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IS200t, 더 높은 곳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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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 IS200t, 더 높은 곳을 향해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12.0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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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 다운사이징 터보의 제2탄 IS 200t가 나왔다

한때 일본차가 너나 할 것 없이 터보 엔진을 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스포츠카의 인기가 곤두박질치면서 연비가 나쁜 터보 차는 외면 받기 시작했다. 토요타에서는 2006년을 끝으로 터보를 올린 차가 라인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거꾸로 터보 차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배기량은 줄이면서 출력은 높이고 연비와 친환경성도 챙긴 다운사이징 터보 열풍이 분 것이다.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메이커는 이 세계적 흐름에서 완전히 낙오되고 말았다. 
 

다운사이징 터보 열풍에는 프리미엄 메이커도 예외는 아니었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같은 렉서스의 주요 라이벌은 미드사이즈 비즈니스 세단에도 4기통 엔진을 넣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에 찬성하건 반대하건, 배기량이 큰 자연흡기 엔진이라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인상마저 주게 됐다. 

결국 렉서스도 뒤늦게 시대적 흐름을 타고 지난해 처음으로 4기통 터보 엔진을 발표했다. 너무 늦은 감은 있지만, 브랜드 최초의 터보 엔진이기도 한 만큼 신형 엔진에는 기합이 잔뜩 들어갔다. 8AR-FTS라는 이름의 직렬 4기통 2.0L 휘발유 터보 엔진은 세계 최초로 수랭식 배기 매니폴드 일체형 실린더 헤드를 갖췄다. 그밖에 트윈 캠은 물론, 트윈 연료분사장치, 듀얼 밸브타이밍기구, 트윈 스크롤 등 뭐든지 2배로 넣었다. 
 

연료분사장치 D-4ST는 고압 분사장치와 저압 분사장치를 모두 달아 직분사와 포트 분사를 병행한다. 가변밸브타이밍기구 듀얼 VVT-iW는 오토(Otto) 사이클과 앳킨슨 사이클을 오가며 성능과 연비를 모두 챙긴다. “네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전부 준비했어”라는 느낌이다. 

신형 엔진을 가장 먼저 받은 모델은 ‘렉서스 최초’ 타이틀이 붙은 콤팩트 SUV NX였다. 그리고 NX에 이어 IS도 새로운 터보 엔진을 건네받았다. 

렉서스는 어떤 브랜드인가. ‘고급형 토요타’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단순히 토요타 차를 가지고 껍데기를 고급스럽게 꾸며 파는 것이 아니라, 토요타가 제공할 수 없는 프리미엄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IS는 토요타가 가장 내놓기 힘든 자동차다. 뒷바퀴굴림 콤팩트 세단은 프리미엄 브랜드에게는 입문 제품에 속하지만, 대중 메이커에게는 ‘작고 비싼 차’만큼 사치스런 존재도 없다. IS는 토요타가 내놓을 수 없는 렉서스만의 영역이자 특권이다. 

하지만 초대 IS(XE10)는 토요타에서 나왔다. 1998년 일본에 출시된 토요타 알테자가 그 주인공. 알테자(altezza)는 이탈리아어로 ‘높은 곳’ 또는 ‘정상’이라는 뜻이다. 개발 총책임자는 토요타 모터스포츠 부서를 이끌고 WRC와 르망 24시 경주를 진두지휘한 카타야마 노부아키였다. 그는 만화 ‘이니셜 D’로 유명한 스프린터 트레노(AE86)를 비롯해 토요타의 간판 스포츠카 수프라 개발도 맡은 인물이기도 했다. 토요타가 어떤 자세로 개발에 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 내수형 알테자에는 AS200과 RS200 두 가지 모델이 있었고, 각각 직렬 6기통 2.0L 엔진(155마력)과 직렬 4기통 2.0L 엔진(200마력)이었다. RS200의 3S-GE 엔진은 야마하와 함께 개발한 것으로, 셀리카와 MR2 등에도 들어간 엔진이었다. 한마디로 문 4개 달린 스포츠카였다. 대신 고급스러움은 부족했다. 

2005년에 등장한 2세대(XE20)는 스포티한 감성보다는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중시한 프리미엄 세단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나온 현행 3세대(XE30)는 초대 모델이 보여준 스포츠 세단의 불꽃을 되살렸다. 고급스러웠지만 밋밋했던 과거를 떨쳐버리고 외모부터 주행감각까지 지금까지의 렉서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3세대 IS는 분명 훌륭한 제품이었지만, 불행히도 이 클래스는 만만한 상대 하나 없이 강호들만 득실대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게다가 4기통 디젤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6기통 휘발유차는 손에 넣기 꺼려지는 게 사실. 결국 칭받지 못한 영웅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역대 최초로 4기통 터보 엔진을 단 IS 200t가 싸움터에 뛰어들었다. 

IS 200t에는 NX 200t와 같은 8AR-FTS 엔진이 들어간다. 하지만 출력은 NX보다 7마력 높다. NX 200t가 4,800~5,600rpm에서 최고출력 238마력을 내는 반면, IS 200t는 5,800rpm에서 245마력을 발휘한다. 최대토크는 35.7kg.m으로 같다. 
 

요즘 유행하는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은 낮은 회전수부터 두터운 토크를 일정하게 발휘해 실용 영역에서 다루기 쉬운 장점이 있다. 대신 파워가 고조되는 드라마는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8AR-FTS는 단순히 사용하기 쉬운 터보 엔진이 아니라, 회전수를 올리는 맛도 있다. 

