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100년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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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100년의 모든 것
  • 안민희
  • 승인 2014.01.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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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마세라티가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자동차 경주로부터 시작해 고성능 GT로 자리잡은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본다
▲ 당시 회사 앞에 모여선 마세라티 다섯 형제들

20세기 초, 자동차 경주에 대한 열정으로 다섯 형제가 뭉친다. 직업도 레이서, 정비사, 엔지니어 등으로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이들이었다. 경주차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1914년 12월 1일, 이탈리아 로마냐 주 볼로냐에 가문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한다.
 

▲ 마세라티 티포 26

12년이 지난 1926년, 형제의 손으로 만든 경주차 티포 26을 몰고 삼남 알피에리(Alfieri)가 타르가 플로리오에 나선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을 10바퀴 도는 경주다. 아름다운 풍경의 섬이지만 경주는 가혹했다. 안정성 문제로 중단될 만큼… 1바퀴의 거리는 72km. 1바퀴를 도는 동안 약 570개 정도의 코너가 있다. 이곳에서 알피에리는 승리를 거두며 가문의 이름을 널리 알린다. 설립 100주년이 지난 지금도 아름다운 고성능 차를 생산하는 곳. ‘마세라티’다.
 

▲ 마세라티 삼남 알피에리 마세라티

화려한 승리를 거둔 마세라티의 앞날은 밝았다. 연거푸 신기술을 선보인다. 1929년에는 직렬 8기통 엔진을 겹친 16기통 엔진의 V4를 선보인다. 이어 1930년에는 26M(8C 2500로도 불린다. 8실린더 2,500cc)이 그랑프리에 데뷔해, 그해 그랑프리를 평정한다. 1930년부터 1932년까지 단 13대만 생산된 희귀한 경주차다. 하지만 1932년, 갑작스럽게 설립의 주축인 알피에리가 숨을 거둔다. 이후 나머지 세 형제인 빈도(Bindo), 에르네스토(Ernesto), 에토레(Ettore)는 회사를 유지하며, 레이스카를 계속 생산한다.
 

▲ 마세라티 A6 GCS

1937년, 이들은 ‘아돌포 오르시’(Adolfo Orsi)사에 지분을 넘기고 엔지니어의 역할을 맡는다. 자동차 경주에서 마세라티는 성공을 이어갔다.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 아우토 유니온과 같은 거인들과 맞붙을 정도였다. 특히, 1939~1940년에 마세라티는 경주차 8CTF를 앞세워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주에서 2연패를 거둔다. 이는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사 중에서 유일하게 마세라티만 갖고 있는 기록이다.

이후 곧이어 닥친 2차 세계대전 때문에, 마세라티는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게 된다. 전쟁 이후 다시 열린 자동차 경주에서 마세라티는 A6시리즈를 내놓는다. 1947년에 등장한 A6은 2도어 쿠페. 자가토, 피닌파리나, 베르토네 등의 차체를 얹어 아름다움을 뽐냈다. 1956년까지 생산된 A6은 다양한 모델로 나뉘는데, 경주차로 A6GCM, A6GCS가 등장해 경주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 무관의 제왕, 스털링 모스가 마세라티 250F를 타고 달렸다

이후 중요인물들이 마세라티에 합류했다. 피아트 엔지니어로써 알파로메오와 페라리를 거친 알베르토 마시미노(Alberto Massimino)와 함께 줄리오 알피에리(Giulio Alfieri), 비토리오 베렌타니(Vittorio Bellentani), 조아치노 콜롬보(Gioacchino Colombo)가 합류했다. 이들이 모인 조건은 간단했다. 경주에서 성공할 가장 좋은 엔진과 차체를 만드는 일이었다.

1954년에는 250F가 데뷔한다. 마세라티 최고의 경주차로 이름을 날린 차다. 직렬 6기통 2.5L 엔진을 얹고 최고출력 240마력을 냈지만, 무게는 단 670kg에 불과했다. 1954년 등장 첫해에 F1 그랑프리에서 세계 타이틀을 거머쥔다. 가장 위대한 레이서 중 하나, 후안-마누엘 판지오(Juan-Manuel Fangio)가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다. F1 세계 챔피언 5회의 대기록 중 1954년과 1957년의 두 번이 마세라티 250F를 몰고 거둔 것이다. 특히 1957년은 그가 F1 세계 챔피언 5회의 대기록을 세운 순간이었다.
 

