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뮬산 스피드 vs 테슬라 모델 S, 복고와 첨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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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뮬산 스피드 vs 테슬라 모델 S, 복고와 첨단 사이
  • 빅키 패럿 (Vicky Parrott)
  • 승인 2015.11.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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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뮬산 스피드는 화려한 패키지로 드라이버의 매력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에 맞서 테슬라 모델 S가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신형 뮬산 스피드에 대한 벤틀리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뮬산 스피드는 독자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고객을 위해 태어났다. 운전대를 잡고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을 기다린다. 성능과 럭셔리, 그리고 스타일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아우른 차는 없다.” 

독립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실제로 세계를 바꾼다? 정말? 머릿속으로 그와 같은 영상을 그리며 여기 나온 소담한 백색의 차로 시선을 옮겨보자.

테슬라 모델 S는 자동차 업계에서 달 표면에 찍힌 인간의 발자국과 같은 존재다. 주행반경 490km에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BMW와 아우디 등 기존의 고급 세단과 대등한 편의장비를 갖췄다. 덕분에 갓 태어난 전기차임에도 럭셔리 세단의 자리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P85D는 682마력의 출력을 내는 네바퀴굴림 모델로 눈부신 성능까지 자랑한다.
 

영국의 햄프턴 코트 궁전과 더 샤드는 성격을 달리하는 건물이지만, 둘 모두 건축사의 소중한 성과로 꼽힌다. 마찬가지로 이들 두 차는 럭셔리 고성능차로 각기 특별한 지위를 차지한다.

벤틀리 뮬산 스피드는 귀족적인 멋을 풍기는 걸작이다. 높다란 보닛 위에 달린 배지는 대담한 매력을 풍기고, 개선된 6.75L 530마력 트윈터보 V8 엔진은 현란한 사운드로 유혹한다. 그리고 비단결 같은 보디와 전체적인 풍모는 강하게 눈길을 끌어당긴다. 가격은 25만2천 파운드(약 4억5천800만원)로 롤스로이스 팬텀은 물론, 자가용 헬기까지도 라이벌로 둔 강자다. (가격 및 제원은 모두 영국 기준) 

하지만 벤틀리 중에서도 최정상에 자리한 이 차에 대해 중대한 의문이 던져졌다. 과연 뮬산이 뒷좌석에 실려 다니는 것보다 운전대를 잡고 직접 운전하고 싶은 차가 될 수 있을까? 
 

한편, 테슬라는 추상적이지만 흥미 있는 대조를 이룬다. 영국정부에서 5천 파운드(약 900만원)의 플러그인 자동차 보조금을 받을 경우, 7만9천900파운드(약 1억4천500만원)에 살 수 있는 모델 S가 뮬산 스피드와 맞설 수 있을까? 모델 S는 정말 18만 파운드(약 3억2천만원)나 저렴한 차라는 느낌이 들까? 속도는 결코 뒤지지 않고, 오히려 테슬라는 벤틀리의 ‘스피드’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만든다. 뮬산 스피드의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4.9초이지만, 테슬라 모델 S P85D는 3.1초로 슈퍼카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우선 나는 테슬라를 타고 하루를 시작했다. 이질적인 침묵 속에서 뉴포리스트의 익숙한 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이 차의 실질적인 단점이 무엇인지 찬찬히 살폈다. 나중에 뻔한 문제에 부닥치기는 했지만, 태양이 눈부신 아침 나는 TV에서 벤틀리를 타고 화려하게 등장하는 스타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다. 
 

다만 모델 S의 실내는 곳곳에 약간 허술한 구석이 있다. 그중에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메르세데스-벤츠의 구형 스티어링 랙이고, 스티어링의 마감은 8만 파운드(약 1억4천500만원)의 차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다. 운전석은 조금 더 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정도는 미래주의적 매력으로 가득 찬 모델 S에 문제가 될 결함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타트(Start)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다. 자동식 도어핸들을 당기고 운전석에 앉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곧 짜릿한 흥분이 등골이 타고 흘렀다. 크랭크샤프트와 오일펌프 등등 낡은 장비에 낭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뜻이다.

