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아 이형근 부회장 인터뷰, "우리는 한국의 폭스바겐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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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아 이형근 부회장 인터뷰, "우리는 한국의 폭스바겐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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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1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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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의 친절하고 소탈한 이형근 부회장(CEO)은 가장 야심찬 목표를 마치 대수롭지 않은 듯 거침없이 풀어나갔다. 때문에 기아가 ‘한국의 폭스바겐’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을 때 그 충격은 실로 커 잠시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잠깐 뜸을 들인 뒤 잇따라 질문이 쏟아졌다. 무슨 뜻인가?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언제? 실제로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폭스바겐은 세계 자동차산업계의 발전소다. 기술‧품질‧연속성에서 잘 다져진 명성을 쌓았다. 연간생산량은 기아의 270만대를 2배나 넘는다. 그에 비하면 기아는 신진 메이커다.

이 부회장은 기아의 목표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어려운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다. “물량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일부 폭스바겐과 똑같은 기술목표를 세웠다. 파워트레인과 무게를 줄이는 보디 디자인이 그런 실례다. 여러모로 폭스바겐을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젊은 브랜드이고, 유럽에서 장구한 전통을 쌓을 시간이 없었다. 앞으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형근 부회장(CEO)은 캐나다 현대에서 일할 때 스스로 ‘행크’라는 별명을 붙였다. 캐나다에서는 한국인들이 서양식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는 노련한 엔지니어에서 출발해 기아의 부회장 겸 CEO로 승진했다.

그는 처음 현대에서, 다음에는 기아의 일원으로, 유럽‧아메리카‧중국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을 터득하게 됐다. 결국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고객들에게 보다 좋은 차를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많은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아주 좋은 기회였다”

우리는 서울의 기아 본사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낮은 원탁 주위에 6개의 대형 흑색 가죽의자가 놓여있었다. 기아가 후원한 여러 월드컵과 유럽 챔피언십의 공인구가 선반에 놓여 있었다. 그밖에도 기아가 스포츠 마케팅 활동을 한 기념품이 있었다.

이 부회장은 느긋하고 신중하고 안목이 뚜렷하고 솔직했다. 언제나 얼굴에 잔잔하게 감돌던 미소가 가끔 폭소로 바뀌었다. 아무튼 그에게는 웃어야 할 일이 많았다. 2012년에 4년 연속 생산‧판매‧이익 신기록을 세웠고, 모든 기아 공장이 거의 풀가동하고 있다.

2004년 그가 현대를 떠나 기아로 넘어왔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당시 기아는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었고, 제품은 뚜렷한 개성이 없었을 뿐더러 이미지는 블루칩이기보다 밑바닥 싸구려에 가까웠다.

“2005년 우리는 기아의 경영분석에 들어갔다. 세 가지 중대한 약점이 드러났다” 이 부회장의 말이다. “첫째 세계 어디를 가나 우리를 시장의 저가주 저이미지 기업으로 봤다. 우리 제품은 그저 그렇고, 싼값에다 뚜렷한 특징이 없었다. 회사 전체가 미래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이런 걸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뒤이어 2006년 뉴 기아 캠페인이 벌어졌다. 기아는 5년 이내에 성공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주입하여 모든 사원의 사기를 올리려 노력했다. 거의 동시에 아우디에서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하여 기아 디자인을 뜯어고쳤다. 그리고 기아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짜릿하고 유능한’ 브랜드 이미지를 널리 폈다. “3대 전략이 모두 잘 먹혀들었다” 이 부회장의 말이었다.

아울러 그가 인정한 대로 약간의 행운도 따랐다. 기아는 엄격한 자기평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동시에 통합적 스타일의 현대적인 슈라이어식 중소형차 라인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시장에 나왔을 때 2008년의 세계적 금융위기가 불어 닥쳤다. 당시 아직 차를 살 여력이 있던 소비자들은 연료효율이 높은 차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금융위기에서 좋은 기회를 잡았다” 이 부회장이 솔직히 시인했다. “2009년과 2011년 사이에 우리 판매량은 한 해 100만대씩 증가했다. 유리한 환율도 도움이 됐다” 그와 마찬가지로 폐차보조 제도가 나와 종전에 중고차를 찾던 소비자들이 완전신형 기아로 몰렸다.

