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GT의 대결, F-타입 SVR vs 57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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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GT의 대결, F-타입 SVR vs 570GT
  • 앤드류 프랭클(Andrew Frankel)
  • 승인 2017.01.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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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가장 잘 만드는 차가 있다. 오래전부터 영국은 품위있는 패밀리 해치 몇 대를 만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빼어난 오프로더를 어느 나라보다 많이 만들고 있다. 아울러 생각보다 많은 소량 순수 스포츠카, 보다 많은 세계정상급 중역형 세단과 심지어 희귀한 소량 생산 슈퍼카를 만든다. 제2차대전 후 선빔과 복스홀이 영국의 존재를 전세계 자동차계에 알렸다. 그 뒤로 영국은 고속, 장거리, 스포티 그랜드 투어러 부문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천둥치는 저 많은 벤틀리, 늠름한 애스턴 마틴과 심지어 일부 유선형 롤스로이스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모두 신사의 이동수단을 뜻매김하는 차다. 지금도 그런 표현이 허용된다면 말이다.
 

그 다음으로 재규어가 있었다. 언제나 재규어였다. 인기 면에서 XK부터 E-타입까지, XJS부터 F-타입까지 이 차종의 극치였다. 스스로 뿜어내는 아련한 연기 속, 늘씬한 건달기질의 고속 재규어 스포티 쿠페는 위대한 영국 GT의 살아 움직이는 표상이었다. 뭐든 이보다 더 할 수 없었다.
 

F-타입 SVR은 재규어가 오래 전부터 만들려고 했던 차였다. 그러나 회사가 너무 작고 제품이 너무 허술했을 뿐 아니라, 거액을 수금해야 하는 스포츠카를 지탱하기에는 이미지가 너무 허약했다. 실제로 F-타입을 구상하고 있을 때도 그런 모델이 제품계획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몇 년 전 일이다. 최근 재규어-랜드로버는 레인지 로버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따라서 재규어는 그 같은 방식으로 브랜드의 잠재력을 최대한 우려낼 준비가 돼 있다. SVR은 혁명적인 차일까?


그 판단을 내릴 잣대가 맥라렌이다. 맥라렌은 슈퍼카, 하이퍼카, F1 머신, 비장거리 투어링카로 이름 높은 메이커. SVR이 그리는 재규어의 이상형이 과연 얼마나 맥라렌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인가.
 

맥라렌은 사내 라인업의 차별화 제1 기준을 안락성과 짐칸에 두고 있다. 맥라렌은 신차발표회에서 F1팀의 182승을 자랑하면서도 570GT의 짐칸이 포드 포커스보다 더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맥라렌 브랜드를 차별화하면서 브랜드의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시절은 그만큼 바뀌었다.

 

영국 웨일스에 두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영국적 성격, 터보 V8과 비슷한 출력)을 생각하니 반가웠다.  어떻게 보면 같은 일을 하겠다고 나선 두 라이벌이다. 가격대가 다르고, 서로 지극히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지만 말이다.  한쪽은 엔진을 운전석 뒤에, 다른 한쪽은 앞에 뒀다. 한쪽은 파워를 오로지 뒤로만 보내고, 다른 한쪽은 네 바퀴에 보낸다. 한쪽은 배기를 이용하는 터보를 달았다. 다른 쪽은 슈퍼차저를 받아들였다. 한쪽은 탄소섬유 구조이고, 다른 한쪽은 알루미늄이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한쪽은 슈퍼카로 행세하고 싶은 전통적 GT. 그런데 다른 한쪽은 진정한 수퍼카의 혈통을 타고 난, 그러면서도 GT 구실을 하려는 차다.
 

나는 먼저 맥라렌을 몰았다. 이전에 몰아본 적이 있어, SVR이 뛰어넘어야 할 높이를 가늠하고 싶었다.  나는 불과 몇 주 전에 570GT를 몰았다. 그때 이 차는 정말 빨랐고, 언제나 끊임없이 변덕을 부리는 영국도로를 힘들이지 않고 달렸다.  걷잡을 수 없이 날뛰는 5,000~8,000rpm을 피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험악한 도로에서는 차가 아니라 드라이버에게 너무 벅찼다.


직선구간 사이는 좋았다. 570GT의 스프링은 이전보다 더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그것이 승차감을 향상시킨 것은 아니다. 사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동급 가격대의 다른 차와 비교한다면 570GT는 경이적이었다.  아주 짜릿한 운전재미를 보여준다는 게 승차감보다 더 중요했다. 약간 초연하고 깔끔을 떨었던 초기 12C와는 달랐다.  스티어링은 그보다 더 좋았다. 괜찮은 도로에서 한번 힘껏 몰아붙이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매력을 발산했다.
 

맥라렌에서 나와 재규어로 건너갔다. 한순간 우리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했다. 이들은 결코 정면대결할 라이벌이 아니었다. 그토록 다른 각도에서 똑같은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영국의 창의력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그렇더라도 맥라렌으로 한번 몰아붙이고 난 뒤 재규어가 무얼 보여줄 수 있을까? 노즈가 무거운 레이아웃에 자동 기어박스 그리고 250kg이나 더 무거운 몸으로?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이상이었다. 맥라렌은 성능이 먼저 감동을 줬고, 뒤이어 다른 기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알 수 있었다. SVR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직선코스에서도 SVR은 570GT를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출력 대 무게의 상대평가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뒤졌다. 지극히 빠른데도 맥라렌이 발휘하는 기동력을 따르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SVR은 순수한 페이스를 추구하는 차가 아니었다. 이 차가 F-타입 R보다 빠르다는 사실(더 강력할 뿐 아니라 더 가볍다)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운전성능이 그만큼 좋다는 것이 중요했다.


온갖 스테로이드 효과를 자랑하는 SVR은 장기를 아주 절묘하게 살렸다. 무엇보다 댐핑이 관심을 끌었다. 맥라렌과는 달리 노면을 재포장하려 애쓰지 않았다. 오리혀 노면과 호흡을 같이했다. 그래서 자잘한 수직운동을 허용했지만 불안정한 기미없이 재치있게 처리했다. 이 차의 성격과 완전히 들어맞았다. 다음으로 스티어링이 F-타입의 결단력을 완전히 지키고 있어 놀랐다.  다음으로 이 차의 밸런스가 경이적이었다. 시장에서 어느 차보다 네바퀴굴림을 추가해서 큰 도움을 받은 모델이 F-타입이다. SVR은 그 성과를 한 차원 더 높였다.
 

엔진은 경탄을 금할 수 없었고, 인콘셀 티타늄 파이프를 통해 빠져나오는 사운드는 근사했다. 중회전대에서의 막강 펀치도 SVR에 딱 들어맞았다. 자동 기어박스도 빠르고 매끈하고 직관적이었다. 장거리 크루즈 머신으로 SVR은 570GT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예측할 수 없어 즐거웠다. 맥라렌이 더 안락하고 짐칸이 크다고 누가 생각했을까? 하지만 더 조용하고 좌석이 좋은 쪽은 재규어였다.

 

이제 어느 쪽이 좋은가를 판가름해야 했다. 나는 맥라렌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SVR은 좋은 차지만 570GT에는 미치지 못했다. 둘 사이에는 포르쉐 718 카이맨 한 대 이상의 값 차이가 난다. 하지만 여기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실제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초고성능 그랜드투어러에 이르면 영국이 여전히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재규어가 SVR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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