인간의 창의력에 기뻤고,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가솔린 펌프 이후에도 풍성한 삶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가속 : 광적인’(Acceleration: Insane)이라고 적힌 버튼을 발견했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P85D의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밟는 것은 현대의 모든 교통수단 중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굳이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을 2.8초로 끌어내리는 ‘황당’(Ludicrous) 모드까지 쓰지 않더라도 말이다. 
 

또한, 디지털 방식의 가속은 수다를 떨지 않는다. 하지만 이쯤 되자 정말 아슬아슬했다. 타이어 슬립이 전혀 없다. 드라마도 없다. 복잡한 론치 모드도 없다. 기어변환의 지체도 없다. 드라이버의 감탄사 이외에는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정확히 페달을 밟으면 다음 순간 시속 60km에 도달하고, 뒤이어 아랫배에 힘을 주는 것에 따라 속도가 올라간다.

아주 단순한 기술이 이 모두를 뒷받침한다. 뒤쪽의 대형 모터가 뒷바퀴에 464마력을 쏟아붇고, 앞쪽에는 그보다 작은 모터가 218마력을 앞바퀴에 보낸다. 얇고 넓은 리튬이온 배터리팩은 차의 바닥 아래 깔려 있다. 따라서 앞뒤로 상당한 공간의 트렁크가 있고, 실내공간도 엄청나다. 더불어 앞서 말한 대로 주행반경 490km는 모델 S의 강력한 무기다.

그에 비해 벤틀리는 풍부한 개성을 자랑한다. 다이아몬드 무늬 좌석에 미끄러져 들어가자 흠잡을 데 없는 실내가 펼쳐지고, 수억 원의 가격차가 드러난다. 최고의 장인이 일각수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붓으로 며칠이 걸려 최고급 니스로 칠한 목재, 그리고 고운 결의 가죽 내장이 오감을 사로잡는다. 테슬라는 만사를 즉각적으로 처리하는 미래로 달려가는 반면, 벤틀리는 스모킹 재킷과 사냥개를 구매하라고 유혹한다. 
 

물론 벤틀리를 복고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능률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의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뒷좌석에 앉으면 바지를 다림질할 만한 공간이 있고, 아이패드 홀더가 달려있다. 목재를 씌운 아이패드 홀더는 충전 기능도 제공한다. 

이와 같은 디테일이 벤틀리의 특별한 감각을 살려준다. 부드럽게 여닫히는 도어를 열면 샴페인을 보관할 수 있는 냉장 캐비닛이 나타나고, 수놓은 가죽 케이스가 경고용 삼각대를 감싸고 있다. 드라이빙 모드 선택 버튼에는 독특한 'B' 로고를 넣어 에어서스펜션, 스티어링과 변속기 조율에 대한 벤틀리 기술진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중에도 우리는 스포트(Sport) 모드 검증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다. 오직 뮬산 스피드를 위해 특별히 조율했기 때문. 다른 세팅은 일반 뮬산과 똑같지만, 스포트 모드는 뮬산 스피드만의 독특한 댐퍼와 스티어링 세팅을 담았다. 더불어 추가된 출력과 토크가 스피드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일반 뮬산이 최고출력 506마력, 최대토크 104kg·m인 것에 비해, 뮬산 스피드는 530마력에 112kg·m의 파워를 지녔다. 

기본형 뮬산과 극적인 차이를 느낄 수는 없다. 놀랍도록 즐겁지만 대체로 육중한 반응을 보여준다. 아울러 훨씬 단단한 세팅이지만 코너에 들어가면 2.7톤의 모든 중량이 바깥 바퀴에 실리고, 즉각적으로 쉽게 조종할 수 있지만 상당한 오버스티어가 일어난다. 물론 배짱과 공간이 있다면 트윈터보 V8 엔진을 꼬드겨 엉덩이를 밖으로 흘려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영국 여왕이 청바지를 입는 것처럼 품격이 떨어지는 짓이다. 
 

그래도 여전히 뮬산은 운전 재미가 쏠쏠하다. 커브를 들락거리는 것도 만족스럽고, 당당한 거동은 운전자를 흐뭇하게 만든다. 엔진은 믿음직하고, 8단 변속기도 스피드의 괴물 같은 토크에 알맞게 조율됐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막강한 파워를 훌륭히 요리할 수 있다. 크루징 스피드에서는 침착하다. 갈라진 노면이나 변덕스러운 노면을 만나도 잔잔하게 타고 넘는다. 뮬산 스피드는 유달리 스포티하다고 할 수 없지만, 여전히 즐거운 차다. 

