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함 속에 담긴 혁신, 폭스바겐 7세대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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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함 속에 담긴 혁신, 폭스바겐 7세대 골프
  • 아이오토카
  • 승인 2013.02.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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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을 때는 그의 영화를 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특히 10시간이 넘게 앉아있어야 하는 비행기 안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이번 뮌헨행 루프트한자에서 본 영화는 우디 앨런이 감독하고 늘 그렇듯 그 자신이 출연한 ‘투 로마 위드 러브’라는 로맨틱 코미디. 그중 한 장면. 보수적인 미국인 가장 우디 앨런은 그의 아내와 함께 딸의 남자친구(예비 사위)를 만나기 위해 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왕 이태리 사람과 결혼하려면 부자면 좋지, 요트에 페라리 몇 대에 샤르데나 섬에 빌라 같은 거 하나 갖고 있으면…” 우디 앨런이 떠벌린 이 대사가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그 샤르데나 섬에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뮌헨을 경유해 이태리 샤르데나 섬의 올비아 공항에 도착한 것은 그 다음날.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토록 먼 섬에 온 이유는 폭스바겐 제7세대 골프의 글로벌 론칭 및 시승회가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 하늘에서 본 지중해의 아스라한 풍광은 육지에 닿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지중해의 기항지로서 샤르데나는 먼 옛날 포에니전쟁 때부터 이름이 오르내린 유서 깊고 큰 섬이다. 공항주차장 한 켠에서 칼같이 도열한 신형 골프들이 세계 각지에서 온 저널리스트들을 반겨준다. 이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첫눈에 골프임을 숨길 수 없는 것은 유전이다. 여기서 숙소로 지정된 로마찌노 호텔까지 골프를 몰고 가는 것으로 일정은 시작되었다.

골프가 첫 출시된 해는 1974년, 그런데 그 이전부터 존재해온 느낌이 든다. 문득 ‘오래된 미래’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 문장은 골프의 경우, 아무리 새로움을 거듭하더라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현행 6세대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거듭해온 골프는 38년간 총 2천913만대가 판매된 자동차 역사상 가장 성공한 모델 중 하나. 이곳 샤르데나의 도로에서 만난 4세대 골프를 보며 친근함을 느낀 것처럼 시대를 초월한 골프만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 같다. 디자인 총괄 발터 드 실바의 말처럼 그것은 ‘지속성’일 수도 있겠다.

페이톤을 해치백으로 줄여놓으면 이런 모습이 될까. 최근 폭스바겐 디자인 언어를 관통하고 있는 간결함의 미학은 신형 7세대 골프에서도 잘 구현된 느낌이다. 차체가 커졌지만 무게를 줄이고 성능을 향상시키는 트렌드 역시 신형 골프에 잘 녹아들어 있다. 골프 고유의 디자인 특징 중 하나인 C필러는 한층 견고하고 속도감 있게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7세대 골프는 MQB(가로배치 엔진 전용 모듈 매트릭스)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폭스바겐의 첫 모델로 폭스바겐 그룹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는 데 의미가 크다.

MQB 플랫폼을 쓴 결과 7세대 골프는 이전 세대에 비해 길이가 56mm 길어졌고, 너비는 13mm 늘어났다. 높이가 28mm 낮아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차체가 커졌다. 그러면서도 차체무게가 23kg이 줄었다. 앞바퀴가 43mm 앞으로 더 나와 전면의 오버행이 짧아지고 보닛이 길어 보인다. 시각적으로 탑승 공간이 좀 더 뒤쪽으로 이동한 느낌을 주어 한 클래스 윗급의 분위기를 낸다.

이런 느낌은 실내에 들어가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도어를 열고 실내를 보는 순간부터 공간이 커졌음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인테리어는 중형차 감각으로 뒷좌석이 넓어져 그런 분위기를 더한다. 시트에 앉으면 맞춤슈트를 입은 듯 몸에 잘 맞는 편안함과 유연한 소재로 좋은 움직임을 느낀다. 공간은 이전보다 운전위치를 조율할 여유가 커졌다. 골프의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전통적으로 평면적이었다.

