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의 기다림, 재규어 라이트웨이트 E-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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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의 기다림, 재규어 라이트웨이트 E-타입
  • 스티브 크로플리 (Steve Cropley)
  • 승인 2015.08.3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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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의 휴식 끝에, 재규어가 마침내 마지막 여섯 대의 라이트웨이트 E-타입을 만들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들이 대개 그렇듯, 이 차의 아이디어도 펍에서 시작되었다. 재규어 디자인 담당 이사인 이안 캘럼(Ian Callum)과 동료인 데이비드 페어베언(David Fairbairn)은 맥주잔을 기울이며 재규어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E-타입을 제대로 대신할 차가 나왔어야 한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계획을 이야기해 보았지만 알맞은 방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캘럼의 말(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간 동네 전시장에서 E-타입을 보고 재규어와 사랑에 빠진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나서 데이비드는 회사의 새로운 스페셜 오퍼레이션 사업부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여섯 대의 라이트웨이트 E-타입을 다시 생산하자는 아이디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라이트웨이트 모델이 처음 나왔던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당시 재규어의 운명은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규어가 내놓은 XK120 스포츠카와 6기통 트윈캠 XK 엔진은 놀라운 인기를 끌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XK 엔진은 이후 몇 종류의 아름다운 신형 세단과 수십 차례의 국제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다섯 차례의 르망 우승을 포함)을 거두어 유명해진 C-타입과 D-타입에 쓰였다. 
 

그러나 1957년에 있었던 브라운스 레인(Browns Lane) 공장 화재 참사는 재규어가 새로운 길을 걷게 만들었고, 1961년 제네바모터쇼에서 E-타입을 선보인 것이 그 결과였다. 아름다우면서도 값이 합리적이었던 E-타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회사 창업자인 윌리엄 라이언스 경(Sir William Lyons)이 재규어의 자원 대부분을 승용차 생산에 쏟아붓도록 할 정도였다. 

하지만 모터스포츠 부서는 페라리 250 GTO처럼 가벼운 경쟁자들이 경주에서 우승하기 시작하자마자 빛을 잃었다. 완전히 새로운 GT 경주차를 만들기에는 시간과 자원이 부족했던 재규어 팀원들은 기존 설비를 활용해 만든 알루미늄 부품으로 초경량 E-타입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철과 알루미늄이라는 소재 차이를 감안하면 지금 기준으로는 어설퍼 보이는 계획이었지만, 효과는 훌륭했다. 

라이트웨이트 모델은 경주에서 D-타입만 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내 모든 E-타입 가운데 가장 희귀하고, 가장 빠르며, 가장 아름다운 차로 인정받았고, 그래엄 힐(Graham Hill), 재키 스튜어트(Jackie Stewart), 로이 살바도리(Roy Salvadori) 등 스타 드라이버들이 몰면서 재규어의 명성을 높였다. 재규어가 이전하기 전까지 계획된 18대의 생산 분량 중 12대가 만들어졌다. 
 

그것이 내가 일주일 전쯤, 1963년에 손으로 쓴 서류를 들여다보게 된 이유였다. 나는 재규어가 새로 위탁한 브라운스 레인의 헤리티지 작업장에서 서류들을 펼쳐보았다. 그중 한 페이지에는 여섯 개의 숫자와 제원을 위해 남겨둔 여섯 개의 빈 칸이 있었다. 52년 전에 만들어지지 못한 여섯 대의 라이트웨이트 E-타입을 위한 것이었다. 이 공간은 최근 스페셜 오퍼레이션즈 부서 내에 만들어진 재규어 헤리티지(Jaguar Heritage)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앞선 알루미늄 승용차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재규어의 자부심에 힘입어 여섯 대의 라이트웨이트 모델을 ‘재생산’하여 2015년에 FIA 인증 경주차로 판매하도록 승인하게 만들었다. 이미 매진된 그 차들의 값은 대당 약 100만 파운드(약 17억5천640만원)이다. 과거 생산된 12대(현재 11대가 남아있다)의 최근 경매 낙찰가와 비교하면 보잘 것 없는 금액이다. 

라이트웨이트 E-타입을 살펴보기 위한 나의 여정은, 극비리에 시험 제작차를 만드는 곳인 휘틀리(Whitley)의 작업장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캘럼과 프로젝트 관리자인 크리스 버데트(Chris Burdett)는 (원래 설계도가 사라진 지 오래인) 기본형 E-타입을 다시 측정하고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었다. 

차에 필요한 340개의 부품 중 겨우 몇 개만 외부 협력업체에 의해 제작되고 있는 가운데 생산이 시작되었다. 작업은 2014년 초반에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프로토타입(카 제로)과 첫 양산차가 완성되었다. 두 번째 차는 브라운스 레인에서 내장재와 최종 조립이 진행 중이고, 세 번째 차는 현재 제작 중으로 크리스마스까지는 모두 완성될 것이다. 
 

버데트는 ‘역사적’ 경주차로 인증받을 수 있는 FIA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전통적인 소재와 조립방식을 활용해 라이트웨이트 E-타입을 재창조하는 것이 도전이었다고 설명한다. 패널들은 구식 리벳으로 결합했고, 알루미늄 소재는 1963년에 쓰인 알루미늄과 최대한 비슷한 것을 사용했다. 

