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토중래 꾀하는 야심작, 재규어 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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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토중래 꾀하는 야심작, 재규어 XE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11.0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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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가 D세그먼트 시장에 돌아왔다. 이곳은 BMW 3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 등 강호들로 북적이는 격전지. 재규어가 D세그먼트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지난 2009년 X-타입 단종 이후 처음이다. 

재규어는 한때 애스턴 마틴, 랜드로버, 볼보 등과 함께 포드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의 일원이었다. 재규어 최초의 D세그먼트 모델이었던 X-타입은 PAG 시절 개발한 모델로, 유럽형 포드 몬데오와 설계를 공유했다. 하지만 포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앞바퀴굴림 재규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X-타입은 재규어의 ‘흑역사’로 평가되기도 하는 모델이지만, 개인적으로 X-타입이 싫지 않았다. 아무리 원재료가 몬데오였다고 해도, 고급스런 승차감과 깔끔한 스티어링에서 대중차의 냄새를 맡기 어려웠던 기억이다. 무엇보다 독일과 일본의 경쟁모델들과 구별되는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외모가 색다르고 매력적이었다. 

X-타입의 실패 이후 한동안 D세그먼트 시장을 떠나 있었던 재규어가 들고 나온 카드가 XE다. 경쟁이 몹시 치열한 시장에 다시 도전하는 것이니만큼 XE에는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다. 
 

XE는 포드에서 독립한 이후 재규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100% 새로 개발한 첫 모델로, 완전히 새로운 차체와 엔진을 갖춘 신세대 재규어의 선봉이다. XE의 플랫폼(재규어는 아키텍처라고 부른다)은 지난 3월 데뷔한 신형 XF와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공개된 재규어 최초의 SUV F-페이스와도 공유한다. 

재규어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XE는 지난해 10월 파리모터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국내에는 지난 4월 서울모터쇼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국내시장에서는 휘발유 엔진 2종, 디젤 엔진 1종, 총 5개 모델로 판매를 시작했다. 

휘발유 모델로는 직렬 4기통 2.0L 터보의 20t 프레스티지(4천750만원)와 V6 3.0L 슈퍼차저의 XE S(6천820만원)가 있다. 아마도 주력 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디젤 라인업은 기본형인 20d 프레스티지(4천710만원), 스포츠형인 20d R-스포트(5천340만원), 고급형인 20d 포트폴리오(5천450만원)로 구성됐다. 

XE의 첫인상은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 입을 지나치게 크게 벌리지도 않았고, 전위적이고 복잡한 선이 온몸을 휘감고 있지도 않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비례가 좋고 선이 아름다워서 금방 질릴 것 같지 않다. 공기저항계수는 재규어 역사상 가장 낮은 0.26. 
 

개인적으로 X-타입 같은 고전적인 디자인을 재규어에서 다시 보고 싶지만, 이러한 취향을 가진 계층이 극소수라는 것을 깨달은 재규어가 내린 결론이 바로 지금의 XE 디자인일 것이다. 

XE는 길이×너비×높이가 4,670×1,850×1,415mm로 독일 라이벌들에 비해 낮고 넓다. 참고로 3시리즈는 4,633×1,811×1,429mm, C클래스는 4,700×1,810×1,445mm. 휠베이스는 2,835mm로 3시리즈(2,810mm)보다 길고, C클래스(2,840mm)와 거의 비슷하다. 

차체는 알루미늄과 스틸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설계. D세그먼트에서 하이브리드 모노코크는 이미 상식이 되었지만, XE의 차체는 알루미늄 비율이 전체의 75%로 높은 것이 특징이다. 사실상 동급 최초의 알루미늄 차체나 다름없다. 

하지만 XE가 라이벌에 비해 특별히 가볍지는 않다. 이에 대해 재규어 관계자는 알루미늄 사용을 통해 높은 수준의 차체 강성을 확보하는 한편, 여러 고급 장비를 더하고도 무게 증가를 최소한으로 억제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내는 화려하고 고급스런 분위기. 대시보드까지 가죽으로 꼼꼼히 치장했다. 가죽 처리에선 어딘가 핸드메이드의 멋이 느껴진다. 기본형인 프레스티지에 쓰인 가죽도 질이 좋고, 고급형인 포트폴리오에는 더욱 부드럽고 촉촉한 가죽을 썼다. 

