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가 만들면 크루저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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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카티가 만들면 크루저도 다르다
  • 나경남 객원기자
  • 승인 2016.04.0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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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명문 브랜드 두카티가 자사의 첫 크루저 모터사이클 X디아벨을 내놨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에서 직접 경험하고 돌아왔다. 두카티는 역시 누가 뭐래도 두카티다

여러분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모터사이클은 아직도 조금 생소할지도 모른다. 정확한 장르의 구분이 자동차처럼 널리 알려져 있고, 그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 특히 이번에는.

크루저는 매우 미국적인 모터사이클 장르다. 절대 다수의 크루저는 미국에서 판매되며, 그 시장의 가장 큰 파이를 미국의 기업인 ‘할리데이비슨’이 차지한다. 조금 과장하면 ‘할리데이비슨=크루저’의 등식이 가능할 정도다. 연상되는 이미지도 같다. 크루저(cruiser)란 장르 명을 떠올리면 그만이다. 순항하듯 장거리를 여유 있고 느긋하게 달리는 것이 떠오르지 않는가.
 

두카티(Ducati)는 흔히 페라리(Ferrari)와 비교되곤 하는 이탈리아의 명문 모터사이클 브랜드다. 페라리처럼 붉은색을 브랜드 컬러로 하는 것은 물론, 그만큼 아름다운 디자인과 고성능을 자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그들이 ‘느긋하고 여유 있는’ 크루저를 만든다? 페라리가 픽업트럭을 만든 셈이다. 정신 나간 소리 같다고? 기왕에 정신 나간 소리를 늘어놓은 김에 상상을 조금 더 확장해보자. 페라리가 진짜로 픽업트럭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전통적인 미국의 픽업트럭과는 분명히 차별화될 것이다. 두카티가 자신들의 역사상 처음이자 공식적으로 ‘크루저’ 장르를 표방하면서 내놓은 엑스디아벨(XDiavel 이하, X디아벨)은 딱 그런 존재다.
 

전 세계의 전문 기자단이 참여하는 X디아벨의 인터내셔널 프레스 테스트는 크루저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땅 위에서 진행됐다. 미국을 의식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대 시장인 미국을 노리는 것은 물론, 크루저의 본고장에서 인정받겠다는 대담함도 엿볼 수 있다.

X디아벨의 외관은 크루저 장르의 문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낮고 길게 뻗은 실루엣은 이전의 어떤 두카티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X디아벨의 모습에서 먼저 시장에 나섰던 디아벨(Diavel)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엔진과 주요 구성이 완전히 달라졌다. X디아벨은 사실상 디아벨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바이크다. X디아벨을 두고 단순히 디아벨의 라이딩 포지션을 손보는 정도로 라인업이 확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해다. 엔진은 스트로크 양을 늘려 배기량을 키웠고, 가변 밸브 타이밍 시스템이 적용되는 한편, 압축비도 달라졌다. 당연히 출력 특성과 그 수치도 달라졌지만, 내부적 변화보다도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외관이다. 엔진 외부로 드러났던 호스와 와이어 류 등은 잘 감춰놨다. 잘 감춰진 것은 반대로 ‘잘 드러나는 부분’이 더 잘 부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엔진의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눈에 더 잘 띄고 잘 다듬어졌다.
 

이번 테스트에 제공된 ‘X디아벨’과 ‘X디아벨 S’는 전체적인 구성은 거의 같지만 세부 파츠 적용에서 차이가 있다.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등 실질적인 주행감각의 차이를 제공하는 부분에서도 서로 다르지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외관이다. X디아벨의 연료탱크는 무광 검정이고, X디아벨 S는 유광 검정인 차이점도 있지만, 리어 휠과 엔진 커버의 형상에서 더욱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두 버전의 국내 판매 가격은 X디아벨이 3천80만원, X디아벨 S가 3천580만원으로 책정됐다. 가격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실제 판매량은 X디아벨 S가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X디아벨 S의 외관 디자인의 완성도와 미적 감각이 충분한 값어치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크루저 모터사이클들의 엔진은 마력보다 토크 위주로 세팅된다. 비교적 무거운 차체를 여유 있게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순항’하면서 어떤 엔진 회전 영역에서나 편안하게 토크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X디아벨 역시 마찬가지다. 엔진 회전 영역은 여느 두카티의 그것보다 낮게 설정되었고, 13.1kg·m의 최대토크가 나오는 회전 영역은 겨우 5,000rpm에 맞춰졌다. 하지만 시동을 걸고 출발하면 거의 곧바로 최대토크의 80%에 가까운 토크를 맛볼 수 있다. 두카티의 모터사이클 중 최초로 적용된 벨트형 최종 구동은 부드럽게 차체를 밀어낸다. 말 그대로 순풍에 돛 단 듯 순항할 수 있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출발보다 더 대담하고 맹렬하게 출발하고 싶다면 DPL(Ducati Power Launch)이라 불리는 두카티의 론치 컨트롤 기능을 사용하면 된다. 전문가처럼 엄청난 가속을 더 안전하게 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보쉬의 최신 관성측정유닛(IMU)를 탑재하여, 모터사이클의 좌우 기울기 및 앞뒤 기울기에 따라 제어가 가능한 트랙션 컨트롤 기능도 제공된다. 주행 중에도 트랙션 컨트롤 및 엔진 출력 특성을 조절할 수 있다. 기본 제공되는 라이딩 모드는 어반, 투어링, 스포츠로 세 종류지만,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각각의 모드를 세세하게 세팅할 수도 있다. 테스트 라이딩에서 각각의 모드를 모두 사용해봤지만, 역시 제약이 가장 없는 스포츠 모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꼭 스포츠 모드로 즐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원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나서 다시 유순하게 즐기긴 쉽지 않았다.
 

