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망에서 펼쳐지는 24시간의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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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에서 펼쳐지는 24시간의 열전
  • 임재현 에디터
  • 승인 2015.06.1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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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 24시는 1923년부터 열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내구 경주. 올해는 닛산이 16년 만에 돌아와 아우디, 포르쉐, 토요타와 자웅을 겨룬다

해마다 6월 중순이면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인구 15만 명의 작은 도시 르망(Le Mans)이 외지인들로 북적인다. 지난해에는 도시 전체 인구의 1.7배가 넘는 26만여 명이 르망에 운집했다. 르망 24시(24 Heures du Mans) 경주를 보기 위해서였다.

1923년 처음 개최돼 올해로 92주년을 맞이하는 르망 24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자동차 경주 가운데 하나다. 첫 대회는 5월에 열렸으나, 2회 대회가 6월에 치러진 뒤에는 매년 6월 개최하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오는 6월 13일 오후 3시부터 14일 오후 3시(현지시간)까지 열린다.

르망 24시는 지난 92년 동안 총 10차례 경기가 열리지 못했다. 대공황 기간이었던 1936년에는 프랑스 자동차업계의 총파업으로 인해 취소됐고, 1940년부터 1948년까지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중단됐다. 올해 대회는 83회째다.
 

독자적으로 열리던 르망 24시는 지난 2012년부터 FIA 내구경주선수권대회(WEC)에 속해 4월 영국 실버스톤 6시간, 5월 벨기에 스파-프랑코샹 6시간에 이은 WEC 3차전으로 치러지고 있다. 90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진 경주인 탓에 WEC 시즌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것보다 르망 24시 한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이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을 만큼 상징성이 크다.

자동차 경주는 일반적으로 서킷을 몇 바퀴 돌지 정해놓고 결승선을 빨리 통과하는 순위를 가린다. 반면, 내구 경주는 시간을 정해놓고 제한시간 동안 가장 멀리 가는 순위를 가리는 것이 특징이다. 르망 24시는 예열을 위한 웜업(warm-up) 주행으로 1바퀴를 돌고, 예선 1위 선두 차가 출발선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24시간을 잰다.

초창기에는 드라이버 1명이 24시간 동안 내리 달린 경우도 있었으나, 1970년부터 안전을 위해 반드시 경주차 1대당 3명이 팀을 이루도록 하고 있다. 드라이버 1명이 4시간 이상 연속으로 운전할 수 없고, 총 주행시간이 14시간을 넘겨서는 안 된다.
 

24시간의 열전이 펼쳐지는 무대는 사르트 서킷(Circuit de la Sarthe). 르망 주변의 일반도로와 상설 경기장인 부가티 서킷 일부를 연결한 13.629km 길이의 임시 서킷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서킷 중 하나다. 또한, 전체의 85%를 전속력으로 달려 평균시속이 240km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서킷이기도 하다.

긴 직선주로인 뮬산 스트레이트에서는 시속 320km 이상으로 항속하게 된다. 안전을 위해 1990년에 시케인 두 곳을 추가하기 전에는 시속 400km로 달리기도 했다. 역대 최고속도 기록은 1989년 예선에서 자우버 메르세데스 C9가 세운 시속 398km다.

이에 앞서 1988년에는 웰터레이싱의 VM P88이 시속 407km로 달려 르망 24시 역사상 처음으로 시속 400km의 벽을 깨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 오로지 최고속도 기록만을 노리고 세팅한 차였기 때문에 공식기록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르망 24시는 꼬박 24시간 동안 차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 달려야 하기 때문에 성능은 물론이고 내구성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드라이버의 체력과 팀의 경기운영 능력도 승리에 필수적이다. 최근에는 피트 횟수를 줄이고 더 멀리 달리기 위해 연비도 중요시되고 있다. 때문에 르망 24시에서 우승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알파로메오, 부가티, 벤틀리 등 모터스포츠의 여명기를 이끈 메이커들이 우승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전후에는 페라리, 재규어, 메르세데스-벤츠가 두각을 나타냈고, 1960년대에 들어서는 페라리의 독주가 시작됐다. 1960년부터 6년 연속 우승한 페라리의 질주를 막은 것은 포드였다.
 