대시보드에서 도어 트림으로 곡선이 이어지며 감싸는 형상은 XJ와 비슷하다. 커다란 실린더 형태의 속도계와 엔진회전계는 F-타입을 떠올린다. 대시보드가 아래로 내려와 있고, 센터콘솔이 넓고 높은 편이라 사람에 따라 앞좌석 다리 공간이 비좁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센터 페시아와 센터콘솔은 고광택 피아노 블랙과 번쩍이는 금속으로 화려한데, 지문이나 먼지 등 오염에 취약하다. 부피가 크고, 다이얼식 기어 셀렉터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센터콘솔에 수납공간을 충분히 마련해놓지 않은 점은 아쉽다. 

스티어링 휠은 지름이 적당하고, 프런트 시트는 크기가 여유로우면서 몸을 잘 감싸 안는 형상이다. R-스포트 모델에는 좀 더 타이트한 전용 스포츠 시트가 달린다. 시트 메모리 버튼이 도어에 달렸는데, 윈도 스위치보다 손이 쉽게 닿는 곳에 있어서 처음에는 약간 헷갈린다. 
 

기본형에도 메리디안 11스피커 오디오(380W)를 적용하는 등 경쟁모델 대비 기본 사양이 좋다. 포트폴리오 모델은 17스피커 시스템(825W)을 달았고, 그밖에 앞 유리 열선, 14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는 프런트 시트, 열선 스티어링 휠, 열선 리어 시트, 전동식 뒤 유리 차양막, 전동식 트렁크 등 각종 편의장비를 적용했다. 

루프 라인이 유려한 대신 뒷문이 열리는 부분이 낮아서 타고 내릴 때 머리를 많이 숙여야 한다. 리어 시트는 편안하지만, 머리 공간은 넉넉하지 않다. 앞뒤 다리 공간은 라이벌과 비슷한 수준. 실내에 쓰인 소재는 전반적으로 우수하지만, 딱딱한 플라스틱을 쓴 B필러 부분의 내장재 등 몇몇 부분은 재규어 브랜드에 기대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 

재규어가 알루미늄 차체와 함께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엔진. ‘인제니움’(Ingenium)이라고 이름 붙인 독자 개발 신세대 엔진은 앞으로 재규어·랜드로버의 미래를 짊어지게 된다. 실린더 당 500cc의 모듈식 설계로, 기술적으로 3기통 1.5L, 4기통 2.0L, 6기통 3.0L, 8기통 4.0L의 휘발유 및 디젤로 구성이 가능하다. 

새로운 인제니움 패밀리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4기통 2.0L 디젤. 세팅에 따라 163마력과 180마력 사양이 있으며, 국내에는 180마력짜리만 들어왔다. 2.0L 휘발유 버전은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XE에 적용된 휘발유 엔진은 포드에 뿌리를 둔 유닛이다. 레인지로버 이보크 등에도 들어간 검증된 엔진으로, 최고출력 200마력, 최대토크 28.6kg·m의 준수한 힘을 낸다. 휘발유와 디젤 모두 ZF 8단 자동변속기와 짝을 이루고, 뒷바퀴를 굴린다. 

매끄럽고 조용한 휘발유 모델을 먼저 탄 탓인지, 상대적으로 신형 디젤 엔진이 약간 무겁고 회전이 거칠게 느껴졌다. 대신 저회전부터 밀려오는 두툼한 토크가 인상적. 박력 있게 힘을 쏟아내는 타입이다. 최대토크는 43.9kg·m으로, 40.8kg·m인 320d나 C220d보다 우위에 있다. 

