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환상곡, 크라이슬러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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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환상곡, 크라이슬러 200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2.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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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의 역작 신형 200이 우아하고 세련된 차체와 훌륭한 실내공간, 높은 상품성으로 중형 패밀리 세단의 가치를 드높였다

'200’이라는 모델명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10년 3세대 세브링을 대폭 손질한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통해서다. 솔직히 말해 첫 200은 썩 좋지 못한 결과물이었다. 상당히 공을 들여 업그레이드했건만, 나온 지 5년 된 세브링의 약점을 덮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신형 200은 완전히 다르다.

곡선미를 강조한 디자인은 300의 각진 모습과 대척점에 있고, 다른 어떤 크라이슬러 모델과도 닮지 않았다. 보닛이 짧고 승객 공간을 최대화한 전형적인 캡 포워드 디자인. 보닛에서 트렁크에 이르는 윤곽선은 물결처럼 유려하다. 날렵한 모습은 흡사 4도어 쿠페 같고, 현행 300의 2세대 전 모델인 300M의 이미지도 언뜻 보인다. 시승차는 국내 출시되는 신형 200 라인업 가운데 최고급형인 200C.
 

얼굴이 얇고 작다. 차종을 불문해 라디에이터 그릴의 크기를 키우고, 공격적인 표정을 만들어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 최근 추세다. 반면, 200은 불필요하게 공격성을 내보이지 않으면서 우아하고 세련된 인상을 풍긴다.

갈매기 모양으로 앞면을 가로지르는 크롬 라인은 크라이슬러의 날개 모양 엠블럼 프로그레시브 윙(Progressive Wing)과 조화를 이룬다. 헤드램프를 돌아나가는 LED 주간 주행등은 크롬 라인과 어우러져 날렵한 눈매를 완성한다. 앞 범퍼 하단에도 큰 곡선을 그리는 크롬 라인이 들어갔고, 양 끝에는 LED 안개등이 달렸다.
 

차체 옆면도 늘씬한 몸매를 바탕으로 세련되게 빚어냈다.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부분 없이 자연스럽다. 오리 궁둥이처럼 쫑긋 솟아 있는 트렁크 리드는 리어 스포일러의 역할도 겸한다. LED를 쓴 테일램프는 쓸데없는 디테일을 배제한 단순명료한 형태. 고급스런 겉모양도 인상적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실내다.
 

외장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곡선이 주로 쓰인 실내공간은 우아하고 현대적이며 아늑한 분위기다. 얇은 금속 테두리 장식을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넣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디자인과 소재, 질감과 촉감, 조립품질 모두 이전 모델과는 하늘과 땅 차이. 이전의 렌터카 이미지를 완전히 걷어냈다.

가죽질감이 좋은 시트는 소파처럼 넉넉하고 푹신한 미국 차 특유의 감각이다. 스티어링 휠은 림 두께가 BMW M 스포츠 모델만큼 두껍다. 이런 타입을 선호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지만, 패밀리 세단치고는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다.
 

센터페시아에는 커다란 8.4인치 유커넥트(Uconnect) 터치스크린이 자리 잡았다. 직관적인 구성으로 사용하기 편리하고, 처리속도도 빠르다. 모든 기능을 무리하게 화면 속에 몰아넣지 않고, 사용빈도가 높은 기능은 따로 버튼을 마련해두어 접근성을 높였다. 만약 차에서 CD로 음악을 들어왔다면 습관을 바꿔야 할 것이다. 유커넥트는 블루투스, USB, AUX를 지원하지만, CD 플레이어는 없다.
 

스크린 아래로 크게 기울어져 누운 센터콘솔에는 공조장치와 오디오, 다이얼 방식의 기어 셀렉터 ‘로터리 E-시프트’,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가 있다. 손을 뻗으면 자연스레 닿는 절묘한 위치다. 로터리 E-시프트는 재규어‧랜드로버와 같은 방식으로, 편리하지만 기계적인 매력은 없다. 대신 전자화로 인한 큰 보상이 주어졌다. 바로 넉넉한 수납공간이다.
 

센터콘솔 아래에는 구두 상자만 한 패스스루(pass-through) 수납공간이 있다. 넓은데다가 바닥에는 미끄럼방지 고무패드도 깔려 있어 태블릿 PC를 올려두어도 불안하지 않다. 슬라이딩 컵홀더를 밀어 열면 그 아래로 DSLR 카메라도 들어갈 넓고 깊은 수납공간이 또 있다. 200C의 수납공간들을 보면, 어째서 다른 메이커들은 이렇게 만들지 않는지 불만을 가지게 된다.
 

