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하이브리드 가도를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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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하이브리드 가도를 달리다
  • 리차드 브렘너
  • 승인 2013.12.1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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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보다 가혹한 도로시승이었다. 하지만 목표는 아주 단순했다. 레인지로버 하이브리드가 염소처럼 산을 오르고 물소처럼 물속을 달릴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했다. 아울러 재래식 레인지로버의 태평스런 호사를 살려주는지도 알고 싶었다. 우리는 실로 그림 같은 하천계곡으로 들어갔다. 문제의 계곡은 네팔의 포카라 부근에 있었다. 우리는 도하능력을 시험할 만큼 깊은 물에 들어갔다.

그때 우리는 논배미 사이로 난 트랙을 따라 달렸고, 거기에는 도하지점이 곳곳에 있었다. 어지간한 머릿물결이 곧 랜드로버의 노즈에서 갈라졌고, 자갈이 깔린 하천바닥을 저벅거리며 지나갔다. 몇몇 현지인들이 그 광경을 보고 즐거워했다. 서스펜션이 상당히 높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사실 네팔의 수많은 누더기 픽업은 숨을 헐떡이지 않고 이런 하천을 건널 수 있다.

따라서 재규어 랜드로버(JLR) 동료들은 하천의 2개 더듬이를 갈라놓는 돌 구덩이를 정찰했다. 여기서 레인지로버는 뱃바닥을 적시는 이상의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첫 시도로 얕은 하천구간을 선택했고, 도하자세를 갖추고 건너편에 있는 사진기자를 만족시킬 진로를 가늠했다. 불과 몇 초 만에 계획보다 깊은 물에 들어가 레인지로버의 노즈가 물에 잠겼다. 차가 흔들리자 가까운 쪽에서 보닛 위로 물이 넘쳤다.

“야, 좀 힘차게 밟아!” JLR의 데이비드 스니스가 짤막하게 지시했다. 그대로 하자 바퀴가 그립을 찾아 바닥을 긁었고, 미끄러운 돌을 잡으려고 버둥거릴 때 불안하게 비틀거렸다. 그러다 레인지로버 노즈가 약간 떠오를 때 차체가 평형을 잡았다. 우리는 반대편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몇 초 만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물속의 가파른 바닥과 주위의 엄청난 물에 갇히고 말았다.

우리가 네팔에 간 이유가 있었다. 우리 프로토타입 레인지로버 하이브리드와 다른 2대가 이 나라를 지나 인도의 뭄바이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행의 출발점은 30일전 레인지로버 기지 영국 솔리헐이었다. 우리 대열 트리오와 몇 대의 디스커버리 지원 모델들은 이미 독일·폴란드·우크라이나·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즈스탄·중국·티베트를 지나 네팔에 도착했다. 거기서 나는 레인지로버 하이브리드 프로토타입 1을 시승하기 위해 합세했다.

왜 랜드로버는 이 대장정을 시도했을까? 첫째 이 부분 전기 레인지로버가 재래식 형제만큼 튼튼하다는 걸 증명하기로 했다. 둘째 지구상에서 가장 유능한 하이브리드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라인업에 이처럼 복잡한 모델을 추가하기 위해 최종 타당성 시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우리는 언론시승차가 아니라 프로토타입을 몰기로 했다.

이들 엔지니어링 모델은 랜드로버를 유명하게 만든 험악한 지형 16,000km에서 최종 기술시험을 하게 됐다. 이 특별한 대장정은 실크로드 일부를 따라갔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던 고대의 무역통로. 한때 이 도로망은 6,500km를 뻗어 있었다. 이익이 두둑했던 중국 실크 무역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기원전 206년에서 14세기 말까지 문명발전의 뜻 깊은 자극제가 됐다.

우리는 히말라야 산기슭의 카투만두에서 대장정 대열에 합류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네팔을 지나 서쪽으로 인도의 델리로 가게 된다. 그 거리는 1,220km. 대단한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닥칠 지형에서 전혀 다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그러기에 앞서 이 차에 대해 조금 설명하기로 한다. 하이브리드 드라이브트레인은 TDV6 디젤 엔진과 48마력 전기모터로 340마력을 뿜어낸다.