영화배우 톰 히들스턴은 F-타입 TV광고에서 “위대한 악당이 되려면 우선 자신만의 소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XE 라인업에서 이 역할은 XE S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신형 인제니움 디젤은 영국식 악센트가 들어간 매력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새 엔진의 연비는 기대에 약간 못 미친다. XE 20d의 정부 공인 복합연비는 14.5km/L(도심 12.6km/L, 고속도로 17.6km/L)로 연비등급 2등급을 받아 독일 라이벌들보다 떨어진다. 320d(페이스리프트 이전)는 16.4km/L, C220d는 17.4km/L로 모두 1등급이다. 휘발유 모델의 연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8월 28일 기준). 
 

네 가지 주행모드(다이내믹, 노말, 에코, 윈터)를 지원하며, 모드에 따라 스티어링과 엔진 및 변속기 세팅이 달라진다. 다이내믹 모드에선 계기판 조명도 온통 붉게 바뀐다. 그런데 센터콘솔에 달린 주행모드 버튼은 위치가 안 좋고 크기도 너무 작아서 쓰기 불편하다. 

그밖에 주목할 만한 운전자 지원 기술로는 랜드로버에서 가져온 것으로 짐작되는 ‘전 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SPC)이 있다. ASPC는 일종의 저속 크루즈컨트롤로서, 미끄러운 노면에서 페달 조작을 하지 않아도 차가 자동으로 엔진의 출력과 트랙션을 최적화하는 장치다. 시속 3.6~30km 사이에서 작동한다고 한다. 직접 체험해보진 않았지만, 겨울철에 매우 유용할 것 같다. 

섀시는 최상급이다. 수백 미터의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에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자동차가 더러 있다. XE가 바로 그런 부류다. 출발하자마자 차체의 견고함과 평온한 승차감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 

아주 작은 단차부터 큰 요철까지 거의 모든 조건에서 다리가 잘 움직이면서 평평하게 자세를 유지하는 고급스런 감각이다. 특히, 서스펜션이 힘을 받은 뒤 다시 팽창할 때의 느낌이 마음에 든다. 스프링 아래의 무게를 느끼게 하지 않는 것도 인상적. 앞쪽에 더블 위시본, 뒤쪽에 인테그럴 링크로 값비싼 서스펜션을 갖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재규어 최초로 XE에 도입했다고 하는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EPAS)의 완성도도 높다. 무게가 적당하고 정확하게 작동한다. 노면의 느낌은 잘 전해주면서 불필요한 기계적 느낌은 걸러낸 깔끔한 감각. 세심하게 조율한 노력이 엿보인다. 

머리가 가볍고 움직임이 경쾌해서 무거운 몸무게를 실감하기 어렵다. 시승을 마치고 제원표를 다시 확인했다. 재규어 코리아와 BMW 코리아가 틀리지 않았다면, XE 20d는 320d보다 자그마치 240kg이나 무겁다. 하지만 운전하면서 실제로 느끼는 체감 무게는 XE가 오히려 가벼운 느낌이다. 

노면의 기복이나 차체의 쏠림과 상관없이 시종일관 네 바퀴가 노면에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다. 특히, 뒷바퀴가 수평 방향으로 가해지는 힘에 매우 잘 버텨서 그립이 확실하고 움직임이 안정적이다. 뛰어난 조종성과 안정감 덕분에 대관령의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하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전용 스포츠 서스펜션이 달린 R-스포트는 일반형에 비해 승차감이 조금 더 단단하지만, 큰 차이는 없고 핸들링 특성도 마찬가지다. 기본 모델의 실력이 좋은 탓도 있지만, 운동 성능의 차이는 기대에 조금 못 미친다. 

3시리즈가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서스펜션을 개선했다고 하는데, 아직 직접 확인해보지 않아서 그 실력은 미지수.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업그레이드된 신형 3시리즈도 XE의 핸들링 실력을 능가할 것 같지는 않다. 

간혹 뻣뻣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독일 군단에 비해 XE는 유연함과 예리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BMW도 아니고 메르세데스-벤츠도 아닌 재규어 특유의 감각이다. 새로운 벤치마크의 등장이다. 3시리즈나 C클래스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면 재규어 XE도 후보 목록에 올려둘 필요가 있다. 저마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독일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이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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