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폭격기, 애스턴 마틴 벌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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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폭격기, 애스턴 마틴 벌칸
  • 맷 프라이어(Matt Prior)
  • 승인 2016.11.08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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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마틴은 <스타 트렉>의 우주선이 아니라 영국 공군 폭격기를 따라 이름을 붙인 게 분명했다. 그럴 듯했다. 폭음을 날리고 위협적이며 엽기적으로 비쌀 뿐 아니라 생산량이 제한적이다. 게다가 언제나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면서도 주로 화려한 차고에 갇혀 있어야 할 운명을 타고 났다. 한 마디로 논리의 한계를 벗어난 기상천외한 존재다.


831마력을 내는 V12 7.0L 엔진은 소음한계가 놀랍도록 너그러운 트랙데이 전용. 애스턴 마틴 벌칸은 앵그리 모드에 들어가면 소음이 118dB로 치솟았다. 그러나 옵션인 배플을 달면 103dB로 내릴 수 있다. 어쨌든 잠시 잽싸게 소음을 줄여 배기음을 깔끔하게 쏟아낸다. 그러다가 다시 폭음이 귀청을 때린다. 벌칸은 탐욕의 한계를 넘어섰다.
 

애스턴 마틴은 여유있게 새로운 사업방식을 확립하고 있다. 하지만 애스턴 마틴 내부 인사를 만나보면 여유가 전혀 없었다. 한 해에 완전히 새로운 한 개의 모델이 나온다. 올해는 DB11. 거기에다 한정판 스페셜(한 해에 2대 또는 그 이상)이 추가된다. 그 하나가 벌칸이고, 스페셜 기준에서 봐도 대단한 스페셜카로 꼽힌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 중 하나를 들어보자. 애스턴 마틴 총수 앤디 팔머는 회사의 돈벌이 수단으로 스페셜 프로젝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이익이 두둑할 뿐 아니라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시에 스포츠카 메이커 애스턴 마틴의 위상을 드높이게 된다.


벌칸은 24대 한정판이고 한 대에 150만파운드(약 21억9450만원)에 다시 지방세가 붙는다. 3600만파운드(약 526억6800만원)라면 아우디의 한 해 비스킷 예산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애스턴 마틴 규모의 메이커에는 유용한 수입이다. 게다가 앞으로 계속해서 수입이 들어온다. 벌칸 24대(르망 24시간에서 성공을 거둔 애스턴의 24년 역사를 상징한다)는 모두 팔렸다. 그러나 애스턴은 팔려나간 24대를 계속해서 돌보기로 했다. 트랙데이에 대비하며 해마다 일련의 행사를 벌인다. 거기서 오너들은 레이스에 뛰어들고, 개인교습을 받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애스턴은 오너가 원할 경우 전속 기술자가 훈련을 담당한다. 그러면 오너는 각기 벌칸을 집으로 실어간다. 혹은 집에서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감상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이유도 있다. 벌칸이 아름답다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아름다운 차를 만들 의도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충격적인 차, 아니 그 이상의 차다. 안팎을 절묘하게 마무리했다. 벌칸에는 어느 정도 레이스카의 감각이 살아있다. 끝손질로 볼 때 플라스틱 막대사탕과 같은 테일램프를 엉덩이에 조심스레 담았다. 테일램프는 콘셉트카의 디자인 의도를 그대로 살렸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야성적으로 노출되기 쉬운 레이스카다운 실내를 영화용 모델 메이커가 손질한 느낌을 줬다. 끝손질과 소재선택이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조절장치 레이아웃은 레이싱 드라이버와 손발을 맞춘 듯 완벽했다. 벌칸은 유일한 트랙카. 개발과정에 레이싱 드라이버의 협력을 구한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애스턴의 르망 드라이버 대런 터너와 GT3 레이서 피터 덤브렉과 조 오즈본이 벌칸 개발에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뒤 제작과정은 상당히 빨랐다. 탄소섬유 터브는 One-77의 개발성과를 살렸다. 앞쪽과 뒤쪽에 알루미늄 서브프레임이 달렸다. 앞쪽 정면은 엄청난 무게의 라디에이터가 지탱했고, 그 위에 거대한 탄소섬유 보닛이 덮였다. 그 뒤쪽 액슬라인 뒤에 세계 최대 최고의 자연흡기 V12의 하나가 놓였다. 배기량 7.0L로 애스턴 GT3 레이싱카의 6.0L 엔진을 ‘바탕으로 삼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완곡화법으로 그렇다고 했을 뿐이었다. 새로운 블록, 피스턴, 라이너, 콘로드와 크랭크로 엔진을 만들 경우 새 엔진이라고 해야 한다. 수많은 메이커가 그보다 손을 덜 쓰고 만든 엔진도 ’신형‘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숫자는 놀랍다. 최고출력 모드(선택할 3개 모드가 있다)는 7750rpm에 831마력을 쏟아낸다. 벌칸오너가 모두 처음부터 노련한 트랙 드라이버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558마력과 684마력의 하위 모드로도 충분했다.