테슬라도 가장 스포티한 고성능 세단은 아니다. 심지어 뮬산 스피드에서 내린 직후에도 모델 S는 날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코너로 몰아넣어 선택한 라인을 따를 때는 뮬산보다 평탄하고 한층 중립적이다. 그러나 스티어링은 벤틀리의 정확하고 매끈한 유압식의 피드백에는 뒤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상당히 넉넉한 보디롤링을 보여준다. 굉장한 가속 능력을 지녔지만, P85D는 경쾌한 중상급 드라이빙에 가장 적합하다. 피드백은 부족하지만 일관성이 있고, 예측가능하며 만족스럽다. 
 

예상한 대로 테슬라는 유연한 승차감에서 벤틀리를 따르지 못했지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시승차는 2천100파운드(약 380만원)의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되어 있었는데, 햄프셔 지방의 굽이치는 도로에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제법 깔끔하게 노면을 요리했다. 21인치 휠(역시 옵션)을 끼운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는 포츠머스. 30km 남짓의 단거리다. 하지만 모델 S의 주행 가능거리가 130km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 뉴포리스트로 떠날 때 260km를 갈 수 있는 전력밖에 없었고, 그 뒤로 테스트를 위해 전력을 최대한 끌어내 썼기 때문. 나는 포츠머스에서 다시 115km를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 가정용 플러그에 꽂아 충전해야 했다. 그런데 배터리가 바닥났을 경우, 완충까지는 30시간이나 걸린다.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테슬라의 17인치 스크린에 뜬 구글맵을 살폈다. 파넘 시청의 고속충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스코틀랜드+서던 에너지(SSE)가 개설한 충전소에 차를 댔는데, 불행하게도 내가 갖고 있던 4개의 충전카드는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당황해서 전화를 한 뒤 가입비 20파운드(약 3만6천원)를 내고 충전포인트 지니에 들어가 충전앱을 내려 받았다. 앱을 통해 충전비를 미리 내야 했다. 가격은 첫 15분에 4파운드(약 7천200원)이고, 그 뒤 1분마다 25페니(약 450원)가 부과된다. 모델 S를 초고속으로 완충하는 데는 약 90분, 그리고 일반적인 고속충전(43kWh)에는 3시간 반이 걸린다. 

할 수 없이 우리는 테슬라를 플러그에 꽂고, 한 시간 동안 점심을 먹으러 자리를 떴다. SSE의 턱없이 비싼 전기료 덕분에 그동안 테슬라는 20파운드(약 3만6천원) 가까운 전력을 빨아들였다(거기에다 가입비 3만6천원도 들어갔다). 주행거리는 275km로 늘어났다.

다행히 테슬러 오너들은 가정용 고속충전기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부족으로 궁지에 몰릴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테슬라의 초고속 중전소가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전기차에는 아직 한계가 많다. 충전의 고역을 치룬 우리에겐 뮬산을 타고 가까운 주유소에 가는 것이 호사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충전시설이 급속히 발전하고 확대되면, 머지않아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지난날의 걱정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가 비교시승을 마쳤을 때 수많은 사람이 벤틀리로 몰려들었다. 그 다음 이 차는 또 뭐냐는 듯 테슬라를 흘낏거리다 떠나갔다. 눈길을 끌고 싶은 나의 욕구는 집으로 돌아갈 때 위풍당당하게 뮬산에 오르라고 충동했다. 그야말로 뮬산 스피드의 황홀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P85D에 대한 열광은 그보다 더 컸다. 신비한 전기의 마술이 테슬라의 매력을 증폭시켰다. 내게 테슬라 모델 S는 마치 최첨단 레이저 검 같았다. 반면, 뮬산 스피드는 최고의 장인이 만든 고귀한 수제 무기랄까. 물론 지극히 매혹적이다. 하지만 레이저 검처럼 멋지지는 않았다. 

글 · 빅키 패럿 (Vicky Parrott)
사진 · 윌 윌리엄스 (Will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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