이들 한 쌍은 상당히 도움이 되는 1,500rpm부터 듬직한 71.3kg·m의 토크가 폭발했다. 그래서 0→시속 100km 가속시간 6.9초, 최고시속 217km.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평균연비 15.6km/L와 CO₂ 배출량 169g/km. 하이브리드 리튬이온 배터리팩은 상당히 수수하여 주행거리는 겨우 1.6km다. 제로배기 모드를 극대화하기보다는 절대적인 효율을 높이기 위해 모터출력을 아우르는데 목표를 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이 같은 야성적인 스펙보다 더 큰 관심사가 있다. 액체냉각식 리튬이온 배터리팩은 차 바닥 밑에 있는 붕소용기에 담겨 있다. 이 시스템을 돌아가는 전류는 명목상 288V. 레인지로버가 하천 한복판에 있을 때에는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바퀴는 이따금 헛돌고 있었다. “뒤로 가!” 스니스가 소리쳤다. 하이브리드가 뒤로 물러나 지나온 땅을 내놓고 다시 멈췄다. 나는 액셀을 좀 더 힘차게—아니 바닥까지 밟았다.

그러자 차가 트랙션을 찾아 덜컥거렸고, 짧게 울컥울컥 뒤로 물러났다. 뒤꽁무니가 점차 물 밖으로 솟아올랐고, 우리는 모래톱으로 기어올랐다. 그때 기를 쓰다 지친 듯 디젤이 뚝 끊어졌다. 보닛을 열어보자 사태가 밝혀졌다. 보닛 가장자리 밑에 높이 올라앉은 깔때기형 흡기구로 물이 들어갔다. 디젤 엔진에 물이 들어간 게 분명했다. 물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간 것이다.

차를 호텔로 끌어갔고, 내부를 말렸다(공교롭게도 실내에는 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중에 시동이 걸렸다. 잠깐 장애가 있었을 뿐 무사한 것 같았다. 한데 밤새 습기가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튿날 아침 하이브리드는 3km쯤 달린 뒤 멈췄다. 노트북 컴퓨터로 조사해보자 ECU 고장이 드러났다. 그걸 들어내 보니 그 안이 축축했다. 이 양산전 프로토타입은 일부러 추가방수처리를 하지 않았다. 다시 열어야 할 때를 대비한 조치였다.

예비품으로 바꾸자 레인지로버는 시동이 걸렸다. 다만 엔진의 금속탭은 걱정거리였다. 따라서 회전대를 3,000rpm으로 한정하고 차를 잘 구슬렀다. 그러지 않아도 카투만두와 싸우고 있을 때 회전대를 높여 빨리 달릴 수는 없었다. 차량대열은 일종의 질서를 지켰다. 대다수 차들은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한데 이 규칙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금방 무너졌다. 다른 장애물이 있건 말건 추월이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이따금 불쑥불쑥 소떼가 나타났다. 정처 없는 네발짐승들은 때지어 몰려 앉아 즉시 로터리를 만들었다.

그러면 높은 좌석, 사각지대 센서, 뛰어난 전방시야, 상큼한 스티어링과 당당한 파워가 공격에 대한 뛰어난 무기가 됐다. 잠시 전력모드로 들어가 소들에게 좀 더 신선한 공기를 보내줬지만, 드로틀 반응을 늦춰 갑자기 나타난 틈바구니를 파고 들 수는 없었다. 사실 카투만두의 북새통에서 틈바구니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 도시는 지극히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듣기보다는 낭만적이 아니었다. 건축상을 받을 건물은 드물었다. 마침내 우리는 빡빡한 거리를 빠져나가 눈부신 초록 논배미를 보고 감탄했다. 가파른 산허리를 깎은 계단식 논이었다. 도시의 아수라장을 벗어나 아열대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들어갔다. 교통량은 뚝 떨어졌다. 똬리를 튼 뱀과 같은 꼬부랑 도로가 눈앞에 굽이쳤다. 한편 이 레인지로버는 루프랙, 짐, 3명의 승객과 한 쌍의 윈치를 실었다. 이미 묵직한 2,394kg의 차체에 약 800kg을 더했다. 따라서 가장 날렵한 야수는 아니었다.

커브에 들어서면 무게가 더 늘었지만 다소곳이 말을 들었다. 놀랍도록 한결같이 깔끔하고 기름 친 유연성으로 돌아가는 스티어링이 자신감을 한층 북돋웠다. 그토록 안정된 핸들링이 실로 중요한 자산이었다. 도로는 네팔 산악의 끝없이 꼬부랑거리는 등고선을 누볐다. 아울러 보행자들, 짐승과 거의 끊임없이 요란하게 달려오는 타타 트럭을 피해야 했다. 타타 트럭은 한결같이 예술적인 벽화로 덮여 있었다. 게다가 앞 범퍼를 장식하는 구호 ‘천천히 달리면 오래 산다’는 인기가 있었지만, 실제로 지키지는 않았다.

