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카이엔 터보 S, 빛나는 존재감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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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카이엔 터보 S, 빛나는 존재감 하나로
  • 이경섭
  • 승인 2013.07.2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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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다큐멘터리 <얼어붙은 지구>(Frozen Planet)를 봤다. 지구 극지방의 신비로운 자연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인데 그중 범고래들의 생태를 촬영한 장면에선 그 경이로움에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범고래. 무시무시한 힘과 영리한 조직력, 그리고 지치지 않는 속도로 거대한 사냥감을 제압하는 바다의 지배자. 카이엔 터보 S를 앞에 두고 문득 범고래를 떠올렸다. 실제 헤드램프를 시야의 중심에 두고 옆에서 바라보면 얼핏 강인한 범고래가 연상되기도 한다. 실상 한 세계의 지배자라는 것도 같고.

카이엔 하고도 터보, 터보 하고도 S다. 보통의 카이엔은 물론 500마력짜리 카이엔 터보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도로의 제왕. 그 레터링만으로도 위압적이다. 최고출력 550마력에 이 거대한 덩치로 시속 100km 가속을 4.5초에 마치는 차. 이런 차를 누가 필요로 할까? 어떤 사람이 이런 ‘존재감 끝판왕’을 원할까? 최고로 빠른 차를 원하는 사람? 아닐 것이다. 속도라면 911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무지막지한 힘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출력을 보고 이 차를 선택하기에도 '마력당 가격'이 너무 세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옵션을 따지는 사람? 옵션과 인테리어가 화려하긴 하지만 개연성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거다. 카이엔 터보를 넘어선 최고 기함이라는 상징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오직 존재감이 주는 만족 하나로 이 차를 선택할 거란 짐작이다.

지난 2월 카이엔 시리즈의 새로운 기함급 모델로 국내 처음 소개된 카이엔 터보 S에 오르면서 몇 해 전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 아우토반에서 달려보았던 카이엔 터보와 지난해 며칠 간 타봤던 카이엔 GTS가 자연스레 오버랩 됐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파워와 광포한 속도로 내달리던 터보와 애초에 포르쉐가 스포츠카 유전자를 듬뿍 부여해 설계한 GTS는 사실상 그 스펙으로 우열을 가리기란 쉽지 않다.

GTS를 시승하고 나서는 이 차 하나면 모든 욕구를 잠재울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터보 S의 운전석에 올라보니 또 생각이 달라진다. 욕심이란 끝이 없다. 실제 운전 중에 이들의 차이를 비교해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차이란 제원표에서나 의미 있는 숫자인지도 모른다. 카이엔 터보에 비해 출력은 50마력이 늘어난 550마력, 최대토크는 76.5kg·m로 5.1kg·m가 높아졌다. 이런 괴력을 바탕으로 최고속력은 시속 5km가 빨라졌으며 0→시속 100km 가속도 0.2초가 단축됐다. S 이니셜 하나가 선사하는 존재감의 의미다.

극한의 다이내믹을 위해 기본으로 달린 장비도 호화롭다. 카이엔 터보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적용된 에어 서스펜션과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 댐핑 조절장치의 결합은 물론 굽은 도로에서 롤 각도를 0에 가깝게 줄여줌으로써 민첩하고 안락한 코너링이 가능한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PDCC)도 기본 장비다. 여기에 포르쉐 토크 벡터링 플러스(PTV Plus) 역시 기본으로 적용돼 전자식으로 제어되는 리어 디퍼렌셜 록과 함께 작동하면서 구동력과 핸들링 개선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역시 기본 사양이다. 주행성능에 관한 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포르쉐의 거의 모든 첨단 장비가 대거 적용된 까닭은 분명하다. 더욱 빠르고 민첩하며 안정적인 달리기 성능 과시하기 위함이다. 레이스 서킷이 아니면 카이엔 터보 S의 주행성능을 제대로 느껴보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제원표상의 최고시속 283km를 체험하는 일은 몰라도 그 외의 다이내믹한 주행성능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도 얼마든지 일반도로에서도 가능하다.

며칠간의 이번 시승은 굳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주로 심야에 이뤄졌다. 복잡한 도심 한복판, 적당히 속도를 낼 만한 간선도로 혹은 통행량 적은 새벽의 고속도로 주행까지 여러 상황에서 카이엔 터보 S의 파워와 다이내믹한 핸들링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야근을 마친 뒤 심야의 북악스카이웨이 주행은 인상적이었다.

