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 섞인 프랑스의 맛, 푸조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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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 섞인 프랑스의 맛, 푸조 308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7.17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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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1.6 TDI 구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뉴 308 1.6 블루HDi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푸조 308의 역사는 1969년 선보인 304부터 시작됐다. 이후 305(1977년), 306(1993년), 307(2000년)을 거쳐 2007년 308로 이어졌다. 현행 308은 지난 2013년 9월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2세대. 모델 체인지마다 끝의 숫자를 올리던 기존의 작명법을 바꾸면서 308이라는 모델명을 그대로 유지했다. 

1세대(T7) 데뷔 이후 6년 만에 나온 2세대(T9)는 PSA 푸조 시트로엥 그룹이 6억3천만 유로(약 7천480억원)를 투자해 개발한 EMP2(이피션트 모듈러 플랫폼) 기반의 첫 번째 푸조 모델이다. PSA 그룹이 플랫폼을 쇄신한 것은 12년 만의 일이다. 
 

EMP2는 C세그먼트를 중심으로 쿠페부터 SUV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특히, 알루미늄 등 경합금과 복합소재를 사용해 경량화에 주력한 것이 가장 큰 특징.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 덕분에 이전 세대보다 최대 140kg 감량했고, CO₂ 배출량은 22% 줄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6월부터 2.0L 터보 디젤 엔진 한 가지로 판매됐고, 이번에 유로6 기준을 충족하는 1.6 블루HDi(BlueHDi) 엔진을 새로 추가했다. 블루HDi는 디젤 미세먼지 필터(DPF)와 선택적 촉매 환원(SCR) 시스템을 결합한 친환경 디젤 엔진. 미립자를 99.9% 걸러주고, 질소산화물(NOx) 방출은 90% 줄였다. 
 

뉴 308 1.6 블루HDi는 국내에 악티브(Active‧2천950만원)와 알뤼르(Allure‧3천190만원) 두 가지 트림으로 판매된다. 시승차는 고급형인 알뤼르이며, 색상은 짙은 보랏빛의 ‘트와일라이트 블루’다. 

푸조가 ‘아이콕핏’(i-Cockpit)이라고 부르는 운전석 전경은 색다르다. 계기판은 대시보드 상단에 자리 잡았다. 계기판을 높게 배치한 것은 운전자가 도로에서 눈을 떼지 않고도 쉽게 주행정보를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계기판을 가리지 않기 위해 지름이 아주 작은(351mm×329mm) 스티어링 휠을 달았지만, 시트 포지션이나 운전자의 앉은키에 따라 스티어링 휠 림이 계기판 하단 일부를 가릴지도 모른다. 정보를 읽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운전대와 계기판이 겹쳐 보이면 성가실 수도 있다. 

센터페시아에는 큼직한 9.7인치 터치스크린만 덩그러니 있을 뿐 물리적 버튼이 거의 없다. 비상등 버튼을 포함해도 총 버튼 수가 6개에 불과하다. 모든 제어 기능을 스크린 안에 넣었고, 이를 통해 공조장치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조작한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스크린 양옆에는 터치로 작동하는 메뉴 버튼을 따로 마련해뒀다. 그럼에도 최소 한 번 이상 동작이 더 필요한 점은 번거롭다. 가령 라디오를 듣다가 실내온도를 낮추려면, 우선 메뉴 버튼을 터치해 공조장치 화면을 띄운 뒤 조작해야 하는 식이다. 유저 인터페이스는 직관적이라 쓰기 쉽다. 

실내에 널찍한 수납공간을 여럿 갖췄지만, 휴대전화나 동전 등 잡다한 물건을 놔둘 만한 곳이 부족한 점은 아쉽다. 트렁크 용량은 470L로 동급 최대. 라이벌인 폭스바겐 골프는 380L다. 트렁크 양옆의 트림을 최소화해 좌우 공간도 넓게 확보했으며,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최대 1,309L로 확대된다. 트렁크가 넓은 대신 뒷자리 다리 공간은 다소 빠듯하다. 
 

엔진은 최고출력 120마력을 내는 직렬 4기통 1.6L 터보 디젤. 1,750rpm에서 최대토크 30.6kg·m을 발휘해 골프 1.6 TDI(105마력, 25.5kg·m)보다 우위에 있다. 공회전 시 소음과 진동이 매우 적고, 심지어 밖에서도 4기통 직분사 휘발유 엔진 정도의 소리만 들릴 뿐이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소음과 진동에 대해선 완전히 잊게 된다. 메이커를 불문하고 최신 디젤 엔진은 옛날처럼 시끄럽지 않지만, 특히 308 1.6은 휘발유 차만큼 조용하다. 