여러 곳에 산사태가 일어났다. 네팔의 산악은 가팔랐고, 강우량이 많아 눈부신 초록 비탈을 쩍 갈라놨다. 오렌지색 흙과 바위들이 아래쪽 도로를 뒤덮었다. 따라서 에너지 재생 브레이킹을 걸 기회가 엄청 많았다. 좀 더 빨리 정차할 필요가 있을 때 전동식과 유압식을 아울러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연료를 넣기 위해 한없이 흉측한 부트왈에 들어갔을 때 그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천상의 풍경과 같았던 네팔의 산악과 먼지가 풀풀 날리며 북적대는 추악한 도시와의 놀라운 대조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가 밤을 새울 네팔 군즈는 부트왈보다는 덜했지만, 지상에서 가장 도전적인 체증을 뚫어야 했다. 듬성듬성한 보행자들, 돌진하는 트럭, 그 사이를 누비는 인력거, 곡예 운전하는 택시, 소떼, 개, 염소, 모터바이크와 자전거들이 눈길을 떼기도 어려운 도로를 차지하려 뒤엉켰다. 움직이는 기계들은 모조리 마치 불이 난 것처럼 경적을 울려댔다. 물기가 점차 말라가는 레인지로버는 호된 시련을 이겨야 했다. 레인지로버는 몇 초마다 서고 출발하고 갑자기 나타난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었다.

우리는 바퀴의 복원력에 더욱 자신을 얻었다. 특히 엔진의 위협적인 금속탭이 닳아 더욱 그랬다. 게이던으로 돌아가 해체해봐야 그게 무언지를 밝힐 수 있을 터였다. 한데 당장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네팔 군즈를 벗어나 딴 세상 같은 시골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되자 한층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차량 대열이 뜸해지고 네팔을 좀 더 차분히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길가의 모든 집은 거의 가게였다. 모두가 마치 빨래처럼 걸어놓은 봉지 감자칩을 팔고 있었다. 한데 그걸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감자칩을 파는 가게가 적은 인도와는 좋은 대조를 이뤘다. 마헨드라나가르에서 댐을 건너 델리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사람은 더욱 북적댔고, 가게는 한층 다채로웠다. 이 도로는 무질서한 차량 대열로 거의 숨통이 막혔다. 모두가 앞을 다투는 바람에 길은 더욱 혼잡했다. 트럭들이 달려오는 데도 3중 추월 곡예를 하는 장면이 벌어졌다.

6명의 가족과 겁 없는 가축을 실은 스쿠터들이 가정용 욕조만큼 큰 포트홀을 치고 나갔다. 우리 앞을 달리던 디스커버리는 이 구덩이를 피하려고 미친 듯 방향을 틀었다. 한데 다른 차들은 거침없이 달렸고, 얼마가지 않아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레인지로버는 덜컥거리며 치고 나갔고, 아주 활기차게 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체의 뒤쪽보다 앞쪽이 한결 차분했다.

드디어 도로가 평탄해졌다. 하이브리드의 스포트(Sport) 모드를 시험할 기회가 왔다. 매끈한 파워가 터져 나와 추월을 자신 있게 간단히 해치웠다. 스포트 모드에서 배터리 충전을 극대화했고, 전기모터는 즉각 토크를 추가했다. 엄청난 짐을 실었지만 레인지로버는 빨랐다. 게다가 보너스로 그 토크는 오프로드 능력을 높였다. 이때쯤 하이브리드 엔지니어 스티브 리긴스는 기꺼이 최대 파워 도전을 허락했다. 레인지로버는 침수에서 완전히 회복된 듯했다.

랜드로버의 폴 보스톡에 따르면 그게 정말 알찬 유용성 시험이 됐다. 차가 물에 반쯤 빠졌을 때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자동 폐쇄되게 되어 있었다. 정확히 기능이 정지되어 고도로 복잡한 하이브리드 레인지로버의 성능을 확실히 입증했다. 아울러 상당히 뛰어난 연비를 자랑했다. 델리로 들어가는 최종 340km 구간에서 프로토타입 1은 평균시속 35km에 평균연비 11.3km/L였다.

전 여행의 19%에서 스톱-스타트 시스템이 엔진을 멈췄다. 다른 차는 평균연비 12.6km/L. 좀 더 조건이 좋았다면 14.2km/L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할 수준이었다. 사방이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그 속에서도 이 레인지로버는 별 5개 경험을 안겨줬다. 심지어 물속 아수라장에서도….

글: 리차드 브렘너(Richard Bremner)

Range Rover Hybrid

0→시속 100km 가속: 6.9초
최고시속: 220km
복합연비: 15.6km/L
CO₂ 배출량: 169g/km
무게: 2394kg
엔진: V6, 2993cc, 터보디젤, 전기모터
구조: 프론트, 세로, 4WD
최고출력: 340마력/4000rpm
최대토크: 71.3kg·m/1500~3000rpm
변속기: 8단 자동
연료탱크: 80L
휠: 8.5J×20in
타이어: 255/55 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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