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이딕 스컬프처의 원조, 1992 현대 HC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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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이딕 스컬프처의 원조, 1992 현대 HCD-1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8.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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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동차회사들은 1970년대 석유파동을 계기로 연비와 품질이 좋은 소형차를 앞세워 미국시장을 잠식해나갔다. 미국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일본 메이커와 경쟁을 펼치기 위해선 현대자동차에게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또한, 선진 자동차회사로 발돋움하려면 양적 성장 못지않게 고유의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도 있었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얼바인에 첫 해외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미국시장 공략에 나섰다. 

후발주자였던 현대차로서는 우선 현대차라는 존재를 미국시장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미국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미국인 대다수가 이상(理想)으로 꼽는 새빨간 오픈 스포츠카가 적격이었다. 현대차는 미국 자동차잡지 표지에 실릴 정도로 화려한 디자인이되 유럽이나 미국 스포츠카와는 구분되는 자동차를 개발하고자 했다. 
 

디자인 개발을 주도한 것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현대차 디자인센터를 이끈 오석근 전 부사장이었다. 1984년 13번째 디자이너로 현대차에 입사해 6년차에 접어든 그에게 미국 디자인 스튜디오(현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 설립과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콘셉트 카 개발 임무가 주어졌다. 

스튜디오가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이어서 디자이너와 모델러를 합해 겨우 10명의 인원으로 개발에 착수했다. 예산은 35만 달러(약 3억8천만원)였는데, 이는 통상적인 콘셉트 카 개발비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현대차 미국 디자인 스튜디오가 개발한 첫 차 HCD-1은 열악한 환경, 적은 인원, 저예산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밤샘 작업 끝에 탄생했다. 
 

‘현대 캘리포니아 디자인 1호’라는 뜻의 HCD-1은 1992년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였다. 2인승 스피드스터 HCD-1은 인체 근육을 흉내 낸 과감하고 볼륨감 있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타르가 지붕은 떼어낼 수 있고, 뒤 유리 또한 완전히 접을 수 있어서 롤바가 달린 컨버터블 같은 인상을 준다. 

구동계를 갖춘 워킹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한 HCD-1은 실제로 주행이 가능했다. 150마력을 내는 직렬 4기통 DOHC 16밸브 2.0L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가 짝을 이뤘고, 당시로써는 첨단 장비였던 ABS, 듀얼 에어백, 네 바퀴 독립 서스펜션도 갖췄다. 
 

HCD-1은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올해의 콘셉트 카’로 선정되며 화제의 중심에 선 데 이어, 5월에는 미국 자동차잡지 〈카 앤 드라이브〉 표지를 장식하게 되면서 현대차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현대 차가 외국 자동차잡지 표지에 실린 건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HCD-1은 그대로 양산화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성공적인 데뷔에 힘입어 이듬해 HCD-2로 발전할 수 있었고, 이것을 모태로 훗날 티뷰론이 탄생했다. 또한, HCD-1의 근육질 디자인은 1세대 싼타페 디자인에 응용되기도 했다. 
 

오늘날 현대차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의 플루이딕(fluidic‧유동성의, 유체의) 부분은 HCD-1이 보여준 유기체적 조형에 뿌리를 두고 있다. HCD-1의 디자인 개발을 맡았던 오석근 전 부사장은 지난 2009년 YF 쏘나타를 통해 처음 소개한 ‘플루이딕 스컬프처’ 디자인 철학을 구축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HCD-1 이후로 현대차 콘셉트 카 계보는 개발 주체에 따라 크게 HND(현대 남양 디자인), HCD(현대 캘리포니아 디자인), HED(현대 유럽 디자인)로 나뉘고 있다. 지난해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한 HED-9 인트라도, 지난 1월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공개한 HCD-15 싼타크루즈, 지난 4월 서울모터쇼에서 공개한 HND-12 엔듀로가 가장 최근에 선보인 차들이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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