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랄프 슈페트 인터뷰
상태바
우리는 세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랄프 슈페트 인터뷰
  • 아이오토카
  • 승인 2013.10.29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epedia)가 카메이커 총수들 사이에 경쟁을 붙인다고 하자. 여기서는 생뚱하게도 자동차계에서 제일 간결하고 공헌이 작은 전기(傳記)의 주인공을 찾는다. 그러면 재규어 랜드로버(JLR) CEO 랄프 슈페트가 선두를 달린다. 그다지 크지 않은 그의 유리 집무실은 JLR의 휘틀리 신축건물 안에 있다. 거기서 최근 내가 그랬듯 그의 생애와 시대에 관해 50분만 대화를 나눠보라. 대화 첫머리에 벌써 그의 정체가 드러난다. 슈페트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팀웍과 위대한 제품’이다.

거기에 슈퍼스타 경영자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건 타타 방식이다. JLR의 인도 모기업 타타는 언제나 최고경영자가 중앙무대를 차지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한데 그 정책은 슈페트 자신의 소신과 딱 들어맞았다. 이 조용한 독일 기사 출신 총수는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BMW에 이어 포드의 프리미어 디비전 PAG에서 일했다. 그 뒤 현재의 JLR 총수로 올라왔다. 자신의 업적과는 반비례하는 자존심을 가진 실로 보기 드문 자동차계 지도자다.

놀랍게도 요란한 팡파레 없이 슈페트는 영국 자동차 사상 가장 눈부신 회생사업을 이미 추진하고 있다. 모델 라인업을 확대하고, 이익을 증가하며, 인도·중국·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현지생산하기로 했다. 이처럼 방대한 계획은 이미 완성되어 실천단계에 들어갔다. 지난해 JLR은 사상 최대인 36만+대를 만들었다. 총수입 135억 파운드(약 23조985억원) 가운데 이익이 15억 파운드(약 2조5천665억원)로 짭짤했다. 이 같은 수익력은 타타그룹 전체를 지원하고 있다.

타타는 2008년 재정난에 허덕이던 JLR을 11.5억 파운드(약 2조원)에 사들인 뒤 험난한 파도를 헤쳐 왔다. 당시 인도계 재정전문가들이 줄지어 황당한 인수가를 비판했지만 요즘 그들은 잠잠하다. 공정한 평가기관이 현재 JLR의 가치를 75억 파운드(약 13조원)로 보고 있고, 앞으로 가치는 상승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슈페트는 판매목표를 들먹이는 것을 몹시 꺼린다. 그러면서도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최근 CEO의 야망을 흘리는 사단이 벌어졌다. 말이 헤픈 미국 JLR의 어느 중역이 자동차 주간지 <오토모티브 뉴스>에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JLR 경영진이 2020년까지 재규어와 랜드로버 합계 75만대를 겨냥하고, 10년 이내에 100만대도 가능하다. 우리의 휘틀리 회견에서 슈페트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마지못해 시인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확인해달라고 하자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JLR 내부인사에 따르면 슈페트가 그 실언을 알고 노발대발했다. 나는 판매량을 알아내기 위해 다른 수법을 써봤다. 생산량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으니까 JLR을 BMW나 아우디와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슬쩍 떠봤다. “천만에” 슈페트가 잘라 말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비교기준은 모델의 성격과 혁신뿐이다. 이 기준을 따르면 올바른 제품을 내놓고, 결국 성공을 거둔다. 성장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올바른 차를 올바른 값에 만들면 성장은 이뤄진다. 한데 처음부터 성장속도를 결정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제품중심 접근자세는 일생에 걸쳐 슈페트가 겪은 도박에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로버 브랜드를 인수하여 실패했을 때 BMW에 있었다. 그리고 포드가 PAG를 매각했을 때 포드에 있었다. 그렇다면 JLR의 CEO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큰 도박이 아니었던가? “두 브랜드와 그 잠재력을 신뢰했다고 할 수 있다” 슈페트의 반응. “그들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저력을 믿고 있었다. 게다가 타타 경영진이 상당한 자유를 줬다. 우리 모두가 라탄 타타에 큰 은혜를 입고 있다. 그는 두 브랜드를 사들였을 뿐 아니라 구출한 주역이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뻔하지만 들먹이지 않은 의문에 부닥치게 된다. JLR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경영능력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BMW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슈페트는 벌써 들어본 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동차계 진출 20여 년간 BMW에서 학습한 것을 감사하는 슈페트. 그는 과거의 직장을 비판하려 하지 않았다. “실패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마 수천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한데 타타 휘하에서 회사를 독자적으로 운영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게 적중했다”

