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의 맛, RC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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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의 맛, RC F
  • 안민희 에디터
  • 승인 2015.05.2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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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회사의 철학은 자동차의 맛을 결정짓는다. 렉서스하면 떠오르는 완벽한 만듦새에 재미를 더한 RC F는 렉서스의 맛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모든 자동차 회사에는 특유의 맛이 있다. 어떤 모델을 타더라도 균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다. 제조사의 철학이 빚어내는 느낌이다. 자동차의 수많은 부품들은 모델 따라 달라지지만, 결국은 사람이 설계하는 것.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설계한 부품들이 모이면, 그 목적에 어울리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 회사의 철학이 자동차의 맛을 결정짓는 이유다. 그렇다면 렉서스의 맛은 무엇일까?
 

렉서스의 맛이라… 쉽게 결정내리기 어렵다. 렉서스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뛰어난 만듦새. 어떤 렉서스를 타도 완벽할 정도로 조용하고 안정적이다. 그런 이미지가 깨끗한 물과 같다. 하지만 물은 특별한 맛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좀 탄산수 같기도 하다. 렉서스에 톡톡 튀는 재미를 더했기 때문. 변화의 시작은 2009년 토요다 아키오 사장의 손길부터다. 그는 진짜배기 자동차 마니아다. 토요타에 입사해 차를 만드는 법을 배우며 자동차를 터득했다. 직접 팀을 만들어 자동차 경주에 참가할 만큼 자동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의 요구는 간단했다. ‘더 좋고 재미있는 자동차를 만들자’, 카 마니아의 요구답다.
 

그가 취임한 지 6년째. 렉서스의 변화는 지금도 파도의 물결 같다. 라인업 전체의 디자인을 바꾸며 한층 대담해졌다. 고성능 브랜드 F를 전면에 내세우고, 차종마다 스포츠 감각을 더한 F-스포츠 모델을 더하며 부담 없는 운전 재미 알리기에 나섰다. 슈퍼카 LFA로 국제적인 이목도 끌었다. 어느새 렉서스의 맛이 바뀌었다. 이제 누구도 렉서스가 단조롭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 게다가 렉서스 최초로 재미란 가치로 똘똘 뭉친 고성능 스포츠카를 출시했다. RC F가 그 주인공. LFA의 DNA를 이어받았다는 것이 더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RC F를 만나기 위해서다. 다소 어두운 곳이지만 RC F만은 환하게 보였다. 불빛 아래 서 있는 굴곡진 차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과격과 과감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이 강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렉서스 특유의 디자인은 한층 농밀해졌다. 바다보다 진한 파랑색 차체와 카본파이버 보닛의 조화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지붕, 리어스포일러도 마찬가지. 10kg 정도 무게를 줄였다. 한국 사양에서는 카본 패키지가 기본이라고. 가장 큰 이점은 지붕의 무게를 줄여 무게중심을 낮추는 것. 이런 세심한 만듦새가 모여 고성능 차를 만드는 것이다.

실내는 고성능과 럭셔리의 만남을 보여준다.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 구조를 IS와 공유하면서도 곳곳을 가죽으로 감싸고 카본을 더해 훨씬 고급스럽게 마무리했다. 럭셔리 쿠페의 분위기가 난다. 약간 폭신한 알칸타라 소재의 시트는 몸을 잘 잡아준다. 멀티미디어 시스템 조작은 터치패드로 한다. 스마트폰 다루듯 손가락을 쓸고 오므려 다룬다. 손끝 진동으로 작동을 알려주니 순식간에 익숙해진다. 뒷자리는 키 180cm 성인 기준으로 조금 버겁다. 기울어진 등받이의 쿠션은 좋지만, 아무래도 무릎과 머리 공간이 부족해서다. 단거리 주행용으로는 괜찮을 것이다. 럭셔리 쿠페 뒷자리에 사람을 태울 일은 많지 않다. 2명을 위한 넉넉한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RC F 전용 계기판. 렉서스의 슈퍼카, LFA의 계기판을 개선한 것이다.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아날로그 속도계를 합쳤다. 오른쪽에 달린 속도계는 시속 340km까지 표기해뒀지만 크기가 작다. 커다란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속도, 기어 단수 등 다양한 정보를 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행 모드를 바꾸면 배경색 등 디자인과 구성이 바뀌는데 시인성이 아주 좋다. 기름 부족 등 운전 중 생길 수 있는 상황을 크게 띄워 알려주는 것도 마음에 드는 요소 중 하나다.

