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들다. 포르쉐 뉴 카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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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나들다. 포르쉐 뉴 카이엔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01.2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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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차가 더 편안하고, 더 효율적이란 이야기는 당연하다. 하지만 새로워진 카이엔은 무지막지한 박력과 속도, 편안함과 효율을 동시에 아울렀다

'벌써 4년이 지났나?’ 포르쉐 카이엔의 페이스리프트 소식을 듣고 든 생각이다.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매력을 내뿜는 디자인이기에, 시간을 의식하지 못한 탓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만큼 디자인 완성도가 높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 서킷에서 만났던 카이엔의 뛰어난 운전 질감을, 도대체 어떻게 바꿀까란 기대도 들었다. 포르쉐는 기대를 꺾은 적이 없다.

마치 오랜만에 옛 연인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더 예뻐진 건 확실한데,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프로필 사진 이상이다. 가까이 다가서니 변한 부분이 보인다. 차체를 휘감은 선들은 더욱 예리해졌다. 뚜렷하고 분명하게 기능을 드러낸다. 보닛은 더 넓혔고, 가운데 공기 흡입구는 기존 모델보다 작아졌다. 양쪽의 공기 흡입구는 더 넓어졌다. 스포티한 모습을 위해서다. 공기 흡입구 안에 숨은 칸막이는 속도와 엔진 온도에 따라 열고 닫히며 엔진 온도를 적당한 선에서 유지하고, 빠르게 달릴 때는 공기저항을 낮춘다.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면 더 많은 바뀐 점을 찾을 수 있다. 옆면을 지르는 가로 굴절선을 바꿔 조금 더 낮아보이게 만들었고, 테일램프 디자인도 바꿔 더 날카로운 뒷모습을 자아냈다. 옆으로 늘리고 위아래 폭을 줄였는데, 이전의 둥근 디자인보다 더 디자인 테마에 어울리는 느낌이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면 입체적으로 빛나는데 보기에도 만족스럽고 시인성이 좋다.
 

포르쉐를 살 때 실내를 고른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단 한 대의 차를 만드는 일 중 하나다. 그래서 ‘나만의 포르쉐 만들기’ 서비스에서는 늘 고민한다. 취향을 살릴 기회다. 일본의 경우 흰색 차체에 붉은색 실내의 조합을, 중국의 경우 검은색 차체에 붉은색 실내의 조합을 선호한다고 한다. 시승차는 검은색 차체에, 붉은색 가죽과 검은색 가죽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어두운 색 나무 트림과 맞물리니 고전적인 느낌도 든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효율이다. 이를 위해 카이엔 라인업에 실리는 엔진과 변속기를 모두 재조정해, 성능과 효율성 모두 높였다. 시승차인 카이엔 S 디젤의 경우 엔진을 미세하게 조정해 최고출력은 385마력으로 올랐다. 3마력만 늘었다. 그러나 아쉬워할 이유는 없다. 변속기를 바꿔 0→시속 100km 가속시간을 0.4초나 줄여 5.4초에 묶었다. 이는 휘발유 엔진의 카이엔 S보다 0.1초 빠르다. 디젤의 반란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복합연비는 10.1km/L나 된다. 커다란 엔진과 무게를 생각하면 상당히 뛰어나다. 게다가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를 더하면 0→시속 100km 가속시간이 0.1초 더 줄어든다. 옵션 가격은 110만원이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옵션 중 하나다. 대시보드 위를 차지한 시계만 봐도 기분이 좋지 않을까.
 

카이엔 S 디젤의 V8 4.2L 트윈 터보 디젤 엔진은 정말 마음에 든다. V8 엔진 특유의 힘이 가득한 고동감이 느껴진다.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육중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최대토크는 86.7kg·m로 2,000rpm부터 시작된다지만, 그전부터 힘은 넘치고도 남는다.

