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마니아의 성지, '뉘르부르크링'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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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마니아의 성지, '뉘르부르크링' 도전기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12.08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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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하나도 못하는 기자가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를 달렸다. 꼼꼼하게 준비한다면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다 
 

토요일 밤부터 월요일까지. 독일에서 혼자 있을 시간이 생겼다. 무엇을 해야 할까? 독일어도 못하고, 영어도 그닥 뛰어난 편이 아닌 기자다. “호텔 잡고 2박 3일 동안 잠이나 잘까?”라고 농담을 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뉘브루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소식에 각성했다. 자동차 마니아의 오랜 소망 하나를 이룰 기회가 왔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는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약 170km 정도 떨어져 있고, 차로 약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린다. 별명은 ‘녹색 지옥’(Green Hell). 좁고 구부러진 길로 가득 찬 길이 22km의 서킷이다. 안전지대가 턱없이 부족해 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데다, 상당한 고저차와 앞이 보이지 않는 코너가 연달아 등장해 담력과 기술을 시험한다. 악명 높은 서킷이자, 성능의 벤치마크가 된 곳. 수많은 레이서들이 이곳을 달려 영광을 쫓았다. 
 

지금은 일반 여행객들도 달릴 수 있다 보니 언제든 가능할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를 달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시간표다. 뉘르부르크링 홈페이지(nuerburgring.de)에 접속해 드라이브, 인포 항목을 확인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뉘르부르크링 안에 속해 있는 각 가게의 개점 시간도 전부 다르고, GP 트랙과 노르트슐라이페의 주행 시간도 각각 다르다는 것. 온종일 여는 경우도 있지만, 저녁 2시간 정도만 제한적으로 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뉘르부르크링 스케줄을 먼저 확인하고 일정을 짜는 것이 가장 좋다. 

이동은 렌터카로 한다. 하지만 렌터카를 끌고 뉘르부르크링을 달려선 안 된다. 일반 렌터카 회사는 서킷에서 자동차를 모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노르드슐라이페 곳곳에는 카파라치가 있다. 렌터카 표지가 달린 차가 달리는 것을 촬영해 해당 회사에 넘길 경우, 나중에 고지서를 받을 수 있다. 서킷을 달려 타이어, 브레이크가 심하게 닳았다는 이유에서다. 그 정도로 차를 몰지 않았다고 항변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서킷을 달리기 위한 경주용 렌터카를 빌려야 한다. 경주용 렌터카는 뉘르부르크링에서만 작용하는 보험이 된다. 기본은 차량 손상에 대해서만 배상하지만, 추가 패키지를 적용하면 뉘르부르크링 자재 파손 시도 배상이 가능하니 꼭 적용할 필요가 있다. 서킷의 사고는 차를 고치고 끝나는 것이 아닌, 서킷의 원상 복구 또한 포함하기 때문. 자칫하다 큰 봉변을 당하기 전에 보험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어느 회사를 골라야 할까? 뉘르부르크링의 파트너는 ‘렌트 레이스카’(Rent Race Car)지만, 다른 곳들도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뉘르부르크링 렌터카’(nurburgring rent a car)를 검색하면 렌터카 업체를 정리한 페이지 또는 사이트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경주용 렌터카 업체로는 렌트 레이스카, RSR 뉘르부르그, 렌트4링 등이 있다. 각 업체마다 구비 차종 및 보증금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각 업체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포르쉐 911, 닛산 GT-R, 클래식카 등 원하는 차는 대다수 빌릴 수 있지만, 그 경우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보증금이다. 고성능 차종이나 희귀 차종의 경우 렌트비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 사고 유무를 확인한 후 돌려받을 수 있다지만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에게는 부담이다. 고급 차종 아니면 보증금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미리 차를 빌릴 때부터 보증금 액수 및 여부 확인은 필수다. 현지에서 갑자기 결제하려면 힘들다. 

기자의 경우 RSR 뉘르부르그에서 르노 트윙고 스포트를 빌렸다. 가장 싼 모델이라 달리기 성능도 헐거울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직렬 4기통 1.6L 엔진으로 최고출력 140마력을 내는 성능은 평범하지만, 공차중량이 1,000kg이라 움직임이 잽싸다. 브레이크와 타이어도 경주에 맞게 튜닝한 사양. 수동 5단 변속기를 휘젓는 맛도 찰지다. 
 