깊숙한 블라인드 코너와 곳곳의 과속방지턱, 돌발 상황의 위험성(그리고 준법정신!) 때문에 규정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다양한 코너각과 구배, 업힐에서의 파워와 다운힐에서의 코너링 성능이 직관적으로 체감되는 이 길은 덩치 큰 스포츠카가 달리기에도 좋았다. 힘도 힘이지만 실을 뽑듯 매끈하게 움직이며 커브를 돌아나갈 때마다 왜 모든 포르쉐는 스포츠카라고 하는지 다시금 떠올렸다.

이런 차로는 폭주족처럼 내달린다거나 휠스핀을 일으키며 스티어링 휠을 과격히 꺾어보는 일 따위는 도리어 촌스럽다. 일상적 주행 범주 안에서도 이 차가 지닌 극한의 ‘포텐셜’은 얼마든지 가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꽁무니에 붙은 S 이니셜 외에 외관에서 카이엔 터보 S의 존재감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요소는 많지 않다. 고광택 블랙으로 도색한 공기흡입구 스크린과 헤드램프 하우징, 사이드미러 파츠 정도가 눈에 띈다.

기본형 휠은 포르쉐 문장이 새겨진 21인치 911 터보 II 알로이휠인데 이는 카이엔 터보 S를 위한 독점적 디자인으로 휠의 안쪽 면까지 블랙으로 도색했다. 인상적인 노란색 캘리퍼는 카이엔 터보와 마찬가지로 옵션이다. 차체 컬러에 맞게 열쇠가 흰색인 점도 참신하다. 인테리어는 파나메라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호화롭기 그지없다. 파나메라에 비해 버튼 개수도 적고 깔끔한 구성이지만 여전히 화려하게 느껴지는 실내다. 변속기는 PDK가 아닌 8단 자동변속기여서 변속기 레버는 다른 포르쉐 모델과 쉽게 구별된다.

변속기 레버 아래쪽으로는 차고 조절 스위치와 4륜구동 조절 장치가 배치돼 있다. 시승차에는 독일제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버메스터가 달려 있다. 16개의 스피커로 총 1000와트에 달하는 강력한 출력을 선보이는데 카이엔 터보 S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조합은 없을 듯하다. 물론 최고급 오디오 사운드가 아니라면 포르쉐 노트라는 중독성 강한 사운드가 기본으로 달려 있긴 하다.

바이컬러 가죽 패키지는 카이엔 터보 S를 위해 새롭게 제안된 컬러와 패턴으로 구성돼 있다. 블랙과 카레라 레드, 블랙과 룩소르 베이지 등 2종의 컬러 조합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스티어링휠이 알칸타라 가죽이었다면 하는 것. 카이엔 GTS를 시승했을 때 스티어링휠을 감싼 알칸타라 가죽의 그립감이 너무도 좋았기 때문이다.

카이엔을 탈 때마다 생각해보게 되는 건 이 차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역으로 이 차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해보면 늘 답이 쉬웠다. 자동차로 할 수 있는 일 중 카이엔으로 할 수 없는 일이란 거의 없다. 그런데 카이엔 터보 S의 스티어링휠을 돌리다보니 이 무시무시한 차로는 하늘을 나는 일 말고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이 느껴진다. 오직 ‘미친 존재감’ 하나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차, 저마다 강력하다고 외치는 경쟁자들의 입에 지퍼를 채워버리는 최강의 SUV, 그게 바로 카이엔 하고도 터보 하고도 S인 거다.

글: 이경섭(자동차 저널리스트) 사진: 김동균 기자

PORSCHE CAYENNE TURBO S

가격: 1억8천370만원
크기: 4846×1954×1702mm
휠베이스: 2895mm
무게: 2465kg
0→시속 100km 가속: 4.5초
최고시속: 283km
복합연비: 6.6km/L
CO₂ 배출량: 277g/km
엔진: V8, 4806cc, 트윈터보, 휘발유
최고출력: 550마력/6000rpm
최대토크: 76.5kg·m/2250rpm
변속기: 8단 팁트로닉 S
트렁크: 67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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