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의 최종 단계, '클레이 모델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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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의 최종 단계, '클레이 모델의 모든 것'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9.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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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디자인 개발과정은 크게 스케치, 렌더링, 모델링 순서로 진행된다. 신차 디자인 개발에는 최소 18개월이 걸리고, 그동안 수십 차례의 사내 품평회를 거친다. 

먼저 디자이너는 상품기획에 따라 디자인 콘셉트를 잡고, 스케치를 통해 아이디어를 전개해 나간다. 그런 다음 렌더링(제품의 실물 묘사)으로 구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로 3차원 모델을 만든다. 이 과정을 디지털 모델링이라고 한다. 

디지털 모델링에는 ‘알리아스’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알리아스는 ‘오토캐드’로 잘 알려진 미국 오토데스크(Autodesk)社의 디자이너용 3차원 모델링 소프트웨어 제품군. 자동차 디자인에는 ‘알리아스 오토스튜디오’(Alias AutoStudio)를 주로 쓴다. 콘셉트 디자인부터 모델링, 표면 해석, 시각화를 아우르는 강력한 기능을 제공한다. 

디지털 모델이 완성되면 가상현실(VR) 기술로 검토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컴퓨터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디지털 모델만으로는 온전한 디자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실제 인상을 확인하기 위해 실물 모형을 제작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빠른 검토를 위한 1:5 또는 1:4 스케일의 축소 모형부터 품평을 위한 실제 크기의 1:1 모형까지 다양한 크기로 여러 개 제작한다. 이 모든 과정에 클레이(clay) 모델이 활용된다. 

클레이는 우리말로 ‘점토’지만, 자동차 디자인 개발에 쓰는 것은 일반적인 점토와는 다른 공업용 인공재료다. 주성분은 밀랍(wax), 파라핀, 기름, 유황 등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1930년대부터 쓰기 시작한 역사가 오래된 재료다. 공업용 클레이는 시중에서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판매되고 있지만, 자동차회사에서는 그중 원통형 덩어리 상태의 제품을 사용한다. 
 

먼저 뼈대가 되는 프레임을 만든 뒤, 스티로폼을 대강 깎아 기본 형상을 잡는다. 이를 ‘벅’(buck: 차체라는 뜻)이라고 한다. 클레이는 오븐에 넣어 약 60℃로 가열하면 말랑말랑한 연질(軟質) 상태가 된다. 오븐에서 갓 나온 클레이는 매우 부드럽고 점도가 높다. 가열된 클레이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데 유황 성분 때문이다. 

말랑말랑해진 클레이를 벅 표면에 5cm 이내(1:1 모형 기준) 두께로 도포한다. 클레이 가격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얇게 바른다고 해도 1:1 모형 1대를 제작하는 데 대략 3천만원 상당이 들어간다. 
 

열기가 식으면 클레이는 딱딱하게 굳는다. 굳었을 때 강도는 양초 정도. 클레이가 굳으면, 3축 또는 5축 NC(컴퓨터 수치 제어) 밀링 머신이 디지털 모델 데이터를 토대로 표면을 깎아내 형태를 빚어낸다. NC 머신이 가공한 표면은 거칠기 때문에 모델러(클레이 모델 제작자)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조각을 하듯 표면을 긁어내며 정교하게 다듬어나간다. 

모델러의 일은 단순히 표면을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다. 디자이너가 제시한 2차원의 스케치와 렌더링을 3차원 입체로 해석하고, 최상의 디자인 품질을 찾는 것이 클레이 모델링의 과정이다. 때문에 모델러에게는 모형 제작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된다. 
 

모델러는 디자이너와 의견을 교환하며 디자인 콘셉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면을 찾아간다. 이상적인 면의 곡률을 찾기 위해 시각적인 검토는 물론, 손으로 표면을 만지며 다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신중히 다루는 디자인 요소 가운데 하나가 ‘라이트라인’(lightline)이다. 라이트라인은 차체 면을 따라 흐르는 빛을 일컫는 말로, 우리말로는 등조선(等潮線)이 가깝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물체이기 때문에, 달릴 때 주변 환경이 차에 어떻게 비치고 흘러가는지가 외장 디자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자동차는 복잡한 형태를 지닌 3차원 물체이고, 시선의 높이와 각도에 상관없이 어디서 봐도 어색한 부분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완성도 높은 라이트라인을 만드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라이트라인은 디지털 모델링 단계에서부터 매우 신중히 다뤄진다. 알리아스에는 실시간으로 3차원 모델을 돌려보며 라이트라인을 검토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특정 시간이나 장소 등 다양한 환경 조건을 반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라이트라인을 완성하는 것은 클레이 모델링을 통해서다. 결국 자동차 디자인의 완성은 모델러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이너는 산업디자인 전공자가 대부분인 반면, 모델러는 조각과 출신이 많은 이유다. 미국 GM에서는 아예 모델러라고 하지 않고 조각가(sculptor)라고 부르고 있다. 
 

클레이 모델링 과정에서 수십 수백 차례 크고 작은 디자인 수정이 이뤄진다. 클레이는 딱딱하게 굳어도 가열하면 다시 말랑말랑해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제약 없이 부분 수정이 가능하다. 취급이 간편하고 가공이 쉬운 것이 수십 년간 클레이가 모형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이유다. 

클레이 모델을 완성하면 표면에 ‘디녹’(Di-Noc) 필름을 입힌다. 디녹은 3M의 상품명으로, 색상이 들어간 얇고 신축성 있는 필름이다. 뒷면에 물을 뿌려 펴 바르면 되고,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다. ‘루프 스킨’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디녹을 클레이 모델에 입히면 페인트칠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색상은 은색을 쓴다. 차체 면의 굴곡과 음영을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디녹 필름을 입힌 뒤에도 필요에 따라 디자인을 수정한다. 과거에는 실제로 페인트를 칠했기 때문에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요즘은 해당 부분의 필름을 살짝 벗겨낸 뒤, 클레이 표면을 수정하고 다시 입히는 방법으로 쉽고 빠르게 작업을 진행한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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