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의 꿈, 메르세데스-A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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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의 꿈, 메르세데스-AMG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11.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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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메르세데스-벤츠의 레이싱 엔진을 꿈꾸던 두 명의 젊은이가 사과밭에서 힘을 합쳤다. 50년이 채 안 된 지금, 꿈은 거대한 업적이 됐다. 하지만 꿈은 끝나지 않았다 
 

메르세데스-AMG(이하 AMG) 문장의 절반에는 사과나무가 그려져 있다. 언제든 톡 떨어질 것 같은 열매 달린 사과나무다. 고성능 차를 만드는 이들이 왜 차와 관련 없는 사과나무를 문장에 그려 넣었을까? AMG의 뜻을 풀어보니 의문은 금세 풀렸다. 창업주인 아우프레흐트(Aufrecht), 멜셔(Mershcer), 지명인 그로사스파흐(Grobaspach)의 첫 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든 이름이 ‘AMG’다. AMG가 첫 발을 뗀 그로사스파흐의 특산품이 사과라 문장에 그려 넣었다고. AMG의 부지가 사과밭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득 온 동네에 사과 향기 가득한 풍경이 떠오른다.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차를 몰고 달리는 상상이 든다. 물론 AMG의 차들이 순식간에 몰려와 추월하는 망상에 평온은 순식간에 깨어지지만.
 

창업주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흐트는 진정한 레이싱 마니아였다.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에 입사해 레이싱 엔진을 만드는 꿈을 꿨다. 하지만 그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벤츠가 모터스포츠에서 철수를 고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동료 에버하드 멜커와 함께 300SE 한 대를 사서 화끈하게 개조하고 DTM에 내보냈다. 엔진출력을 172마력에서 241마력으로 끌어올린 레이스카는 1965년 DTM에서 10승을 거뒀다. 성공의 가능성을 확인한 둘은 의기투합해 그로사스파흐에 회사를 차린다. 여기서부터 AMG의 역사가 시작된다. 
 

벤츠를 바탕으로 강력한 성능을 더한 AMG는 아주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강력한 성능과 신뢰성을 동시에 바라는 이들이 AMG를 주로 찾았다. <오토카>에서는 AMG가 벤츠에게 자극을 주어 벤츠도 고성능 모델을 내놓게 만들었다고 평가할 정도. AMG가 자리 잡은 1968년, 벤츠는 300SEL 6.3을 내놓았는데, 이름처럼 거대한 V8 6.3L 엔진을 얹고 250마력을 냈다. 하지만 AMG는 이를 더 빠르고 강력하게 만들어냈다. 

3년 후인 1971년, 벨기에의 스파프랑코샹 서킷에서 24시간 내구 레이스가 열렸다. AMG도 레이스에 나섰다. 그들이 준비한 무기는 벤츠의 슈퍼세단 300SEL 6.3을 튜닝한 레이스카. 
 

V8 6.8L의 배기량으로 최고출력 434마력을 냈다. 1.7배가 넘는 힘이었다. 진한 붉은색을 칠하고 당당하게 등장한 레이스카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사실, 레이스카치고는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다. 44년이 지난 지금도 S클래스 레이스카를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 사람들은 300SEL 6.8 AMG 레이스카에 ‘붉은 돼지’라는 별명을 붙였다. 아무튼, 붉은 돼지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 종합 2위에 클래스 우승을 거뒀다. 

성능을 입증한 AMG는 착실하게 회사를 키워나갔다. AMG의 고성능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실내 개조 작업 또한 계속 들어왔다. 1978년, 점점 커지는 규모 때문에 작업 AMG는 그로사스파흐에서 아팔터바흐로 이전한다. 
 

조용한 삶은 근질근질했을까? AMG는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차를 만들어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망치를 뜻하는 ‘해머’(Hammer)란 별명이 붙은 300E 5.6 AMG다. 1986년 등장한 해머는 W124를 기반으로 만든 슈퍼 세단. 최종 버전은 6.0L 엔진을 더해 최종적으로 375마력이 넘는 성능을 냈다. 슈퍼카의 영역을 세단이 침범한 일이었다. 