커다란 기대와 함께 시동을 걸었다. 재채기와 함께 엔진이 깨어난다. 차갑게 식었던 엔진이 달아오르기 전까지는 소리가 크다. 그런데, 제 컨디션을 찾자마자 소리를 줄인다. 저속에서는 조용조용 다니는 쪽에 가깝다. 커다란 배기음을 과시하며 거리에서 폼을 잡고 싶다면 조금은 아쉬울지도. 애초에 렉서스는 졸부의 차가 아니다. 자의식 과잉과는 거리가 먼 진지한 자동차다.
 

RC F의 V8 5.0L 자연흡기 엔진은 렉서스에서 가장 강력한 V8 엔진이다. 최고출력 473마력을 7,100rpm에서, 최대토크 53.7kg·m을 4,800~5,600rpm 구간에서 낸다. 경쟁자들이 자연흡기 엔진에서 터보차저로 넘어갈 때, 터보차저보다 출력 강한 자연흡기 엔진으로 대담한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출력 비교만 해도 기존 모델인 IS F가 423마력을 6,600rpm에서 낸 것에 비해 50마력이 늘었다. 자연흡기 엔진의 성능을 높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렉서스는 신형 엔진을 만드는 수준의 광범위한 재설계를 더했다. 한층 가벼운 신형 부품을 적용해 저항을 줄이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만큼 엔진의 회전감각이 아주 매끄럽고, 회전수의 상승도 빠르다.
 

노멀 모드로 주행에 나섰다. 가속이 부드럽다. 엔진회전수는 낮게 조절하면서 빠르게 변속해 속도를 올린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다. 공차중량 1,825kg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가속의 질감은 사뿐하다. 꽉 맞물린 자동 8단 변속기의 직결감이 좋다. 바쁘게 달릴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는지 시속 80km에서 8단으로 변속을 마친다. 시속 100km로 순항할 때 엔진회전수는 1,500rpm에 머문다. 항속주행에서는 흡기 밸브 타이밍을 조절해 압축비보다 팽창비가 높은 앳킨슨 사이클로 바꿔 연비를 높인다. 고속도로에서 80km 가까이 달리니 12km/L의 연비를 기록했다. V8 5.0L 엔진으로는 쉽게 도달하지 못할 연비다.
 

느긋하게 항속주행을 즐겼다. 고요한 실내는 음악 감상에 제격이다. RC F에 달린 마크 레빈슨 사운드 시스템은 스피커가 17개나 된다. 그만큼 공간감 형성에 유리하다. 열화된 음질의 보정기능까지 있기에 꽉 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상력이 뛰어난데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클래식부터 전자음악까지 모두 고른 소리를 내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볼륨을 높여 라흐마니노프를 들을 때면 이지러지는 맘처럼 고동치는 선율이 귓가를 파고든다.
 

엔진회전수를 올려 내달릴 때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달리건만, 회전수를 낮출 때는 아주 부드럽고 조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분명 스포츠카임에도 대다수 GT보다 안락성에서 앞선다. 세련미를 자랑하는 렉서스다운 선택이다. 서스펜션 또한 마찬가지. 약간 단단하게 도로를 누른다. 하지만 딱딱해 불편하지는 않다. 노면의 충격을 부드럽게 거슬러낸다. 거친 노면에서도 부드럽게 달릴 수 있는 것은 충격을 되돌리는 과정이 점진적이기 때문. 고성능을 위해 전 세계 까다로운 서킷에 맞춰 서스펜션을 맞춘 RC F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렉서스의 다른 모델들에 비하면 단단하지만, 높은 접지력을 끌어내면서도 여전히 편안하다.
 

