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범위, 그것이 문제로다 - 전기차 장거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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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범위, 그것이 문제로다 - 전기차 장거리 여행
  • 루이스 킹스톤(Lewis Kingston)
  • 승인 2015.04.14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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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로 장거리 여행을 한다면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 런던에서 암스테르담,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테슬라 모델 S로 확인해봤다

“97km 남았습니다.”
테슬라 모델 S가 알려준다. 비가 퍼붓는 날씨. 차창에는 김이 서리고 있고, 차 안은 너무나도 춥지만 배터리를 아끼려고 히터도 꺼버렸다. 우리는 현재 규정속도가 시속 120km인 고속도로에서 시속 80km로 달리면서 트럭 운전자들을 당황하게 하고 있다.

“95km 남았습니다.”
현재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은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로 도로 한쪽에 서서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유로 터널까지는 24km 더 가면 되는데, 문제는 다음 고속 충전소인 ‘슈퍼차저’가 포크스톤 출구에서 56km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곧 방전될 지도 모른다.
 

“93km 남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엔 아폴로 13호에 대한 기억이 스쳤다. 날씨가 조금 맑아진 것을 확인한 뒤, 배터리를 절약하기 위해 와이퍼를 끄고 전조등을 상향등에서 하향등으로 바꿨다. 노란빛의 주행범위 표시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상황에서 딱히 탓할 사람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치솟는 짜증을 억누른다.

“92km 남았습니다.”
본래 이번 시승의 목적은 간단했다. 40분 만에 배터리팩의 80% 가량을 충전할 수 있는 테슬라의 슈퍼차저 충전소 네트워크가 확대되는 가운데, 켄트 메이드스톤 근처 M20 고속도로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에 새로운 충전소가 생겼기 때문에, 이제 모델 S로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 완벽하게 가능해졌다는 의견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던 것이었다.
 

우리는 슈퍼차저 충전소의 위치를 기반으로 런던의 웨스트필드 쇼핑센터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노선을 계획했다. 우리와 함께할 차는 주행범위가 426km라고 알려진 테슬라 모델 S P85+로 결정했다. 출발 전에 차는 완전히 충전된 상태였고, 이전의 운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산된 주행 가능 거리는 396km였다.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을 빠져나와 메이드스톤의 슈퍼차저 충전소까지, 약간 우회하는 도로를 택한 탓에 실제로는 113km의 거리였지만 주행 가능 거리에서는 130km를 소비했다. 슈퍼차저 충전소를 이용하는 방법은 굉장히 간단했고, 비용도 무료였다. 테슬라를 충전기에 연결시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곧 열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면서 2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배터리를 약 40% 충전했다. 주행 가능 거리는 이제 265km에서 372km로 늘어났다.
 

열차로 이동 후, 겐트까지 145km를 고속도로에서 달렸다. 모델 S는 흠 잡을 데 없었다. 빠르고, 편안하고, 잘 갖춰진 기기로 즐거운 주행을 선사했다. 주행 속도는 일반적인 고속도로의 규정 속도였지만, 정체 구간이 여러 번 있었고 기온이 굉장히 낮은 편이었다. 그러자 주행 가능 거리가 갑자기 짧아졌다. 204km를 달렸으니 이론상으로는 167km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앞서 언급한 여러 정황들 때문에 남은 거리는 84km뿐이었다.

우리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목적지에는 슈퍼차저 충전소가 없었기 때문에 암스테르담까지 갔다가 다시 충전소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가는 도중에 충분히 충전을 해둬야 했다. 40분간 고속 충전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129km를 달려 브레다에 위치한 충전소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다시 충전을 했다. 커피를 좀 더 마시면서 충전소의 테슬라 오너들을 관찰해 보니, 모두 만족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성능 스포츠카와 비슷한 가속을 즐길 수 있는 차의 연료가 완전히 무료이지 않은가.
 

주행범위가 충분한 상태로 드디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하지만 역시 곳곳에서 심한 정체가 있었고, 계획이 계속 바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간은 꽤 오래 걸린 편이었다. 오전 9시에 출발했지만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였다.

우리가 계획한 노선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증명하고 난 후였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는 의심이 한결 덜했다. 하지만 곧 전기차의 단점이 드러났다. 사진촬영과 제한된 시간 때문에 노선을 그대로 따르지 못하고 충전소를 지나친 것이다. 점차 감소되는 배터리 잔량이 우리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테슬라의 주행범위 표시기가 충실히 임무를 다해 주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72km가 남은 상태로 유로터널에 도착했고, 56km을 더 달려 16km가 남은 상태로 메이드소톤에 도착했다. 충전을 시작하고 커피를 한 잔 사고 나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충전소를 포함하는 노선을 미리 잘 계획하기만 한다면, 전기차 장거리 여행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방전될 걱정 없이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용량의 배터리와 여행 내내 일정하게 유지되는 퍼포먼스 수준을 갖추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운전자들이 많이 몰리는 몇몇 충전소를 고려해 봤을 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충전소가 아니라, 충전에 소요되는 시간과 충전소를 포함하는 효율적인 노선을 계획하는 것이다. 배터리를 교체하는 스테이션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5년 혹은 10년 후 즈음이면, 향상된 기술력으로 인해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운전하기도 쉽고 성능도 만족스러운데다, 주행거리만 정확히 안다면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에, 나는 전기차가 활약하는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

글 · 루이스 킹스톤 (Lewis King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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