엔진은 저회전 영역부터 응답성이 좋다. 미묘한 가속페달 조작에도 제대로 반응하고, 2,000rpm 이하에서도 빠릿빠릿하게 돌아간다. 엔진 회전수를 높게 가져가지 않는 이상 엔진은 매우 조용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진동도 거의 느낄 수 없다. 바람과 노면 소음도 잘 틀어막아 주행 중에 실내는 아주 쾌적하다. 
 

아무리 최신 디젤 엔진이더라도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내 정숙성은 우리가 렉서스에 바라는 기대치에 부응한다. 하지만 너무 조용해서 아쉬운 측면도 있다. 창문을 열고 달리면 아주 매력적인 터빈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렇게 멋진 소리를 실내로 조금도 유입시키지 않는 게 아깝게 느껴진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보면, 부드러움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가속을 보여준다. 엔진은 2,000rpm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회전수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2,000rpm부터 본격적으로 활력이 생기고, 제 힘을 발휘하는 건 3,000rpm을 넘어서다. 호쾌한 가속이 이어지고, 회전한계에 가까워질수록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목소리를 낸다. 
 

회전한계는 6,200rpm. 힘껏 가속하면 5,700rpm 부근에서 변속하고, 스포츠 모드에선 6,000rpm 언저리에서 단수를 올린다. 톡톡 쏘는 자극과 리듬이 적당히 버무려진 엔진이다. 부드러운 가속에는 변속기의 공도 크다. 

IS 200t와 NX 200t의 결정적인 차이는 변속기다. 자동 6단을 물린 NX와 달리, IS에는 8단 자동변속기가 엔진과 짝을 이룬다. NX의 6단 자동변속기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급가속을 하려고 가속페달을 꾹 밟으면 킥 다운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변속도 평범하다.  
 

반면, IS 200t의 8단 스포츠 다이렉트 시프트(SPDS)는 재빠르고 부드럽다. 렉서스에 따르면, 스포츠 모드에서는 0.2초 만에 변속을 끝낸다고 한다. 게다가 똑똑하기도 하다. SPDS는 G포스(횡G와 피치)를 반영해 변속한다. 예컨대 코너를 앞두고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으면 기어를 내리고, 코너를 돌아가는 동안에는 섣불리 시프트업 하지 않고 기어를 물고 탈출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평소에는 연료소비를 줄이기 위해 부지런히 8단까지 올린다. 에코와 노멀 모드에서는 시속 60km가 되기도 전에 8단까지 변속을 마친다. 가속페달에 올린 발에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2~3단씩 떨어지고, 거의 쉴 새 없이 단수가 오르락내리락한다. 다단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다행히 IS의 SPDS는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일이 알려주는 촌스러운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의식하지 않으면 느끼기 힘들다. 
 

서스펜션은 매우 훌륭하다. 자세를 평평하게 유지하면서 유연하게 노면을 훑고 지나가는 세련된 움직임이 대단히 만족스럽다. ‘F 스포츠’라는 트림명이 주는 선입견과는 달리, 단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탄탄하면서 유연하다. 충격 흡수와 타이어 접지 확보라는 두 가지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서스펜션은 단단한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스포티함에는 날카로움도 필요하지만, 조작한대로 충실히 움직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티어링 휠을 잡아 돌리면 머리가 가볍게 안쪽으로 파고든다. 엔진이 160kg으로 콤팩트해지면서 득을 본 측면도 분명히 있겠지만, 차체가 견고하고 하체가 탄탄한 덕분이다. IS 200t의 섀시는 신체가 잘 단련된 운동선수 같다. 
 

외부에서는 렉서스의 세계관을 아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아직 자기주장이 약하다. 라이벌들에 비해 조형의 매력이 부족하고, 버튼과 스위치, 멀티미디어 그래픽디자인은 앞으로 디자이너가 공을 들여야 할 부분이다. 풋 브레이크 타입의 구식 파킹브레이크는 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실내 소재와 만듦새는 매우 좋다. 하긴 렉서스의 질감이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표피 일체 발포 공법으로 제작했다고 하는 F 스포츠 전용 시트는 단언컨대 동급 최고다. 패드에 표피를 씌우는 일반적인 방법과 달리, 금형에 부착된 표피 안에 패드의 재료인 우레탄을 집어넣는 제조방법이다. 몸에 착 맞아서 과격한 움직임에도 몸을 꼭 붙잡아주고, 쿠션이 쫄깃해 장시간 운전해도 편안하다. 기립박수를 받을 만하다. 
 

실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슈퍼카 LFA의 것과 비슷한 계기판이다. 한편으론 크로노그래프 시계와 닮았던 초대 IS의 계기판이 떠오르기도 한다. IS 200t F 스포츠의 멋진 계기판은 기능면에서도 설득력이 있지만, 버튼 하나로 계기판이 옆으로 슬라이딩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래픽만으로 처리한 것이 아니라 기구 설계를 요하기 때문에 분명 값비싼 장치일 터. 이것을 양산까지 밀어붙인 개발진의 고집이 느껴진다. 효과는 만점. 아마 이 계기판 하나만으로도 구매 욕구를 느끼는 소비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IS 200t는 매력적이고 우수한 자동차지만, 디젤이 대세가 된 지 오래인 국내 프리미엄 콤팩트 시장을 뒤흔들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건 고회전까지 엔진을 돌리며 맛깔스런 주행감각을 원하는 이들에겐 IS 200t가 아주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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