴굴림 모델들이 늘어선 것도 인상적이었다.
 

호주 사람은 보통 SUV에 화려한 컬러를 선택하지 않고 편평비가 낮은 타이어를 달지 않는다. 그래서 스파클링 그레이 컬러의 SRT는 몇 km 밖에서도 두드러졌다. 바다는 수영하기에 너무 거칠었고, 바람은 모래를 휘몰아쳤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카라반에서 올림픽을 시청했다. 내가 있던 호텔에는 캥거루 꼬리 수프가 없었다. 하지만 SRT의 찌그러진 프론트 엔드와 6.4L 헤미 엔진을 보니 내가 호주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다시 이 코스를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버리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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