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극장에서 만나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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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극장에서 만나는 가을
  • 서현우 에디터
  • 승인 2016.10.2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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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독립영화의 역사는 짐 자무시(Jim Jarmusch) 감독의 1984년작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짐 자무시 감독은 '인디영화의 대명사' '영화학도의 꿈'으로 불리는 영화계 거장. 짐 자무시 감독이 태어나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는 고전 중의 고전 '썬더로드(Thunder Road, 1958)’. 가족 여행 중 찾은 어느 작은 도시의 자동차극장에서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퍼지는 가을 밤, 왠지 밖으로 나가고 싶어질 때다. 공원으로 가벼운 산책도 좋고, 도심 속에서 여름 내 못 다한 데이트도 좋다. 하지만 이 가을밤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자동차극장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과 여름보다 빨라진 일몰시간 그리고 선명하게 쾌청한 시야와 주변 환경까지. 인공적으로 쾌적한 멀티플렉스와는 다른 특별한 느낌이다. 또 영화를 보다가 잠시 시트를 눕히고 선루프를 열어 밤하늘을 본다고 상상해보자. 귓가를 맴도는 영화 사운드와 눈앞에 펼쳐질 수많은 별은 또 하나의 스크린을 만들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래서 자동차극장은 낭만이다.
 

영화 상영 중간 중간 배우의 연기에 대해 촌평을 꺼내 놓는 아버지도, 집에서부터 맛있는 냄새 가득한 음식을 바리바리 싸온 어머니도 또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영화관은커녕 외출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젊은 부부도 자동차극장에서는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다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동차극장은 인원수로 계산하는 일반 영화관과 달리 차 한대당 입장료가 정해져 있다. 두 명이 타도, 네 명이 타도 입장료는 같다. 입장료를 약 2만원으로 가정할 때, 4인 가족이 함께 자동차극장에 간다면 일반 영화관 가격과 비교해 두 명은 공짜로 보는 셈이다. 앞자리를 발로 차지 말고, 휴대폰은 진동으로 하라고 강요하는 영화관 예절을 자동차극장에서는 지킬 필요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만큼 편하게 시청할 수 있다. 그래서 자동차극장은 자유롭다.
 

물론 자동차극장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상영은 계속하지만, 기상이 좋지 못한 날에는 집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또 스크린에서 먼 곳에 자리 할 경우, 자막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화장실이 대체로 멀리 있는 것도 아쉬운 점. 다수의 자동차극장이 매점을 운영하지만 간식거리를 위한 선택의 폭은 넓지 않은 편이다. 시동을 계속 켜야 하는 탓에 연료 소모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시동을 끌 경우 배터리 방전이 될 수 있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이라면 시동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동차극장은 멀다. 지역 주민이 아닌 이상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영화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싶다면 일반 영화관을 추천한다. 하지만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느끼며 시간을 즐기고자 한다면 자동차극장은 제격이다. 특히 가을밤에 말이다.
 

자동차극장은 전국에 걸쳐 약 20여 곳이 운영 중이다. 거의 모든 일반 영화관이 CJ와 롯데 계열의 멀티플렉스인 반면 자동차극장은 말 그대로 예전 '극장'과 같다. 멀티플렉스 브랜드로는 메가박스 정도만 서울 남산 메가박스 EOE4와 경기 용인 메가박스 드라이브M을 운영할 뿐이다. 자동차극장은 넓은 부지가 필요한 반면, 주로 어두운 밤에 상영되는 탓에 상영 횟수가 많아야 하루 세 번이다. 수지타산이 쉽지 않은 게 현실. 많은 자동차극장이 디지털 영사기와 입체 사운드로 변모하고 있다. 멀티플렉스의 시각적, 청각적 기술은 아날로그 같은 자동차극장을 위협하고 있다.

문을 닫는 자동차극장도 하나 둘 늘고 있다. 실제 지난 8월 부산 지역 유일의 자동차극장인 을숙도 자동차극장이 문을 닫았고, 우리나라 자동차극장의 역사와도 같은 대전엑스포 자동차극장도 최근 17년간의 영업을 종료했다. 다른 장소로의 이전을 물색 중이나 구체적인 일정은 미정인 상태. 그렇다고 대형 멀티플렉스 브랜드들이 자동차극장으로 진입하는 것도 아니다. 메가박스가 지난 2014년 '프리미엄' '신개념'이라는 수식을 붙여 용인 드라이브M을 선보였지만 딱 그 정도뿐, 분위기는 암울하다. 이렇게 자동차극장이 하나 둘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자동차극장을 찾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자동차극장이 3D 입체 사운드를 제공하거나 레이저 영사기를 통해 초고화질로 화면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집에서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극장 동시 상영작을 보는 만큼의 편안함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자동차극장은 디지털이 주지 못하는 아날로그적 감성과, 자동차를 타고 찾아가야 하는 설렘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자유로움과 여유로움, 그것만으로도 자동차극장을 찾는 이유는 충분하다. 부담스럽지도 가볍지도 않은 코스가 자동차극장이다. 가을은 자동차극장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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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주요 자동차극장

자유로 자동차극장
헤이리 예술마을 근처에 위치해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로 5
요금 1대당 2만원
문의 031-945-0609

남산 메가박스 EOE4
주차면적(약 5천평)도, 스크린 사이즈(20mX8m)도 엄청나다.
주소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72
요금 1대당 2만원 (주말 2만4천원)
문의 02-2236-2024

용인 메가박스 드라이브M
메가박스의 야심작, 매표소에서 헤드폰을 빌려 돗자리를 깔고 볼 수도 있다.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민속촌로 90
요금 1대당 2만원(주말 2만4천원), 스페셜존 4만5천원, 자율석 7천원
문의 1544-0070

평택호 자동차극장
한 쪽에는 영화 스크린이, 다른 쪽에는 확트인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주소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평택호길 159
요금 1대당 1만6천원(할인쿠폰 지참시 1만5천원)
문의 031-682-0410

잠실 자동차극장
잠실 탄천 주차장 내부에 있어 서울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 중 하나다.
주소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1168-1
요금 1대당 2만2천원
문의 02-3431-0450

광릉수목원 자동차극장
수목원에서 가까워 자연 속에서 영화보는 기분. 수목원 오토캠핑장과도 가깝다.
주소 경기도 포천시 소홀읍 죽엽산로 613
요금 1대당 2만원 (인터넷 할인권 제출 시 1만7천원)
문의 031-543-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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