▲ 1956년의 마세라티 본사

위대한 레이서와 함께 그랑프리의 황금기를 열어가고 있던 마세라티는, 1957년을 끝으로 자동차 경주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뗀다. 대신 개인 참가자들을 위한 경주차 프로젝트는 1965년도까지 유지한다. 경주에서 손을 뗀 마세라티는 양산차 생산 위주로 회사의 방향을 바꾼다. 당시 마세라티는 자동차 경주 프로젝트와 더불어 양산차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고 있었다.

1957년에는 3500GT가 등장했다. 아름다운 외모와 고성능을 겸비한 그랜드 투어러다. 220마력을 내는 직렬 6기통 3.5L 엔진을 얹었고, 수동 4단 변속기를 짝 맞춰 뒷바퀴를 굴렸다. 1,440kg의 공차중량을 감안할 때 성능은 차고 넘쳤다. 기술적인 면도 상당했다. 보디를 담당한 카로체리아 ‘투어링’의 알루미늄 경량화 보디를 적용했다.
 

▲ 마세라티 3500GT

더불어 1960년에 앞바퀴 디스크 브레이크를, 1962년에는 뒷바퀴 디스크 브레이크를 기본 적용했다. 가죽으로 세련되게 다듬은 실내와 편의 장비, 예거-르쿨트르(Jaeger-LeCoultre)의 계기판 등을 떠올려보면 호화로운 GT의 극치. 마세라티의 방향성을 결정한 차다. 이어 스페셜 모델로 1959년에 5000GT가 등장하기도 했다. 3500GT의 차체에 경주차 450S의 325마력 V8 5.0L 엔진을 얹은 차다.

이후 마세라티는 빠르게 모델을 늘려간다. 1962년에는 ‘비냘리’(Vignale)가 보디를 다듬은 ‘세브링’(Sebring)을 출시, 1963년에는 ‘미스트랄’(Mistral)을 출시한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1963년에 일어났다. 고성능 GT 브랜드로 명성을 굳히던 마세라티가 4도어 세단에 뛰어든 것이다.
 

▲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1세

이름은 콰트로포르테(Quattroforte). 이탈리아어로 4도어란 뜻이다. 피에트로 프루아(Pietro Frua)가 다듬은 유려한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뽐냈다. 5세대 콰트로포르테에서도 재해석되는 전면부 디자인이 압권이다. 성능도 뛰어났다. 세단이라고 해도 스포츠 GT와 맞먹는 고성능을 냈다. 256마력을 내는 V8 4.1L 엔진을 얹고 수동 5단 변속기와 자동 3단 변속기를 맞물렸다. 최고시속은 230km였다. 3년 후인 1966년, 295마력을 내는 마세라티는 V8 4.7L 엔진으로 엔진을 바꾸며 최고시속 255km를 기록, 고성능 세단으로 자리매김한다.

1967년에는 기블리가 출시된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늘씬한 차체에 335마력을 내는 V8 4.7L 엔진을 얹고 시속 0→100km까지 6.8초 만에 가속했다. 최고시속은 248km로 수동 5단 변속기와 자동 3단 변속기를 맞물렸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멋진 실내, 강력한 성능을 두루 갖춘 본격적인 2인승 GT였다. 등장과 동시에 유명세를 탔고, 람보르기니 미우라와 페라리 데이토나의 라이벌로 지목됐다.
 

▲ 마세라티 기블리 1세대

콰트로포르테의 성공과 기블리, 미스트랄, 세브링 라인업에 힘입어 마세라티는 GT 라인업을 완성한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 대배기량 2+2 쿠페와 미드십 쿠페와 슈퍼카를 라인업에 더했다는 것.

1966년에 등장한 ‘멕시코’(Mexico)는 V8 4.2L 엔진을 얹은 초호화 2+2 쿠페다. 1968년 마세라티가 시트로엥에 매각된 이후 그 뒤를 1969년에 출시된 ‘인디’(Indy)가 잇는다. 인디는 인디애나폴리스 500의 2연승을 기리는 의미로 붙은 이름. V8 4.2L 엔진을 얹고 등장했으나, 이후 4.9L까지 배기량을 키운다. 하지만 마세라티의 주무대인 고급‧고성능 GT 시장은 수요가 한정된 시장이다. 때문에 마세라티는 재정난을 겪게 되고, 1968년 시트로엥에게 인수된다.
 

