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엑시지 S, 벌을 닮은 순수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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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엑시지 S, 벌을 닮은 순수 스포츠카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09.02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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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스포츠카를 꼽을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국의 스포츠카 로터스. 그 디자인과 가볍고도 독한 몸놀림이 마치 벌을 닮았다 

땀이 계속 흘렀다. 분명 에어컨을 켜둔 상태인데 말이다. 무거운 핸들과 클러치, 쿵쾅거리는 차체 때문일까 싶지만 눈에는 활력이 돌았다. 자극 있는 차를 원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건만, 오늘 제대로 걸렸다. 

영국에 대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기이한 행동을 뜻하는 영국 기행 모음이 있다. 음식을 좀 못한다거나, 벙커버스터 같은 꽤 흉악한 폭탄을 만든 역사들을 소개해뒀다. 오늘의 시승차도 마찬가지. 영국의 로터스가 만든 엑시지 S V6다. 차에서 모든 것을 덜어내고 가볍게 만들면 뭐든지 이길 수 있다는 사람들이 만든 차다.
 

이전부터 로터스의 디자인이 상당히 멋지다고 생각해왔는데, 실제로 만난 엑시지 S V6은 벌을 닮았다. 작은 차체에 세모나게 치켜뜬 헤드램프. 잘록한 가운데, 엔진을 담느라 커진 뒷부분까지. 그 비례가 절묘하다. 문을 열고 실내를 들여다보니 철제가 그대로 드러난 부분이 대다수다. 가벼움을 위주로 하는 차에 장식은 크게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도어트림 일부를 가죽으로 감쌌는데, 이는 프리미엄 패키지를 달았기 때문이다. 
 

앉기는 꽤 힘들다. 강성을 위한 욕조형 프레임을 사용했기에 문턱이 상당히 넓고 의자도 매우 낮다. 탑승 자세를 엉거주춤하게 취하다보니 요가를 하는 기분이다. 키 180cm의 성인 남성이 타고 내리기에는 만만치 않다. 더 크고 체격 좋은 영국인들도 탄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좁은 실내에서 다룰 것은 별로 없다. 몇 가지 버튼, 수동 기어 레버, 에어컨이 전부다. 너무 단순해 운전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약간 의아한 부분도 있다. 스티어링 조절이 불가능하고, 앞 유리창의 높이가 아주 낮다는 것. 정자세로 앉으면 지붕이 시야를 가릴 정도다. 그래도 쉽게 마음이 누그러진다. 불과 전 세대 로터스만 해도 창문을 손으로 돌려 내렸다. 이제는 파워 윈도 스위치까지는 달아준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키를 돌려 시동을 걸자 굉음과 함께 V6 3.5L 슈퍼차저 엔진이 깨어났다. 로터스의 엔진은 토요타에서 공급받고, 로터스가 손을 봐서 얹는 방식. 토요타 엔진을 쓰는 이유는 신뢰성 때문이다. 시승차인 엑시지 S V6은 시리즈 3. 처음으로 V6 엔진을 얹은 엑시지다. 기존에는 엘리스에도 달리는 직렬 4기통 엔진을 더욱 강력하게 매만져 얹었지만, 더 크고 강력한 엔진을 얹어 모델별 성격을 확실히 구분했다. 엔진 배기량당 출력 효율은 엘리스가 앞설지언정, 스포츠카의 세계에서는 효율이 전부가 아니다.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더 큰 엔진이 좋다. 
 

클러치를 밟는 순간, 헉 소리가 나왔다. 페달이 아주 무거워서다. 세밀한 조절이 가능하지만 막히는 도로에서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완전 기계식 스티어링이 체력을 시험한다. 파워 스티어링이 아니다. 유턴을 위해 제자리에서 돌리려니 상당히 힘이 들었다. 길 막히는 서울을 탈출하는 동안 힘을 쪽 뺐다. 저회전으로 달릴 때는 뒤에서 엔진이 앵앵거리는데, 마치 벌의 날갯소리 같다. 
 

