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르릉! 쇳소리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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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르릉! 쇳소리에 빠지다
  • 최민관
  • 승인 2014.08.2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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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은 포르쉐의 아이콘이다. 가문의 장자인 만큼 온갖 가지치기 모델도 풍성하다. 오늘 만난 시승차 911 타르가 4S는 적통성에서는 서자인 셈이다. 그 유명한 ‘타르가 플로리오’ 레이스에서 이름을 빌었다. 선대 모델은 1965년 9월에 데뷔했으니 벌써 꽤 오래전 일이다.

변화의 초점은 단연 루프 톱이다. 둥글게 말린 리어 윈도를 뒤로 젖힌 뒤 바의 플랩이 열리며 소프트 톱이 수납된 뒤 닫힌다. 끝단이 살짝 접히며 리드미컬하게 트렁크로 매끈하게 숨어드는 품새가 예술적이다. 전자동 버튼 하나로 쉽게 여닫는 시간은 19초로 평범한 수준. 좌우 기다란 두 쌍의 링크가 각각 리어윈도와 지붕의 수납을 맡는다. 달리면서 열어보는 건 권할 만한 일이 아니겠다. 열리지도 않겠지만.

   
   
   
 

그들이 공개한 재질을 보니 안티 롤 바는 강철, 커버는 도색된 다이캐스트 알루미늄이다. 루프 바우는 마그네슘 재질. “아하, 알겠다.” 와이드 바는 세단의 B필러를 대신해 전복 시 탑승객의 안전을 지켜준다. 쫑긋 세운 롤 오버 바가 인상적이었던 코드네임 964 타르가와 원칙은 같다. 한층 커지고 부드럽게 누웠으며 매끈하게 매만진 디테일에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사실 전통적으로 911 타르가는 안전을 중시하는 미국시장에서 인기가 무척 높았다. 이쯤에서 슬쩍 욕심을 내본다. 관리가 편한 알루미늄 하드톱이라면 어땠을까 팽팽한 이중 박음질과 전통의 회귀라고 애써 위안할 뿐이다. 바람을 막아주는 윈드 디플렉터는 앞쪽 패널에 달려 있다.

모든 911은 특유의 형태를 유지하며 새로움을 덧칠한다. 단순한 효율성. 포르쉐 스타일이 시간이 흘러도 결코 구식으로 보이지 않는 비결이다. 그리고 모든 911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클래식으로 인정받는다. 최신형 타르가의 관전 포인트는 정면이나 측면이 아니다. 무조건 뒤에서 감상하라. 사륜구동이기에 아치는 22mm 늘어났다. 돔 형태의 매끈한 리어 윈도와 라이트 스트림, 매혹적인 펜더와 스포일러가 어우러져 당당한 스탠스를 유지한다. 존재감은 확실하며 쿠페에 비해 한층 넓어진 인상을 선사한다. 911은 언제나 그랬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불문하고 완벽했던 존재가 늘 조금씩 진화해왔으니까.

내가 무미건조한 어투로 일관하는 이유가 있다. 사실 난 991 포르쉐를 처음 만났을 때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997에서 991로 거듭났을 때에 비하면 타르가 같은 보디 스타일의 변화는 지극히 소소한 화장 덧칠 정도다. 그러니 뭐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성능에 대한 얘기라면?
 

3.8L 수평대향 엔진은 400마력을 품었다. 사실 리터 당 100마력 수준이 놀라운 시절은 끝났다. 리터 당 150마력은 우스운 과급 엔진이 부지기수다. 난 오히려 엔진의 불규칙한 진동 따위를 지워내는 엔진 마운팅 기술력에 찬사를 보내는 바다. 그렇다고 숫자놀음에 빠진 초심자마냥 인상적인 파워가 아니라며 억지로 고개를 돌릴 필요는 없다. 자연흡기 박서 엔진은 911 터보 S의 그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한결같고 생생한 맛이 더 죽여주니까! 다이어트가 미덕인 세상에 공차중량 1,575kg가 아쉽다면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를 옵션으로 주문하라. 불과 4.4초 만에 시속 100km 가속을 끝내면서도 배기가스 기준은 엄격한 유로 6을 통과했다. 복합연비는 잘 모르겠다. 1억6천60만원짜리 스포츠카를 타면서 너무 쩨쩨하게 굴지는 말자.

지상 최고의 듀얼 클러치 변속기인 PDK는 여전히 명민하다. 수동변속기가 그립지 않다. 스티어링 휠에 붙은 변속 버튼은 불편하다. 좀 달리려 한다면 시프트 레버를 적극적으로 쓰는 게 낫겠다. 모드에 따라 기민성이 크게 달라지는데 기본적으로 여전히 수동변속기보다 빠른 실력을 보인다. 포르쉐 개발부터 함께 상주하는 ZF 기술진이 만든 변속기는 여전히 무한한 신뢰를 준다.

