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 레니게이드, 소형 SUV도 지프가 만들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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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레니게이드, 소형 SUV도 지프가 만들면 다르다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11.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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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게이드는 지프뿐만 아니라 모기업인 FCA(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에게도 각별한 존재다. 지난해 1월 출범한 FCA가 새로운 체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 레니게이드. 말하자면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연 셈이다. 

레니게이드는 지프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소형 SUV. 소형 SUV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시장이다. 소형차에 통달한 피아트의 노하우에 지프의 전문분야인 오프로드 기술을 융합한 신차를 개발하자는 게 아마 수년 전 상품기획 회의에서 오간 내용이었을 것이다. 
 

레니게이드는 내년 상반기 국내 출시 예정인 피아트 500X와 플랫폼을 공유한다. 이 플랫폼은 FCA 이전의 피아트가 오펠과 함께 B세그먼트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크라이슬러는 개발에 관여하지 않았다. 레니게이드와 500X는 파워트레인과 구동계도 공유한다. 디자인은 브랜드 개성을 살리기 위해 각사가 담당했다. 

생산지는 이탈리아. 피아트 공장에서 500X와 함께 생산된다. 미국 밖에서 생산하는 건 지프 브랜드 역사상 처음. 미국과 이탈리아 피가 섞인 혼혈아로서 ‘메이드 인 USA’가 아닌 지프의 첫 글로벌 모델이다. 세그먼트 분류상 동급 국산차로는 르노삼성 QM3, 쌍용 티볼리, 쉐보레 트랙스가 있고, 수입차로는 닛산 쥬크와 푸조 2008 등이 있다. 지프는 레니게이드의 주요 경쟁상대로 미니 컨트리맨을 지목하고 있다. 
 

당초 7월 국내 출시 예정이었던 레니게이드는 미국과 유럽에서의 높은 인기로 인한 물량 부족으로 출시 시기가 9월로 미뤄졌다. 예정보다 두 달 늦게 마주한 레니게이드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치를 확인해보면 작은 차가 맞다. 

레니게이드의 크기는 길이 4,230mm, 너비 1,800mm, 높이 1,690mm. 동급 모델 중 크기가 가장 비슷한 것은 트랙스다. 길이×너비×높이가 4,245×1,775×1,670mm로 레니게이드와의 차이가 모두 25mm 이하. 사실상 같은 크기나 마찬가지지만 레니게이드가 훨씬 커 보인다. 랭글러를 떠올리는 네모난 박스 형태의 차체는 튼튼하고 다부진 인상이다. 체구가 작은 근육질 몸매가 어딘가 프렌치 불도그와 닮기도 했다. 레니게이드에는 다른 동급 모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SUV다움’이 있다.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사내에서 가장 젊은 신세대 디자이너들에게 레니게이드의 디자인을 맡겼다. 익스테리어 담당 리드 디자이너와 인테리어 담당 리드 디자이너 모두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였다. 안팎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모습은 원형 헤드램프와 7개의 슬롯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지프 얼굴이다. 일명 ‘그릴 상사’(Sarge Grille)라고 불리는 지프 브랜드의 상징. 실내는 랭글러의 이미지가 엿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지금까지의 지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센터페시아 위쪽에 각인된 ‘SINCE 1941’이 먼저 눈길을 끈다. 1941년은 지프의 시조인 ‘윌리스 MB’가 처음 실전 배치된 해. 윌리스 MB는 M1 소총, 머스탱 전투기와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3대 병기로 꼽히기도 한다. 
 

전체적인 조형이나 디테일은 익스트림 스포츠 용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예컨대 대시보드 중앙의 풍구는 스포츠 고글 디자인을 참고한 것이라고. 대시보드 양옆의 송풍구 테두리와 기어 레버 주변부 처리, 컵홀더 디자인 등에선 디자인 센스가 돋보인다. 다만, 수납공간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운전석에 앉으면 시트 포지션이 높고 창문이 큼직해서 시야가 좋다. 뒷좌석은 다리 공간과 머리 공간 모두 여유롭다. 앞좌석 아래에 공간을 많이 남겨둬서 뒷자리 발 공간도 넉넉하다. 리어 시트는 40/20/40으로 분할되어 편리하다. 
 

트렁크 용량은 524L. 참고로 컨트리맨은 350L, 트랙스는 356L, QM3과 쥬크는 377L. 동급 최대라고 자랑한 티볼리가 423L다. 레니게이드의 적재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최대 1,438L까지 확보된다. 

국내 출시 엔진 라인업은 2.4L 휘발유 엔진과 2.0L 터보디젤 엔진 두 가지. 변속기는 모두 자동 9단이 짝을 이룬다. 국내서는 론지튜드 2.4(휘발유), 론지튜드 2.0 AWD(디젤), 리미티드 2.0 AWD(디젤)의 3개 트림으로 판매된다. 가격은 각각 3천280만원, 3천790만원, 4천190만원이다. 시승차는 최고급형인 리미티드 2.0 AWD. 
 

시동을 걸면 소음과 진동이 상당하다. 보닛과 도어가 떨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 일반적인 승용차였다면 여기서 이미 낙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레니게이드에서는 요란한 엔진이 별로 싫지 않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거친 분위기로 기분을 고조시킨다. 

