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사치품, 자동차와 시계 : 아우디 RS5 & 보베 스포츠스터 크로노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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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사치품, 자동차와 시계 : 아우디 RS5 & 보베 스포츠스터 크로노그래프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04.0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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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수백 번 회전하는 것. 자동차의 엔진과 시계의 심장인 무브먼트다. 둘 다 정밀한 부속의 회전 운동으로 힘을 얻어 움직인다. 그래서 자동차와 시계는 남자의 마음을 홀린다

자동차 마니아와 시계 마니아. 이 둘은 생각보다 가깝다. 복잡한 기계 구조에 경탄하는 이라면 둘 모두에 홀리기 마련이다. 엔진은 짝을 이룬 부품들의 조합에 지나지 않지만, 엔진 끝 떨려오는 진동을 느낄 때면 우린 엔진이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시계 또한 그렇다. 파르르 떨리는 머리카락 하나보다 얇은 스프링의 힘으로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소우주를 보는 것 같다.

시계는 남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품 중 하나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잠수부용 시계를 찬다면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 파일럿용 시계를 찬다면 하늘에 대한 동경이 있는 사람임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자동차라면? 모터스포츠와 랩타임이 시작된 이후 자동차와 시계는 서로 떼놓을 수 없는 단짝이 됐다. 모터스포츠 팬이 아니더라도 복잡한 기술의 조화와 엄격한 정확성을 공유하는 시계가 주는 매력은 충분하다.
 

평소에 나는 작은 오토매틱 시계를 찬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것이니 30년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 시계다. 하지만 차를 탈 때면 시계를 바꾼다. 패션처럼 자동차에 맞춰 시계를 바꾸는 재미가 있기 마련. 오프로드를 갈 때면 다기능 전자식 시계를, 고급 세단을 탈 때면 클래식한 디자인의 시계를 차는 식이다.

오늘만큼은 특별한 시계를 차야 했다. 온몸의 감각을 일깨워줄 진짜배기 고성능 머신을 만났기 때문. 바로 아우디 RS5. 울부짖는 8,250rpm에서 450마력을 뿜어내는 자연흡기 V8 4.2L 엔진의 매력이 가득한 차다. 터보차저로 상징되는 다운사이징 시대의 반항아. 고회전의 짜릿한 느낌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선택이다. 게다가 까탈스럽지도 않아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차다. 언제나 노면을 꽉 붙잡는 든든한 ‘콰트로’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동을 걸면 V8 엔진 특유의 웅얼거림이 들린다. 엔진회전수를 올리기 전까지는 꽤 조용하다. 먼 거리를 편하게 달릴 GT로의 쓰임새를 염두에 두었을까? 회전수를 올리기 전까지는 드라마가 시작되지 않는다. 엔진회전수를 낮춰 달리면 지극히 매끄럽게 느껴질 뿐이다. 천둥 같은 소리와 덜커덩거림을 기대했다면, 너무 조용하고 부드러워서 반신반의할 것이다.

가속페달을 꾹 밟았을 때 느껴지는 것은 엄청나게 매끈한 엔진의 회전감각. 어떤 거친 기분도 들지 않았다. 회전수가 순식간에 솟구치는데도 엔진의 숨결은 지극히 부드럽다. 정작 거칠어진 것은 내 숨결이었다. 조금의 주저도 없이 굉음과 함께 속도를 올린다. 속도계의 바늘은 어느새 끝에 붙을 기세다. 엄청난 속도다. 그런데 조금도 불안하지 않다. 수준 높게 마무리된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차체의 조화는 안정감만을 남겼다. GT와 스포츠카를 넘나드는 이유다.
 

거세게 코너에 뛰어들었다. 가속페달을 밟으며 궤적을 그린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더욱 앞머리를 코너 안쪽으로 들이민다. 그 움직임이 자연스럽다. 거칠게 몰아칠 때는 더욱 과격하게 코너를 파고드는데, 엔진회전수와 템포를 조절해가며 더욱 거세게 몰아붙일 가치를 일깨워준다. 더욱 빠르게, 더욱 매끄럽게 달리며 한계를 맛보라는 유혹이다.

차는 계속 달리라 유혹하지만, 힘이 부쳤다. 유혹에서 벗어날 겸 차를 세웠다. 그리고 풀어놓은 시계를 다시 찼다. 고민 끝에 고른 시계는 보베(BOVET)의 스포츠스터 크로노그래프. 아우디 RS5와 같은 소수를 위한 고성능 머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희소성과 만듦새다. 아우디의 고성능 모델 중에서도 최상에 속하는 RS의 생산량은 많지 않다. 어디까지나 소수의 사람을 상대하기 때문.
 

보베 또한 그렇다. 명품에도 가격과 수요의 차이가 존재한다. 약간의 타협을 통해 가격을 낮춰 여러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브랜드가 있는 반면, 생산성을 포기하고서라도 품질을 끌어올려 그 대가를 받는 브랜드가 있다. 보베는 1년에 2천 개 정도의 시계만 만든다. 온갖 정성을 들이는 대신, 생산량을 상당히 적게 유지하는 것이다. 정교한 만듦새 또한 인상적이다. 럭셔리 중의 럭셔리라고 하는 그들의 장인정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보베는 조개의 진주층을 이용한 다이얼을 쓰면서도 그 위에 에나멜로 정성껏 그림을 그린다. 진주층이 에나멜로 그림 그릴 때 가장 좋은 캔버스라는 이유에서다. 손으로 세공한 무브먼트의 화려함은 조각에 비교할 만하다. 물론 화려함만을 강조하진 않는다. 기술력 또한 뛰어나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기계식 계산기마냥 작동해 종을 울려 시간을 알려주는 ‘미닛 리피터’를 구현할 정도다.
 