엔진은 과거에 라이트웨이트에 쓰였던 것과 같은 강제윤활방식에 광각 실린더 헤드와 알루미늄 블록을 쓴 3,868cc XK 직렬 6기통이지만, 이스트 서섹스(Eas Sussex)에 있는 엔지니어링 업체 '크로스트웨이트 & 가디너(Crosthwaite & Gardiner)'가 최근에 만든 것이다. 구매자는 3중 트윈 스로트 웨버(Weber) 카뷰레터나 구식 루카스 기계식 연료분사장치를 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 

출력은 카뷰레터 엔진에서 “300마력을 훨씬 웃돈다”고 재규어의 안내서에 써 있지만, 프로젝트 관계자의 말로는 연료분사장치를 쓴다면 6,000rpm에서 345마력(회전한계가 6,000rpm이다)을 내며, 최대토크는 4,500rpm에서 38.7kg.m이라고 한다. 변속기는 재규어의 ‘1964년 신형’ 4단으로 모든 단에 싱크로메시가 쓰인다. 휠은 익숙한 모습의 중앙 잠금식 15인치 러프캐스트 마그네슘으로, 너비는 앞 7.0인치, 뒤 8.0인치에 트레드 패턴이 차의 형태만큼이나 상징적인 던롭 CR65 경주용 타이어를 끼운다. 
 

스페인 북부 빌바오에서 남동쪽으로 90분 거리에 있는 나바라(Navarra) 서킷에서, 나는 2대의 신세대 라이트웨이트 모델인 '카 제로'와 '카 원'을 다섯 바퀴씩 몰 수 있었다. 웨버 카뷰레터와 루카스 연료분사장치의 차이를 느끼는 것은 물론, 실제 오너처럼 완성된 차를 경험해볼 수 있었다. 

이 차들은 노출된 리벳이 스핏파이어 전투기가 활약하던 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작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전혀 치장이 되지 않은 운전석에는 무척 친숙한 E-타입 특유의 계기판과 대시보드가 놓여 있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거는 장치 아래에는 토글 스위치가 일렬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중 하나는 알루미늄 탱크로부터 연료를 밀어 보내는 전기 펌프를 작동하는 것이다. 연료 탱크는 경첩이 달린 커다란 주입구를 통해 연료를 채운다(안전상의 이유로 그 속에는 현대적인 주머니 방식 비밀 탱크가 들어 있다). 

요즘 같은 접시 모양이 아닌 구식 버튼을 누르면 엔진은 시동이 걸리며 차를 뒤흔든다. 앞쪽 스페이스프레임이 엔진룸 격벽의 모노코크와 결합되는 E-타입의 독특한 구조를 이용해 든든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엔진은 발의 움직임과 배기구의 폭발음 사이에 한 치의 지체도 없이 반응한다. 좌석은 낮고 편안한 느낌이다. 기어 레버를 1단 위치로 밀어넣으면 움직이기 시작하자마자 클러치가 놀랄 정도로 부드럽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1단 기어는 기어비가 꽤 높게 설정되어 있다. 회전수를 적당히 끌어올리지 않으면 시동이 꺼진다. 두 엔진 모두 중간 회전영역에서 천천히 달릴 상황이 된다면 차의 성격을 확실히 이해해야겠지만, 연료분사방식 버전이 약간 더 부드럽게 작동한다. 

그런 점을 인정하면, 두 버전 모두 활기차게 달린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차 무게는 겨우 1,000kg이어서, 일단 제 성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345마력으로도 충분히 잘 달린다. 0→시속 100km 가속이 빠른 차는 아니다. 1단 기어비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어 단수가 적기는 해도, 약 시속 50km부터는 토크에 알맞게 기어비가 충분히 촘촘한 느낌이다. 

브레이크는 앞에는 배력장치가 없는 12.25인치 디스크가, 뒤에는 E-타입 기본형 디스크가 쓰였다. 초기에 충분한 제동력을 이끌어내려면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야 하는 클래식 카의 특징이 두드러지지만, 한 번 익숙해지면 꽤 든든하다. 파워스티어링이 아닌 랙 앤 피니언 방식 스티어링은, 재규어에 어울리는 장식이 중앙에 놓인 목재 림 스티어링 휠을 통해 영혼까지 직접적인 감각을 전달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나 힘, 스티어링을 넘어 이 라이트웨이트 E-타입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훌륭한 핸들링 균형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차의 접지력은 훌륭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차의 운전에서 즐거운 점은 훌륭한 균형감과 코너링 때 전혀 기울지 않는 듯한 느낌, 그리고 고전적인 스타일의 드리프트로 우아하게 이어지는 움직임이다. 코너에서 오버스티어의 한계로 몰아붙이면서도 차체 뒤쪽을 날리는 것이 전혀 천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차는 던롭 타이어를 끼운 상태에서 한계를 넘나들며 ‘이탈’이라는 단어로 스스로의 격을 낮추고 접지력이 완벽한 상태에서 다소 부족한 상태로 흘러간다. 다섯 바퀴를 돈 다음에는 더 뛰어난 실력을 지닌 드라이버에게 운전을 맡기고 동반석으로 자리를 옮겨 몇 바퀴를 더 돌았고, 난 이 차가 얼마나 한계 상황에서 다루기 좋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울러 엔진의 풍부한 토크와 우렁찬 소음이 곁들여진 도취될 만한 경험이었다. 또한 이 차를 내가 겪은 모든 현대적인 차와 매우 다르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자동차에 관한 거의 모든 발전이 좋은 것이라고 믿는 사람으로서, 이 차는 나의 가치관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글 · 스티브 크로플리 (Steve Cropley) 
사진 · 루크 레이시 (Luc Lac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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