론지튜드 2.0 AWD와 리미티드 2.0 AWD에 들어가는 직렬 4기통 2.0L 멀티제트2 엔진은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35.7kg·m의 힘을 낸다. 컨트리맨 D는 겨우 112마력이고, SD도 143마력. 그런데 훨씬 강력한 엔진을 가지고도 가속이 더딘 느낌이다. 체급에 어울리는 가볍고 경쾌한 세팅이면 더 좋을 것 같다. 
 

ZF 9단 자동변속기는 이음새를 느끼게 하지 않고 매끄럽게 변속한다. 변속 프로그램은 철저히 연비 중시 세팅. 가속페달을 바닥에 붙여도 킥 다운을 꺼리거나, 2단 정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1단만 내리는 등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수동 모드로 직접 변속하면 엔진의 활력이 살아난다. 

스티어링은 정확한 편이지만, 센터 부근이 느슨한 오프로더 특유의 느낌이 있다. 승차감은 탄탄하다. 노면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기분 나쁜 충격을 전달하지 않는다. 종합해보면 온로드 실력은 학급 평균. 그렇지만 레니게이드에겐 동급 모델이 가지지 못한 필살기가 있다. 바로 오프로드 역량이다. 
 

우리는 소형 SUV에 오프로드 성능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소형차보다 조금 더 시야가 좋고, 과속방지턱 앞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산 좀 못 탄다고 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소형 SUV란 그런 존재였다. 레니게이드가 나오기 전까지는…. 

4×4 명가답게 지프는 소형 SUV에도 풀타임 4WD 시스템, 20:1의 크롤비(crawl ratio)의 로우 기어, 자동·눈길·모래·진흙 등 네 가지 주행모드(셀렉-터레인), 리어 액슬 분리 기능, 언덕 밀림 방지장치, 내리막 속도 제어장치 등을 꽉꽉 넣었다. 
 

그밖에 진입각 30.5°, 탈출각 34.3°, 등판각 25.7°, 도강 높이 480mm, 205mm에 달하는 바퀴의 상하 조절 폭, 견인력 최대 1.5톤 등 일반적인 소형 SUV의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진입각과 탈출각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조차 넘어서는 수준으로, 승용차에서 파생된 크로스오버로는 따라올 수 없는 스펙이다. 촬영 겸 시승을 위해 찾은 서울 근교 오프로드 코스에서 레니게이드는 놀라운 험로 주파능력을 보여줬다. 오프로드 성능은 동급에서 경쟁상대를 찾을 수 없고, 웬만한 상급 모델도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 

레니게이드는 재미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마이 스카이’(My Sky)라는 이름의 탈착식 지붕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2장으로 나뉜 루프 패널은 평소에 선루프처럼 쓰다가, 전용공구로 잠금장치를 풀고 레버를 당기면 완전히 떼어낼 수 있다. 
 

탈착 작업은 반드시 두 손이 필요해서 차를 세우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주행 중에 실수로 패널을 분리하거나, 운전하면서 떼어낼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짐작된다. 떼어낸 패널은 전용 가방에 넣어 트렁크 바닥 아래에 보관하면 된다. 탈착 과정에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긴 하지만, 아주 어렵거나 번거로워서 하기 싫은 정도는 아니다. 

차 안팎에 숨겨둔 이스터에그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내외 곳곳에 새겨진 ‘그릴 상사’ 모양, 앞 유리 오른쪽 구석의 윌리스 MB, 미 육군 제리캔(5갤런 기름통)에서 유래한 테일램프와 지붕의 X마크. 뒤 유리 중앙의 빅풋(개척시대부터 목격담이 전해지는 전설의 미국 괴물), 연료주입구 구석에서 이탈리아어로 작별인사를 하는 거미 등 다양하다. 
 

내년 창사 75주년을 앞둔 지프는 매년 판매기록을 갈아치우며 전례 없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 연간 판매대수 100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2018년까지 판매량을 190만대까지 늘리겠다는 대담한 계획의 성패 여부는 레니게이드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니게이드는 전 세계 다양한 계층과 세대에 지프의 세계관을 알리는 기폭제가 될 것 같다. 

그런데 국내 출시와 동시에 가격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판매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해외 가격을 확인해본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다만, 지역별로 사양이 천차만별이라 완전히 동일한 조건으로는 비교할 수 없었다. 
 

가령, 미국에는 디젤 모델이 없고, 국내 모든 트림에 적용된 ‘액티브 드라이브 로우 AWD’는 최고급형인 ‘트레일호크’에만 적용된다. 원산지인 이탈리아에는 디젤 모델이 있지만, 국내 사양과 같은 170마력 엔진은 역시 트레일호크에만 적용된다. 

이탈리아 리미티드 모델에 국내 사양과 최대한 비슷하게 선택품목을 적용하면 가격은 3만7천700유로(약 5천만원)에 달한다. 더구나 이것은 ‘마이 스카이’가 빠진 가격이고(옵션 목록에서 찾을 수 없었다), 엔진도 140마력으로 국내 사양보다 30마력 낮은 유닛이다. 
 

FCA 코리아의 잘못은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너무 높은 사양으로만 선보인 것이다. 일본처럼 1.4L 휘발유 엔진, 6단 듀얼클러치, 앞바퀴굴림 조합으로 가격을 낮춘 경제적인 모델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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