스포츠스터 크로노그래프는 보베 라인업 중 가장 스포티한 시계. 스포츠카를 재해석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카본 다이얼 등 현대적 요소를 활용하면서도 그 디자인과 구성은 묘하게 클래식하다. 회중시계와 같은 고전적인 요소를 활용한 부분이 돋보이기 때문.

푸른색 모델도 있지만, 검은색 카본 다이얼이 인상적인 ‘SP0445-MA’를 찼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묵직한 존재감. 크기가 상당히 크다. 고무재질의 스트랩으로 단단히 묶어야 했다. 커다란 크기로 눈길을 끄는 요즘 시계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인 줄 알았지만, 전통을 따른 조합이었다.

이유인즉, 보베의 시계는 회중시계 또는 탁상시계로의 사용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다는 것. 2010년에 보베는 쉽게 시계의 쓰임새를 바꿀 수 있는 ‘아마데오 컨버터블’이라는 기술을 선보였다. 간편히 시곗줄을 분리해 회중시계 줄을 달면 회중시계가 된다. 뒷면의 백케이스를 펼치면 탁상시계로도 쓸 수 있다. 용두를 옆이 아닌 위에 달고 있는 이유다. 그리고 펼쳐서 탁상시계로 쓰는 백케이스는 보베가 1930년대에 선보인 기술로, 이를 계승하는 의미도 있다.
 

물결치는 모양의 초침에는 위트가 있다. 이는 보베 특유의 디자인 요소다. 둥글린 인덱스 숫자 디자인은 아르데코 방식이다. 아르데코는 1920~1930년대에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미술 양식으로 풍요로운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크로노그래프 카운터는 조개의 진주층을 사용한 것이다. 빛을 받을 때면 오묘하게 반짝거리는 색이 매력적이다. 이 모든 것이 합쳐 절로 럭셔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클래식과 현대의 조화. 이것이 아우디 RS5와 보베 스포츠스터 크로노그래프를 하나로 묶는 테마가 아닐까. 고전적인 자연흡기 엔진을 쓰면서도 한계에 가까운 기술을 더해 더욱 세련되고도 매끄러운 감각을 자랑하는 아우디. 그리고 고전적인 테마에 새로운 기술과 감각을 더한 보베의 조합은 괜찮아 보인다.
 

세련된 것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는 눈에만 보인다. 그러니 양의 탈을 쓴 야수라는 고성능 모델도 있고, 눈에 꽉 차는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자랑하는 시계도 있을 터이다. 그만큼 고매함을 뽐내는 것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보베 스포츠스터 크로노그래프의 가격은 거의 2천만원. 억대를 넘나들고 최대 3억원 근처까지 가는 보베의 가격에 비하면 합리적이라지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시계는 아니다.

RS5와 보베 스포츠스터 크로노그래프는 손에 닿을 듯 말 듯 열망을 부르는 남자의 물건이다. 다시 이들과 함께 달리고 싶었다. 이번에는 여유롭게, 아무 목적지 없이 달렸다. 날씨는 아직 춥지만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왠지 낭만적인 기분에 가득 찼다. 그래, 남자에게 자동차와 시계는 낭만을 부르는 친구다. 물론 내 아버지의 시계 또한 마찬가지고.
 

■ HISTORY OF BOVET
보베의 창립자는 스위스 태생의 시계 장인인 에두아르 보베(Edouard Bovet). 그는 1797년 스위스 뉴샤텔에서 시계 제작자 장-프레드릭 보베의 아들로 태어났다. 17세까지 예술과 시계를 배운 그는 18세가 되는 1814년 영국 런던으로 시계 유학을 떠난다. 1818년에 그는 영국과 중국의 교역이 이뤄지던 중국 광저우로 떠난다. 당시 그가 만든 시계 4점을 상당한 거액에 팔게 되었는데, 현재 가치로 비교하면 약 10억원에 달한다.

이후 그는 1822년, 영국 런던에 자신의 회사를 세운다. 중국의 최상위 시장을 노리기 위해서다. 보베가 중국시장을 두드린 첫 메이커는 아니었다. 이미 바쉐론 콘스탄틴이 초강세를 보이던 시점. 중국 북부는 바쉐론 콘스탄틴이, 남부는 보베가 강세를 보이는 형국이 됐다. 중국의 시계 제조 시점도 꽤 일렀지만, 품질이 아주 낮았다. 그래서 유럽산 시계가 빠르게 선망의 대상이 된 것.

하지만 보베에 위기가 닥쳤다.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으로, 양국의 무역금지조치가 내려진 것. 중요 시장이었던 중국에서 손을 쓸 수 없게 된 데다, 중국산 모조품들이 등장했다. 1849년에는 창업자 에두아르 보베가 52세로 사망, 결국 1888년에는 경영권을 넘긴다. 이후 보베는 점차 잊혀 갔다.

2001년, 보베의 부활이 시작됐다. 보베를 인수한 파스칼 라피(Pascal Raffy)가 그 중심. 그는 빠르게 보베를 추스르며 혁신을 이어나갔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무브먼트 회사 다미에 1738을 인수, 이어 SST를 인수해 무브먼트 독립 체제에 접어들었고, 신기술의 개발을 독려했다. 그의 지휘 아래 보베는 과거 이상의 명성을 자랑하는 예술적 시계 브랜드가 됐다.

글 · 안민희 에디터 (minhee@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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