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파일럿 - 환경, 기술, 사람을 생각한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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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파일럿 - 환경, 기술, 사람을 생각한 SUV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6.01.0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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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난 파일럿은 환경, 기술, 사람을 위한 혼다의 3훤칙을 그대로 미국적 정서에 담아냈다

사람이 만든 것에는 사람의 뜻이 담긴다. 뚜렷한 주관과 철학을 담은 자동차회사에 경의를 표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것이 살짝 흐릿해 보일 때가 있다. 그간 혼다를 포함한 일본차들이 그랬다. 과도기였을까. 

몇 년 전까지 일본차들은 갑작스런 디자인 과도기를 겪었다. 대중에게 무난하게 다가갈 평범한 디자인에서 벗어나 난(蘭)을 치듯 과감한 선 긋기에 바빴다. 어려운 디자인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그들의 디자인 감각이 슬슬 올라오고 있단 얘기다.
 

변화의 바람은 차 만드는 방식도 바꿨다. 시류를 따르는 무난함이 아닌, 브랜드 정체성을 담아내는 차를 만든다. 혼다는 예전부터 ‘환경, 기술, 사람’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계속 강조해왔다. 이는 그들이 만드는 모든 차에 담겨 있다. 미국적 지향의 SUV인 혼다 파일럿에도 마찬가지다. 

신형 파일럿을 보고 살짝 놀랐다. 세대를 거듭하며 변화를 더하는 것이 자동차의 숙명이라지만 달라도 너무 달라진 모습 때문이다. 이전 세대만 해도 직선형 디자인에 원형 실내를 조합한 꽤 재미있는 요소가 있었는데, 신형 파일럿은 웃음기 싹 빼고 안팎을 진지하게 다듬었다. 약간은 험상궂게 생긴 일본 가면을 닮았다. 나름 아이덴티티를 담아낸 디자인일까. CR-V가 생각나는 패밀리룩이지만, 아무래도 확실히 큰 덩치가 의식되긴 한다. 
 

실내는 차분한 분위기다. 가로형 대시보드를 적용하며 각 조작부의 배치 및 전체 구성이 한층 간결해졌다. 기존 모델의 경우 원형 디자인을 곳곳에 사용한 것이 돋보였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리는 부분이 있었다. 반면 신형은 그렇지 않다. 조작부에 쓸데없는 멋을 부리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센터페시아 상단의 8인치 디스플레이. 터치 기능을 적용했다. 내비게이션은 아틀란 지도를 사용한다. 오디오, 내비게이션 등의 기본 기능은 물론이고, 각종 세팅 및 안전 기술 사용에 쓴다.
 

기어레버는 센터 터널 쪽으로 다시 돌아왔다. 기존에는 센터 페시아 하단에 달렸다. 구성은 P-R-N-D-L로 간단한 일자식 구성. 그저 D에 맞추고 여유롭게 달리면 된다. 사양에 따라 기어레버의 구성이 달라지는데, 패들시프트를 추가해줬으면 좋겠다. 혼다 엔진의 특별한 질감을 좀 더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는 패들시프트의 부재가 아쉽다. 기어레버 아래는 트랙션 컨트롤 선택 기능을 달았다. 자동(오토) 외에도 진흙(머드), 모래(샌드), 눈길(스노) 등 3개의 노면 설정을 추가해뒀다. 험로를 적극적으로 달릴 차는 아니지만, 험로에서의 성능을 보장하는 요소다. 
 

좌석 구조는 2-3-3의 8인승 구조. 2열은 앞뒤 슬라이드 기능이 있고, 등받이 각도도 조절할 수 있다. 2,820mm의 긴 휠베이스 덕분에 실내공간이 여유롭다. 1열에 키 180cm의 성인 남성이 편하게 앉은 상태에서도 2열 다리 공간은 아주 넉넉하다. 승차감과 달리 착좌감은 적당히 폭신하다. 대가족을 위한 SUV란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다. 큰 게 좋다는 미국식 가치의 이점을 확인하는 순간. 특이한 것은 2열 창가 쪽 컵홀더가 두 개나 있고, 위치도 윈도 스위치 바로 앞쪽이라 손닿기 편하다.
 

고정관념이겠지만 탄산음료를 많이 먹는 미국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미국인의 콜라 소비량은 주말 쇼핑에서 집에 가져가는 만큼이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이 들 수 있는 멀티팩을 만들었다”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3열 좌석도 앉아봤지만 성인 남성이 앉기에는 아무래도 좁다. 2열 좌석을 앞으로 최대한 밀고 앉아야 다리 공간이 조금이나마 확보되는 수준. 원래 3열은 아이들의 자리다. 
 

시동을 걸어도 실내는 여전히 조용하다. 휘발유 엔진을 얹은 SUV의 장점을 확인하는 때다. V6 3.5L 휘발유 직분사 엔진은 어코드에 얹히는 것과 동일한 구성이다. i-VTEC, VCM 등 혼다만의 특별 기술이 적용된 엔진. 최고출력은 284마력, 최대토크는 36.2kg.m다. 6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네 바퀴 모두를 굴린다. 단순하게 쓸 수 있는 차를 추구했기 때문인지, 네 바퀴 구동력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자식 구동력 배분 시스템이 알아서 해준다는 믿음은 든다.
 