▲ 마세라티 보라

시트로엥의 품에서 마세라티는 미드십 슈퍼카를 만든다. 1971년 등장한 ‘보라’(Bora)는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미드십 슈퍼카. 날카롭게 빚어낸 쐐기형 디자인의 차체 가운데에 V8 4.7L 엔진을 얹고 뒷바퀴를 굴렸다. 이후 추가된 V8 4.9L 엔진은 320마력을 냈다. 공차중량은 1,600kg. 시속 275km를 기록하며 슈퍼카의 자리에 올랐고, 마세라티의 성능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1년 늦은 1972년 등장한 ‘메락’(Merak)은 마세라티 보라와 같은 미드십이지만 좀 더 작은 V6 3.0L 엔진을 얹은 모델이었다. 이후 이탈리아 시장을 겨냥한 V6 2.0L 모델도 출시하는 등 소형 미드십 쿠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73년 석유파동이 닥친다. 고성능 자동차를 바탕으로 빠르게 확장하던 마세라티에겐 큰 타격이었다. 더불어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갑작스럽게 사그라졌다. 1974년 시트로엥은 파산하고, 1975년 5월 23일, 새로운 모그룹이 된 PSA 푸조 시트로엥 그룹이 마세라티를 관리하게 된다.

▲ 마세라티 미스트랄

그 사이, 1974년에 콰트로포르테 2세대를 공개한다. 하지만 석유파동의 여파와 시트로엥을 바탕 삼았다는 이유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210마력 V6 3.0L 엔진을 앞에 얹고 앞바퀴를 굴렸다. 1,600kg의 차체를 200km까지 이끌기는 충분했지만, 마세라티 애호가들은 이 차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성능이 아니고 앞바퀴굴림인 시트로엥 SM의 차체를 이용했다는 이유에서다. 베르토네의 마르첼로 간디니가 매만진 견고한 직선의 디자인도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진 못했다. 때문에 콰트로포르테 2는 마세라티 역사상 유일한 앞바퀴굴림 자동차로 남는다.
 

▲ 마세라티 캄신

같은 해에는 기블리의 후속 ‘캄신’(Khamsin)이 등장한다. 캄신의 뜻은 이집트 사막에 부는 뜨겁고 강력한 바람이다. 마르첼로 간디니가 다듬은 베르토네의 디자인 시제차로 1972년 등장했고, 이후 1974년에 마세라티가 이 디자인으로 캄신의 양산을 시작한다. 기블리의 후속답게 V8 4.9L 엔진을 얹고 강력한 성능을 뽐냈지만, 연이은 석유파동이 발목을 잡아 약 430여대가 팔렸다.
 

▲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2세대

이탈리아 정부 기금으로 사업을 유지한 마세라티는 1975년에 데 토마소(De Tomaso)에게 인수된다.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레이싱 드라이버였으며, 이후 마세라티의 관리 감독을 맡는다. 데 토마소를 거치며 대배기량 엔진 위주의 마세라티는 터보 엔진을 얹은 다운사이징 시대로 접어든다.

이듬해인 1976년에는 ‘키얄라미’(Kyalami)가 선보인다. 남아공의 키얄라미 그랑프리 서킷에서 따온 이름이다. 마세라티 V8 엔진을 얹었지만, 디자인이 데토마소 롱샴을 떠올리게 한다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잘 균형 잡힌 단단한 차체 덕분에 주행감각이 뛰어났고 핸들링이 좋다는 평을 받았다.
 

▲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3세대

1979년에는 콰트로포르테 3세대가 등장한다. 당시 캐치프레이즈는 ‘비즈니스맨의 마세라티’였다. 당시 메르세데스-벤츠 450 SEL 6.9와 경쟁하길 바랐던 데 토마소는 대형 V8 엔진과 뒷바퀴굴림의 조합을 선택한다. 디자인 또한 주지아로에게 맡겨 매끈하게 뽑아냈다. 초기 모델은 V8 4.1L 엔진을 얹어 255마력을 냈고, 이후에는 4.9L로 배기량을 늘려 300마력을 뽑아냈다.

1981년에는 데 토마소 시대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차. ‘비투르보’(Biturbo)가 등장한다. 이름의 뜻은 트윈터보다. 당시 데 토마소는 마세라티 브랜드의 품격과 스포츠 성능을 섞어낸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의 자동차를 구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마세라티의 기존 모델들은 상당히 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구상이 필요했다.
 

▲ 마세라티 바이터보, 작고 강한 마세라티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에 맞춰 마세라티 비투르보는 엔진 배기량을 낮추고 트윈터보를 단다. V6 2.0L, V6 2.5L, V6 3.0L의 세 종류 엔진 라인업을 만들고 모두 트윈터보와 짝지었다. 이탈리아 내수용으로는 V6 2.0L 엔진을 위주로 했고, 수출용으로 V6 2.8L 엔진을 추가했다. (당시 이탈리아 자동차세 기준으로, 배기량 2,000cc를 넘을 경우 38%나 세금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후 1983년에는 4도어 세단 모델을 추가하고, 1984년에는 스파이더 모델을 추가한다. 당시 엔진 구성과 출력으로 다양한 라인업을 만들었다. 2.24, 222 등의 이름은 이 당시 엔진과 출력 등으로 나뉜 모델명이다. 특히, 당시 비투르보의 크기는 3시리즈보다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V6 트윈 터보 엔진을 얹어 강한 성능으로 인상을 남겼다.
 

