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한 변신의 미학, 벤틀리 벤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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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변신의 미학, 벤틀리 벤타이가
  • 리차드 브렘너 (Richard Bremner)
  • 승인 2015.09.0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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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타이가는 그 이전의 어떤 벤틀리와도 다르다. 지금 벤틀리는 창사 이후 가장 뜻 깊은 테스트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경사가 53°가 되기 전에는 구르지 않아요.”
앞좌석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 불안을 다독여주는 말이었다. 크게 기울어진 뒷좌석에 앉은 내 눈에 들어온 경사계는 35°를 가리키고 있었다.

윈드실드 너머로 한쪽에는 새빨간 둔덕이, 다른 쪽에는 깊숙한 골짜기가 보였다. 둘 사이에는 공간이 별로 넓지 않았고 차체는 몹시 흔들렸다. 도랑 너머에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벤타이가 프로토타입의 알루미늄 보디를 철저히 시험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침착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캐머런 피터슨. 벤틀리의 차량 엔지니어링 총괄이다. 그는 벤틀리의 마사지 시트에서 엔진의 성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 그에게도 이런 황당한 경사에서 신차를 시험하는 일은 처음이다. 벤타이가 탄생 이전까지 벤틀리가 시도한 각도는 기껏해야 의도적인 드리프트가 한계였다. 순간적으로 꼬리를 흔들거나 테스트 트랙에서 벌이는 산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프로토타입 벤타이가를 몰고 오프로드에 나섰다.

이 차는 장거리 테스트를 거친 소수의 프로토타입 가운데 하나다. 프로토타입들은 수송기에 실려 스칸디나비아의 혹한으로, 또는 남아프리카의 폭염과 아랍에미리트의 모래사막을 찾아갔다. 벤틀리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신차 테스트 프로그램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테스트 프로그램을 따라 남아프리카와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우리가 남아공에 갔을 때, 케이프타운의 비밀 아지트에서 나온 검은 벤타이가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차체의 일부를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전략적으로 조형한 유리섬유 몰딩으로 차체의 형상은 일그러졌고, 교묘하게 조작한 보디랩이 우리의 시야를 흐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이 대형 벤틀리 SUV의 프로토타입은 2012년 제네바모터쇼에서 관객을 놀라게 한 벤틀리 SUV와는 달랐다. 벤틀리의 콘셉트 EXP 9 F가 처음 공개됐을 때는 부정적인 비판이 없지 않았다. 제품라인 담당 이사 피터 게스트는 이렇게 시인했다. 
 

“콘셉트에 대한 반응은 반으로 나눠졌어요.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죠. 벤틀리가 자랑하는 힘, 견고함과 파워 또는 네바퀴굴림을 갖춘 럭셔리 SUV는 세상에 없습니다. 이 차는 21세기의 그랜드 투어러이고, 실내에서도 똑같은 경험이 반복됩니다. 변하는 것은 오직 하나, 외관 스타일뿐이죠. 이 차에는 실용적인 요소를 추가한 벤틀리의 가치관이 속속들이 배여 있습니다.” 

아무튼 벤틀리가 SUV를 만들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모델 라인업에 대한 벤틀리의 야망은 바로 사명감으로 이어졌다. 제품 마케팅 총괄 마커스 애봇은 이 차를 “가장 호화롭고 귀족적인 최고속 SUV”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절묘한 디자인, 희귀성과 개성을 새로운 시장에 추가할 것입니다. 더불어 럭셔리를 모래언덕과 산악과 같은 새로운 무대로 확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들 벤타이가는 남아프리카, 두바이와 오만에서 10주일간 테스트를 거치면서 작렬하는 햇볕을 견뎌야 했다. 우리는 남아프리카 테스트에 가담했다. 폭염 이외에도 남아프리카에서는 자외선으로 인한 실내소재의 변색에 대한 저항을 측정했다. 이곳에서 6개월간 햇빛에 노출되는 것은 일반적인 곳에서의 15년과 맞먹는다.

벤타이가의 실내에 앉아 있을 때는 전혀 힘들지 않다. 벤틀리가 자랑하는 호화로운 소재와 섬세한 디테일 덕분에 안락한 분위기에 젖었다. 뒷좌석을 완전히 뒤로 젖혀 메르세데스 S클래스와 같은 마사지 효과를 누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수준의 쾌락을 안겨줬다. 특히 프로토타입의 덤덤한 색상보다 더욱 화려한 가죽내장을 선택한다면 그 기쁨이 더해질 것이다. 
 

벤타이가 대열은 케이프타운을 벗어나면서부터 위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고속 주행하는 차량들과 어우러지며 실력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특히, 우리 대열의 일부였던 아우디 Q7이 이 사실을 더욱 확실히 굳혔다. Q7은 벤타이가와 똑같은 파워트레인에 액티브 롤컨트롤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됐다. 차선변경 테스트에서 롤링이 거의 없는 실력이 빛났다. 때문에 그 높이와 덩치에도 자신감 넘치는 민첩성을 과시했다. 또한, 쿠션을 짓누르는 가속과 엔진의 포효도 그에 못지않은 감동을 줬다.