당시 <오토카>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페라리 288 GTO를 기죽일 만큼 빠르지만, 우리 할머니도 몰 수 있다.” 자동 4단 변속기를 맞물린 뒷바퀴굴림 세단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던 0→시속 100km 가속을 5초 내로 끊고, 최고시속 295km를 기록했다. 
 

인상적인 성능으로 AMG가 벤츠를 설득했을지, 아니면 벤츠가 AMG를 설득했을지는 모른다. 1988년 벤츠와 AMG는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공식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2년 만인 1990년에 공식 협약을 체결한다. 유래 없이 빠른 진행이다. 이를 통해 벤츠와 AMG는 자동차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게 된다. 3년 후인 1993년에는 공동 개발한 C36 AMG를 출시한다. 이때 다임러는 AMG의 지분 50% 이상을 확보, AMG를 상표로 등록한다. 둘의 연합은 한층 굳건해졌다. 
 

90년대의 AMG는 벤츠 라인업의 고성능화에 힘썼다. S클래스부터 G클래스까지, 벤츠의 거의 모든 라인업에 강력한 성능을 더했다. 큰 엔진이 주는 드라마, 호쾌한 엔진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조금은 광기 넘치는 일일지도 모른다. SL클래스를 송두리째 바꾼 SL73 AMG를 보면 말이다. AMG가 다듬은 V12 7.3L 엔진을 얹고 525마력을 냈다. 이는 당시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 중 가장 큰 엔진이었다. 1999년에는 AMG와 벤츠가 보다 공식적인 관계를 성립, 메르세데스-AMG를 설립하며 90년대의 끝을 맺는다. 
 

2000년. 21세기를 맞은 AMG는 생각의 틀을 바꿨다. 자연흡기부터 과급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거쳤다. 2001년에는 V8 5.5L 엔진에 슈퍼차저를 달아 미친 듯이 달렸고, 2003년에는 V12 6.0L 트윈터보를 만들어 S클래스에 더했다. 찾기 힘든 부분이지만, AMG는 디젤 모델 또한 만든 적이 있다. 2003년 등장한 C30 CDI AMG다.
 

2005년, AMG는 다임러의 완전한 일원이 된다. 창업자 아우프레흐트가 남은 지분을 모두 다임러에 매각했다. 벤츠의 레이싱 엔진을 만들겠다는 꿈이, 벤츠의 고성능 차종을 전담하는 서브 브랜드라는 더 큰 결과로 완성됐다. 탄력을 받은 AMG는 독자 엔진을 개발한 데 이어 자체 모델을 단독 생산하는 AMG 퍼포먼스 스튜디오를 2006년에 연다. 
 

AMG는 계속 새로운 기술 및 모델을 내놓고 있다. 2008년에는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2009년에는 SLR의 뒤를 잇는 SLS AMG를 출시했다. <오토카>에서도 SLR보다 더 싸면서도 성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대에 맞춘 변화도 돋보인다. 전기가 세상을 휩쓸던 2012년에는 전기 슈퍼카 SLS AMG 일렉트릭 드라이브도 출시했다. 다운사이징의 시대에 맞춰 2013년에는 AMG 처음으로 직렬 4기통 2.0L 엔진을 얹은 A 45 AMG, CLA 45 AMG를 내놓고, 2014년에는 V8 4.0L 트윈터보 엔진 얹은 AMG GT를 선보였다. 
 

한 톨의 씨앗은 자라 커다란 사과나무가 된다. AMG 또한 마찬가지다. 벤츠의 레이스용 엔진을 만들고 싶어 했던 소박한 꿈이 싹을 틔웠고, 마침내 고성능을 상징하는 벤츠의 일원이 됐다. 지금의 AMG는 계속 새로운 열매를 내놓고 싶어 안달 난 사과나무다. 영글어 달콤한 과실을 안기는 사과나무의 꿈처럼, AMG의 꿈은 계속된다. 

