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당천, BMW 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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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당천, BMW M3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4.12.1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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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의 레이싱 혈통을 물려받은 M3이 터보차저를 단 세단으로 나왔다

시승차를 받기 전날 밤, 오랜만에 플레이스테이션 3의 전원을 켰다. ‘그란 투리스모 6’을 구동하기 위해서다. 한때는 매일같이 즐긴 게임이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았나보다. 시스템 업데이트와 게임 업데이트를 모두 마치는 데만 수 시간이 걸렸다.

인내심을 시험하는 오랜 시간 끝에 마침내 게임이 구동됐다. 메뉴 화면이 뜨자마자 BMW M4 쿠페를 선택해 곧장 뉘르부르크링 24시 코스를 수 바퀴 돌았다. 그렇게 나름의 의식을 치르고 다음날 M3을 만났다.
 

2세대와 4세대 M3에 세단 모델이 있었지만, M3 세단이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 M3은 세단 모델만 지칭한다. 쿠페와 컨버터블은 M4가 됐다. M3은 BMW의 레이싱 혈통과 스포츠 성향을 대표하는 아이콘 같은 존재다. 과연 신형 F80 M3이 홀로 M3 배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M4에 비해 특별함은 덜하다는 게 첫인상. 과격한 에어로파츠를 두르고, 앞뒤 펜더는 한껏 부풀어 있으며, 영롱한 무늬의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으로 지붕을 덮었지만, 3시리즈 세단을 모체로 한 만큼 얼핏 보면 영락없는 3시리즈 세단이다. 물론 자동차 마니아들은 500m 떨어진 곳에서도 한눈에 M3임을 알아보겠지만….
 

실내는 앞뒤에 헤드레스트 일체형 전용 시트가 들어갔고, M시리즈만의 기어노브가 달렸지만, 전체적으로 익숙한 전경이다. 국내사양 M3은 대시보드 상·하단과 도어트림 상단까지 스티치가 들어간 가죽으로 덮는 풀 레더(Full Leather) 옵션 대신, 일반 3시리즈와 같은 익스텐디드 레더(Extended Leather) 옵션이 적용된 점도 특별한 인상을 줄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대신 다코타(Dakota) 가죽으로 싸맨 일반 3시리즈와 달리, M3에는 BMW의 최상급 가죽인 메리노(Merino) 가죽을 썼다. 다코타에 비해 결이 부드럽고 얇은 메리노는 관리하기가 몇 배나 까다롭지만, 고급스러움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금속(또는 금속을 흉내 낸) 장식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무뚝뚝해 보였던 이전 M3에 비해 한층 화려하고 윤택한 분위기다.
 

시동 버튼을 누르려는데 그 위에 오토 스타트-스톱 버튼이 있다. 일반 3시리즈와 동일한 부품이다. 고성능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는 M3도 오토 스타트-스톱 기능으로 연비를 챙기고 환경을 생각하는 시대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짧게 숨을 토해낸다. 박력 있는 사자후를 예상했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 하지만 지하주차장에서 민감한 경보기가 달린 주변의 차를 깨울 정도는 된다. 이전 세대들과 비교해 최신형 M3의 결정적인 변화는 엔진에 있다. 내년이면 탄생 30주년이 되는 M3 역사상 처음으로 터보차저가 들어간 것. 이전 세대의 V8 4.0L 자연흡기 엔진은 직렬 6기통 3.0L 트윈터보 엔진으로 대체됐다.
 

신형 M3의 S55B30 엔진은 최고출력 431마력, 최대토크 56.1kg·m을 발휘한다. 실린더를 2개 줄이고, 배기량을 1,000cc 남짓 줄였지만 성능은 오히려 향상됐다. 이전보다 자그마치 37.5%나 높아진 토크 수치도 놀랍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극적으로 확장된 파워밴드다.

1,850~5,500rpm에서 최대토크, 바로 이어 5,500~ 7,300rpm에서 최고출력을 낸다. 이론상 1,850 ~7,300 rpm에 걸쳐 최고성능이 발휘되는 것. 변속기는 이전과 같은 7단 듀얼클러치 M DCT다. 이론공부는 이쯤에서 끝내고, 직접 달리기 실력을 확인할 차례다.
 

시승 초반 온 신경은 신형 터보 엔진의 반응성에 집중됐다. 고백하자면, 전통처럼 고집하던 고회전형 자연흡기 엔진을 포기한 것에 대한 반감으로 어떻게든 단점을 찾아보려는 요량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단점을 찾으려는 시도가 쓸데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엔진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회전은 빨랐다. 가속페달에 올려놓은 오른발에 약간 힘을 준 저회전부터 최대토크를 내지만, 힘을 우악스럽게 쏟아내지는 않는다. 물론 동력을 뒷바퀴로만 전달하여 작은 차를 움직이기에는 넘치는 힘이다. 시속 몇 km로 달리고 있든 가속페달을 바닥에 붙이는 순간, 계기판의 DSC(다이내믹 스태빌리티 컨트롤) 경고등이 요란하게 점멸하고, 꽁무니를 흔들며 앞으로 튀어나간다.
 