V12는 순수한 레이스 박스(엑스트랙의 6단 트랜스액슬)를 통해 뒷바퀴를 굴렸다. 기어시프트 패들은 스티어링 뒤쪽에 달렸고, 3시 15분 방향으로 잡아야 했다. 3시 방향은 매력적이지 않고 12시 방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회전대를 타고 오르며 울부짖는 승용차중 가장 요란한 물건이었다. 한데 V12의 노이즈에 비춰 벌칸 박스는 예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브프레임에 앞뒤 더블위시본이 달렸다. 아울러 4단 조절형 패시브 댐퍼와 조절형 안티롤바를 아울렀다. 레이스카처럼 온갖 조절장치를 갖췄다. 그리고 벌칸은 미쉐린 파일롯 스포츠 타이어를 신었다. 우리는 실버스톤 서킷에서 시승에 들어갔다. 


아울러 출력은 558마력 모드를 고르기로 했다. 일부 애스턴 관계자들은 ‘마하 1’이라고 불렀다. 파워노브를 돌려도 회전리미터를 바꾸지 않았다. 게다가 안정컨트롤을 조절하지도 않았다. 아예 안정컨트롤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ABS 버튼은 남아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스위치는 트랙션 컨트롤의 강도를 결정했다. 나는 시승중 둘 다 거의 중간인 '미디엄'(medium)에 맞췄다.
 

558마력에 ‘불과’한데도 벌칸은 먼저 겁이 났다. 운전위치는 나직했다. 그러나 대다수 GT카만큼 좌고가 낮지도, 시야가 나쁘지도 않았다. 그러나 보닛 끝, 혹은 보닛의 시작을 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했다. 너비 2.18m의 벌칸은 넓은 차였다. 그럼에도 주로 넓은 레이스 트랙을 달리니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좌석은 2개뿐이고, 조수석은 고정식이고 운전석은 슬라이딩형이었다. 둘 다 6점 벨트에 인터콤을 갖췄다. 그래서 애스턴의 레이스 드라이버가 개인지도를 할 수 있었다. 디지털 대시보드에는 대형 기어변환 지시기가 달려있었다. 오른쪽에는 토글스위치가 있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 왼쪽의 도어를 여닫을 수 없었다.
 

스티어링 바닥에 큼직한 시동버튼이 달렸다. 벌칸은 밖에서 시동이 걸리는 소리를 듣는 게 가장 좋은 차였다. 클러치는 예리했다. 벌칸의 엔진은 어슬렁거리지 않았고 공회전하며 기다리는 기질도 아니었다. 레이싱카답게 절박하게 울부짖었다. 사력을 다해 설쳐대자 온갖 공력장치(상당히 많았다)와 냉각장치(마찬가지로 많은)가 제대로 작동했다. 그 바람에 스로틀을 지그시 열었다. 
 

이때 엔진은 기어박스와 당당하게 경쟁을 벌였다. 심지어 558마력 모드에도 스로틀 반응은 환상적이고 전격적이었다. 558마력 모드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잠시 사귄 뒤에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벌칸은 상당히 빨랐다. 나는 684마력 모드에 올라가 힘차게 스로틀을 밟았다. 그런 다음 831마력의 정상으로 치고 올랐다. 우렁찬 굉음이 터졌다.


사실 831마력도 일부 현행 로드카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와 페라리 F12tdf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 둘다 대형 자연흡기 V12를 장착하고 위력을 떨쳤다. 다만 둘중 어느 쪽도 1360kg까지 체중을 끌어내리지 못했다. 아울러 어느 쪽도 벌칸처럼 의도적으로 반사회적 기질과 절박한 몸부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 벌칸은 맥라렌 P1과 포르쉐 918 스파이더보다 출력이 떨어진다. 한데 그 둘만큼 빠른 느낌을 줬고, 둘보다 더 깊숙이 드라이버를 끌어들였다. 게다가 둘보다 더 직선적이었다.
 

