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 곳에서 가장 멀리 주행한 오퍼튜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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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 곳에서 가장 멀리 주행한 오퍼튜니티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4.2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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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총 주행거리 40km를 돌파한 화성 탐사 로버 오퍼튜니티가 화성 착륙 11주년을 맞이했다. 당초 3개월간 1km를 이동할 계획이었다

3개월로 계획했던 여행이 지금은 우주 최고의 모험이 됐다. 11년이 지난 지금, 하루하루가 소중한 선물이다. 전원스위치도 없고, 임무 종료 명령어도 없다. 수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매일 아침 해가 뜨면 일어나 지구로 신호를 보낼 것이다. 화성 탐사 로버 오퍼튜니티(Opportunity) 이야기다.

2003년 7월 7일 밤 11시 18분 15초(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 주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델타Ⅱ 7925H 로켓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당초 6월 25일 발사 예정이었지만, 기상조건 및 기술적 문제로 다섯 차례나 발사가 연기된 뒤였다.
 

17B 발사대를 떠난 델타Ⅱ 로켓에서 우주선이 분리돼 시속 104,000km로 별빛 가득한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다. 우주선 안에는 오퍼튜니티가 실려 있었다. 정식명칭이 MER-B(Mars Exploration Rover-B·화성 탐사 로버-B)인 오퍼튜니티는 약 한 달 앞서 화성으로 떠난 MER-A 스피릿(Spirit)의 쌍둥이 형제 로버였다. 로버는 이동식 탐사로봇을 뜻한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라는 이름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덴마크 장난감 회사 레고, 미국행성협회가 공동 주간한 에세이 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이다. 1만 개의 응모작 가운데 러시아 고아 출신으로 2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초등학생 소피 콜리스의 에세이가 뽑혔다.
 

소피는 나사의 초청으로 2003년 6월 10일 먼 여행을 떠나는 그녀의 동생 스피릿을 배웅했다. 쌍둥이 형제는 2003년 귀환 도중 공중분해된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의 추모패를 품에 안고 지구와 화성의 공전 궤도 사이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오퍼튜니티는 4억9천100만km가 넘는 203일간의 긴 항해 끝에 2004년 1월 25일 오전 5시 5분(그리니치 표준시) 화성의 적도 부근 메리디아니 평원에 무사히 착륙했다. 우연히 직경 22m 크기의 충돌 분화구 안에 착륙했는데, 나사는 이를 두고 ‘홀인원’이라고 했다. 이후 이곳에는 ‘이글 분화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골프에서 기준 타수보다 2타 적게 공을 홀에 넣는 일에 빗댄 것이다.
 

스피릿은 3주 전 화성 반대편 구세프 분화구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오퍼튜니티 도착 4일 전 플래시메모리에 에러가 발생해 통신 두절에 빠진 상태였다. 대견하게도 66번의 시스템 재부팅을 비롯한 8일간의 사투 끝에 스스로 시스템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오퍼튜니티와 스피릿의 주요 임무는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찾는 데 있었다. 물의 흔적을 찾는 일은 화성에 생명체가 있는지(또는 있었는지) 밝히는 여정의 첫걸음이다. 쌍둥이 형제는 주행을 위한 항법 카메라, 자료 수집을 위한 파노라마 카메라, 지질학적 조사 및 분석을 위한 다양한 과학 장비들을 갖췄다.
 

몸체 상단에는 1.3㎡ 크기로 펼쳐지는 태양열 집열판이 있다. 태양광에서 에너지를 얻어 2개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충전한다. 출력은 900Wh(와트시·1Wh는 1W의 전력으로 1시간 동안 하는 일의 양). 나사는 태양열 집열판 위에 먼지가 계속 쌓일 것으로 예상해 활동 한계를 3개월로 내다봤다.