아쉽게도 후륜구동 타르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타르가의 태생이 읽힌다. 911 S보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을 빚어놓고는 부유한 여피를 직접 겨냥한다. 여전히 옹색한 뒷좌석은 별 의미가 없다. 여전히 911은 운전자와 동승자를 위한 차에 가깝다. 운전석 시트는 한층 편하고 실내공간이 커졌다. 조립 완성도는 완벽하다. 하다못해 음료 홀더의 재질과 움직임조차 그러하다. 불쑥 솟아오른 센터 페시아에는 파나메라의 그것처럼 무수한 버튼이 늘어서 있다. 부담스럽다. 자꾸만 손길이 갔던 버튼은 따로 있다.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의 온오프 버튼 아니다. 정작 내가 켜고 끄기를 반복했던 건 동그란 쌍발 이그조스트 팁이 그려진 버튼과 엔진 온오프 버튼이었다. 스포츠 배기시스템의 플랩을 조절해 혼자 있을 때면 자극적인 사운드를 즐긴다. 그리고 시내에서는 시침 뚝 떼고 승용차 음색을 내는 거다. 엔진 온오프 버튼은 그냥 싫다. 아무리 그래도 포르쉐 아닌가!

감속은 대단히 빠르며 브레이크 페달의 답력은 균형 있다. 차체는 언제나 한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993 시절까지 통용됐을 법한 RR 구성의 불완전함은 이제 이론적인 가설일 뿐이다. 균형감각은 완벽하고 접지력은 대단하다. 마른 노면에서 일부러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는 일은 보통의 운전자에겐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롤러코스터처럼 코너를 돌아나갈 때 구동력을 화끈하게 연결해보라. 파워가 끓어올라도 911은 균형을 유지한다. 토크 벡터링은 정말 확실하면서도 재미있는 기능이다. 인상적인 사운드 “투두두둑”은 자신감의 발로와 동의어다.

PDCC는 유압 모터를 통해 스태빌라이저 바를 조절해 롤링을 능동적으로 제어한다. PTM의 가변성은 매끈하다. 가파른 주차장 램프를 올라갈 때 전륜으로 파워를 몰아주는 걸 몸으로 느낀다. 뛰어난 안정성과 접지력, 그러면서도 민첩한 핸들링은 잃지 않는다. 스티어링 휠의 감쇄력은 주행 모드에 따라 스펙트럼이 넓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911 타르가 4S는 후륜구동의 물성을 잃지 않았다. 그건 타르가 역시 스포츠카 감각을 유지한다는 얘기다.

서스펜션은 끊임없이 노면을 매만진다. 포트 홀을 만나도 매끈하게 지워낸다. 단단하지만 결코 신경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섀시 조율이 뛰어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움직임은 없다. 알루미늄 하이브리드 섀시는 완벽 그 자체다. 섀시 비틀림 강성을 논할 이유는 없다. 늘어난 무게만큼 서스펜션을 튜닝해 쿠페에 비해 한층 고급스러운 라이딩 질감을 보인다. 그랜드 투어러 개념의 가치로 판단하더라도 충분하다. 사실 코드네임 991부터는 일정부분 그란 투리스모 성격을 지녔다. 동력계로 엔진의 파워를 단절시키는 코스팅 기능은 연비향상에 일조한다. 시속 150km의 크루징 영역이 놀랍도록 잔잔하다. 기어비가 늘어지는 7단을 걸고 순항하면 마치 대형 세단처럼 움직인다. 그랜드 투어링의 특징을 떠올려보자. 넘치는 힘, 편안한 2+2 시트, 빠른 장거리 주파력, 안락한 승차감….

그 순간 기계적 소음 따위는 없다. 소프트 톱이라 시끄러울 거라는 예상은 기우였다. 고요하다. 오직 고요만이 귓가에 맴돌 뿐 일상적인 영역에서는 풍절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톱을 벗겨내면 확실히 엔진 사운드가 한결 생생하다. 더불어 들이치는 바람도 거세진다. 그렇더라도 난 톱을 닫고 싶지 않다. 저속에서 엔진 브레이크가 걸릴 때 아우성대는 짜릿한 배기음 때문이다. 위협적인 음색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쇳소리는 993 이후 많이 옅어졌지만 존재감을 잃지는 않았다. 아니, 인위적인 세팅으로 오히려 위협적인 수준까지 이른다. 난 그래서 911에 끌린다. 멋스러운 톱을 덧대 풍미를 높인 타르가는 한층 더 매력적이다.

글 · 최민관(루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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