어느 누구도 비판하지 않으면서 슈페트는 JLR 회생이 경영의 자유라는 라탄 타타의 독특한 경영철학에 크게 힘입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08년 JLR을 합병하기 이전부터 지켜온 경영방식이었다. 내가 미처 묻기도 전에 슈페트는 라탄의 후계자 사이러스 미스트리를 평가했다. “그도 똑같은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동일한 기업가 정신과 비전을 지닌 현명한 경영자다. 역시 우리는 운이 좋다”

슈페트는 기꺼이 모든 공적을 타타의 경영체제에 돌렸다. 하지만 그 자신이 JLR 정책의 태반을 구상하고, 충분한 토의를 거친 뒤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휘틀리의 사무실에서 그의 즉답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한데 주위 인사들은 거시적인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젝트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JLR은 사우디에 초대형 알루미늄 제련소를 건설할 때 특혜를 받기로 했다. 그 대가로 사우디의 자동차 제조 사업을 지원하게 된다. 자동차 공장을 세우고 거기서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모델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슈페트의 설명이다. “마치 체스기사처럼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한다. 앞으로 대형 메이커는 차 무게·연료소비량·CO₂를 줄이기 위해 알루미늄이 필요하다. 사우디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필요한 보호망을 제공한다. 거기서 참으로 중요한 사업을 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보크사이트(알루미늄 원광)와 에너지가 풍부하다. 알루미늄을 만드는 데는 막대한 양의 보크사이트와 에너지가 들어간다.

“현재 사막의 오지에서 세계 최대 알루미늄 제련소를 짓기 위해 4만5000명이 일하고 있다. 거기 필요한 기반시설을 상상해보라. 특히 발전소와 제련소가 바로 이웃에 붙어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에게 거대한 도전이다. 한데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JLR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다. 재규어 브랜드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그중 하나. 이 그룹의 한 해 36만대 판매량 중 겨우 7만대를 차지하고 있다. 새 모델이 해답이다. 최근에 출시한 XF 네바퀴굴림과 왜건 버전이 약간 도움이 되고, 신형 F-타입 스포츠카도 마찬가지. 한데 최대 사업은 아마도 재규어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 BMW 3시리즈 영토로 쳐들어갈 전략이다. 재규어의 소형 세단은 1년 안에 나올 예정이다(왼쪽 별도 기사 참조). 슈페트는 레인지로버 이보크만 한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이보크가 먹혀들 것이라고 미리 알고 있었다” 슈페트가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탁월한 디자인에 매력 있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그토록 인기를 끌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아무튼 수요에 대비해 생산량을 급속히 늘렸고, 고품질을 지켰다” 그밖의 큰 도전은?

“앞으로 큰 문제가 있다면 현대 시장에 적응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메이커의 전통에 의지할 수 있었다. 이미 성공한 모델라인을 앞으로 연장해나가는 방법이었다. 한데 요즘 상황이 재빨리 변하고, 시장은 다양한 모델을 찾고 있다. 게다가 곧 우리 최대시장이 될 중국에서 무엇이 나오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 점에서 현재 우리 최대시장인 유럽연합을 비롯한 유럽시장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세계화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앞으로 살아갈 유일한 길이다. 현재 178개 시장에 우리 제품의 80%를 수출하고 있다. 한데 전 세계에서 우리 시장을 안정화할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따금 잠 못 이루는 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