헨리 포드 2세는 1963년 페라리를 인수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페라리를 쓰러뜨릴 경주차 개발을 지시했다. 그 결과물이 GT40이었다. GT40은 1964년 르망 24시에 첫 출전했으나, 처음 2년간은 실패를 겪었다. 이후 캐롤 쉘비가 개발을 맡아 성능을 높인 GT40 MkⅡ가 1966년 르망에서 1, 2, 3위를 석권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GT40은 1966년부터 1969년까지 4년 연속 우승함으로써 이전까지 유럽 메이커들의 독무대였던 르망 24시에서 금자탑을 세웠다. 포드는 1969년 경기를 끝으로 르망 24시에서 철수했다. 포드에 이어 르망의 왕좌에 오른 것은 포르쉐였다.
 

포르쉐는 917K로 1970년에 첫 승을 거뒀고, 1998년 911 GT1로 우승한 이후 철수하기까지 르망에서 총 16회 우승했다. 1981년부터 1987년까지 7년 연속으로 우승하기도 한 포르쉐는 현재 르망 24시 최다 우승 및 최다 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71년 경기에서 917K가 달린 총 주행거리 5,335.31km는 2010년 아우디 R15 TDI 플러스가 5,410.71km(397랩)를 달리기까지 39년 동안 최장 기록이었다. 917K의 가장 빠른 랩 타임 기록인 3분18초40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다만, 그때와 지금은 서킷 레이아웃이 달라서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 지금의 레이아웃으로 바뀐 2007년 이후 가장 빠른 랩 타임은 2013년 로익 듀발이 아우디 R18 e-트론 콰트로로 달린 3분22초349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우디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0년 르망 24시에 첫 출전한 아우디는 지난해까지 총 15개 대회에서 2003년과 2009년 단 두 번을 제외하고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대회 통산 13회 우승으로 포르쉐의 16회 기록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아우디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르망에서 5연승을 거뒀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다시 한 번 5연승을 달리고 있다. 만약 올해 우승을 추가해 6연승에 성공하면, 페라리의 기록과 동률을 이뤄 최다 연승 기록 2위에 오르게 된다.
 

‘기술을 통한 진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2006년 세계 최초로 디젤 경주차 R10 TDI로 출전해 우승한 데 이어, 2012년에는 디젤 하이브리드 R18 e-트론 콰트로로 우승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차로 우승한 메이커가 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르망을 주름잡던 아우디는 갈수록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2012년에는 토요타가 강력한 휘발유 하이브리드 경주차 TS030 하이브리드를 앞세워 르망 24시에 돌아왔다. 1999년 GT-원(ONE)으로 2위에 오르고 철수한 지 13년 만이었다. 첫 해에는 사고와 고장으로 완주에 실패하면서 아우디가 시상대를 점령했지만, 이듬해에는 2위와 4위를 가져가며 아우디 견제에 성공했다.
 

토요타는 지난해 르망에서 아우디에게 1, 2위를 내어주고 3위에 만족해야 했다. 대신 WEC 총 8개 대회 가운데 다섯 경기에서 우승해 3승에 그친 아우디를 승점 39점 차이로 따돌리고 2014 시즌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아우디가 종합우승을 놓친 것은 지난 2012년 WEC 출범이래 처음이었다.

지난해에는 포르쉐가 16년 만에 르망에 복귀했다. 비록 르망 24시에서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줬지만, 시즌 내내 꾸준히 순위를 올리며 상승세를 이어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르쉐는 2014 시즌 최종전 상파울루 6시간에서 첫 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올해는 토요타와 포르쉐에 이어 닛산이 르망 24시에 출전한다. 1999년 철수한 지 16년 만이다. 현재 경주차 완성에 난항을 겪고 있는 닛산은 개막전과 2차전 출전을 포기하고 오직 르망 24시에 대비한 테스트에 집중하고 있다.

