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루이비통, 그리고 위대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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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루이비통, 그리고 위대한 여정
  • 임재현
  • 승인 2014.08.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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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루이비통은 새로운 운송수단인 자동차의 출현에 맞춰 자동차용 여행 가방을 제작한 후, 지속적으로 자동차업계와 긴밀한 인연을 맺어 왔다. 오늘날에도 루이비통과 자동차 산업은 유쾌하고 세련된 경험을 실어 나르고 이동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인피니티는 2009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인피니티 브랜드 탄생 20주년을 기념하는 콘셉트 카 에센스(Essence)를 공개했다. 440마력의 V6 3.7L 트윈터보 휘발유 엔진과 160마력의 전기모터의 조합으로 시스템 출력 600마력을 발휘하는 고성능 고급 쿠페였다. 비록 양산화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에센스가 제시한 새로운 디자인의 정수는 QX60, Q50 등 현재의 인피니티 제품에 녹아들어 있다.
 

에센스는 인체와 파도의 곡선 등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역동적인 우아함’(Dynamic Adeyaka)을 표현한 유체역학적인 조형미와 함께 트렁크에 실린 가방도 주목받았다. 에센스의 트렁크 형태에 딱 들어맞는 3개의 가방은 프랑스의 고급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이 에센스만을 위해 만든 맞춤형 여행용 가방이었다. 인피니티는 루이비통 가방을 위해 전동식으로 작동하는 트렁크와 슬라이딩 방식의 바닥을 달았고, 루이비통은 인피니티의 디자인 철학과 에센스의 형태에 맞춰 가방을 유선형으로 만들었다.
 

인피니티에 이어 BMW는 지난 3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i8 전용 루이비통 가방 세트를 선보였다. 여행용 가방 ‘Weekender GM i8’ 2종과 서류가방 ‘Business Case i8’ 1개, 의류용 가방 ‘Garment Bag i8’ 1개 등 총 4개의 가방으로 구성된 세트는 i8의 트렁크와 뒷좌석에 딱 들어맞아 내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맞춤 제작됐다.

루이비통 시그니처 중 하나인 흑연색 체크무늬 ‘다미에 그라파이트’(Damier Graphite)는 i8의 차체에 쓰인 탄소섬유 소재를 연상시킨다. 루이비통 로고를 레이저로 새겼으며 BMW i 브랜드 색상인 ‘블랙’과 ‘일렉트릭 블루’ 색상으로 안감을 만들었다.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 BMW 그룹 디자인총괄 부사장은 “BMW i8에 사용한 혁신적 소재인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은 BMW의 지능형 경량구조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다”며, “이번 콜라보레이션은 혁신에 대한 두 브랜드의 해석과 미적 감각, 경량 디자인에 대한 신념 등을 공유한 뜻 깊은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디자인 실험으로 끝난 에센스 전용 가방과 달리, i8 전용 가방 세트는 지난 4월 1일부터 뮌헨, 밀라노, 런던, 파리, 모스크바, 두바이,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전 세계 8개 루이비통 매장을 통해 주문 구매가 가능하다.

인피니티와 루이비통, BMW와 루이비통 간의 콜라보레이션은 서로 다른 분야를 접목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경영이론인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의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융합을 통한 창조적 혁신이나 패션 브랜드의 일탈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운송수단과 여행은 루이비통 브랜드의 정체성이자 160년 역사를 관통하는 핵심 테마이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은 매해 시즌마다 여행을 주제로 한 광고 캠페인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S/S 시즌의 주제는 ‘여행의 정수’(The Spirit of Travel)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밀워드브라운이 2013년에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에서 루이비통은 브랜드 가치 227억 달러(약 23조원)로 명품 브랜드 중 1위를 차지했다. 2006년부터 8년 연속이다. 루이비통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모노그램 스피디’(Monogram Speedy) 라인업은 이 가방을 든 사람을 거리에서 3초마다 볼 수 있다고 해서 ‘3초 백’, 가장 흔한 여자 이름을 빗대 ‘지영이 백’이라고 불릴 정도로 루이비통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흔히 루이비통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명품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루이비통은 ‘남자의 브랜드’다.
 

루이비통의 역사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동부 작은 마을의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난 루이 비통은 14세 때인 1835년에 무작정 파리로 향했다. 2년 뒤인 1837년 파리에 도착한 그는 유명 가방 제작 전문가의 견습공으로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854년 독립해서 방돔광장(place Vendome) 근처에 여행 가방 전문매장을 열고 자신의 이름을 건 회사를 설립했다.