이번처럼 센터 페시아를 운전자 쪽으로 살짝 돌린 것은 시리즈에서 처음이다. A필러 앞에 작은 창을 낸 것도 변화다. 상당히 큰 8인치 모니터(옵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축소, 확대하는 터치스크린 방식을 처음 적용했다. 전반적으로 운전자를 배려한 편의성이 눈에 띈다.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를 달아 센터 터널의 수납공간 활용도도 높였다. 다만 센터콘솔은 여전히 공간이 작은 편.

먼저 1.4L 140마력 TSI 모델에 올랐다. 신형 골프에서 이 모델이 중요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실린더 차단 기능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액티브 실린더 매니지먼트(ACT)라 불리는 이 기능은 엔진부하가 적을 경우 4개의 실린더 중 2개가 차단되어 연료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1,400에서 4,000rpm 사이, 최대 85Nm의 토크에서 작동된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치열하다. 이러한 결과 CO2 배출량은 112g/km에 불과하다. 연비는 유럽 기준으로 4.8L/100km.

스포츠 시트는 견고하면서 아늑한 느낌으로 단단한 하체의 단단함이 거슬리지 않게 했다. 적당히 두툼하면서 그립감이 좋은 스티어링 휠, 세련된 인테리어는 신형 골프의 업그레이드가 선명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부드럽고 경쾌한 주행감은 필요할 때는 숨겨둔 예리함을 드러내었다. 4단에서 가속이 조금 힘에 부치기는 했지만 고속주행도 무리는 없다. 섬의 도로는 직선보다는 곡선이 주를 이룬다. 거친 와인딩로드도 이내 적응되어가기 시작했다.

이어서 탄 2.0 TDI DSG는 1.4보다 조금 더 무게감이 느껴진다. 무게감만큼 펀치력도 체급이 다르다. 똑같은 잽을 날려도 그 충격이 다른 것처럼. 신형 골프에 새로운 또 한 가지는 드라이빙 프로파일 셀렉션이 추가된 것. 버튼을 누르면 노멀, 컴포트, 스포트, 에코, 인디비주얼 등 5가지 모드가 스크린에 나타나고 그중 하나를 터치하면 하체의 세팅이 바뀐다. 역시 스포트 모드에서 타이트한 감각이 더해져 와인딩 로드에서 그 효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DSG 모델에서 특징적인 것은 에코 모드일 때 내리막 등에서 엔진을 정지시켜 운동에너지만으로 움직이게 하는 코스팅 기능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2.0 TDI 수동 6단 모델은 3도어. 직물 시트지만 착좌감이나 그립은 가죽 시트 못지않다. 자동 기어의 패들 시프트 변속은 수동보다 빠르고 편리한 것이지만, 역시 수동 기어만의 손맛은 또 경험해보면 다르다.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밀어 넣는 행동은 아무래도 남성적이다. 같은 수동이라도 기어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움직임이 좋은 차와 그렇지 않은 차의 감각은 사뭇 다르다.
 
간결한 동작으로 동력의 변화에 적절한 숫자를 부여해주는 행위는 능동적이어서 재미있다. 폭스바겐은 골프 앞에 왜 남성 명사인 Der을 붙였을까. 더 비틀은 워낙 여성적 취향이 강해 남성다움을 어필할 필요를 느꼈겠지만 골프는 좀 다르지 않나? 이런 의문은 수동 기어를 운전하면서 수그러들었다.

탑승자 보호와 다중충돌 브레이크 시스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주행감지 시스템(프론트 어시스트), 레인 어시스트 차선 유지 시스템, 파크 어시스트 기능 등 7세대 골프에 쓰인 신기술들은 콤팩트 카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들이 많다.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세계시장에서 신형 골프의 돌풍을 예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황량하고 때로는 눈부신 풍경의 샤르데나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신형 골프가 활기를 불어넣었다. 골프가 달리는 순간에는 바위의 색이 더욱 붉어졌고 나무들의 잎사귀는 반짝거렸다. 바그다드카페에 나올법한 거리를 지날 때 무지개가 아치를 그렸다. 무엇을 그리고자 하지 않았지만 완성된 그림처럼 샤르데나에서 신형 골프는 완벽한 데뷔식을 치렀다. 이제 국내에 들어올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글: 최주식, 사진: 폭스바겐 AG, 김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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