출발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크기와 네바퀴굴림의 구성을 생각하면 1,965kg의 공차중량은 가벼운 쪽이겠지만, 터보차저 아닌 자연흡기 휘발유 엔진은 저회전부터 두툼한 토크를 뽑아내기가 힘들기 때문. 그래서 초반 기어비를 촘촘하게 짜고, 후반부터 기어비를 늘리는 방법을 쓴다. 파일럿 또한 예외는 아니다. 6단의 기어비를 크게 늘려 항속에 유리하도록 했다. 이때 VCM(가변 실린더 조절 기능)이 작동하는데, 6기통 중 3기통만 사용해 달린다. 엔진 부하가 걸리지 않는 항속 주행 상황에서 연비를 높이는 일등 공신이다.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고회전 영역으로 치솟는다. 혼다 특유의 기술인 ‘VTEC’(Variable Valve Timing And Lift Electronic Control, 가변 밸브 타이밍 및 리프트 전자 제어를 뜻한다)은 저회전과 고회전의 질감을 크게 바꾼다. 저회전에서는 다루기 편하도록 부드럽게 힘을 끌어낸다. 에코모드 활성화인 ‘ECON’ 버튼을 누르면, 느긋하게 달리는데다 연비도 좋아진다. 고회전에서는 힘을 끌어내는 양과 반응성을 크게 높인다. 그러다보니 고회전이 즐거운 엔진 중 하나. 대형 SUV인 파일럿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달음질하게 됐다. 기우뚱대는 차체를 네바퀴굴림의 안정성 믿고 몰아 붙였다. 
 

파일럿은 네바퀴굴림이지만 연비를 위해 평소에는 앞바퀴굴림으로 달린다. 연비를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필요한 상황에는 뒷바퀴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낸다. 바퀴가 미끄러지면 뒷바퀴에 최대 70%의 힘을 보낼 수 있다고. 앞뒤만 아니라 좌우에 보내는 힘을 조절하는 토크 벡터링 기술도 적용했다. 급격한 코너링 상황이나 눈길 주행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코너를 달릴 때 안쪽 브레이크를 잡아 회두성을 높이는 핸들링 보조 시스템도 적용됐다고. 촬영을 위해 미끄러운 길을 달릴 때 내심 믿고 버틸 구석 중 하나였다. 

서스펜션의 세팅은 미국 차의 성향이 짙다. 일본 차의 성격이 반영된 것은 살짝 탄탄한 승차감. 서스펜션의 상하 움직임을 넉넉히 잡고, 충격을 여유롭게 흡수해낸다. 하지만 약간 전형적으로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요즘의 미국 차들은 서스펜션의 반발력 및 상하 움직임의 폭을 기존보다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는 점진적으로 제동력을 높이는 세팅이다. 처음부터 적응이 쉬웠다. 
 

신형 파일럿의 가치는 안전에 있다. 3세대로 거듭나며 ‘혼다 센싱’ 등 첨단 안전 기술을 도입하며 안전 사양을 대폭 끌어올렸기 때문. 차체부터 충돌 안전성과 주행 안전성 강화를 위한 ACE(Advanced Compatibilliy Engineering) 바디로 바꿨다. 1,500MPa의 초고장력 강판을 이용해 총 7종의 강판과 첨단소재로 만들었다. 차체의 55.9%에 고장력 및 초고장력 강판을 적용했다고. 기존 차체 대비 115kg 가벼워지면서도 강성 및 안전도를 높인 것이 특징. 차체 앞부분의 인스트루먼트 패널 하단부에는 캐스트 마그네슘을 사용해 강성을 높였고, 하단부 프레임은 정면 충격, 좌우측 충격 흡수와 분산을 위한 신형 3본 방식을 적용했다.
 

첨단 안전 기술인 혼다 센싱도 추가됐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기술은 오른쪽 차선을 확인해주는 레인워치. 방향지시등 오른쪽을 켜면 조수석 사이드미러 아래 붙은 카메라가 작동해 중앙 모니터에 오른쪽 화면을 띄운다. 사각지대부터 2개 차선의 확인이 가능해 뒤에서 오는 차까지 전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도 있다. 앞차와 속도 차이가 15km 이상으로 벌어졌을 때 작동하는데, 충돌 위험성이 있으면 경보를 울리고, 충돌 가능성이 생기면 브레이크를 자동으로 작동해 속도를 줄인다.
 

인상적인 것은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과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의 연동. 카메라와 레이더의 조합으로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달리는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에,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는 보조 시스템을 더했다. 스티어링에 묘한 반발감이 느껴져 손을 놓자 자동으로 차를 차선 중앙에 유지하도록 스티어링을 조작한다. 약한 곡선의 고속 코너에서도 잘 작동한다. 손을 놓은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스티어링을 잡으라고 경고등을 띄운다. 제한적인 상황이지만 자동 운전이 가능하다는 상황이 신기하다. 단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시속 40km에서 140km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막히는 정체구간에서 자동 운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파일럿을 혼다가 미국시장 겨냥해 만든 큼직한 SUV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사람이 쓰기 편한 것을 만든다’는 혼다의 정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위주로 차를 만드는 혼다 특유의 철학, 그리고 환경을 생각한 엔진이 눈에 차기 시작했다. 이 모두를 이뤄낸 기술은 또 어떤가. 혼다 파일럿의 가격은 5천390만원. 이전 세대에 비해 440만원 올랐다. 추가된 안전 장비를 고려하면 그만한 가치는 한다는 생각이다. 

글 · 안민희 에디터 (minhee@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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