M3의 마법은 힘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다. 가속페달을 꾹 밟은 뒤 엔진이 반응하기까지의 찰나의 공백은 터보래그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전자식 드로틀 탓으로 추측된다. 이 엔진… 바이에른 엔진 제작소(Bayerische Motoren Werke)라는 회사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마스터피스다.

M3 개발진은 훌륭한 하드웨어와 함께 영리한 소프트웨어도 준비해뒀다. 기어노브 주변에는 자세안정장치, 엔진, 서스펜션, 스티어링, 변속 프로그램을 제어할 수 있는 버튼들이 나열돼 있다. 각각 세 가지 모드를 지원한다. 자그마치 총 243가지 조합이 가능한 셈.
 

평소 선호하는 조합 2개를 일종의 프리셋 기능인 M 드라이브에 저장해둘 수 있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M 버튼을 누르면 미리 저장된 M 드라이브로 단번에 설정이 바뀐다. 시승 기간 중 M 드라이브1(M1)에는 가장 과격한 설정, M 드라이브2(M2)에는 가장 부드러운 설정을 저장해두고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그 차이는 극적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M2 설정에서는 320d보다 승차감이 안락했다. 특히, 컴포트 모드에서 탄탄함을 유지하며 자잘한 충격을 걸러주는 절묘한 감쇠력이 일품. 드로틀 반응은 답답할 정도로 느려졌다. 엔진 반응을 이피션트(Efficient·최적 연비 페달 반응)로 설정해둔 탓이다.
 

나긋나긋했던 M3은 모든 설정을 스포트 플러스로 설정해둔 M1 버튼을 누르는 순간 양의 탈을 벗어던지고 늑대로 돌변했다. 구동계는 한껏 날카로워지고, 하체는 꽉 조여져 막강한 전투력을 보여주며 황홀한 일체감을 선사했다. 스티어링은 아주 정확하고, 균형 감각이 매우 뛰어나며, 전자식 디퍼렌셜은 제 역할을 해냈다. 이번 M3에 처음 들어간 전자식 스티어링 휠은 정확하고 무게가 적당하지만, 피드백은 약간 아쉽다.

MDM(M 다이내믹 모드)을 활성화시키면 DSC는 뒷바퀴가 어느 정도 미끄러지는 것을 허용해 운전자에게 조종의 여지를 남겨두지만,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는다. M DCT는 론치 컨트롤 기능을 지원한다.
 

DSC를 완전히 해제하고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동시에 힘껏 밟으면, 계기판 오른쪽 아래 체커기 그림이 뜨고 엔진회전수는 3,000rpm에 고정된다. 그 상태에서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면 탕! 한껏 당겨진 활시위를 떠나는 화살처럼 튕겨나간다. M3의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4.1초. 문 4개와 넓은 트렁크를 갖추고도 포르쉐 911 카레라 4S보다 0.2초 빠르다. 1천 명의 적을 혼자 당해낼 정도로 무예가 뛰어난 한 사람의 기병, 일기당천(一騎當千)이다.

과급기로 인한 반응성 저하를 우려했지만 기우였고, 문제는 엉뚱한 데 있었다. 7,600rpm까지 돌아가는 엔진이지만, 저회전에서 충분한 힘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고회전까지 몰아붙일 이유가 없다는 것. 회전한계까지 활력을 잃지는 않지만, 너무 일찍 절정에 도달해버려 드라마가 부족하다. 단점 아닌 단점이다. 고회전으로 치솟으며 울부짖던 옛 M3의 엔진은 말 그대로 옛것이 되어버렸다.
 

또 한 가지 심각한 결점은 사운드다. 엔진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비디오게임 같은 인공적인 사운드는 M3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V8 엔진의 고동을 표현한 듯한 음색인데, 걸걸한 디젤 엔진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음색보다 이질감이다. 창문을 열고 달리면, 밖에서 들리는 소리와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서로 다르다. BMW라면 이것보다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카랑카랑한 소리를 냈던 과거의 ‘실키 식스’ 사운드가 그립다.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의 시대가 저무는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별것 아닌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BMW M의 최신작인 F80 M3은 대단한 자동차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F80 M3이 홀로 M3 배지의 무게를 감당하고, M3의 새 미래를 밝히는 횃불을 들 자격이 있을까? 물론이다.

글 · 임재현 에디터 
사진 · 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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