막히는 시내를 벗어나면 달콤한 보상이 찾아온다. 도로를 공격하듯 속도를 높여 달렸다. 가속은 마치 점과 점을 잇듯 재빠르고, 등 뒤에서 엔진은 가속페달을 더 밟으라며 울부짖는다. 속도감이 아주 컸다. 1,150kg에 불과한 공차중량에 350마력의 힘을 더한 결과는 드라마틱하다. 주행에 필요 없는 대부분의 것을 걷어낸 차답게 움직임이 직설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차에서는 쉽사리 맛볼 수 없는 야성미다. 
 

회전수를 한껏 올린 상태에서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재빨리 바꾸고, 클러치를 떼는 순간, 수동변속기만이 안겨주는 적극적인 운전의 재미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코너를 앞두고서는 속도를 줄이며 오른발을 살짝 비틀어 힐앤토를 연달아 했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자동변속기라고 하더라도, 재미란 측면에서는 수동변속기가 주는 감각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서스펜션은 앞뒤 더블 위시본 구성에, 댐퍼는 빌스타인, 코일 스프링은 아이바흐의 것을 사용했다. 기우는 힘을 이용해 타이어를 노면에 눌러대지만, 위아래 움직이는 양이 생각보다 적었다. 노면의 충격을 그대로, 상태를 적극적으로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그러다보니 조금 피곤한 구석도 있다. 충격을 흡수하거나 거슬러내는 부분은 있지만, 운전자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만든 느낌이다. 
 

스티어링 또한 생동감이 있다. 손에 닿는 감각을 통해 노면의 상태와 차체의 거동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했다. 가속페달을 꾹 밟고 달릴 때 감각이 살짝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체의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앞바퀴를 누르는 힘이 줄어든 것. 타이어의 반응을 모두 알아차릴 수 있다면야 파워 스티어링을 포기할 가치가 있다. 
 

주행 모드를 레이스로 바꿨다. 가속페달의 반응이 빨라졌고, 차가 요동치듯 움직인다. 마치 살아 있는 느낌이다. 코너링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접지력. 타이어의 성능도 강하지만, 힘을 받아내고 버티는 차체의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가속페달을 떼거나,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는 코너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움직인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코너의 정점을 쐈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라인이 부푼다. 약간의 언더스티어를 내며 빠르게 직진을 시작한다. 전형적인 슬로우 인-패스트 아웃에 맞는 세팅이다.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멋지게 코너를 통과하기를 꿈꾼다면 실력이 필요하다. 접지력을 유지하는 한계점이 아주 높아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바퀴를 착 붙이고 침착하게 코너를 돌아나가기 때문. 속도를 한껏 높이고 하중을 몰아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진입했다. 가속페달을 밟는 정도로 코너에 진입하는 각도를 조절한다. 불안함은 없다, 차를 지배하고 있단 확신에 가득 찰 뿐. 
 

스포츠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다. 절대적인 속도를, 랩타임을 우선하는 차도 있고, 세련된 운전의 즐거움을 우선하는 차도 있다. 로터스는 날것 그대로의 운전에 가깝다. 빠르지만 그만큼 운전자를 몰아붙인다. 거칠고 불편한데다, 한계를 맛보고 싶다면 운전자가 차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하는 차다. 누구나 쉽게 탈 수는 없다. 허나 여기에 로터스의 의미와 묘미가 있다. 무게를 줄여 가속과 코너링 모두를 얻는 차 만들기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지는 못해도 마니아의 가슴을 훔치기에는 충분하다. 

간만에 운전이 주는 자극을 만끽했다. 그만큼 순식간에 몸이 지쳤다. 다시 시동을 켜니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질은 좋지 않지만 아무래도 좋다. 딱 지금 상황을 말해주는 노래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땡벌)” 

글 · 안민희 에디터 (minhee@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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