엔진회전수를 낮게 유지하며 엔진의 회전감각을 만끽했다. 이렇게 매끄러운 감각의 V8 디젤 엔진이라니… 아우디와 같은 디젤 엔진을 사용한다는 것은 포르쉐에게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첫째로, 프리미엄 브랜드 중 이토록 고급스러운 감각의 V8 디젤 엔진을 만드는 곳은 아우디뿐이다. 둘째로, 포르쉐만의 감각을 더했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조용했던 엔진이 약 3,200rpm을 넘기자 울부짖기 시작한다.
 

수동 모드로 바꿔 엔진을 더욱 다그쳤다. 포르쉐는 엔진 회전 한계가 4,600rpm이라지만, 변속을 미루면 4,750rpm까지 회전하고 그제야 연료를 차단한다. 하지만 코너에서 회전수를 조절하며 정교하게 달릴 것이 아니라면, 자동 모드로 두고 달리는 것이 낫겠다. 가장 효율적인 구간에서 변속을 이으며 빠르게 가속을 잇기 때문이다. 그리고 4,000rpm을 넘기면 가속감이 약간 옅어진다.

가속을 멈추고 시속 100km로 속도를 유지했다. 변속기는 8단에 물렸고, 엔진회전수는 1,400rpm을 유지했다. 시속 110km로 달릴 때 엔진회전수는 1,500rpm이다. 이대로 순항을 지속했다. 가속페달을 떼면 변속기를 떼고 타력 주행에 들어간다. 조금이라도 더 연비를 벌기 위해 코스팅 기술이 적용됐단다. 허나 가속페달의 유혹을 벗어나긴 어렵다.
 

서스펜션의 움직임은 시종일관 자연스럽다. 허나 조금 더 안정적으로 빨리 달리길 원한다면 버튼을 눌러 서스펜션의 움직임을 바꿀 수 있다. 모드는 컴포트, 스포트, 스포트 플러스의 3가지가 있다. 시승차는 공기를 채운 에어서스펜션이 적용되지 않았다. 대신 유압식 더블 튜브 가스 댐퍼로 서스펜션의 반발력을 조절해 성향을 바꾼다. 주행 모드 선택과도 연동된다.

컴포트 모드는 편안함을 위한 것이다. 노면 충격에 흔들리는 폭이 제법 있다. 코너를 탈 때도 조금 더 기운다. 서스펜션의 위아래 움직임이 커져서다. 대신 노면의 충격을 삼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다분히 북미시장을 고려한 세팅이다. 허나 아쉬워하지 말라. 포르쉐에 기대하는 수준 높은 성능은 그대로다. 충격은 부드럽게 삼키되, 허둥대지 않는다.
 

스포트 모드는 조금 더 단단해지지만, 개인적인 취향에는 딱 맞았다. 노면의 충격은 여전히 잘 흡수하면서도 흔들리는 폭이나 코너에서 기우는 정도가 줄어들었다. 탄탄하게 도로를 누르며 달리면서도, 매끄러운 승차감은 유지한 상태다.

빠르게 달릴 때는 스포트 플러스 모드를 찾게 됐다. 흔들림이 확연히 준다. 조금만 더 예민하게 굴면 도로의 단차를 점자책 읽듯 해설할 기세다. 그런데 여전히 편안하다. 어떤 차도 진짜배기 스포츠카로 바꿔버리는 포르쉐지만, 가족용 차로 쓰이는 SUV의 특성을 생각하면 편안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편안함에 빠지니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생각을 뿌리치듯 더 빠르게 달릴 생각으로 스포츠 플러스 버튼을 눌렀다. 엔진은 더 날카롭게 바뀌었고, 차체 또한 더 단단하게, 여유를 두지 않고 꽉 여민다. 브레이크 페달과 가속페달을 같이 밟으면, 퍼포먼스 모드로 바뀌어 100m 달리기를 준비하는 육상 선수처럼 온몸에 힘을 꽉 줄 준비를 마친다. 숨을 참고 가속을 시작했다. 머릿속 온갖 미련을 뿌리치듯 달린다. 공차중량 2,365kg의 괴물이 단 5.3초 만에 시속 100km를 넘긴다. 울부짖는 엔진과 엄청난 토크감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허나 지극히 단단한 차체는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가속을 잇는다. 가속감이 옅어졌다고 느낄 때는 이미 아득한 속도다. 계기판에 쓰인 어떤 숫자든 마음에 정하고 가속해보라. 그 숫자에 도달하기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카이엔 S 디젤의 최고속도는 한계가 아니다. 그저 안전을 위해 스스로 제한을 걸어둔 벽일 뿐이다.
 

