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의 CEO가 밝히는 대담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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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의 CEO가 밝히는 대담한 계획
  • 스티브 크로플리
  • 승인 2015.02.1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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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는 라인업을 넓히고 판매를 늘리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마세라티 총수인 하랄트 베스터가 앞으로 진행될 일들을 털어놓았다

마세라티 공식 문서의 맨 위에는 대담하고 새로운 글귀가 쓰여 있다. 새롭게 활기를 되찾은 이 이탈리아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바가 표현되어 있는 그 글귀는 2018년까지 판매를 7만5천대로 다섯 배 끌어올리는 방법과 이유를 설명한다. 마세라티가 내세운 그 표현은 ‘평범함의 정반대’(The absolute opposite of ordinary)다.

하랄트 베스터(Harald Wester)의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그 표현이 그가 만든 여섯 모델로 구성된 마세라티 라인업은 물론, 지난 6년 동안 마세라티를 이끌어온 그와도 무척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가 차분한 이 엔지니어는 평범한 이탈리아 자동차업계 총수들이 만들었던 관습을 대부분 허물었기 때문이다.
 

베스터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독일 출신이다. 그는 실력 있는 기술자이면서 평생 정밀공학에 푹 빠져 살아왔다. 그는 골프, 폴로, 파사트 같은 주류 차종과는 거리가 먼 폭스바겐의 몇몇 핵심 콘셉트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 40대 초반이 되어 직장과 나라를 옮긴 그는 그 뒤로 13년 동안 피아트 그룹 승용차를 모든 차급과 가격대에서 더 개선되도록 도왔다. 그 덕분에 기술 부문 관리 책임자로 고속 승진하고 있다.

다른 여러 유능한 관리자들과 달리, 베스터는 이제는 FC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피아트 크라이슬러 그룹의 활발한 총수인 세르지오 마르키오네(Sergio Marchionne)로부터 꾸준히 존중과 지지를 받아왔다. 마르키오네는 마음 내키면 빠르고 가차 없이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베스터의 꾸준함과 믿음직한 자동차 생산 기법은 그의 영향력을 빠르게 키웠다. 2008년 8월에 마세라티에 자리를 잡은 뒤, 그는 아바르트(2009년)와 알파 로메오(2010년)를 모두 거느리게 되었다. 그는 이만하면 함께 경영할 만하다고 말한다.
 

베스터는 이제 마세라티에서 놀랄 만한 성공을 이야기할 때다. FCA가 현재의 440만대에서 2018년까지 생산에서 세계 6위에 해당하는 700만대로 늘리려는 판매목표에 미칠 영향은 아주 작겠지만, 마세라티의 올해 예상 판매량인 3만5천대는 이미 늘어난 기록이었던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이 될 것이다. 출시 예정인 레반테(Levante) SUV가 출시되면 판매량에 2만5천대 이상이 추가되어, 내년이면 5만대는 충분히 넘을 듯하다.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하면, 최소한 피아트 관점에서 7만5천대라는 목표는 비교적 안전하게 채울 수 있어 보인다.

그와 같은 성장을 하는 것이 베스터의 생각은 아니다. 56세에 작은 체구를 지닌 그는 친근한 얼굴, 미소 띤 눈매, 세련된 유머감각, 빠르면서도 섬세한 응대가 돋보인다. 그는 큰 목소리와 과장된 허세보다는 듣는 이의 인식에 지성적인 방법으로 호소함으로써 존경을 얻는다. 동료들 사이에서 그에 관한 평판을 들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유럽 출신의 또래 한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랄트는 아주 영리한 친구에요. 그는 좋은 차를 빨리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 그는 문제가 불거졌을 때 차분하면서 냉철하지요. 요즘 같은 시기에는 그런 점이 중요합니다.”

베스터가 그런 평가의 마지막 부분에 불쾌해하지는 않으리라고 짐작하기는 하지만, 이전에 매우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던 마세라티와 알파 로메오가 앞으로 어떤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기사에 알맞게 훨씬 더 형식적으로 뚜렷한 생각의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브랜드가 상징하는 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아이디어를 갖는 것이 핵심입니다. 또한 브랜드의 입지와 다른 브랜드와의 상대적 가격구조도 중요하죠. 그 부분에서 겹치는 점이 많지 않아야 합니다. 모두가 모든 일을 조금씩 다 하지는 않아야겠죠.”

이쯤에서 나는 최소 네 개 브랜드가 ‘모든 일을 조금씩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폭스바겐 그룹을 비판하는 냉소나 반응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베스터는 이전 인터뷰 때 그의 성장에 중요한 기술을 얻게 해준 회사에 대단한 존경심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어쨌든 그는 마세라티, 알파 로메오, 아바르트로 이루어진 팀에서는 일을 다르게 진행할 것이다.
 