계기판은 파란색 조명으로 화려하다. 입체적으로 다듬은 엔진회전계와 속도계 사이에는 LED로 된 7인치 드라이버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DID)가 들어갔다. 화면 크기가 시원하고, 해상도가 뛰어나며, 그래픽디자인에도 공을 들였다. 각종 주행 및 차량 정보와 내비게이션 등을 표시하는데, 오디오 정보는 곡명을 나타내지 않고 블루투스 또는 USB 등으로만 표시하는 점은 아쉽다.

200C에는 스피커 9개와 서브우퍼 1개로 구성된 506와트 알파인(ALPINE) 오디오 시스템이 들어간다. 뒷자리는 착석감은 좋지만, 머리 공간이 충분치 않다. 유려한 루프 라인으로 인해 손해를 봤다. 게다가 파노라마 루프가 지붕 안쪽으로 열리는 방식이어서 머리 공간을 더 뺏어갔다.
 

엔진은 피아트의 가변 밸브 타이밍 기술 멀티에어(MultiAir) 2가 적용된 직렬 4기통 2.4L 타이거샤크(Tigershark). 6,250rpm에서 최고출력 184마력, 4,600rpm에서 최대토크 23.9kg‧m을 낸다. 여기에 ZF 9단 자동변속기를 물려 앞바퀴를 굴린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대략 8초대 중반~9초 사이로 패밀리 세단으로는 준수한 편이다.
 

동급 최초로 적용된 9단 변속기는 매끄럽고 명민하게 작동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9단의 활용도가 떨어진다. 고속주행 시 6~8단 사이에 물려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웬만해선 9단을 쓰지 않는다. 실용범위에서 힘껏 가속하는 상황에선 6단을 유지하고, 시속 100km로 항속하면 8단에 물려 있다. 이때의 엔진회전수는 1,750rpm.

속도를 조금 더 높이려고 오른발에 힘을 보태면 다시 7단으로 떨어진다. 대신 가속페달을 아주 얇게 밟아 가속하면 서서히 속도가 오르다가 시속 113km에서 비로소 9단에 들어간다. 이때의 엔진회전수는 1,500rpm. 시속 100km로 항속할 때보다 오히려 엔진회전수를 적게 가져간다. 계기판에 표시된 순간연비 수치도 시속 100km 항속 때보다 조금 더 좋아진다.
 

추측컨대 이는 대부분 제한속도가 시속 113km(시속 70마일)인 미국 고속도로 주행 조건에 맞춘 세팅으로 짐작된다. 시속 113km로 달리다가 속도가 시속 100km까지 떨어지면 어김없이 다시 8단에 들어간다. 9단에 놓고 항속하고 싶어도 로터리 E-시프트가 수동모드를 지원하지 않아서 방법이 없다. 결론적으로, 9단 변속기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지 못했다.

스티어링은 응답성, 정확성, 무게감 모두 적당하고, 서스펜션은 철저히 패밀리 세단다운 세팅이다. 부드럽지만 안정적인 서스펜션과 푹신한 시트가 맞물려 모든 좌석에서 승차감이 안락하다. 패밀리 세단의 본분을 잊고 어설프게 스포티함을 흉내 내지 않은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진동과 소음을 잘 틀어막았고, 특히 바람소리를 잘 억제해 고속주행 때 쾌적하다.
 

200C에는 시속 0~160km 범위에서 완전 정차와 재출발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장애물 발견 시 자동으로 제동하는 전방 추돌 경고 장치, 차선 이탈 방지 장치, 사각지대 경고 장치, 주차 보조 장치 등 다양한 운전 보조 기능이 들어갔다. 특히, 직각 주차 기능을 도입한 건 동급 최초다.

주차 보조 장치를 켜고 천천히 길을 따라가면, 초음파 센서가 주차공간을 찾기 시작한다. 빈자리를 발견하면 계기판의 DID를 통해 지시를 내린다. 이때 운전자는 지시에 따라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조작만 하면 된다. 직각 주차와 평행 주차 모두 훌륭히 해내는데, 평행 주차를 조금 더 빠르게 잘한다.
 

신형 200은 모든 면에서 이전 모델을 압도하는 진일보한 모습이다. 경쟁 모델 또는 상급 모델의 여러 장점을 받아들여 독창적으로 표현한 크라이슬러의 역작이라 할 만하다. 명곡의 주요 부분을 발췌해 편곡한 환상곡과 닮았다. 세련되고 우아한 디자인과 높은 상품성으로 무장한 신형 200은 최근 썩 좋지 못했던 크라이슬러 중형 세단의 역사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크게 도약했다. 앞으로 울려 퍼질 디트로이트 환상곡의 선율이 기대된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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