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F-TYPE V6, S, V8 연속 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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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F-TYPE V6, S, V8 연속 시승
  • 최주식
  • 승인 2013.08.0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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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을 먹고 사는 스포츠카 세계에서 새로운 디자인으로 등장한 모델이 이토록 단기간에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었다. 바로 재규어 F-타입 이야기다. 무엇보다 이안 칼럼이라는 걸출한 디자이너가 빚어낸 빼어난 스타일, 역사적으로 40년 만에 등장한 E-타입의 후계자라는 헤리티지 속에는 우리가 기다려온 드라마적 요소가 있다. 흥행의 조건은 이미 완벽하게 갖춘 셈이다.

주변에는 지난 4월의 서울모터쇼에서 공개된 F-타입을 보고 마음을 뺏겼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 F-타입을 시승하러 가는 길에 비행기 몇 번쯤 갈아타는 일은 대수가 아닐 터이다. 파리를 거쳐 버밍햄 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스페인 북부 팜플로나 공항에 도착한 때는 5월 4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여기서 바로 F-타입의 키를 건네받고 나바라 서킷(Navarra circuit)까지 달리는 것으로 일정은 시작되었다.

F-타입은 세 가지 캐릭터의 3가지 모델로 나온다. 그것은 V6 3.0L 340마력의 F-타입 V6 , 같은 V6 3.0L지만 380마력의 파워를 내는 F-타입 V6 S, 그리고 V8 5.0L 495마력의 F-타입 V8 S로 구분된다. 기본 스타일은 그대로이고 S 배지와 양쪽으로 나뉜 듀얼 머플러 등으로 차별화된다. 보디에 스며든 도어 핸들 왼쪽 끝을 툭 누르자 손잡이가 스르르 튀어나온다.

마치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처럼. 롱 노즈 숏 데크의 보디는 전통적인 스포츠카의 비례에 충실하면서도 콤팩트하게 다듬었다. 보닛에서 이어지는 유려하면서도 날카로운 사이드라인은 C, D, E타입의 헤리티지를 잇는 중요한 실루엣이다. 스페인의 뜨거운 햇살 아래 반짝이는 그 간결함과 디테일의 텐션이 매우 농밀하게 다가왔다.

“스포츠카는 불필요한 장식 없이 부품과 장치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라는 이안 칼럼의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는 또한 “디자인에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미학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한다면 오랜 세월이 흘러도 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모습에서 첫눈에 재규어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역시 생동감 넘치는 대형 그릴이다. 6각형 철망이 촘촘하게 이어진 가운데 재규어 엠블럼이 사납게 노려보고, 양옆의 샤크 그릴이 이빨을 드러낸 듯하다.

달리다가 리어 미러로 흘깃 그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움찔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전체를 보면 우아하다는 데 F-타입의 미적 감각이 있다. 공기역학적 균형을 위한 리어 스포일러는 시속 100km가 넘으면 올라왔다가 시속 60km 이하가 되면 내려간다. XF에서 시작된 재규어의 새로운 인테리어는 다시금 신선한 변화를 거쳤다. 대시 패널 상단에서 솟아나는 팝업식 송풍구는 실내 라인을 유지하기 위한 혁신적 장치다.

운전석과 동반석 사이를 갈라놓는 손잡이는 운전자 중심의 1+1 스포츠카 성격을 드러내는 요소. 스피도미터보다 강조된 RPM 게이지 역시 이 차의 성격을 보여준다. 황금빛이 감도는 스타트 버튼은 블랙 인테리어 속에서 확연히 눈에 띈다. 스티어링 휠 뒤의 시프트 패들과 다이내믹 모드 스위치에도 같은 컬러를 넣었다. 세심한 디테일이다. 기어 레버는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주변으로 카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스포츠 모드로 옮기면 위쪽이 시프트 다운, 아래쪽이 시프트 업인 것은 BMW와 같은 방식이다.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요소다. 위는 하늘이므로 양이다. 당연히 +가 되어야 하고, 아래는 음이므로 -가 되어야 한다. 주역에 따르자면 그렇다. 이런 경우 패들 시프트를 위주로 사용한다. 1+1이라고 하지만 동반석의 공간이 작은 것은 아니다. 레그룸은 여유가 있어 글러브박스를 열어도 무릎에 걸리지 않는다.

