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파탈의 유혹, 메르세데스-AMG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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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파탈의 유혹, 메르세데스-AMG GT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6.02.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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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G GT S는 팜므파탈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세계를 휘어잡은 미녀,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떠올렸다 
 

공간이 한순간 응축됐다. 멀리 보이던 풍경이 순식간에 앞에 다가왔다. 이동이란 과정을 생략하기라도 한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빨랐다. 압박감에 속도를 줄여 평소의 현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무언가 얹힌 듯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완전히 차와 하나 되는 기쁨을 아직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AMG GT S가 아닌 내게 있었다. 한계에 이르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는. 
 

AMG GT S를 보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떠올렸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물씬해서다. 물론 메르세데스-벤츠가 연이어 선보인 미래형 콘셉트 카의 흔적이 슬쩍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 비율은 클래식 스포츠카의 것이기 때문이다. 보닛을 길게 늘이고 끝은 짧게 다듬은 ‘롱 노즈, 숏 데크’ 디자인 때문이다.
 

이는 메르세데스-AMG의 전작인 SLS AMG에서도 볼 수 있던 디자인 기조다. 하지만 직선 위주의 담담한 스타일로 SL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던 전작에 비해 한껏 유려한 자태를 뽐낸다. 쫑긋 세운 뒤로 매끄럽게 이어지며 부풀어 오르는 곡선의 연결이 매력적인 여성의 몸매를 떠올리게 한다. 세기의 각선미 자랑했던 마를레네 디트리히를 떠올리는 이유다. 벤츠는 이를 ‘콜라병’ 형태라 부르긴 하지만.
 

실내의 디자인 구성은 독특하다. 센터 페시아 및 센터 터널을 넓게 쓰는 배치인데, 폭이 넓은 차의 성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운전자를 감싸는 느낌을 주기 위해 실내 각 부분의 볼륨을 키웠다는 인상이다. 크기를 키워 센터 터널의 존재감을 더한 이유다. 드라이브 모드, ESP, 서스펜션 설정 등 주행에 필요한 설정 버튼을 몰아 달아 눈에 잘 띄지만, 버튼을 누르기에는 자세가 조금 불편했다.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은 탓인 듯하다. 비상등과 온열 시트 버튼은 천정 쪽에 있다. 주행에 필요한 것만 신경 써달라는 의도일까. 
 

시동을 걸자 천둥이 친다. V8 4.0L 트윈터보 엔진은 우렁찬 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허세가 아니다. 최고출력 510마력을 6,250rpm에서, 최대토크 66.3kg.m을 1,750~4,750rpm에서 낸다. 저회전부터 터져 나오는 최대토크 세팅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효율 좋은 자동 7단 듀얼클러치를 맞물려 뒷바퀴를 굴린다. 가속페달을 함부로 즈려밟게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1,665kg의 공차중량에도 불구하고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단 3.8초에 불과하다. 언제든 원하는 만큼 힘을 즉각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은 강력한 무기다. 엔진의 정밀한 회전 질감을 만끽하며 달렸다. 
 

핸들링 감각도 인상적이다. 47:53으로 뒤에 조금 더 무게를 몰아준 무게 배분 덕분에 앞 엔진 뒷바퀴굴림이면서도 미드십 엔진의 감각이 은근 묻어난다. 앞에 하중을 제대로 실어주고 코너에 뛰어들 때 움직임이 아주 매끈하다. 특이한 것은 차체의 움직임을 다른 차들보다 훨씬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는 AMG GT S의 설계 특성에 기인한다.
 

AMG GT S는 운전석 기준으로 앞바퀴를 멀리, 뒷바퀴를 가까이 둔 차다. 회전축인 앞바퀴에서 멀어진 만큼 회전이 더욱 증폭되어 느껴진다. 원을 그릴 때 지름이 커질수록 둘레가 길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차의 움직임이 좀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뒷바퀴에 가까운 설정은, 뒷바퀴의 움직임을 읽기 쉽다. 접지력을 잃는 순간까지도 세밀하게 느껴질 정도. 뒷바퀴에 힘을 실어 회전 방향을 결정짓는 뒷바퀴굴림 차에서는 최적의 선택이다. 
 

서스펜션은 아주 단단하다. 웅장한 여행을 뜻하는 ‘GT’란 이름 붙였음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주행모드에 따라 댐퍼의 강도를 바꾸는데, 레이스 모드에서는 기울임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단단하게 버티면서 노면을 눌러대는 느낌. 한껏 속도를 높여 달릴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다만 약점이 있다면 하중 이동을 몸으로 느끼기가 조금 어려운 편이다.
 

AMG GT는 대놓고 포르쉐 911을 추월했다고 밝히는 차다. 허언이 아니다. 코너 하나만 통과해 봐도 AMG의 엔지니어들이 어떤 정성을 기울였는지 빤히 전해질 정도다. 앞부분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마그네슘, 알루미늄 등 가벼운 소재 사용에 공을 들였고, 심지어 드라이 섬프 방식을 사용해 엔진 높이를 낮춰 무게중심을 낮추는 등 철저하게 공을 들인 수작은, 수준 높은 운전의 재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준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부분이 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순수한 야성이 있다. AMG GT는 대놓고 제 성질을 드러낸다. 잘못된 조작에는 성질을 낸다. 제대로 그 특성을 이해하고, 존경심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계? 워낙 성능 한계가 높다보니 보기도 어렵다. 
 

다시 한 번, 자존심은 내려놓고 힘을 모두 끌어 모아 달렸다. 말 못할 속도까지 치솟자 그제서야 AMG GT S의 영혼이 슬며시 보이기 시작했다. 긴장감에 지쳐 마음을 닫았을 때는 느낄 수 없던 것들이다. 고속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안정감, 꽉 여맨 하체와 서스펜션의 조합, 균일하게 차오르는 토크, 회전수 끝까지 이어지는 힘의 분출 등 그 모두가 세상과는 떨어진 느린 속도로 몸에 파고든다. 
 

한순간 세상은 호흡을 멈췄고, AMG GT S만 저만의 속도로 달렸다. 자신을 완전히 믿고 맡기지 않으면 온전한 매력을 볼 수 없는 차다. 매일 몰며 순간의 미소를 보여주길 갈구하고 싶다. 그런 점이 온전히 자신만을 바라봐 달라는 팜므파탈과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AMG GT S는 빠져들어도 파탄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겠지만. 

글 · 안민희 에디터 (minhee@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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