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를 위한 차, 재규어 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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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를 위한 차, 재규어 XE
  • 최주식 편집장
  • 승인 2015.08.0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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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의 엔트리 모델 XE는 운전자를 위한 차라는 목표에 가장 새롭고 효율적으로 접근했다

어떤 노래를 자주 듣거나 좋아하게 되면 그 노래를 부른 가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새로운 노래도 익숙해진 그 목소리 때문에 금방 받아들이게 된다. 일종의 친밀감 같은 것. 다른 말로 하면 대중성이다. 자동차도 이와 비슷하다. 언제부턴가 ‘낯설게 하기’는 자동차업계에서 썩 유용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 났다. 헤리티지로 먹고 사는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이런 경향은 강했다. 프리미엄이 대중적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의 열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더 대중적이다. 
 

재규어 XE는 새롭다. 하지만 익숙하다. XE의 디자인, 기술, 엔지니어링은 단계별로 공개되어 왔다. 포르쉐 파나메라가 그랬듯 브랜드에서 새로운 세그먼트를 개발할 경우 이런 전략은 더 치밀하다. 이미 시판 중인 모델의 판매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신차임에도 정보 공개는 과감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새 모델 전략은 신규 고객 유치에 집중되어 브랜드 볼륨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세력 확장은 이제 공공연하다. 어디까지 경계를 유지할지 지켜볼 따름이다. 
 

매년 국제 에어쇼가 열리는 영국 TAG 판버러 공항을 출발한 소형 전세기는 세 시간 후 스페인 북부의 빅토리아 공항에 착륙했다. 기내에서는 XE의 정보를 담은 아이패드를 나눠주는 것으로 프리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아이패드는 착륙 직전 회수되었다) 소형 비행기들과 격납고가 한눈에 들어오는 비행장을 쓰윽 돌아다보고 걸어서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과정은 무척 단조롭다. 사실 이런 단조로움이야말로 특별한 경험일 터이다. 아담한 터미널 밖으로 나오자 재규어 XE 시승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처음 배정받은 차는 폴라리스 화이트 컬러. 트림명은 25t 포트폴리오(Portfolio). 2.0L 240마력 휘발유 엔진을 얹고 자동 8단 기어와 매칭했다. 뒷바퀴를 굴리고 0→시속 100km 가속 6.8초, 최고시속 250km의 성능을 낸다. 휠은 18인치. 
 

240마력이 5,500rpm에서 발휘되는 것은 전형적인 휘발유 엔진의 특징이지만 34kg·m의 최대토크가 1,750~4,000rpm대에서 발휘된다는 데 놀란다. 낮은 rpm에서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것은 디젤 엔진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디젤과 휘발유는 서로의 장점을 파고들며 경쟁적으로 진화하는 느낌이다. XE 25t의 첫인상은 강력함보다 가벼운, 출발이 쉽고 매끈하다는 점. 정돈된 인테리어는 전형적인 재규어 스타일 그대로, 첫 만남이어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좀 더 단순해진 구성이지만 소재의 질감이나 품질은 역시 프리미엄급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을 손끝으로 읽을 수 있다. 
 

속도제한 50~70km의 한적한 동네를 벗어나 천천히 속도를 높여간다. 낮은 담장과 낮은 지붕, 그리고 낮은 나무들과 낮게 펼쳐진 구릉 위로 낮게 내려앉은 하늘이 맞닿은 도로를 향해 낮게 내달린다. 이따금 나타나는 첨탑의 교회와 노란색 돌집들, 좁은 골목을 지난다. 단조로운 풍경에 싱거워진 시선은 이내 XE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웬일인지 XE에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바닥에 밀착되는 스포츠 세단의 그것보다는 평범한 고급 세단 같은 기분. 아마 차체가 가볍다는 인상에 압도되었던 것 같다. 
 

재규어가 XE를 내놓으며 가장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알루미늄 인텐시브 모토코크 차체다. 차체에서 차지하는 알루미늄 비중이 75% 이상으로 동급 최고 수준이다. 재규어의 이 새로운 모듈러 차체는 향후 다양한 세그먼트에 적용된다. 알루미늄, 고장력 강철, 마그네슘 등의 금속 재료를 균형 있고 유연하게 제조할 수 있는 설계상의 이점을 활용한다. 단지 가벼울 뿐 아니라 비틀림 강성이 높아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장점. 가령 A필러는 고강도 알루미늄, B필러는 초고강도 강철이 보강된 고강도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충돌 시 탑승자 공간을 보호한다. 
 

XE의 또 다른 특징은 전통적인 유압식 스티어링 대신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EPAS)을 썼다는 점. 재규어 최초다. 아마 이 때문에 더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는지 모른다. 서스펜션은 앞 더블 위시본, 뒤 인테그럴 링크로 뒷바퀴굴림과 네바퀴굴림 구동계에 최적화했다. 이를 토대로 한 민첩성과 반응성, 유연성은 XE가 줄기차게 매달린 주제인데, 동급 최고의 드라이버즈 카가 그 지향점이다. 
 

이 클래스에서 운전자를 위한 차는 어쩌면 당연한 설정. 그만큼 운전 편의성과 성능, 효율성을 극대화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런 엔지니어링적인 특징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20d로 갈아타면서부터. 직렬 4기통 2.0L 터보 디젤 엔진으로 최고출력 180마력/4,000rpm. 최대토크는 43.9kg·m/ 1,750~2,500rpm이다. 재규어 엔진의 새 시대를 열어갈 모듈러 엔진, 인제니움 엔진이다. 우선 디젤 엔진만 나오고 향후 휘발유 엔진이 추가된다. 인제니움 디젤 엔진의 특징은 가변 구조의 터보를 달아 낮은 회전 속도에서 빠르게 토크를 발휘한다는 점. 그리고 뛰어난 효율성에 있다. 
 