시트 조절 버튼은 도어 패널 쪽에 달려 있다. 나사 모양의 동그란 스위치는 사이드 볼스터 조절장치. 그 아래 메리디안 스피커가 금속 재질로 반짝인다.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의 F-타입은 가볍지만 강하다. XKR-S보다 30%나 강성이 높다. 또한 XKR-S보다 시트 위치가 20mm 낮고, 전반적인 무게중심이 내려갔다. 직물 소재의 소프트톱 역시 무게중심을 낮추기 위한 선택으로 시속 50km 이하에서 12초 이내에 루프를 열고 닫을 수 있다.

네 바퀴 모두 알루미늄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이 받쳐주는 섀시는 경쾌하면서도 견고하다. 서킷으로 가는 동안의 노면은 약간 거칠었지만 F-타입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이성적인 승차감을 유지하며 어떤 노면이라도 즐긴다는 듯이 뛰쳐나갔다. 그립의 안정감이 기대 이상이어서 오히려 속도를 줄이는 게 쉽지 않았다.

다이내믹 모드는 액셀러레이터에 대한 드로틀의 응답성을 높이고, 스티어링이 더 묵직해지며 좀 더 높은 회전수에서 기어변속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전자장비가 개입하기 전에 운전자의 재량권을 더 확보해준다. V6 340마력은 기본형이지만 꽤 근사한 성능을 보여준다. 0→시속 100km 가속을 5.3초에 해낸다. 모든 엔진은 스톱-스타트가 기본이고 ZF사의 자동 8단 퀵시프트 기어를 매칭했다. 스포츠카에 맞게 조율된 자동박스는 도로 조건과 운전 스타일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장했다.

코너 인식기능(Coner Recognition)은 코너에 진입한 것을 탐지하고 출구로 나갈 때까지 기어를 지킨다. 추월상황에서도 이어지는 코너에 대처하기 위해 저속 기어를 유지한다. 나바라 서킷에 도착했다. FIA GT 시리즈 등이 열리는 서킷으로 급격한 헤어핀 코너 등 만만치 않은 코스다. 여기서는 F-타입 S를 탄다. 헬멧을 쓰고 택시 드라이브로 2랩을 돌고 서킷을 익힌 다음 직접 스티어링 휠을 잡는다. 옆에서 가속과 브레이킹 포인트, 코너에서는 3단을 유지하라는 등 기어 단수를 코치한다.

선생 옆에서는 아무래도 긴장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고속 코너를 빠르게 감아 나가본다. 풀 가속과 제동, rpm을 레드존까지 마음껏 써본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레드존을 넘어서도 자동으로 변속되지 않는다. 직접 개입해야 한다. 세 바퀴를 돌고나서 피트 인. 혼자서 자유주행을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멋진 경험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유지하는 재규어의 특성을 확인했다. 과거 레이스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재규어의 특성을 잠깐이라도 향유할 수 있었다. E-타입의 후예로서.

서킷 주행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 다시 F-타입 S를 탈 수 있었다. 일반도로에서 기본형과 차이를 느껴보라는 배려다. F-타입 S는 40마력이 높은 380마력으로 0→시속 100km 가속 4.9초로 0.4초 빠르다. 그리고 S부터는 액티브 배기시스템을 단 것이 차이점이다. 급가속 때 후방의 바이패스 밸브를 열어 배기음을 한층 풍부한 고음으로 올려준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바이패스 밸브를 항상 열어두어 이 배기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론치 컨트롤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S부터.