구동 방식은 6개 바퀴에 각각 구동 모터가 들어간 여섯바퀴굴림. 서스펜션은 스터브 액슬(휠을 떠받치는 짧은 차축)이 스프링을 대신한 록커-보기(rocker-bogie) 방식이다. 바퀴 크기보다 큰 장애물을 넘을 수 있고, 일반적인 구조의 서스펜션에 비해 험로에서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휠은 10인치 알루미늄. 나선형의 스포크가 휘어지면서 충격으로부터 본체의 정밀기기를 보호한다. 스포크 사이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도 신축성을 유지하는 솔리마이드 폼(Solimide foam)으로 채웠다. 휠 모양이 변형되어도 솔리마이드 폼이 틈새를 막아 구동 모터가 이물질에 오염되는 것을 막는다.

전후좌우 45°의 경사각을 버틸 수 있게 설계됐지만, 안전을 위해 제어 프로그램이 30°까지로 제한한다. 앞바퀴 2개와 뒷바퀴 2개는 스티어링 모터를 갖춰 제자리에서 360° 회전이 가능하다. 조종은 지구에서 원격으로 이뤄진다. 지구와 통신을 주고받는 데 10분 이상의 시차가 있어 자칫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몸체 앞뒤 아래쪽에 위험 회피 카메라를 달았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타스’만큼 고도의 지능을 갖추진 못했지만, 영상정보를 토대로 자동항법주행 시 위험물을 스스로 피할 수 있다. 이들 쌍둥이 로버가 낼 수 있는 최고시속은 0.18km(초속 5cm)이고, 자동항법주행 때는 초속 1cm로 매우 느려진다.

탐사 446화성일(1화성일은 지구 기준 1.027일)째이던 2006년 4월 26일, 오퍼튜니티가 모래언덕에 빠져 이동불능 상태가 됐다. 나사는 이곳을 ‘지옥의 모래언덕’이라고 불렀다. 과학자들은 화성 모래의 특성과 성질을 그대로 본뜬 환경을 만들고 오퍼튜니티의 상황을 똑같이 재현해 탈출 방안을 모색했다. 수많은 시뮬레이션 실험 끝에 2006년 5월 13일 오퍼튜니티에 첫 번째 명령을 내렸고, 23일 만인 6월 4일 ‘지옥의 모래언덕’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2009년 5월 1일에는 스피릿이 황산철 구덩이에 빠졌다. 황산철은 점착력이 매우 강해 트랙션 확보가 어렵다. 더군다나 화성의 중력은 지구의 38%에 불과하다. 수개월간 이어진 구출작전이 모두 실패로 끝났고, 2010년 3월 22일 교신을 마지막으로 통신마저 두절됐다. 나사는 2011년 5월 25일 교신 시도를 중단하고 스피릿의 임무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반면, 오퍼튜니티는 살아남아 지난해 1월 25일 역사적인 10주년을 맞이했다. 기념으로 ‘셀카’를 찍었는데, 오랜 화성 생활로 태양열 집열판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두 달 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태양열 집열판을 가득 덮고 있던 먼지가 강한 바람에 모두 날아간 것. 덕분에 충전 효율이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7월 27일에는 오퍼튜니티의 이동 거리가 40km를 돌파했다. 이날 48m를 이동해 총 주행거리 40.25km가 됐다. 이로써 오퍼튜니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먼 지구 밖 천체에서 가장 멀리 주행한 로버가 됐다. 이전까지의 기록은 1973년 달에 착륙해 39km를 주행한 소련의 루노호트 2호가 가지고 있었다.

당초 3개월 수명을 예상했지만, 11년이 지난 지금도 오퍼튜니티는 살아 있다. 지난 1월 25일 오퍼튜니티는 화성 착륙 11주년을 기념해 주변에서 가장 높은 135m의 케이프 트리불레이션 고지 정상에 올라 풍경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했다.
 

2월 10일 현재, 오퍼튜니티는 마라톤 완주 거리인 42.195km까지 약 200m만을 남겨두고 있다. 나사는 오퍼튜니티가 42.195km에 도달하는 지점에 ‘마라톤 계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km만 이동할 계획이었고, 장거리용으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오퍼튜니티는 지난 11년간 다양한 탐사 활동을 통해 화성의 토양과 암석에 적철석 성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적철석은 산화철 광물로, 과거에 물이 존재했다는 가설이 세워지는 계기가 됐다. 오퍼튜니티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황량한 붉은 대지 위에서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인류의 우주 탐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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