변속기는 아이신제(製) 자동 6단. 기존의 자동화 수동변속기 MCP를 대체하게 될 새로운 EAT6(이피션트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이다. 그동안 MCP는 연료효율이 높은 반면 수동변속기 특유의 거친 변속 탓에 승차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푸조는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듀얼클러치 대신 토크컨버터 방식의 재래식 자동변속기를 택했다. EAT6은 듀얼클러치 방식에 비해 직결감은 덜하지만, 변속이 매우 부드러워서 고급스런 느낌이다. 푸조에 따르면, EAT6은 수동변속기 사양과 비교해 CO₂ 배출량 차이가 불과 5g/km라고 한다. 

최고출력이 120마력이라고 얕잡아보면 안 된다. 최대토크 30.6kg·m은 3.0L 자연흡기 휘발유 엔진에 버금가는 수치다. 저회전부터 두툼한 토크가 나오고 응답성도 좋아서 달리는 데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속도를 한껏 높이는 혈기 왕성한 프랑스인의 운전습관에 맞춘 세팅이리라.
 

고속으로 갈수록 힘이 빠지긴 하지만, 이 세그먼트에선 필요 충분한 힘이다. 시속 100km로 항속할 때 엔진회전계 바늘은 1,750rpm을 가리킨다. 정부 공인 복합연비는 16.2km/L(도심 15.2km/L, 고속도로 17.7km/L)다. 

뉴 308 1.6은 ‘드라이버 스포츠 팩’을 갖췄다. 상급모델인 2.0에도 없는 1.6만의 특권이다. 센터콘솔에 달린 스포트 버튼을 약 2초간 누르면 계기판 조명이 온통 새빨간 색으로 바뀌고, 계기판 중앙의 정보표시창은 출력, 부스트압, 토크를 실시간으로 나타낸다. 
 

스티어링 휠은 묵직해지고, 스로틀 반응은 예민해지며, 변속기는 공격적으로 작동한다. 엔진회전 범위를 넓게 쓰고, 감속하면 적극적으로 기어 단수를 낮춘다. 엔진회전계가 빨갛게 바뀌어 5,000rpm부터 시작되는 레드존이 구분되지 않는데, 수동 모드에서도 4,500rpm에서 강제로 변속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진 않는다. 

스포츠 모드에선 단지 차의 성격과 계기판 색깔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소리도 달라진다.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내는 소리는 완전한 인공음이 아니라 실제 엔진 소리를 음원으로 삼아 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소 인위적이긴 해도 효과는 매우 좋다. 
 

묵직한 저음과 날카로운 고음이 뒤섞인 독특한 음색이며, 거친 고동을 살린 박력 있는 소리다. 자꾸만 가속페달을 밟고 싶게 만들고, 400마력 이상의 차에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해 스포츠 주행의 흥을 돋운다. 분명 재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매만진 솜씨다. 

사운드 디자인에 공을 들인 흔적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창문을 연 상태에서 방향지시등을 켠 채로 주행하자 일정 시간이 지나 똑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외부 소음 때문에 방향지시등을 켜둔 걸 잊어버리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생각된다. 이러한 섬세한 터치가 만족감을 높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서스펜션 세팅에는 푸조의 노하우가 잘 녹아 있다. 다소 억센 독일 라이벌에 비해 여유로운 감각이며, 덕분에 다루기 쉽고 편안하다. 큰 충격과 자잘한 충격 모두 잘 걸러주는 세팅은 자갈길 등 울퉁불퉁한 노면이 많은 프랑스의 운전 환경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국내 환경에도 잘 어울린다. 

부드러운 세팅이지만, ‘달리자’라고 마음먹으면 그에 맞춰 잘 움직여준다. 속도를 높여 코너에 들어서면 처음엔 약한 언더스티어 반응을 보이는데, 이내 스윙하는 기분으로 상쾌하게 돌아나간다. 믿음직스러운 동시에 쾌활한 움직임이다. 굽이진 길에서 발놀림이 가볍고, 앞뒤 밸런스도 좋다. 다만, 좌우 뒷바퀴에 각기 다른 충격이 전해질 때는 간혹 세련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신형 308은 지난해 BMW i3이나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등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최신 기술로 수준 높은 주행감각과 친환경성을 실현하면서 동시에 프랑스 차 특유의 맛도 확실히 살린 신형 308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만약 골프 1.6 TDI 구입을 고려중이라면, 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뉴 308 1.6 블루HDi도 시운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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