제동력 또한 상당히 뛰어났다. 앞 브레이크 디스크는 360mm 직경에 6개 피스톤으로, 뒤 브레이크 디스크는 330mm 직경에 4개 피스톤으로 순식간에 차를 붙들어 세운다. 제동력은 균일하게 상승한다. 가볍게 발을 갖다 대는 정도로는 서지 않는다. 세밀한 조절을 위해서다. 힘주어 꽉 밟으면 한순간에 멈춰 설듯 속도를 줄인다. 시험을 위해 속도를 한껏 올리고 브레이크 페달을 꽉 밟았다. 순식간에 멈춰서는 바람에 가벼운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포장도로에서의 뛰어난 성능 때문에, 험로를 달리는 성능은 염두에 두지 않을지 모른다. 허나 오프로드에서도 수준 높은 성능을 보인다. 이전에 카이엔을 오프로드 코스에서 만난 적 있다. 오프로드를 위한 옵션으로 무장했고, 가파르고 미끄러운 언덕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통과해냈다. 그 즐거운 기억이 남았기에, 더 좋은 사진을 찍어보려 오프로드로 향했다.
 

온통 모래로 채운 험로는 만만해보였다. 허나 이곳이 모래지옥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속페달을 밟으니 더욱 아래로 파고든다. 포기할까 했다. 하지만 차의 능력을 믿는다. 레버를 오프로드로 두 번 밀어 센터 디퍼렌셜 록을 잠갔다. 오프로드 옵션을 추가로 더 달면 차고도 에어서스펜션으로 한껏 올리고 접지력을 살릴 수 있지만, 시승차에는 달려 있지 않았기에 조금은 조마조마했다. 천천히 회전수를 올렸다. 헛돌던 바퀴가 어느새 접지력을 찾아 성큼성큼 빠져나온다. 대부분의 시간을 포장도로에서 보내겠지만, 험로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언제든 든든하다.
 

다재다능한 SUV 중에서도 독보적인 운전 성능을 갖춘 차. 이것이 카이엔의 존재 의미다. 수많은 사람들을 홀린 이유다. 그리고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카이엔은 더욱 능수능란해졌다. 조금 더 편안해졌으면서도, 포르쉐에 기대하는 엄청난 도로 장악력은 여전하다. 스포츠카와 SUV의 경계를 상황에 따라 마음껏 넘나든다. 이는 다른 SUV와 카이엔을 나눌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 아닐지.
 

카이엔 라인업 중에 어떤 모델을 골라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허나 카이엔 S 디젤에 푹 빠져버렸다. V6 엔진은 조금 더 경제적이라지만, V8 엔진만의 매력이 있다. 넘치는 토크와 그 특유의 고동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유일하게 걸리는 것이라면 쉽게 손에 닿지 않는 가격일 것이다. 그런데 그 가격마저도 이해가 되려 한다. 1억을 쉽게 넘기는 차에 가격 대 성능을 논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머리와 마음 모두 이 가격이면 괜찮다고 판단을 하게 만든다.

운전을 즐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달렸다. 이토록 여유롭게 초고속 주행을 해내는 SUV는 흔치 않다. 어떤 불안함 없이, 자연스럽게 달리면서, 거침과 부드러움 사이를 마음껏 넘나든다. 코너를 향해 돌진하고, 부드럽게 빠져나와 다시 엄청난 가속을 시작한다. 어느 길이던 의심과 불편은 없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순간 운전은 스포츠가 된다.

글 · 안민희 에디터
사진 ·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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