2차전까지 마친 현재(5월 3일), 아우디가 승점 70점으로 1위, 포르쉐가 53점으로 2위, 토요타가 47점으로 3위를 달리고 있다. 6연승에 도전하는 아우디, 대회 통산 17번째 우승을 노리는 포르쉐, 르망에서의 첫 승에 도전하는 토요타와 닛산, 과연 누가 르망 24시의 승자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르망 대참사
1955년 경기 도중 앞서가던 재규어와 오스틴-힐리를 미처 피하지 못한 메르세데스-벤츠 300 SLR이 충돌 후 엔진 등이 관중석으로 날아가 드라이버 피에르 레베흐를 포함해 총 84명이 목숨을 잃고 120명이 다치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르망 대참사’라고 불리는 이 사고는 모터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르망 대참사의 여파로 벤츠는 모든 모터스포츠 활동을 중단했고, 다시 서킷에 돌아오기까지 30년이 걸렸다. 벤츠는 1985년 자우버에 엔진을 공급하면서 모터스포츠에 간접 참여하기 시작했고, 자체 팀을 꾸려 F1에 복귀한 것은 르망 대참사 이후 55년이 지난 2010년이었다. 레베흐 뒤에서 달리다가 가까스로 충돌을 모면하며 사고를 생생히 목격한 전설적 드라이버 후안 마누엘 판지오는 이날의 충격으로 다시는 르망을 달리지 못했다.
 

■ 완벽 복원되어 20년 만에 르망 땅 다시 밟은 787B
마쓰다는 787B로 1991년 일본 메이커로는 처음으로 르망 24시에서 우승했다. 787B 이후 르망에서 우승한 일본차는 아직까지 없다. 또한, 1992년부터 로터리 엔진을 금지함에 따라 실린더가 없는 자동차로는 유일한 우승 기록으로 남아있기도 했다. 마쓰다는 지난 2011년 우승 20주년을 맞이해 20년 전 르망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엔지니어들을 불러 모아 일본 히로시마에 위치한 마쓰다 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787B를 복원했다. 다시금 생명력을 얻은 787B는 조니 허버트 등 당시 드라이버 3명과 전체 팀원들과 함께 20년 만에 르망 땅을 다시 밟았다.
 

■ 르망 스타트
한때 르망 24시는 관람석을 향해 차를 정렬해놓고, 드라이버는 길 건너편에서 대기하다가 출발 신호와 함께 차로 달려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르망 스타트’라고 하는데, 드라이버가 차에 오르면서 시동을 걸고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키 박스를 왼쪽에 달았던 것이 아직까지 포르쉐 시판차에 전통으로 남아 있다. 르망 스타트는 차의 탑승 용이성과 시동성을 평가하기 위한 제도였으나, 안전 문제로 1971년에 롤링 스타트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모든 WEC 경기가 르망 스타트 방식으로 바뀌었다. 다만, 포메이션 랩 이전에 실시하는 일종의 이벤트이며, 실제 경기 시작은 종전과 같이 롤링 스타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 사르트 서킷에서 이름 가져다 쓰는 벤틀리
벤틀리는 사르트 서킷의 구간 이름을 모델명으로 쓰기도 한다. 플래그십 모델 뮬산은 뮬산 스트레이트에서 이름을 가져왔고, 뮬산 이전 모델인 아르나지는 90°로 꺾이는 아르나지 코너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벤틀리가 1999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선보인 632마력의 슈퍼카 콘셉트 유노디에르는 뮬산 스트레이트의 예전 이름이다. 벤틀리는 1924년 첫 승을 거둔 이후 1927년부터 1930년까지 르망에서 4년 연속 우승했으며, 지난 2003년에는 2대의 스피드 8(사진)로 출전해 1, 2위를 차지했다. 벤틀리는 르망 24시에서 총 6회 우승해 다섯 번째로 많이 우승한 메이커다.

글 · 임재현 에디터 (jlim@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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