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향의 SUV, 레인지로버 이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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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향의 SUV, 레인지로버 이보크
  • 나경남 객원 기자
  • 승인 2015.12.2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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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팩트 SUV를 표방한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매력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까? 물론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왜일까?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시승 일정을 전달받고 나는 꽤 흥미를 느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은가. ‘이보크’란 이름이 전혀 탐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랜드로버에서 처음 이보크를 출시했을 때에도 그랬다. 이제는 비교적 콤팩트 SUV가 흔해졌지만, 이보크의 데뷔 당시에는 풀 사이즈 SUV가 대다수였다.

일반적인 SUV와는 확연히 비교가 되는 크기, 그리고 줄어든 크기만큼 스포티한 느낌을 주는 것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차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가격표를 확인하고는 꽤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보크의 가격이라면 유럽산 브랜드들의 풀사이즈 SUV를 충분히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가격(혹은 비슷한)에 선택할 수 있는 차들이 무척 많다. 오히려 이보크보다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차들도 많은데… 이쯤 되면 누군가는 말하겠지. “누가 그 돈 주고 이보크를 사나?” 

재규어 랜드로버에 의하면, 2011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약 39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어쨌거나 단순히 가격과 연비, 성능과 편의가 최우선 기준이 아니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그 돈이면…’을 따지는 사람들의 선택이 이보크일리는 없겠다. 지난 10월 말 출시된 새로운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또다시 심판대에 섰다. 근데 별로 긴장한 모습은 아니다. 
 

시승 차량은 레인지로버 이보크 HSE 디젤. HSE는 고사양 버전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론 이보크의 전체 라인업 가운데 HSE는 중간 정도에 해당된다. 판매가격으로나 사양 면에서 비교하더라도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당연히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릴 주전 선수로 손색이 없다. 

일일이 구성을 살펴보지 않더라도 한눈에 호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가장 먼저 스타일을 이끌어 간 이보크의 역할이 여전히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오죽하면 중국만의 기준이지만 ‘합법’인 짝퉁까지 등장했다. 특유의 스타일을 흉내 낸 차량들이 더 많아진 것이 오히려 오리지널이 돋보이도록 하는 셈이다. 
 

세부적인 변화의 기조는 단정하고 깔끔한 이보크의 이미지 안에서 각각의 장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쪽으로 이뤄졌다. 새롭게 적용된 전면부 그릴 디자인은 이전의 디자인이 투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됐다. 어댑티브 LED 헤드램프도 그렇다. 이전에도 눈매를 책임지는 헤드램프는 날렵한 디자인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 세대와 차별화되는 LED 데이라이트는 더 명확하게 이보크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단순히 눈이 큰 사람과 눈매가 깊고 눈빛이 맑은 것의 차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릴과 헤드라이트 디자인 하나만으로도 신형 이보크의 추종자가 되었다. 차체 후면과 외부의 전체의 디테일과 내부의 소재 및 무드 라이팅과 같은 부분 역시 훌륭한 변화이겠지만, 눈매가 다듬어진 것보다 주목하게 되었던 것은 아니다. 분위기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고급스러움이라 불리는 것은 특히 그렇다. 값비싼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달거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둘렀다고 고급스러워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새로운 이보크는 눈빛 하나로 분위기를 잡아낸다.
 

나는 최근의 시승기에서 차량과 어울리는 적당한 음악을 내세웠다. 이보크의 경우엔 영국 출신이기에 꽤나 넉넉한 후보군을 가진 셈. 그리고 영미권 음악이 익숙한 우리에게도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음악으로 이보크를 설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조금은 낯설지도 모를 ‘The 1975’가 파트너다.
 

이보크를 충분히 설명하기에도 부족할 지면에 The 1975를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들의 노래를 한번 검색해서 들어보길 권하는 것뿐. 이보크의 이미지와 가장 부합하는 노래는 이들의 ‘Chocolate’. 경쾌하고, 산뜻한 리듬감이 돋보일뿐더러 군더더기가 없는 느낌.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반복적인 리듬이지만 각각의 악기와 목소리가 서로 방해되지 않고 생기가 넘친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이런 감상은 이보크에 대한 것과 무척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최신의 이보크에는 엔진이 새롭게 적용됐다. 기존의 2.2 디젤 터보 엔진은 재규어의 XE에 적용되어 검증을 마친 2.0 디젤 터보로 바뀌었다. 기존 엔진 대비 10마력이 떨어진 최고 180마력을 내지만, 토크는 기존보다 높아졌다. 시내 주행과 일상적인 영역에서 이 출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토크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덕분에 차체를 무겁지 않게 밀어내지만, 토크가 조금은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부담스럽지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9단 자동변속기의 역할이 크다. 일상적인 영역을 포함해서 약간은 더 속도를 내더라도 충분하다. 촘촘하게 변속기가 받쳐주면서 부드럽지만 빠르게 가속할 수 있었다. 가볍지만 지나치지 않고,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은 딱 그 느낌이다.

험로를 달릴 수 있는 랜드로버 가문의 차량답게 흙길을 달려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하지만 노면 상황에 따라 차량의 트랙션 및 스로틀 컨트롤 등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은 걱정을 쉽게 덜어준다. 물론 이보크는 흙을 전혀 묻히지 않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도심에 더 어울린다고 해도 변명할 말은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출고해서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더라도 속치마 속에 총을 감추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차량을 시승하면서 운전자를 본인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대입해 생각해보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사람이 이 차량과 어울릴까?’ 하는 생각. 남성 혹은 여성 모두에게 이보크는 정말 잘 어울린다. 기왕이면 멋쟁이라면 좋겠다. 값비싼 명품들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를 필요는 없다. 아무렇게나 걸친 것 같은 낡은 외투가 더 멋스럽게 보일 때도 있는 것. 무기를 꺼내놓고 휘둘러야 당당한 것은 아니다. 주머니 혹은 속치마 속에 숨긴 총처럼 말이다.  

글 · 나경남 객원 기자 (c2@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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