당시에는 마차나 선박, 기차 등으로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 상류층 사이에 유행이었다. 특히 1837년 파리에 철도가 개통되면서 철도혁명이 일어나고 기차 여행 붐이 일었다. 그런데 당시 여행용 가방은 상단이 둥근 돔 형태라서 여러 개를 쌓기 어려웠고, 나무로 만들어져 매우 무거웠기 때문에 기차로 실어 나르기에 불편했다. 이에 착안한 루이 비통은 방수 처리한 천으로 만든 평평한 형태의 여행 가방을 선보였다.

그의 가방은 천으로 만들어서 무게가 가벼웠고, 견고했으며, 좁은 공간에 포개어 쌓을 수도 있어서 커다란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주문자의 요구에 맞춰 특수한 기능을 넣기도 했다. 루이비통의 여행 가방은 단순히 가방이 아니라 수납을 위한 일종의 토털 솔루션(total solution)이었다.

여행 가방의 새로운 표준을 마련한 루이비통의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Grey Trianon Canvas) 가방이 큰 인기를 얻자 모조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루이 비통은 모조품과의 차별화를 위해 1876년에 베이지와 갈색 줄무늬 패턴으로 디자인을 변경한 데 이어 1888년에는 체크무늬 ‘다미에 캔버스’(Damier Canvas)를 적용했지만 이것들도 곧 모방됐다.
 

1892년 루이 비통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조르주 비통(Georges Vuitton)이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는 다미에 캔버스 개발에도 불구하고 모조품들이 끊이지 않자 1896년에 새로운 패턴을 선보였다. 그의 아버지이자 회사 설립자인 루이 비통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름의 이니셜인 L과 V를 결합하고,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꽃과 별 모양을 더한 패턴을 개발해 특허로 등록했다. 바로 루이비통의 상징인 ‘모노그램’(Monogram)이다. 이는 제품에 브랜드 로고를 도입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20세기로 넘어가면서 기차의 시대가 저물고 자동차의 시대가 열렸다. 루이비통은 새로운 운송수단인 자동차의 출현에 맞춰 자동차 여행용 가방들을 선보였고, 루이비통의 여행용 가방은 장거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 됐다. 이는 오늘날 자동차 트렁크의 원시적 형태로, 자동차 뒤에 가방을 싣던 형태가 굳어져 트렁크가 된 것이다. 원래 큰 여행 가방을 뜻했던 트렁크(trunk)에 자동차의 짐칸이라는 뜻이 더해진 것은 이러한 배경을 설명해준다.

루이비통은 자동차 시대 여명기부터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루이비통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사가 ‘루이비통 클래식 세레니시마 경주’(Louis Vuitton Classic Serenissima Run)와 ‘루이비통 클래식 어워즈’(Louis Vuitton Classic Awards)다.
 

2012년 2월, 전 세계에서 온 아름다운 클래식 자동차 43대가 지중해 연안의 리비에라 해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 몬테카를로에 모였다. 루이비통이 주관한 제7회 랠리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바로 루이비통 클래식 세레니시마 경주다. 몬테카를로를 출발해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국경을 넘는 1,400km의 긴 여정 끝에 세레니시마에 도착하는 일정. 세레니시마는 ‘고요한 왕국’이라는 뜻으로 이탈리아 베니스를 지칭한다. 경주에 참가한 자동차 중 가장 오래된 모델은 1913년형 이소타 프라스키니(Isotta Frascini)였다.
 

2013년 2월에는 루이비통 클래식 어워즈가 파리 르 프레 카트랑(Le Pre Catelan)에서 열렸다. ‘루이비통 클래식 콩쿠르 상’(Louis Vuitton Classic Concours Award)은 1962년형 페라리 250 GTO 스카글리에티 베를리네타(Scaglietti Berlinetta)가 수상했고, ‘루이비통 클래식 콘셉트 상’(Louis Vuitton Classic Concept Award)은 푸조 오닉스(Onyx) 콘셉트가 수상했다.

루이비통은 1854년 창립 이래 새로운 영역을 꾸준히 개척해오며 혁신의 한계를 넘고 있다. 운송수단의 기술적 진보는 매번 루이비통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루이비통의 역사는 보다 멋진 여행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 정신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루이비통의 여행 가방은 자동차의 진화에 맞게 바뀌어 왔으며, 언제나 위대한 여정의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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