▲ 마세라티 부메랑 콘셉트

1986년에는 비투르보를 바탕으로 228을 만든다. 4도어 세단의 긴 차체를 바탕으로 수출용 V6 2.8L 트윈터보 엔진을 얹은 2도어 쿠페로 더욱 고급스러운 실내와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비투르보의 계보는 1988년 등장한 고급 쿠페 ‘카리프’(Kalif), 1989년 등장한 고성능 모델 ‘샤말’(shamal)로 이어진다. 샤말의 경우에는 V8 3.2L 트윈 터보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326마력을 냈으며, 6단 수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시속 270km, 0→시속 100km 가속을 5.3초 만에 끝냈다.
 

▲ 마세라티 기블리 2세대

1992년에는 데 토마소 시대를 완성하는 차, 2세대 기블리가 등장한다. 비투르보가 얹었던 V6 2.0L 엔진과 V6 2.8L 엔진을 가져왔지만 성능은 300마력대로 크게 끌어올려 고성능 GT로 탈바꿈한 것이 특징이다. 유럽시장에는 310마력을 내는 V6 2.0L 엔진을 위주로 공급했고, 수출시장에는 288마력을 내는 V6 2.8L 엔진을 공급해 차이를 뒀다. 변속기는 수동 5단과 자동 4단이 짝을 맞췄다. 이후 수동 6단이 추가된다. 4명이 탈 수 있는 2도어 쿠페라는 것은 샤말과 닮았지만, 2세대 기블리는 그 이상의 혁신이었다.

바이터보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인 고급스러움을 담아냈다. 1994년에는 대폭적인 개선을 더했다. 실내를 새로 꾸몄고, 조절 가능한 전자식 서스펜션과 ABS 브레이크 시스템을 적용했다. 판매대수는 2.0L 모델이 1천157대, 2.8L 모델이 1천63대였다. 2.0L 모델을 바탕으로 만든 레이스용 ‘컵(Cup)’ 모델이 57대, ‘프리마티스트(Primatist)’ 모델이 60대가 팔려 수집가들이 꿈꾸는 모델이 되었다.
 

▲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4세대

1994년에는 콰트로포르테 4세대를 출시했다. 기블리 쿠페의 4도어 버전이나 다름없는 차다. 마르첼로 간디니의 손을 빌려 기블리 쿠페를 매끈한 세단으로 바꾼 것. 공기저항수치는 단 0.31에 불과했다. 284마력을 내는 V6 2.8L 트윈터보 엔진을 얹은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이탈리아의 세금 규제에 맞추기 위해 287마력을 내는 고성능 2.0L 터보 모델을 같이 내놓는다. 이후 샤말에 달았던 335마력 V8 3.2L 트윈터보 엔진을 얹고, 고성능 면모를 과시했다.

콰트로포르테 4세대 출시 직전인 1993년, 경영이 어려워진 데 토마소는 마세라티를 피아트 그룹에 매각한다. 이때부터 마세라티의 성향이 다시 바뀌기 시작한다. 피아트의 투자를 받아 완전 신형 모델을 준비했고, 1997년에 피아트가 지분의 50%를 페라리에게 넘기며, 마세라티는 페라리 산하의 럭셔리 브랜드로 거듭난다. 스포츠카만을 만드는 페라리가 남긴 럭셔리 GT와 세단의 영역을 맡은 것이다.
 

▲ 마세라티 3200GT

1998년에는 완전 신차인 3200GT를 출시한다. 주지아로의 이탈디자인이 빚은 곡선형의 유려한 디자인에 370마력을 내는 V8 3.2L 트윈터보 엔진을 얹어 6단 수동변속기와 4단 자동변속기와 짝지었다. 곡선형의 원숙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실내는 엔리코 푸미아(Enrico Fumia)가 디자인한 것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LED를 수놓아 만든 부메랑 모양의 테일램프다.