시승 코스는 예상 이상으로 다채로웠다. 약간은 차량이 많은 시내를 지나, 샌디에이고만 건너편의 코로나도 섬에서 태평양을 옆에 끼고 달리고는 이내 외곽으로 벗어났다. 넓고 길게 쭉 뻗은 도로가 반겼다. 일치감치 기어를 높여두고 달려도 보았다. 토크가 충분한 만큼, 240mm의 널찍한 리어 타이어를 밀어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각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마치 X디아벨이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성격 좋은 여자친구라도 보조를 맞춰주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쾌활하긴 어려운 것처럼. 기어를 일찌감치 올려 넣고 털털거리면서 달리는 것이 크루저의 즐거움이라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옳은 주행법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터사이클에 스트레스만 줄 뿐이다. 기어를 다시 낮춰 넣고, 가속해 나가자 X디아벨이 한결 발랄한 표정을 보인다. 그리고 그 표정은 날카롭게 돌아나가는 코너에서도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뺨이 발그레해진 것처럼 반갑다. 다리를 앞으로 뻗은 자세가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X디아벨은 역시 두카티였다. 슈퍼바이크에나 사용될 법한 브렘보의 모노블럭 M4-32 브레이크 캘리퍼는 아주 매끈한 조작감으로 서스펜션을 압축하고, 프론트 타이어를 짓눌러 코너로 차체를 밀어 넣는다. 비교적 긴 휠베이스 위로 차체의 무게중심이 앞에서 뒤로 흘러나갈 때, 스로틀을 슬며시 열어나가면 정말이지 멋진 곡선을 그려낸다. 두카티가 밝힌 X디아벨의 최대 좌우 기울기는 40°. 크루저치고는 깊은 각도로,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곡선을 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씨익 웃고 말았다. 아무렴 그렇지. 두카티가 크루저를 만들었다고, 크루저의 문법으로, 미국식으로 말한다고, 이탈리안이길 포기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기존의 여느 크루저와 차별화되는 유려한 디자인과 장르 구분을 무색하게 할 성능을 갖춘 X디아벨이 어떻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쾌활한 이탈리안 액센트는 보너스다.
 

페라리가 픽업트럭을 만들 리는 없겠지만, 페라리의 SUV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루머가 돌고는 있다. 그들의 CEO는 인터뷰에서 페라리의 SUV를 보고 싶다면 자길 먼저 쏴 죽여야 할 것이라고 한다지만,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다. 시장 상황의 변화는 충분히 유동적이니 말이다. 페라리가 SUV를 만들지 않는다면, 아마도 람보르기니가 개발 중이라는 SUV 우루스(Urus)가 가장 X디아벨에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기왕에 자동차를 비유로 든 김에 조금 더 나가보자. 포르쉐가 카이엔을 처음 만들었을 때와, 랜드로버가 이보크를 내놓았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들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일어난 시장의 변화를. 두카티의 크루저인 X디아벨 역시 브랜드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난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이엔이 여전히 포르쉐였던 것처럼, X디아벨은 여전히 두카티였다. 기존의 크루저 장르에 두카티는 편입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게 된다면 파장은 모터사이클 시장 전체로 확대될 것이다. 판에 박힌 크루저는 이제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나. X디아벨이 기다리는 주인은 이전 세대의 라이더들은 아니다. 새로운 감각으로 즐길 준비가 된 이들이 X디아벨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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