■ AMG가 특별한 첫번째 이유 - 사람 하나, 엔진 하나 
 

모든 AMG 엔진은 ‘1인 1엔진’ 철학을 따른다. 엔지니어 1명이 엔진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조립하는 것. 이는 엔진 블록 내 크랭크샤프트 설치부터 캠샤프트의 조립, 케이블, 오일 완충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담당 엔지니어의 이름을 엔진 플레이트에 새기는 이유다. 

조립 과정에서 누수/누유와 관련된 다양한 테스트를 거치는데, 전체 연료 시스템도 개별 가스 분자까지 탐지되는 수준의 누수 테스트를 거친다. 이후 모든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가상의 저항 및 여압, 공명 등 측정 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지 프로세싱 시스템을 사용하여 완성된 엔진의 출고 상태가 점검된다. 

조립 과정도 끊임없이 기록한다. AMG 트레이스 시스템은 모든 볼트 접합부의 토크 조임, 오일 레벨, 부품 및 배치 정보, 테스트 결과 등 공정 변수의 모든 기록을 제공한다. 동시에 특수 컴퓨터가 엔지니어를 돕는다. 조립 단계에서 관련 정보를 보여줘, 엔지니어가 정확하게 조립할 수 있도록 한다. 전통적인 수제작 방식 위에 현대적 정보 시스템을 더한 셈이다. 

■ AMG가 특별한 두번째 이유 - 모델 개발부터 벤츠와 함께한다 
 

강인하고 스포티한 성능을 통해 운전의 즐거움을 담아내는 것이 AMG의 목표다. 이를 위해 AMG는 벤츠가 신형 모델을 설계하는 가장 초기 콘셉트 단계부터 참여한다. 이를 통해 자동차의 고유 성격에 맞춰 AMG의 기술을 합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포티함과 편안함을 위한 요건 설정, 성능 기대치 결정 등을 통해 성능의 토대를 만들어낸다. 

다음 단계는 세부사항이다. 어떤 부분을 변경해야 고성능 모델에서 요구되는 성능과 운동 성능을 잡을 수 있는지 접근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요소는 서스펜션 개선이다. 다음은 엔진과 변속기 등의 구동계 조절이다. 세 번째는 차체 강도의 증가, 공기역학 개선 등의 차체 수정이다. 

AMG가 목표하는 개발의 깊이는 단순한 수정을 넘어선다. 차체 부품 하나를 설계할 때에도 요구되는 성능 개선 폭이 있다. 한 부품의 성능이 올라가면, 다른 부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 때문에 연계되는 부품 모두를 수정, 개발하게 된다. 때문에 고성능 모델은 500개 이상의 AMG 전용 부품을 갖춘다. 

■ AMG가 특별한 세번째 이유 -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AMG만의 스타일링 
 

AMG의 스타일링은 은연중에 드러나는 고성능이다. 대부분의 구성 요소들이 성능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기 때문이다. 기본형 모델과 다르게 크게 펼친 범퍼는 스포티함을 더하는 부분 중 하나지만, 공기 흡입 및 냉각을 돕는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보닛 위의 도드라진 파워돔은 안에 숨어 있는 엔진의 거대한 잠재력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넓은 휠 아치 또한 마찬가지. 강력한 힘을 제대로 전달하려면 접지력이 높은 타이어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휠 아치를 넓혀 광폭타이어를 달 수 있도록 한다. 

AMG 모델은 사이드 스커트를 강조한다. 리어 스커트, 디퓨저와 맞물려 공기역학 성능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모터스포츠에서 가져온 스포티한 이미지를 더하는 역할도 한다. 머플러를 양쪽으로 나눠 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시각적인 차이만이 아닌, AMG의 독특한 으르렁거리는 엔진음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글 · 안민희 에디터 (minhee@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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