듬직한 힘의 원천은 완전히 새로운 6.0L W12 엔진에서 나왔다. 파워트레인 총괄 폴 윌리엄즈에 따르면 엔진은 “백지상태에서 완전히 다시 설계했고, 워셔 하나가 간신히 남았을 정도였다.” 그 결과 무게를 30kg이나 줄였고, 가변형으로 바뀐 엔진은 정속주행에 들어가면 연료를 절역하기 위해 기통의 절반이 닫힌다. 내부마찰도 줄였고, 연료분사방식은 직접식과 간접식을 오간다. 이처럼 두 가지 연소방식을 구사하여 CO₂ 배출량을 줄이고, 냉각 성능을 높였다.
 

벤틀리는 아직 확실한 스펙을 밝히지 않았다. 단지 “출력 542마력 이상, 토크 71.6kg·m 이상, 0→시속 100km 가속시간 5.0초 이하, 최고시속 270km 이상과 CO₂ 배출량 330g/km 이하”를 약속했을 뿐이다. 이처럼 인상적인 숫자는 알루미늄 중심의 보디를 전략적으로 고장력 강철로 강화하여 100kg를 줄인 성과다. 그 핵심은 신형 Q7과 비슷하고, 이들은 모두 폭스바겐의 MSB 플랫폼을 깔고 있다.

벤테이가의 성능은 남아프리카에서 먼지구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실내와 수많은 전자장비 패키징의 완벽한 밀폐성을 입증했다. 벤타이가는 자그마치 90개 이상의 ECU를 갖췄는데, 이는 컨티넨털의 2배가 넘는 숫자다. 따라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패터슨은 “해마다 전자장비가 복잡해지지만, 그에 비례해 신뢰성도 올라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ECU들은 벤틀리의 오프로드와 온로드 능력을 모두 뚜렷이 끌어올린다. 아울러 로터리 방식의 노브는 5가지의 운전모드를 제공한다. 샌드(sand=모래), 머드(mud=진흙), 그레이블(gravel=자갈)과 컴포트(comfort=안락)와 스포트(sport=스포트), 그리고 대부분의 환경에서 최적인 ‘벤틀리’ 세팅이 마련되어 있다. 벤타이가의 엄청난 차체 기술과 드라이버의 관계를 원활하게 한다. 게스트의 설명을 들어보자.

“일부 SUV는 온로드 편향적입니다. 반면, 어떤 모델은 오프로드를 강조하죠. 그러나 벤틀리는 온로드와 오프로드 모두에서 완벽합니다. 물론 대다수 고객은 오프로드에 나갈 생각이 없지만, 자신의 차가 오프로드에 나갈 능력을 갖추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편안한 승차감을 뒷받침하는 기술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48볼트 전자식 안티롤 시스템은 “안락성이 아니라 롤링을 완전히 제거해준다”는 것이 게스트의 설명. 테스트 팀은 짧고 예리한 충격을 제거하는 데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서스펜션은 바퀴가 움직이는 첫 몇 밀리미터에서 놀라운 충격흡수 기능을 뽐내며, 코너 입구에서 머슥한 흔들림을 제거해 부드러운 승차감을 뒷받침한다. 이따금 날카로운 범프가 스프링이 받치지 않은 묵직한 부분을 흔들었지만, 대체적으로 호사스러운 승차감을 즐길 수 있었다.
 

“초기에는 실내를 조금 덜 호화롭게 꾸미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조사팀에서 ‘그런 실내는 생각하지도 말라’고 반대했어요.” 게스트의 말. 도어를 열자 절묘하게 다듬은 호화로운 좌석과 아름다운 래커 목재의 그윽한 분위기에 잠시 넋을 잃었다. 치밀하게 짜여진 실내는 온몸을 감싸준다. 벤타이가는 세 가지 좌석 배열을 주문할 수 있다. 첫째는 4개의 개별 좌석과 한 개의 센터콘솔, 둘째는 5개의 좌석에 접이식 등받이 한 개, 마지막은 5개 좌석과 간혹 쓰일 2개의 3열 좌석이다. 테일 게이트는 원피스. 더불어 수많은 첨단 장비를 갖췄다. 나이트비전, 자동주차기능, 360° 카메라와 출구+차선 이탈 경고장치가 들어 있다.
 

오프로드 크루징과 냇물을 건너면서 이들 모두를 시험할 기회는 없었다. 휘몰아치는 토크는 더없이 유용했고, 탁월한 서스펜션은 제 구실을 톡톡히 했다. 또한 우리는 오프로드에서 전혀 삐긋거리지 않고 탄탄한 벤틀리의 차체를 확인했다. 동시에 비에 젖은 암벽을 힘차게 올라가는 괴력에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벤타이가는 도움닫기 없이 이를 거뜬히 해냈다.

데모 드라이버는 오버행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코스를 골랐다(램프와 이탈각에서는 레인지로버가 앞섰다고 벤틀리가 시인했다). 물론 등반에 성공했지만, 뱀처럼 엉덩이를 뒤트는 움직임에서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알 수 있었다. W12 엔진의 파워는 여유롭게 험로를 돌파하는 듯이 보였지만, 트랙션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작업이 필요한 일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환경에서도 수월하고 힘들이지 않는 듯한 벤타이가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더욱이 정교한 핸들링, 날렵한 스티어링, 전지형 성능과 함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품격이 뒷받침됐다. 훗날 벤타이가 오너는 확실히 만족하게 될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도전적인 도로와 트랙에서도 당당하고도 침착하게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글 · 리차드 브렘너 (Richard Brem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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