인제니움 2.0 디젤 엔진은 163마력, 180마력 두 가지. 시승차는 180마력 버전의 R-스포트. 좀 전의 포트폴리오는 헤링본 패턴의 고급 윈저 가죽과 계기판의 트윈 스티칭 마감 등 맞춤형 느낌을 주는 최상위 라인업. R-스포트는 리어 스포일러와 크롬 처리한 사이드 파워 벤트, 스포츠 서스펜션이 차이점. 그리고 수동 6단 기어다. 동그랗게 손에 착 감기는 기어 레버가 모처럼 반갑다. 수동 6단의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7.8초.

기어는 매끄럽고 정확하게 제자리를 찾아 꽂힌다. 휘발유 엔진보다 출력은 뒤지지만 힘 부족은 느껴지지 않는다. 초기 가속부터 좀 더 묵직함이 전해지고 안정감이 드는 기분이다. 가속은 빠르고 탄탄하게 이어진다. 적응력이 좀 생긴 뒤여서 코너링의 속도가 높아진다. 언더 스티어를 줄여 코너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도와주는 토크 벡터링 시스템이 모든 XE에 기본으로 들어간다. 핸들링은 예리하면서 중립적이다. 
 

속도의 템포를 조절하고 다시 고속으로 이끄는 과정이 상당히 매끈하다. 터보래그라고 할 만한 구간이 거의 없다. 무엇보다 주행 소음이 착 가라앉아 있다. 일반적으로 조용한 디젤이라는 수준을 상회한다. 더불어 인상적인 것은 고속에서도 끈기가 부족하지 않다는 점이다. 실체를 처음 만난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기대 이상이다. 연비는 163마력의 경우 31.9km/L, 180마력은 23.8km/L(유럽 기준)으로 재규어 사상 최고다. 인제니움 휘발유 엔진이 더 궁금해진다. 
 

어느새 나바라(navarra) 서킷에 도착했다. 국제적인 테스트 드라이브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으로 서킷 길이는 3.933km에 이른다. 코너 구간은 15개, 직선구간 거리는 800m에 이른다. 여기서 만난 것은 XE S. 라인업에서 가장 고성능 모델. 앞 범퍼 아래의 대형 에어 인테이크, 스웨이드 패널로 마감한 토러스 가죽 시트, S 로고가 새겨진 스포츠 스티어링 휠, 리어 스포일러, 레드 브레이크 캘리퍼와 매칭한 19인치 휠(20인치는 옵션)로 차별화가 완성된다. 그리고 V6 슈퍼차저 엔진이 핵심이다.
 

F-타입에도 쓰인 V6 3.0L 슈퍼차저 엔진은 340마력의 여유로운 동력이 특징. 고회전에서 힘을 발휘하는 엔진이지만 저회전에서 고회전으로 가는 단계가 무척 짧다. 여유로움의 힘이다. 트윈 보텍스 루츠형 슈퍼차저 공간을 포함하는 V6 엔진은 더 커졌다. 자동 8단 기어와 매칭해 0→시속 100km 가속 5.1초의 파워풀한 가속성능을 자랑한다. 어찌 보면 F-타입의 세단 버전 같은 분위기. 비로소 XE가 F-타입에 빚을 졌다는 이안 캘럼 의 말이 떠오른다.
 

인스트럭터 옆에 앉아 서킷 코스와 주행 요령을 배운 다음 직접 운전한다. 드라이브 셀렉터는 스포트에 놓고 패들 시프트를 적극 사용한다. 3단에서 5단을 오르내리며 코너와 직선을 번갈아 공략한다. 인스트럭터는 랩을 추가할 때마다 속도를 높일 것을 요구했다. 좌우의 큰 움직임 뒤에 자세를 바로잡는 밸런스는 훌륭했고, 이 신뢰감은 서킷 공략의 자신감을 높여주었다. 횡력 저항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노력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스티어링도 자연스러운 반응. 타이어 그립은 노면과 일체감을 이루고, 차체는 고속 코너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했다. 카랑카랑한 사운드가 더해진 것도 다른 XE들과 다른 S의 매력. 
 

서킷에서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XE S를 몰고 일반도로로 나선다. 마치 세트장처럼 텅 빈 고속도로에서 서킷에서와는 다른 통쾌한 가속성능을 맛본다. XE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의구심은 어느새 사라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종일 XE를 타고 달리며 중독된 것은 아닐까. 중독이라면 물론 빠져든 이유는 있을 것이다. 
 

새로운 헤드업 디스플레이, 스테레오 카메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랜드로버의 지형반응(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을 응용한 ASPC(전지형 주행 컨트롤), 스마트폰 앱과 와이파이 핫스팟 등 연결성을 강조한 인컨트롤(InControl)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 XE의 놀라운 장치들에 대한 얘기는 국내에서 적용된 다음으로 미룬다.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직관적이라는 점. 재규어가 새로운 엔트리 모델을 내놓으며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다는 데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클래스를 지배하고 있는 독일차들이 긴장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현실적으로 재규어가 한 발 더 가까워졌다는 점도 반갑다.

글 · 최주식 편집장 (road@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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