2002년에는 마세라티 쿠페란 이름을 달고 개선 모델이 등장한다. 마세라티의 미국시장 귀환용 신호탄이었다. 주된 디자인 변경 없이 테일램프 등을 변경했다. 대신 구동계에 대폭 변화를 줬다. 페라리와 함께 개발한 390마력 V8 4.2L 자연흡기 엔진을 얹고, 수동 6단 변속기와 싱글 클러치 자동 6단 변속기를 맞물렸다. 20여년 만에 트윈터보 엔진 대신 자연흡기 엔진으로 회귀한 셈이다. 페라리와 함께 개발한 차답게 엄청난 개선이 이뤄졌다. 구동계를 포함한 대부분이 페라리 기준에 맞춰 설계된 진정한 고성능 GT였다. 이를 바탕으로 2004년에는 스파이더 모델을 출시한다. 둘의 기계적 성능은 같다.
 

▲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5세대

2004년에는 마세라티 90주년을 기념하는 콰트로포르테 5세대를 출시한다. 피닌파리나에서 다듬은 매끈한 디자인과 살짝 튀어나온 전면부 그릴과 헤드램프의 조화는 1세대 콰트로포르테를 떠올리게 하는, 역사를 담은 디자인 중 하나다. 긴 역사와 전통을 앞세워 프리미엄 세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미국시장을 제대로 노렸다. 초기 모델의 무게 배분은 앞뒤 47:53이었다. 대형 세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균형 잡힌 무게 배분으로 날렵한 핸들링을 선보였다. 이후 등장한 자동변속기 모델에서는 앞뒤 무게 배분을 49:51까지 맞추며 성능지향적인 부분을 강화했다. 2009년에는 V8 4.7L 엔진을 얹고 디자인을 개선하는 등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했다.

2005년에는 자동차 경주 참여를 위해 MC12를 만들었다. 페라리의 슈퍼카, 엔초 페라리에서 가져온 엔진을 얹어 만들었지만, 자동차 경주라는 목표에는 더 충실하다. FIA GT에 출전하기 위해 단 50대만 만들었다. 마세라티가 긴 침묵을 깨고 자동차 경주에 참가했다는 것에 사람들은 흥분했다. 자동차 경주에서 기반을 다진 혈통을 증명하듯, 2005년부터 2010년까지 FIA GT에서 6번의 팀 챔피언십을 거둘 만큼 강자로 군림했다.
 

▲ 마세라티 MC12

2007년에는 마세라티 쿠페의 후속작인 그란 투리스모를 출시한다. GT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이다. 피닌파리나의 제이슨 캐스트리오타(Jason Castriota)가 매만진 보디는 기존과 다른 날카로운 느낌이 가득했다. V8 4.2L 엔진은 출력을 높여 405마력으로 뛰어올랐고, 핸들링 성능을 위해 앞 더블위시본, 뒤 멀티링크 서스펜션 방식을 적용했다.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홀린데다, GT가 갖춰야 할 안락함과 속도, 운전의 즐거움을 맞물렸단 평가를 받았다.

이어 파생모델로 배기량을 4.7L로 높이고 출력을 440마력으로 올린 그란 투리스모 S와, 컨버터블 모델인 그란 카브리오를 출시한다. 그란 투리스모 S는 2012년을 맞아 그란 투리스모 스포츠로 대체된다. 그란 투리스모 스포츠는 출력을 460마력으로 높이고 더욱 공격적인 모습으로 앞부분 디자인을 바꿨다. 또한 실내에도 스포츠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과 시트를 적용했다.
 

▲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스포츠

마세라티의 2013년은 화려했다. 2013년 1월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콰트로포르테 6세대를, 4월 상하이모터쇼에서 기블리 3세대를 공개했다. 두 모델의 공통점이 있다면 배기량을 줄이고 트윈터보를 달았다는 것. 페라리와 함께 개발한 엔진이지만, 기존의 비투르보가 사용했던 트윈터보 방식을 사용하며 자연흡기 방식의 엔진을 사용하는 페라리와 더욱 큰 차이를 만들었다. 배기량은 줄었지만 트윈터보 기술로 출력은 더욱 늘어나 V6 3.0L 엔진으로 330마력과 410마력을, V8 3.8L 엔진으로 530마력을 낸다. 페라리와 다른 브랜드 특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 마세라티 기블리 3세대

마세라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름다운 디자인, 환상적인 엔진음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동차 경주에서 쌓은 성능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그랜드 투어러를 뜻하는 GT는 마세라티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다. 화려하면서도 안락한데다, 빠르면서도 편안하다. 뛰어난 성능과 아름다움, 고급스러움과 안락함을 모두 차지한 마세라티는 이제 100년을 뛰어넘어 새로운 100년을 준비한다. 그 여정은 바다 위에 뜬 별처럼 빛난다.
 

▲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6세대

글: 안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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