기아의 판매량 절반은 콤팩트와 서브콤팩트로 업계 평균의 45% 미만과 좋은 대조를 이뤘다. 그럼에도 기아는 이익을 내는 길을 찾아냈다. “우리는 현대와 플랫폼 및 주요 파워트레인을 함께 쓴다. 따라서 서브콤팩트와 미니카 물량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다” 이 부회장의 설명. “아울러 우리 공급업체들과 협력하는 독특한 전략을 개발했다. 현대‧기아와 함께 경쟁사와도 협력해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도록 권장했다”

이제 알 만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기아 그리고 그 제품과 디자인을 비웃지 않는다. 기아의 세계적인 활약상, 공장 생산성과 이익을 부러워하는 유럽 메이커가 대여섯은 된다. 그렇다고 기아의 대전환 작업이 벌써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기아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브랜드 가치를 현재의 28억 파운드(약 4조8천600억원)에서 38억 파운드(약 6조6천억원)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바로 ‘기아 비전 2016’ 계획으로 성취하려는 목표다.

그러기 위해 지난 4년간 기아의 이미지를 확 바꿔놓은 제품공세를 다시 한 번 시도할 것이다. 앞으로 4년간 51개의 신형 또는 업데이트 모델이 나온다. 그중 상당수는 현행 라인업의 후계차와 그밖의 가지치기가 될 것이다. 동시에 완전신형이 추가된다. 2013년 여름 기아는 203마력 프로시드로 핫해치 시장에 뛰어든다.

2014 쏘울을 앞세워 국제 전기차 시장에 처음 진출한다. 게다가 2015 모델로 연료전지차(스포티지가 될 공산이 크다) 생산을 시작한다. 심지어 2011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나온 GT 쿠페 콘셉트를 뒷바퀴굴림 양산차로 바꾼다는 말도 들린다.

아울러 기아는 계속 성장하려면 생산능력을 키워야 한다. 2014년 중국 제3공장이 완공되면 생산량이 한 해 300만대로 올라간다. 하지만 생산시설이 더 있어야 한다. “2016년까지 다른 곳에서 생산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말이다. “아직 어디라고 결정하지 않았다. 어느 곳이든 가능하다. 새로운 시장이 될 수도 있고, 기존 공장을 확장할 수도 있다. 2013년에 결정할 문제다”

이형근 부회장은 기아가 직면한 도전을 솔직히 시인했다. “현대는 이미 나가 있다. 2012년 연말까지 430만대를 만들 것이다. 게다가 모든 대륙에 공장이 있다”

현재 기아는 한국에 3개 공장이 있고, 동희산업과 합작해 피칸토를 만들고 있다. 중국에 2개 공장이 있고, 미국과 유럽에 각기 하나씩. 러시아에서는 현대와 생산시설을 함께 쓰고 있다. 현대와는 달리 브라질에는 공장이 없다. 수입관세가 30%나 올라 2012년의 기아 판매량은 절반으로 줄었다. 반면 현대는 브라질에서 4개월 생산량과 맞먹는 주문이 밀려있다. 그리고 기아는 현대가 튼튼히 자리 잡은 인도시장에서도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어디다 생산능력을 추가할까를 결정할 때 이들 모든 요소를 계산에 넣어야 한다. 게다가 앞으로 상당한 기간 회복되기 어려운 수많은 서방 시장의 취약한 경제를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신흥시장의 성장감소세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아는 2013년을 성장이 아니라 기반 강화의 해로 본다.

“2013년 우리 최대의 과제는 현재 우리 생산력으로 전 세계 수요를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있다. 우리 라인업은 상당히 경쟁력이 있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면 여전히 경제가 성장하는 다른 지역에서 상쇄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 부회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올해(2012년) 지금까지 유럽경제가 어렵지만, 우리 판매량은 10월 말까지 15% 증가했다. 하지만 당초의 사업목표를 맞출 수 없다. 따라서 러시아와 동유럽의 이웃 나라들이 유럽연합의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가 수입차 관세를 30% 올렸을 때 북아메리카와 중동의 파트너에게 우리 세계목표를 달성하도록 물량을 소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형근 부회장(CEO)은 철저한 실천형이다. 기아의 세계사업기획과 생산, 판매, 마케팅, A/S 그리고 노사관계를 담당하고 있다. 나아가 회사의 사회책임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내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문제가 있다.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이 부회장의 말. “나는 아주 열심히 일한다. 마케팅, 품질이나 제품개발에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달려간다. 내 스케줄은 빡빡하게 찼다”
2016년의 목표가 달성된 뒤에 기아가 나아갈 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내 후계자가 구상할 비전이다” 막중한 도전이 그 후계자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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