기계식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도 기본이다. 이로써 기본형과의 차이는 뚜렷해진다. F-타입 기본형을 포르쉐 박스터와 그리고 F-타입 S를 911과 라이벌로 보는 이유다. 문제는 외관에서 S 배지 외에 뚜렷한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지만. 와인딩 로드를 가뿐하게 달린 다음 고속도로를 잠깐 달렸다. 펀치가 좀 더 센 느낌, 확실히 V6보다 최고속도가 높게 나타났다. 윈도 바탕화면 같은 초원의 풍경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음날 아침, F-타입 V8을 탄다. 마지막 일정이다. V6 S와 마찬가지로 디자인은 같다. 한 가지 뚜렷한 차이는 양쪽 사이드로 2개씩 배치한 머플러. 뒤에서 보면 존재감의 차이가 뚜렷하게 와 닿는다. 국내 판매 예상가격은 1억6천만원이다. V8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특히 브레이크를 밟아 붉은 등이 들어올 때 포효하는 재규어의 얼굴이 나타난다.

아침 8시에 출발해 12시까지 점심장소에 도달해야 할 거리는 270km. 시동 버튼을 누르자 4개의 머플러에서 나오는 폭죽 소리가 어제의 차들보다 우렁차다. 몇 개의 라운드를 빠져나와 외곽 코스로 달려 나간다. 어제가 초원의 풍경이었다면 오늘의 길은 깊은 숲속으로 이어진다. 어쩐지 스코틀랜드 같은 북유럽의 분위기다. F-타입은 새로운 007 시리즈에 등장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V8은 한층 묵직한 느낌으로 가속이 좀 더 쉽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오르막 코너에서 확실히 밀어주는 힘이 좋다. 브레이크는 강력하고 부드럽게 원하는 지점 앞에 원하는 만큼의 속도로 줄여준다. 다시 속도를 올릴 때 이 연결감이 빠르다. 이게 V8을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루프를 연다. 트렁크에 들어가지 않고도 루프를 열고 닫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조그마한 마을을 지날 때 특히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흔들어준다. 최대한 낮은 속도로 지나가지만 우렁찬 배기음이 소란스럽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을 미소로 반겨준다. 아마 F타입의 아름다운 디자인 때문이 아닐까. 느리게 사이클을 타는 사람들, 그리고 빠르게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든다. 그 풍경 속에 F-타입이 어울려 달린다.

F-타입은 강력한 속도를 낼 때도 그렇지만 천천히 달릴 때도 모터링의 미학을 드러내는 차. F-타입에 매료되는 것은 세팅된 기계에 의존하는 느낌보다 직접 차를 컨트롤해나가는 드라이빙 감각에 있다. 그러면서도 매우 안정적이고 플랫한 승차감을 유지한다. 단지 과거의 명성에 기대는 게 아니라 그 명성을 뛰어넘어나가는 브랜드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F-타입은 그것을 보여주는 눈부신 성과물이다.

글: 최주식

F-TYPE V6
가격: 1억400만원
크기: 4470×1923×1296mm
휠베이스: 2622mm
엔진: V6 DOHC, 2995cc, 슈퍼차저
최고출력: 340마력/6500rpm
최대토크: 45.9kg·m/3600~5000rpm
0→시속 100km 가속: 5.3초
최고시속: 260km
변속기: 자동 8단
서스펜션: 모두 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모두 V 디스크
타이어(앞, 뒤): 245/45 R18, 275/45 R18

F-TYPE V6 S
가격: 1억2천만원
크기: 4470×1923×1296mm
휠베이스: 2622mm
엔진: V6 DOHC, 2995cc, 슈퍼차저
최고출력: 380마력/6500rpm
최대토크: 46.9kg·m/3500~5000rpm
0→시속 100km 가속: 4.9초
최고시속: 275km
변속기: 자동 8단
서스펜션: 모두 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모두 V 디스크
타이어(앞, 뒤): 245/45 R19, 275/35 R19

F-TYPE V8 S
가격: 1억6천만원
크기: 4470×1923×1319mm
휠베이스: 2622mm
엔진: V8 DOHC, 5000cc, 슈퍼차저
최고출력: 495마력/6500rpm
최대토크: 63.8kg·m/2500~5500rpm
0→시속 100km 가속: 4.3초
최고시속: 300km
변속기: 자동 8단
서스펜션: 모두 더블 위시본
브레이크: 모두 V 디스크
타이어(앞, 뒤): 255/35 R20, 295/30 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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