그 점이 그가 만든 다섯 차급의 든든한 여섯 차종으로 이루어진 마세라티 라인업이 다른 어느 브랜드와도 구조를 공유하지 않는 것과 한때 마세라티가 제공한 파워트레인 구성요소를 사용할 것이 확실해 보였던 알파 로메오가 이제는 그러지 않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 대신, 마세라티는 페라리가 마라넬로에서 생산하는 V6 터보 및 V8 엔진을 독자적으로 튜닝해 사용함으로써 고급스러움을 더 강조할 것이다. 베스터가 자신 있게 이야기하듯, 그 엔진들은 이전에 페라리의 F1 엔진 설계 책임자였던 파올로 마르티넬리(Paolo Martinelli)가 작업한 것들이다.

사무실 바로 바깥에서는 알피에리(Alfieri) 콘셉트 카가 수천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알피에리는 다섯 명의 마세라티 창업자 중 가장 창의적이었던 인물(마세라티 안내문에는 ‘마세라티는 네 명의 기술자와 한 명의 예술가로 이루어진 다섯 형제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되어 있다)의 이름이다. 파리모터쇼에 공개된 것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디자인 제안용 모형이지만, 이 차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3월에 제네바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되었을 때에는 대단한 호평을 얻었고 마세라티 사람들의 반응은 이 모습을 한 양산차가 나오리라는 눈치였다.
 

알피에리의 데뷔와 함께 2018년까지 완성될 여섯 모델 구성의 라인업 제안은 절반이 채워진다. 지난해 데뷔해 럭셔리 4도어 세단을 프리미엄 시장의 대세에 가깝게 이끌면서 앞으로 나올 모델들에 쓰일 최신 차체 구조와 구동계를 소개한 최신형 콰트로포르테는 대대적인 변신의 시작이었다. 뒤를 이은 기블리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BMW 5 시리즈 소비자의 선택을 자청했다(또한 마세라티 100년 역사에 처음으로 디젤 엔진을 얹고 나왔다).

라인업에서 마지막으로 교체될 예정인 그란 투리스모와 그란 카브리오도 아직 구매할 수 있다. 다음에 나올 새 차는 레반테 SUV다. 기블리의 하체를 활용하는 레반테는 마세라티가 2018년에 나올 예정인 최고가 쿠페 모델을 제외한 모든 모델에 쓰려고 하는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이 첫선을 보이는 차이기도 하다.
 

레반테 다음에는 같은 구조의 짧은 휠베이스 버전으로 만들어질 알피에리로, 2016년 말에 나올 듯하다. 쿠페 버전에 이어 6개월에서 12개월 뒤에는 카브리오가 나온다. 2+2 좌석구성을 제안한 이 차들은 재규어 F-타입이 꽤 성공을 거둔 시장에서 경쟁하게 된다.

그란 투리스모 후속 모델은 2018년형 모델이 나오는 시기에 맞춰 나옴으로써 여섯 모델 구성의 라인업을 완성한다. 뒷바퀴굴림 모델만 나오며 페라리 V8 트윈터보 엔진을 560마력 이상으로 손질한 버전이 올라간다. 지금 상태에서는 컨버터블 버전 계획이 없다. 마세라티는 10만 파운드(약 1억7천440만원)가 넘는 컨버터블의 수요가 그보다 저렴한 가격대의 것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워, 경쟁력 높은 분야에 집중하려고 한다.
 

베스터는 ‘마세라티 브랜드의 순수함’에 관해 45분에 걸쳐 우리와 많은 이야기를 했고, 그 슬로건을 이루는 과정을 잘 해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페라리의 것을 바탕으로 만든 파워트레인(변속 패들이 있는 ZF 8단 자동변속기와 결합될 예정), 독특한 주행 특성, 이탈리아 스타일의 수제 인테리어(다만 철제 및 알루미늄제 차체와 서스펜션은 상당히 자동화된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로렌초 라마초티(Lorenzo Ramaciotti)가 제안하고 다듬은 독특한 디자인 철학과 같은 중요한 요소들을 언급했다. 라마초티는 과거에 디자인 업체인 피닌파리나(Pininfarina)를 이끌며 오리지널 그란 투리스모 쿠페를 디자인했고 그 뒤로 현대적인 마세라티에 큰 영향을 주었다.