하지만, 편안함이 RC F의 전부는 아니다. 스포츠카에 걸맞은 짜릿함을 아직 보여주지 않았을 뿐. 회전수를 높이는 순간,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반전이 시작된다. 주행모드를 스포츠 S 플러스로 바꾸고 가속페달을 꾹 밟았다. 3,500rpm을 기점으로 배기음이 커지고, 4,000rpm을 넘기자 부드럽던 엔진은 토라지듯 성격을 확 바꾼다. 회전수가 급격하게 치솟는다. 날카로움이 전형적인 고회전의 엔진의 감각이다.

귓가에 들이치는 소리는 마치 흥겨운 재즈 세션. 트럼펫과 브라스의 신명나는 연주다. 렉서스 최초로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이 적용됐는데 어색하진 않다. 원래 들리는 소리에 액추에이터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섞여 들린다. 렉서스의 설명에 의하면 LFA의 느낌을 주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엔진회전수가 순식간에 치솟고, 아찔하게 속도가 오른다. 회전 한계인 7,300rpm까지 순식간에 도달해 변속을 재촉한다.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자연흡기 엔진의 온전한 매력이 불을 댕기는 순간이다. 가슴은 두근거리지만 차체는 아주 안정적이다. 단단한 차체를 만들기 위해 여러 차종의 플랫폼을 더하고, 레이저 스크류 용접 등 접착 기술을 이용해 다듬은 성과가 드러나는 순간. 미동 없는 차체 속 흔들리는 것은 앞길을 살피는 눈동자뿐이었다.

연거푸 변속을 거듭하며, 개발진들의 진의를 깨닫는다. 저회전과 고회전의 반응을 완전히 다르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은 기어비와 세팅이다. 3~6단까지의 기어비가 아주 가깝다. 엔진회전수를 높게 유지해 언제든 빠르게 가속하기 위해서다. 7,300rpm에서 다음 단으로 변속하길 거듭했는데, 5,500rpm, 6,000rpm으로 하락폭이 상당히 좁다. 스포츠 주행에서 쓰는 엔진 회전 영역을 명확히 나눠 극단적인 세팅이 가능했던 이유다.
 

한계를 쫓아 몰아붙일 때 야수 같은 본 모습을 드러낸다. 두근거리고 재미있는 차를 만들면서도 세련미를 놓칠 수 없다는 욕심이 만들어낸 세팅. 날카롭게 치솟는 회전수를 조절하며 코너를 돌파한다. 섬세한 조절이 필요한 고속 서킷에서 더욱 어울릴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마구 뛴다. 브레이크를 꾹 밟고, 코너에 뛰어들어 부드럽게 방향을 바꾼다. 제동력은 고르게 늘어나고, 절대적인 제동성능도 강하다. 페이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상황은 긴박하지만, 차체의 움직임은 리드미컬하다. 스티어링만큼이나 서스펜션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고, 방향 전환은 즉각적이다. 뒷바퀴굴림 스포츠카의 감각이 살아 있다.
 

독특하게도 날렵함과 안정감이 공존하는 것은 렉서스답다. 공차중량 1,825kg의 중량감 있는 차체를 기술의 힘으로 몰아붙인다. RC F에 맞춰 새롭게 세팅한 차체제어 시스템과 TVD(토크 벡터링 디퍼렌셜) 덕분이다. 원래 렉서스는 거친 드라이빙을 허용하지 않는다. 섬세하게 운전자의 실수를 보듬다보니, 프로그램의 제어를 벗어나 한계를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RC F는 달랐다. 운전자와 함께 한계에 도전하는 차다. 렉서스가 RC F에 맞춰 새로 짠 시스템 덕분이다. 안전하게 달리다가도 버튼 하나로 적극적으로 달릴 수 있는 차가 됐다. 노멀 모드에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만, 스포츠 모드에서는 개입의 폭을 낮춰 재미를 돋운다. 전문가 모드에서는 한계까지 허용하다 스핀 직전에 개입해 운전자를 지킨다. 물론 완전히 끌 수도 있다.
 