직선적이라고? 그렇다. 앞쪽 엔진이 뒷바퀴를 굴렸고, 터보나 전기모터의 지원이 없었다. 요컨대 GT 레이싱카의 느낌 그대로였다. 직선구간에서 가당찮게 빠르고 긴박했다. 최고출력이 7750rpm에서 나왔고, 최대토크 79.3kg·m는 6500rpm에서 터졌다. 따라서 벌칸의 대형 엔진은 고회전대에서 위력을 떨쳤다. 가속에서 기어변환은 무자비하게 빨랐고, 감속은 완벽했다. 브레이크 페달은 단단했으나 눈부신 제동력을 자랑했다.


민첩성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전형적인 핫해치 이하의 무게로는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벌칸의 턴인은 실로 열성적이었고, 대형 애스턴 GT카처럼 노즈를 다스릴 수 있었다. 벌칸은 턴인에서 노즈를 제대로 가누는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교적 가볍고 감각이 충분하며 상당히 빠른 스티어링이 앞장섰다. 두 손이 놓여지는 곳은 한계가 있었지만 직선구간에서는 여전히 안정됐다. 그토록 큰 공력적 다운포스와 공기저항도 믿음직했다. 로드캠버와 범프 등을 걱정하지 않고 서스펜션을 조절했다. 그러자 GT 드라이버들이 원하는 대로 팽팽한 긴장속에 스피드가 치솟았고 안정감도 유지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코너정점 이후 벌칸은 대형 GT와 같이 움직였다. 액셀을 너무 세차게 밟으면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로틀을 크게 열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안정된 스로틀과 떨어지는 캠버는 오버스티어를 일으켰다. 트랙션 컨트롤이 제한슬립각에서 무난한 인상을 줬다. 손목을 까딱하자 상큼하게 라인으로 돌아왔다. 몇 바퀴를 돌고나자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180만파운드(약 26억3340만원)짜리 하이퍼카를 슬라이드에 몰아넣은 뒤 제대로 요리할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처럼 거창한 잠재력을 갖춘 차를 다스리느라 손에 땀이 나고 피로가 덮쳤다. 다이내믹 메이크업의 구석구석까지 레이싱카 기질이 살아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층 접근하기 쉽고 충실했다. 벌칸은 텅빈 메모장이었고, 개인 트레이너였다. 당연히 드라이버의 실력만큼 위력을 발휘했다. 벌칸은 내가 지금까지 몰아본 가장 뛰어난 차에 들어갔다. 레이싱카의 완전한 기질을 컨셉트의 끝마무리로 완벽하게 담아냈다. 실로 비범한 걸작이었다.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만든 차냐?” 그저께 또 다른 스포츠카 메이커의 전무가 내게 말했다. 물론 엉뚱한 질문이 아니었다. 분명히 벌칸은 드라이빙을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와 방법에 한계가 있다. 정교하게 마무리한 레이싱카 이상의 무엇이라고 하기 어렵다. 적어도 지금은. 하지만 영국 노섬턴셔에 본거를 둔 RML이 도로주행용팩을 만들고 있다. 애스턴의 허락을 받아 마지막 2대의 벌칸에 달게 됐다.
 

로드팩을 달더라도 벌칸을 도로에 몰고나갈 수 없는 나라가 있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차량승인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많다. 램프와 충돌방지장비 개선 그리고 기어비 변화 및 좌고 높이기 등을 통해 도로용으로 개조한다. 아무튼 RML은 이 방면에 실적이 있다. 닛산의 쥬크 R은 GT-R 하체를 받아들인 단 한 대의 쥬크다. 그뒤 고객을 위해 2대를 만들었다. 애스턴은 6명의 고객이 벌컨을 RML 팩으로 바꾸리라 예상하고 있다. 
 

애스턴의 모델 중흥은 지켜볼만 하다. 한 해 완전신형 모델이 하나씩 나온다. 7개 ‘주류’ 모델이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게다가 한 모델마다 적어도 2개 또는 그 이상의 한정판이 따른다. 한정판 스페셜에는 AM-RB 001 하이퍼카처럼 극단형에서 한층 재래형에 가까운 밴티지 GT8에 이른다. 요컨대 이들 한정판은 물량이 적고 완전히 팔린다. 그 소식을 들을 때 벌써 모두 팔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벌컨 24대를 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이미 모두 팔렸다(그중 2명은 각기 2대를 샀다). 그중 대다수는 벌써 만들어졌고, 트랙데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애스턴은 한정판을 내놓을 때마다 누구에게 파느냐는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그래서 애스턴은 페라리보다 개방적이고 접근가능한 기업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VIP 중에도 핵심 V가 있다. 가령 AM-RB 001의 경우 150대에 관심을 보인 지망자는 400명이었다. 그에 비해 다행히 벌칸 고객에게는 자동적으로 한 대를 주게 됐다. 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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