차를 빌려 기름과 티켓을 따로 사는 법도 있지만, 차와 기름, 티켓을 모두 포함한 패키지를 사기로 했다. 르노 트윙고 스포트의 경우 연료와 뉘르부르크링 티켓을 포함한 가격이 1랩에 99유로(약 12만9천원)로, 4랩을 달리면 할인을 받아서 275유로(약 35만9천원), 6랩은 399유로(약 52만1천원)다. 추가 1바퀴를 더 달린다면 80유로(약 10만4천원)가 붙는다. 마음은 르노 메간 RS265를 원했다.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으로 최고출력 270마력을 내는 고성능 해치백이기 때문. 하지만 가격이 르노 트윙고 스포트의 딱 두 배라 마음을 접었다. 

주행 전, 뉘르의 안전수칙 및 주행법을 설명하는 드라이버 브리핑이 열린다. 가장 먼저 하는 말은 “그란 투리스모는 잊어! 뉘르는 진짜라고!”라는 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킷을 게임처럼 달리려 든단다. 자신이 운전을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타인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말라고 거듭 말한다. 마지막으로 나눠주는 쪽지에는 사고가 났을 때 전화해야 하는 곳이 적혀 있었다. 잘 접어 안쪽 주머니에 넣고 주행에 나섰다. 
 

차를 빌리는 요금 중에는 1바퀴 인스트럭터 교육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인스트럭터가 조수석에 앉아 뉘르부르크링 노르드슐라이페를 달리는 법을 설명한다.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빨리 달리고 싶어 마음이 급하다 할지라도, 꼭 교육을 받길 바란다. 언제 브레이크를 밟고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지, 어떻게 달려야 할지 알려준다. 

교통카드를 찍듯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랩 카드를 찍고 입장한다. 가속페달을 꾹 밟아 최대한 가속했다. 코너가 닥쳐왔다. 인스트럭터가 랠리의 코-드라이버처럼 코스 설명을 읊는다. “약한 코너. 브레이크 여기서, 스티어링은 앞에서 부드럽게” 설명에 따라 부드럽게 속도를 줄이고 코너를 통과했다. “자, 출구다. 가속페달 밟아!”소리를 듣고 힘차게 가속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보니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80% 정도로 조심스레 달린다. 어쨌든 처음 달리는 코스니 적응이 필요해서다. 
 

순식간에 한 바퀴가 끝났다. 두 번째 바퀴부턴 혼자 달린다. 적응은 어느 정도 됐다는 생각이다. 최대한 침착하게, 할 수 있는 선에서 빨리 달리겠다고 다짐했다. 마침 비슷한 급인 스즈키 스위프트 한 대가 게이트를 같이 통과한다. 시선이 마주쳤다. 중국인으로 보인다. 나를 의식한 듯 가속페달을 밟는다. ‘저 녀석은 이겨야겠다.’ 가속페달을 꽉 밟는다. 그런데 성능이 엇비슷하니 직선에선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다. “르노 스포트! 내게 힘을 줘!” 

그런데, 감속 구간조차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인지 이상한 곳에서 브레이크를 밟는다. 추월하겠다고 왼쪽에 붙었는데, 쉽게 비켜주질 않는다. 국가대항전은 어디서든 벌어지기 마련.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그런데 뒤에서 천둥소리가 들린다. 콜벳 무리가 잔뜩 달려온 것이다. 깜박이를 넣고 오른쪽으로 피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빠른 자가 왼쪽에, 느린 자가 오른쪽에 서는 것이다. 오른쪽 신호를 넣고 오른쪽으로 붙어 달리는 것이 추월 허용의 표시다. 원래 주행 라인으로 복귀할 때도 꼭 뒤를 살펴봐야 한다. 
 

콜벳 무리가 지나자마자 추월했다. 이어지는 직선구간에서 냉큼 쫓아오려 든다. 물론 거리는 줄지 않는다. 속도를 높여 코너를 통과하길 몇 번.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통쾌한 함성을 내질렀다. 자신감이 솟아난다. 하지만 코너 하나 하나마다 집중하며 최대한 침착하게 뉘르부르크링을 달렸다. 엄청난 속도로 달린 것은 아니다. 모든 코너를 100% 공략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주 재미있었다.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는 아주 어려운 서킷이다. 하지만 이곳을 정복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버리고, 대신 겸손한 마음으로 즐겁게 달리는 것을 추구한다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과 운전의 재미다. 자, 이제 여러분이 도전할 차례다!  
- 뉘르부르크링 홈페이지 : www.nuerburgring.de 

글 · 안민희 에디터 (minhee@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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