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리 토끼 노리는 새끼사자, 푸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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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토끼 노리는 새끼사자, 푸조 2008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9.14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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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차라고 해서 모두 지루한 것은 아니다. 푸조 2008은 스타일, 실용성, 운전의 재미를 모두 잡았다

2008이라는 네 자릿수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이 208 기반의 레저용 자동차다. 푸조는 주류 모델에 세 자릿수를 쓰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파생모델에는 가운데 0을 더해 네 자릿수를 쓰고 있다. 국내에는 현재 2008과 3008이 판매되고 있고, 유럽에는 콤팩트 SUV 4008과 7인승 MPV 5008도 있다. 

MPV 스타일인 3008과는 달리, 2008은 SUV에 가깝다. 2008이 속한 B세그먼트 SUV는 타고 다니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활동적인 이미지가 강해 최근 가장 인기가 뜨거운 장르다. 쌍용 티볼리, 르노삼성 QM3, 미니 컨트리맨, 닛산 쥬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프리미엄 메이커로 눈을 돌리면, 메르세데스-벤츠 GLA클래스, BMW X1, 아우디 Q3, 볼보 V40 크로스컨트리 등이 있다. 
 

국내 판매 모델은 기본형인 악티브(2천650만원), 중간급인 펠린 S(2천980만원), 고급형인 펠린 L(3천90만원)로 구성됐다. 스페셜 에디션으로 LED 트랙 에디션(2천850만원)과 아이코닉 에디션(3천150만원)도 있다. 시승차는 펠린 L이다. 지난 3월 출시한 아이코닉 에디션은 펠린 L을 기본으로 컬러 액세서리를 더한 모델이다. 

2008의 첫인상은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에 씩씩함이 묻어 있는 멋쟁이 같은 모습. 도시에서 쇼핑도 하고, 가끔 야외활동도 즐기라는 콘셉트가 스타일링에서도 드러난다. 그야말로 크로스오버라는 장르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에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8을 보고 작고 귀여운 208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앞뒤 범퍼와 차체 하단에 두른 듬직한 보호 장구는 SUV다움을 자아낸다. 208에 터프한 SUV의 에센스를 더한 모습이다. 지붕은 2열 부분이 약간 올라가 있는데,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처럼 실제로 2열 지붕이 높은 것은 아니다. 지붕 양옆에 모양만 준 기교. 208과 구분되는 독특한 실루엣을 만들고, 레저용 차라는 자기주장도 확실히 전해진다. 

208과 너비와 휠베이스는 같지만, 더 길고 높다. 약 200mm 늘린 길이는 대부분 트렁크 공간에 할애했다. 최저 지상고는 165mm로 208보다 35mm 가량 높을 뿐이다. 껑충한 SUV의 스탠스보다는 키를 높인 해치백 같은 인상이다. 말하자면 GLA클래스나 V40 크로스컨트리와 비슷한 느낌. 
 

차에 다가가면 또 다른 매력이 드러난다. 앞뒤 램프와 몰딩 등 각 부분의 디테일이 좋고, 도장도 깊이감이 있어서 고급스럽다. 패널 간격도 매우 작아서 푸조의 조립품질이 크게 올랐음을 짐작케 한다. 

실내는 최신형 푸조의 전형적인 레이아웃. 대시보드 위쪽에 높게 자리한 계기판, 직경이 매우 작은 스티어링 휠, 버튼 수를 최소화한 간결한 센터 페시아 등이 시선을 잡는다. i-콕핏(Cockpit)이라고 부르는 푸조의 실내 레이아웃은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다가오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내장재로는 딱딱한 플라스틱이 많이 쓰였다. 플라스틱 품질은 이 등급에서 평균 수준으로, 비록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값싸 보이지도 않다. 송풍구같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도 대충 만들지 않고 착실하게 마무리했다. 한껏 멋만 내고 적당히 얼버무린 자세는 찾아볼 수 없다. 

시트는 가죽과 천이 섞여 있다. 시트 디자인은 멋스럽고, 특히 텍스타일에선 프랑스 특유의 감각이 묻어난다. 시트는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착좌감도 좋다. 조절 폭도 커서 원하는 포지션을 찾기 쉽다. 그에 반해 스티어링 휠의 조절 폭이 작은 점은 아쉽다. 
 

계기판은 스티어링 휠 위쪽으로 보게 된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지만, 익숙해지면 도로를 보는 시선과 계기판이 같은 선상에 있어서 좋다. 다만, 신체 조건이나 드라이빙 포지션에 따라 운전대와 계기판이 겹쳐 보일 수도 있다. 

낮게 달린 스티어링 휠은 크기가 아주 작아서 잡아 돌리면 휙휙 돌아가는 느낌이다. 팔을 낮은 위치에 놓고 있을 수 있어서 오래 운전해도 덜 피로하다. 계기판 테두리와 넓은 유리 지붕 안쪽에는 은은한 푸른색 LED 조명을 넣어 분위기를 잡았다. 개인적으로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는 푸른색 실내조명은 좋아하지 않지만, 2008은 과하지 않은 느낌이다. 원한다면 꺼둘 수도 있다. 
 