또한 코너를 파고들기 위해 차체제어시스템과 TVD를 하나로 묶었다. 뒷바퀴 양쪽에 보내는 출력비율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모터를 통해 1/1000초 단위로 디퍼렌셜의 다판 클러치를 조절해, 좌우로 보내는 힘을 바꾼다. 이를 통해 코너를 더 날카롭게 파고들 수 있다. 그리고 언더스티어를 막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코너를 도는 중에 차체제어시스템이 언더스티어를 감지하면 왼쪽 바퀴에 더 많은 출력을 보내 이를 막는다. 상황에 따라 다른 핸들링을 만들기 위해, TVD도 스탠다드, 슬라럼, 트랙의 세 가지 모드를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슬라럼 세팅에서 상당히 기민하게 움직였던 뒤쪽이, 트랙 세팅에서는 안정적으로 버틴다. 굽이지는 길을 여유롭게 달리며 풍경을 만끽했다. 어떤 속도에서든 진솔한 자동차의 움직임은 조작의 재미를 안겨주기 마련이다.
 

RC F는 렉서스가 제대로 된 차 만들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시장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다움을 유지하되, 재미와 안락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잘 녹여냈다. 렉서스만의 맛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두근거리는 짜릿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차는 많지 않다. 그래서 RC F는 한층 더 특별하다. GT와 스포츠카의 경계에 발을 살짝 담근 차가 아니다. 어느 쪽으로 봐도 잘 만든 차다. 훌륭한 GT이자, 진짜배기 스포츠카다.


■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
RC F를 대표하는 색은 ‘히트 블루 컨트라스트 레이어링’이다. 긴 이름답게, 상당한 공을 들여 만드는 색상. 은색 베이스 코트를 통해 강렬한 광택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인 도장 방식과는 다르게 4번을 굽고, 5번의 코팅을 더해 완성된다. 이런 도색 공정은 대부분 전시용 자동차에만 사용된다. 이런 까다로운 도색 과정을 바꾸기 위해, 기술 및 공정에 변화를 줘야 했는데, 기존 LFA의 생산 라인에서 RC F가 생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RC F는 렉서스 최초로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이 적용됐다. 차 안에서 배기음, 흡기읍, 기계음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스포츠 S 플러스 모드에서 작동되며, 엔진회전수에 따라 소리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3 000rpm 아래는 낮은 음을, 이후부터는 엔진음을 높게 변하는 과정을 들려주며 운전자를 흥분시킨다. ECU를 통해 엔진 회전, 속도, 드로틀 위치 등의 정보를 받아, 액추에이터를 통해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RC F의 오디오와는 별개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자연적으로 나는 소리와 5:5의 비율로 들린다. LFA의 것과 맞먹는 소리를 내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저속에서 소리 범위는 200~400Hz, 고속의 소리 범위는 400~900Hz로 맞춰 LFA처럼 강렬한 소리를 내도록 했다. 그 결과 엔진회전수에 맞춰 소리가 급격하게 변하는 다이내믹한 감각을 자아낸다.

■ 단단한 차체를 만드는 방법
단단한 차체, 뛰어난 강성은 RC F 설계 과정의 최우선 목표다. GS, IS C, IS의 세 가지 플랫폼을 혼용, 보강하여 접목한 이유다. 앞부분은 GS의 것을 바탕으로 하되, 패널 두께를 늘렸다. 가운데는 IS C를 바탕으로 로커 이너를 대폭 키웠고, 뒷부분은 IS를 바탕으로 센터 플로어 보강판을 더했다. 엔진부 브레이스를 앞 서스펜션 타워와 연결하고, V형 강성 보강용 지지대와 연결했는데, 뒷부분의 강성을 강화하고 핸들링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차체 강성을 위한 다양한 접합 기술 또한 적용됐다. 레이저 스크류 용접과 구조 접합 기술을 전면적으로 적용했고, 부분적으로 스팟 용접도 사용했다. 중량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적용됐다. 고장력 장판과 알루미늄을 차체 곳곳에 사용했다. 1620MPa급 고장력 장판을 차체 주요 부분에 적용했고, 전면 로커와 필러 보강을 위해 980MPa급 고장력 강판을 썼다.

글 · 안민희 (minhee@iautocar.co.kr)
사진 · 김동균 (paragur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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