베스터는 장래 마세라티의 라이벌을 ‘모든 거물 브랜드’라 표현한다.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BMW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들이 그에 해당되고, 그들은 마세라티 판매량이 예측 가능한 정점인 7만5천대에 이른 뒤에도 럭셔리 카 시장에서 줄곧 더 많은 판매를 이어갈 것이다. 이전보다 판매량은 훨씬 더 많지만, 이런 여건이 마세라티를 나머지 브랜드보다 더 각별하게 만들리라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베스터와의 인터뷰를 끝낼 시간이 다가오면서, 나는 훨씬 더 큰 규모의 경제를 활용할 수 있는 회사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세라티의 경제적 생산기법을 알고 싶어졌다. 그는 마세라티가 살아남으리라고 믿으며, 실현 가능한 일임을 계산을 통해 입증했다. “모델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고 공유하는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잘 경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판매 목표는 달성해야겠죠” 베스터의 말이다.

판매를 늘리고 특히 사업을 이어나가기 위한 열쇠를 쥐고 있는 판매망 확충은 잘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마세라티 딜러는 230개였다. 그 숫자는 내년 말까지 450개가 될 예정이다. 베스터는 판매가 늘어나면 마세라티만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이 좋다며, 새 차를 구매하며 고객이 내놓은 차를 판매하는 ‘성숙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한다. 현재 가장 큰 시장은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지만, 중국에서는 마세라티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베스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중국은 많은 새로운 것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단히 큰 시장인 것은 분명하고 잠재력도 크지만, 다른 지역과는 소비자가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기블리보다 콰트로포르테가 많이 팔리고, 소비자의 40%가 여성이고, 평균 구매 연령이 40세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아주 독특하지요.”

정리하자면, 베스터는 신세대 마세라티에 매료되고 있는 소비자들의 신뢰에 고무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애호가들이에요. 운전하기를 좋아하고, 이런 차를 소유하는 것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블로그들을 보면 우리가 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마세라티 : 탄생 후 100년의 역사

1914 마세라티 설립
알피에리 마세라티(Alfieri Maserati)가 볼로냐에 독립 자동차 공장(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 SA)을 세워, 마세라티 오 형제 중 세 명이 운영했다. 그가 운영하던 스파크 플러그 회사도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1920 삼지창 엠블럼 도입
알피에리 마세라티는 예술가인 그의 형제 마리오(Mario Maserati)에게 상표 디자인을 맡겼다. 마리오는 볼로냐의 마지오레 광장(Piazza Maggiore)에 있는 유명한 넵튠상을 보고 삼지창을 선택했다.
 

1930 시상대를 휩쓸다
트리폴리 그랑프리에서 마세라티가 국제 경주 첫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도 시상대에 오르며 압도적인 우세를 과시했다. 마세라티 차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도 늘어났다.
 

1937 어려움에 처한 마세라티
독일 회사들의 성적이 점점 좋아지며 마세라티가 어렵게 차지한 레이스에서의 우위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1932년에 알피에리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마세라티 형제들은 사업가 아돌포 오르시(Adolfo Orsi)와 제휴를 맺었다.
 

1940 새로운 본사에서 전기차 생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마세라티는 모데나로 이전했다. 전쟁 때문에 승용차 생산이 중단되면서, 사업은 마세라티가 스파크 플러그 생산과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마세라티가 만든 전기차용 배터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1946 첫 GT인 A6의 등장
마세라티가 제대로 만든 첫 일반도로용 GT인 A6을 내놓았다. A6은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멋진 차였다. A는 창업자 알피에리의 이름 머리글자다. 이 차를 내놓은 직후, 남은 형제들은 회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1957 판지오, 8경기에서 네 차례 우승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가 마세라티로 복귀하기 위해 페라리를 등졌다. 그는 아르헨티나, 모나코, 프랑스, 독일 그랑프리에서 우승해 개인 통산 다섯 번째이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드라이버 세계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다. 마세라티 F1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다.
 

1963~1981 승용차의 황금기
큰 변화와 더불어 미스트랄(Mistral)과 콰트로포르테(Quattroporte)가 선보였다. 오르시 가족은 회사를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Alessandro de Tomaso)에게 매각했다. 미드엔진인 보라(Bora)는 구매자들을 놀라게 했고, 이어서 신세대 모델인 비투르보(Biturbo)가 판매에서 꽤 성공을 거두었다.
 

1993 페라리와 협력관계로
마세라티가 피아트 그룹에 인수되었다. 이때 이미 페라리 총수였던 루카 디 몬테제몰로(Luca di Montezemolo)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브랜드 사이의 협력 강화를 위해 많은 일이 이루어졌다. 인수 절차는 1999년에 마무리되었다.
 

1997 미래가 시작되다
현대화 작업을 위해 치로 메노티(Ciro Menotti) 공장에서의 생산이 중단되었다. 마세라티 근로자들은 6개월 동안 마라넬로로 일터를 옮겼다가 복귀해, 최근에 대량생산을 위한 준비가 될 때까지 공장을 성공적으로 가동했다.

글 · 스티브 크로플리(Steve Cropley)
사진 · 룩 레이시(Luc Lac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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