조작 계통은 논리적으로 잘 정돈되고 배열돼 쓰기 쉽다. 오디오 및 공조장치 조작, 각종 차량 설정은 중앙에 달린 7인치 터치스크린을 통해 할 수 있다. 사용성에는 문제가 없지만, 처리속도가 느려 작동감이 무겁다. 또한, 화면의 컬러테마를 바꾸는 데 시스템 재부팅이 요구될 정도로 능률적이지 못한 모습도 보인다. 추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되기를 바란다. 

208과 휠베이스가 같은 만큼 뒷자리 다리 공간은 그대로다. 하지만 지붕이 208보다 80mm 높아지면서 머리 공간에 여유가 생겨 훨씬 넓은 느낌이다. 뒤 오버행 길이가 늘어나 트렁크가 208보다 25% 가량 넓어졌다고 한다. 적재용량은 360~1,194L로 QM3보다 약간 적은 수준. 트렁크해치가 지면에서 불과 600mm(소형 해치백 수준이다) 떨어져 있어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기 아주 좋다. 참고로, 컨트리맨은 670mm, 쥬크는 770mm다. 
 

엔진은 92마력을 내는 직렬 4기통 1.6L 터보 디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엔진은 아니지만, 수치만 보고 얕봐선 안 된다. 낮은 회전 영역에서 토크감이 좋고, 차의 무게가 1,250kg으로 비교적 가벼워서 기대 이상으로 경쾌하게 잘 달린다. 물론, 고속으로 갈수록 힘이 부치는 느낌을 주지만, 일상주행에는 부족하지 않은 필요 충분한 엔진이다. 

연비는 2008의 큰 장점 중 하나. 정부 공인 복합연비는 17.4km/L(도심 16.2km/L, 고속도로 19.2km/L)인데, 지나치게 겸손한 수치가 아닌가 싶다. 연비에 신경 쓰지 않고 달렸는데도 트립컴퓨터 상으로 18km/L 이상 너끈히 나왔고, 고속도로나 간선도로에서 흐름을 따라 달릴 땐 평균연비가 22km/L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승차감은 푸조답다. 서스펜션이 매우 유연하고 탄력이 있어서 마치 호버크라프트처럼 달린다. 헤어핀처럼 깊은 코너에서 몰아붙이면 차의 높이를 실감하게 되지만, 일반적인 코너는 상쾌하게 돌아나간다. 연속된 코너에서는 간혹 뒤가 뻣뻣할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단단한 독일 차와는 다른, 어깨에서 적당히 힘을 뺀 듯한 움직임으로 기분 좋은 조종 감각을 선사한다. 

실용성을 중시한 모델임에도 운전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승차감과 핸들링이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서브 콤팩트 SUV를 놓고, 핸들링이나 운전 재미를 따지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운전을 즐기는 부류도 많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변속기는 호불호가 나뉠 것 같다. 2008에는 푸조-시트로엥의 다른 1.6L 디젤 소형차와 마찬가지로 6단 자동제어 수동변속기가 달렸다. MCP(Mechanical Compact Piloted)라는 이름의 이 변속기는 기계적으로는 수동변속기지만, 전동식 엑추에이터가 자동으로 변속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동변속기의 효율성과 자동변속기의 편리함을 모두 잡기 위한 것이었지만, 문제는 변속이 매끄럽지 않다는 데 있다. 일반적인 자동변속기 차를 몰듯 다루면, 변속 때마다 노를 젓듯이 상체가 앞뒤로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줄이려면, 수동변속기를 조작하듯 변속 타이밍에 맞춰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좋다. 그런데 변속 타이밍을 알아채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너무 오래 물고 있는 경향이 있는 2단에서 3단으로 넘어갈 때 특히 그렇다. 어설프게 액셀 워크를 했다간 오히려 변속제어 프로그램이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도 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수동 모드로 직접 변속하는 것이다. 

요령을 익히면 어느덧 불만은 즐거움으로 바뀐다. 변속 속도도 빨라지고, 철컥 하고 기어가 들어가는 소리에선 희열감마저 느껴진다. MCP는 연비를 위한 선택이었지만(푸조에 따르면 수동변속기보다도 8% 효율이 높다고 한다), 의외로 운전의 재미를 크게 높이는 효과도 있다. 쉽고 편리하게 수동변속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다. 
 

푸조 2008은 실용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차다. 게다가 스타일도 근사하다. 실용적인 차를 조금 비틀어 맛깔스러운 차로 만드는 프랑스 메이커 특유의 재주가 2008에도 오롯이 녹아 있다. 자동차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아이템으로 취급하고, 편안한 장거리 이동과 실용성을 원하며, 가끔 운전도 즐기고 싶은 활동적인 사람에게 권한다. 

글 · 임재현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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